소설리스트

무련전봉-15화 (15/853)

제 15장. 양준을 찾아온 소무영

소년의 옆에 있던 제자가 재빨리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 공자, 오늘은 양준에게 도전할 수 있는 날이에요. 동문들은 공헌치를 얻으려고 이곳에 모여 양준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소 공자라고 불린 소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우리 양 사형이 고생하는군.”

겉으로는 걱정하는 듯하지만 말속에는 비아냥거림이 묻어 있었다.

“네. 닷새 한 번씩은 꼭 얻어맞아요. 그것도 기절할 때까지.”

앞서 말한 제자가 이어 설명했다.

소년은 또 한 번 웃었다.

“하지만 그 정도론 부족해. 어떻게든 그자를 능소각에서 쫓아낼 거야. 능소각 제자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밟아줄 수 있으니까.”

“맞아요. 감히 오매진에서 소 공자의 일을 훼방 놓다니. 매운맛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예요. 소 공자의 신분을 모르고 경거망동한 거죠.”

그의 아첨은 소년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소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년은 바로 양준이 오매진에서 만났던 소무영이었다. 그날 소무영은 두 사내와 짜고 치는 연극을 하다가 양준에게 폭로되었고, 당시 화가 나서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는 능소각에 돌아온 뒤, 양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나름의 수단과 경로가 있어, 하루가 채 안 되어 양준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다만 문파의 규칙 아래에서는 직접 건들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오늘에야 사람을 거느리고 양준을 괴롭히러 왔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모두 양준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소무영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쟤들은 이만 가라고 해. 오늘 양준은 내가 상대할 거니까.”

그의 뒤에 있던 제자가 급히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공수하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 양준의 도전 상대는 소무영, 소 공자입니다. 편의를 좀 봐주시죠. 양해 바랄게요.”

이 말을 듣고 많은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무영을 바라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어떤 이들이 소리치며 항의했다.

“양준은 매번 빗자루로 상대를 선택했어. 왜 너한테 양보해야 하는데?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야!”

말이 떨어지자마자 누군가 말한 이를 끌어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무영이잖아. 소무영이 누군지 몰라?”

“누군데?”

이 사람은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무영에 대해 정말 몰랐다.

“우리 능소각 장로 중에 소씨가 있고, 10대 핵심 제자 중에도 소씨가 있어. 그러니 어떤 신분일 거 같아?”

끌어당긴 이가 한마디 일깨워 주었다.

비록 말을 확실하게 하지 않았지만 듣는 이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반 제자일 뿐이었다. 소무영의 뒷배경에 대해 듣고 나니 감히 항의할 수가 없었다.

“양준을 이긴다 해도 공헌치가 몇 점 되지도 않아. 소무영에게 밉보일 필요는 없지.”

“그래, 맞아.”

듣는 이는 뜻밖의 가르침을 받고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소무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비록 오늘 양준의 도전 상대는 소무영으로 결정되었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은 양준이 어쩌다 소무영의 미움을 산 건지 궁금해, 남아서 구경하려고 했다.

얼마간 기다렸는데도 양준이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소무영은 화가 났다.

“양준은 왜 안 나타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그는 아침 일찍 나와서 빗자루질을 하는데요. 오늘은 왜 지금까지 안 나타나는지… 아니면 양준이 사는 곳에 가볼까요?”

소무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작 빗자루질 하는 하인이 이렇게 날 기다리게 하다니. 가만두지 않겠어!”

양준이 어디서 사는지는 비밀도 아니어서 소무영 주변에 있던 다른 제자가 그를 위해 길을 안내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양준의 집으로 향했다.

잠시 뒤, 사람들이 양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사방이 뚫려 바람이 새는 오두막을 본 소무영은 왠지 기분이 통쾌해졌다. 그는 오두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양준이 사는 곳이라고?”

“네, 양준은 예비 제자라서 의식주 모두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건 그가 직접 지은 집일 것입니다.”

“좋아, 좋아.”

소무영은 더없이 마음이 후련했다. 비가 오면 양준이 홀딱 젖을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웃음기를 거두었다. 소무영은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

“양준, 당장 튀어나와 벌을 받아라!”

