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6화 (16/853)

제 16장. 세 수를 양보하죠

소무영은 재빨리 횃불을 바닥에 던지고 미친 듯이 밟았다. 마치 그 횃불이 양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화풀이를 하였다.

이렇게 지체하다 보니 구경하는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사람들은 양준이 소무영을 두려워해 능소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일을 보러 나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꼴이 왜 저렇게 처참하지? 피도 많이 흘린 것 같고. 옷의 흔적을 보니 무슨 뾰족한 것에 걸려 찢어진 것 같은데, 누구와 싸움이라도 한 건가?’

그의 상처들은 얼룩등거미와 싸울 때 다친 것이었다. 그때 미처 치료하지 못하고, 오매진에 가서는 사냥꾼을 도와 의원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사냥꾼의 아들이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하여 급히 문파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자신의 오두막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누군가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집이라도 태울 기세였다. 양준이 어찌 가만히 두고 볼 수만 있겠는가?

주인이 나타나자 불을 지르려다가 만 소무영은 난처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흥분하였다. 그는 양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준, 내가 너한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 너만 아…….”

“잠시만.”

양준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고는 씩씩하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봐…….”

소무영은 뒷부분의 말을 삼켰다. 마치 파리를 먹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신선한 똥 위에서 날아다니는 파리를 먹은 것처럼 기분이 몹시 께름칙했다.

“소 공자, 저 사람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닙니까?”

“하!”

소무영은 냉소했다.

“이따가 제대로 밟아 놔. 녀석이 굴복할 줄 모른다고 했으니 절대 사정을 봐주지 마라. 오늘 반드시 날 건드린 결과를 알게 할 것이다.”

“네.”

양준은 집으로 들어가 배낭을 풀어서 내려놓았다. 이 약초들은 그가 사흘간 노력한 수확이었다. 먼저 내려놓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짐을 내려놓은 뒤, 양준은 다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소무영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소무영은 분노에 찬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그는 한참이나 생각해서 준비한 대사를 하려던 것이었는데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양준에 의해 잘리고 말았다. 하지만 양준이 지금 또 묻자 그는 조급한 마음에 버럭 화를 냈다.

“양준, 내가 너한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탓하지 마. 오늘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살려는 줄게!”

말을 마친 소무영의 얼굴은 마치 이미 복수를 끝마친 듯 통쾌한 표정이었다. 정말 양준을 이미 어찌한 듯한 얼굴이었다.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소무영을 바라보았다.

“왜?”

소무영은 마음이 철렁했다. 양준의 표정이 너무 차분하고 느긋한 것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초조하게 했다. 오매진에서 양준에게 한 번 당한 뒤로 그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생긴 터였다.

“불효자가 따로 없군.”

양준이 한탄했다.

둘러보던 사람들도, 소무영도 모두 경악했다. 그들은 속으로 뭐가 불효라는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소무영이 표정을 구기며 물었다.

“모르겠어? 그럼 내가 알려주지.”

양준은 너그러운 척, 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어볼게. 네 친척 어르신 중에 능소각에 계시는 분이 있지?”

“눈치가 좀 있군!”

소무영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양준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날 찾아와 복수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믿는 구석이 있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방자하게 굴면서 내 집까지 태우겠다고 떠들 수 있겠어?’

“그분은 문파에서도 높은 직에 있겠지?”

양준이 또 물었다.

“그래! 장로직에 계시지!”

소무영은 코웃음을 쳤다.

“내 누님은 무려 핵심 제자다! 손가락 하나로도 널 죽일 수 있어!”

양준은 소무영의 상황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는 소무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그래서 네가 불효자라는 거야.”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소무영은 버럭 화를 냈다. 빙빙 돌리는 양준의 말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르다니. 너 보기보다 멍청하구나?”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쌍한 눈빛으로 소무영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네 누님이라면 내 사저(師姐)이기도 한데 내가 정말로 널 그렇게 부른다면 네 누님은 널 어떻게 부르겠어? 그 장로분은 또 너를 어떻게 부르고?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지! 내가 만약 그 장로라면 널 곤룡골(困龍澗)에 가둘 거야. 평생 못 나오게 말이지.”

소무영은 흠칫 놀라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곤룡골은 능소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능소각이 수백 년 지속되어 오면서 육성한 제자의 수도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사문(師門)을 나간 뒤, 나쁜 일을 저지르고 큰 죄를 범한 제자들은 항상 존재했다. 이런 악행을 저지른 제자들이 문파에 잡히면 즉석에서 수련 결과를 폐지당하고 곤룡골에 던져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곤룡골, 이곳은 주변 몇천 리 안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소무영은 양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 글자를 듣자 본능적으로 겁이 났다.

소무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의 수하가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소 공자, 이 녀석은 입만 살아 있습니다. 이 자와 말다툼을 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이 자를 혼내주러 온 것입니다.”

“응.”

소무영은 정신을 차리고 화를 내며 말했다.

“양준,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오늘 네가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지 않으면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양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주먹을 쥐고 말했다.

“소 사제는 지금 나와 겨루어 보겠다는 거야?”

소무영은 경멸의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싶은데 네가 못나서 그럴 자격이 없더라고! 난 육체 경지 9단계다!”

그의 말을 듣자 양준은 바로 상황을 알아챘다. 문파의 규정에 의하면 상대방과의 실력 차이가 세 단계를 넘어갈 경우, 도전할 수 없었다. 때문에 소무영은 양준에게 싸움을 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사람을 데려온 이유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겉치레를 위해서 모인 것만은 아니었다.

소무영은 경멸의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냉소를 머금었다.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양 사형은 이미 육체 경지 3단계까지 수련했는데, 누가 양 사형에게 가르침을 받을 거야?”

“육체 경지 3단계라니. 아주 대단한 경지인데!”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양준보다 늦게 입문했지만, 이미 그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소 공자, 제가 할게요. 저는 형제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낮아서 겨우 육체 경지 5단계밖에 되지 않으니 양 사형과 좀 놀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경멸 어린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 제자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육체 경지 3단계였지만 지금은 아니야.’

닷새 전에 그는 확실히 육체 경지 3단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과 달랐다.

하지만 양준은 당연히 이런 일을 입 밖으로 떠들 생각이 없었다. 닷새 동안 두 단계가 오른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소무영이 데려온 사람이 입을 열었다.

“양 사형, 전 조호(趙虎)라고 합니다. 오늘 사형을 쓰러트리는 사람이 누군지 기억해두세요!”

“그래, 기억해두지.”

양준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조호는 일부러 소무영의 체면을 세워주느라 그곳에 꼿꼿하게 서서 손가락을 구부리며 말했다.

“양 사형, 제가 세 수를 양보할 테니 제가 발을 떼게만 한다면 사형이 이긴 것으로 하죠. 안 된다면 이 사제가 무례하게 굴어도 탓하지 마세요.”

이 방자한 도발은 무시를 담고 있었다. 소무영은 마음속이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조호 참 대단한데. 어떻게 사람을 모욕하는지 잘 알잖아. 꽤나 머리를 썼군.’

육체 경지 3단계는 비록 5단계와 두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이었다. 발휘할 수 있는 실력 차이도 어마어마했다.

더군다나 양준의 모습은 큰 봉변이라도 당하고 온 듯 몹시 초라했다. 척 보아도 싸울 기운이 없어 보이는 데다가, 영양부족으로 몸이 삐쩍 말라 매우 만만해 보였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준이 오늘 큰일 나게 생겼다고 여겼다. 심지어 옆의 나무 위에 서 있는 하응상도 그렇게 생각했다.

암당 제자로서 하응상은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준의 전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어떻게 사제더러 양보하라고 하겠어?”

양준이 주저했다.

“안 될 건 없죠.”

조호가 고집을 부렸다.

“사제로서 사형에게 세 수 양보하는 건 당연하죠! 하하!”

“그럼 그러지 뭐.”

양준은 썩 내키지 않는 모양새였다.

“사제가 그렇게 말하니,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마음껏 덤비세요!”

조호가 소리를 질렀다. 두 다리는 마치 돌처럼 제자리에 굳게 서 있었다. 몸의 근육은 울룩불룩 튀어나왔고 실핏줄도 툭툭 불거졌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말라깽이 양준을 바라보며 조호는 냉소를 지었다.

‘저런 몸뚱이 가지고 무슨 싸움을 한다고? 내 콧바람이면 날려보낼 수 있겠어.’

양준은 천천히 조호 앞으로 걸어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일부러 조호의 눈앞에 대고 흔들거리며 웃었다.

“조 사제, 정말 때릴게.”

“덤비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준은 주먹을 휘둘러 조호의 가슴팍에 내리꽂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구경하는 사람들은 양준의 주먹이 이상하게 내리꽂힌 것을 보았다. 심지어 양준이 손을 움직이는 흔적도 보지 못했다.

조호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했다.

쿵!

두 번째 주먹이 조호의 복부에 내리꽂혔다. 조호의 몸이 홱 구부려지며 배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팍!

양준은 다리를 뻗어 조호의 아래턱을 찼다. 조호는 소리를 지르며 나가떨어졌고, 바닥에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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