소무영은 위풍당당하게 소리를 지르고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오두막의 문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허겁지겁 달려 나와 살려 달라고 비는 모습을 상상하니 점점 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집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소무영은 얼굴이 뜨거워져 화를 내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양준, 주제 파악하고 얼른 튀어나와. 아니면 우리가 쳐들어가겠다.”

역시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이쯤 되니 소무영도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만약 양준이 정말 안에 있다면 기척이라도 있을 텐데 집에 없다는 말인가?

고개를 돌린 소무영은 수하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 제자가 다급히 오두막 앞으로 달려가, 문을 발로 차고 힘 있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뛰어나와 소무영에게 말했다.

“소 공자, 안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가득한 것이 아마도 이 녀석이 며칠 전에 이미 도망친 것 같습니다.”

“도망쳤다고?”

소무영은 어이가 없었다. 여러 날 고심해서 준비하여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양준이 도망치다니…….

이는 마치 기세등등하게 주먹을 휘둘렀는데 그 주먹이 솜에 닿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무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며칠간 정말 양준을 보지 못했어.”

“상황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것이라고, 양준이 소무영에게 미움을 사고 큰 봉변이 닥칠 걸 눈치채고는 문파를 떠난 거야.”

“그래서 그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군.”

“이런, 양준이 떠났으니 앞으로 손쉽게 공헌치를 얻을 일도 없겠군.”

구경하는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소무영의 귀에 들어왔다.

그는 조금 우쭐해졌으나 복수를 하지 못하니 여전히 속이 후련하지 않았다. 어두운 안색으로 잠깐 생각한 소무영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이미 도망쳤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복수를 하지 못해 내 분도 풀리지 않았으니, 이 집이라도 불태워버려야겠어.”

소무영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심지어 소무영이 데려온 제자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한 제자가 나서서 말했다.

“소 공자, 문파 내에서 불을 지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있는데 뭐가 문제야? 게다가 이건 문파의 재산도 아니잖아. 불지르는 게 뭐 대단할 일이라고. 이까짓 허름한 집 따위 남겨두면 내 눈만 더럽힐 뿐이야.”

소무영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속의 걱정을 덜었다. 어쨌든 소무영은 뒷배경이 있는 사람이었다. 허름한 집 한 채를 불지른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즉시 제자 하나가 불씨와 마른 짚을 가지러 갔다.

잠시 뒤, 모든 준비를 마치자 소무영은 일그러진 얼굴로 횃불을 들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그의 얼굴에 비치자 더욱 일그러져 보였다.

“양준, 앞으로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아니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소무영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손에 든 횃불을 오두막에 던지려고 하는데 옆에서 갑자기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집을 태우잖아.”

“왜 내 집을 태우는 거야?”

그 사람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네 집이라고?”

소무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힐끗 바라본 소무영은 깜짝 놀라 재빨리 옆으로 펄쩍 뛰었다. 얼굴은 공포에 질린 채, 민첩하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는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의 모습은 옷이 남루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잡초처럼 너저분하고 더러웠다. 거기다 몸에는 수많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소무영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피비린내와 땀 냄새가 한데 섞여 맡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와 사흘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저런 꼴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제정신은 아닌 것 같군.’

만약 손에 그릇이라도 들었다면 영락없이 밥을 구걸하며 다니는 거지의 모습이었다!

‘근데… 왜 낯이 익은 느낌이 들지?’

소무영은 자세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의문만 커져갔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양준!”

양준도 소무영을 알아보았다. 그는 헤벌쭉 웃어 보이고는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게 누군가? 오매진에서 위풍당당하고 의리 넘치던 소 사제가 아닌가?”

그 소리에 소무영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펄쩍 뛰며 말했다.

“양준, 천국을 마다하고 굳이 지옥을 가려 하다니! 너 오늘 죽었어.”

“나랑 싸우려고?”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당연하지!”

소무영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이런 델 왜 왔겠어?”

“내가 목적이면 날 찾으면 될 것이지, 남의 집은 왜 태우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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