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9화 (19/853)

제 19장. 향로의 교묘한 작용

양준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밖으로 걸어갔다. 입구 쪽에 도착했을 때, 한 사람이 공헌당 안으로 들어오다가 그와 부딪힐 뻔했다.

두 사람의 반응은 상당히 민첩하였다. 양준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고, 상대방도 멈추었다. 그러자 마음을 흔드는 향내가 확 풍겨왔다.

고개를 들자 양준은 달처럼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면사포를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은 여인이었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피부의 색깔과 윤기로 보아 짐작했을 때는 나이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사저겠군.’

양준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미안함을 표했다. 그리고 살짝 옆으로 비켜서서 그녀더러 먼저 지나가게 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잠깐 멍해졌다가 귀가 확 빨개지더니 그를 잘 쳐다보지 못하고 눈빛을 피했다.

양준은 속으로 이 사저가 참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고 생각하며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상대방이 난감할까 봐 배려한 것이었다.

하응상은 난처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공헌당 입구에서 양준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양준을 보자마자 그녀는 자신과 그의… ‘그것’이 떠오르고 말았다.

순간, 하응상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귀가 확 뜨거워졌다. 그녀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다급히 공헌당 안으로 들어갔다.

양준은 사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간이 작은 여인은 많지 않았다. 능소각에도 많은 여제자가 있었지만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들이라 대부분 비교적 활발했다. 그녀처럼 눈만 마주쳤는데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그래서 면사포를 쓰고 다니는구나. 이 사저가 귀엽기는 해. 그런데 왜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내가 이리도 익숙하지? 어디서 맡아 본 것 같은데?’

하응상은 공헌당으로 들어가서 몰래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양준이 떠나간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녀는 계속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계산대 뒤에 서 있는 몽 주인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사부, 왜 그러십니까?”

하응상이 물었다.

“난 저 녀석이 안타까워서 그러지.”

몽 주인은 탄식하며 말했다.

“착한 아이기는 해.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도 견딜 줄 알고 인품도 나쁘지 않고 말이야. 게다가 성격도 좋고…….”

하응상은 사부가 이렇게 양준을 칭찬하는 것을 듣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아침에 그 녀석이 사부의 제자인 저한테 무슨 짓을 한지 아세요? 훌떡 벗은 몸으로 제 눈을 더럽히고 저를 깜짝 놀라게 했단 말이에요!’

몽 주인이 끝없이 말을 늘어놓자 하응상은 들을수록 화가 났다. 그녀는 손을 뻗어 계산대를 거세게 내리쳤다.

팍!

순간,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몽 주인은 그것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음 아픈 듯이 소리를 질렀다.

“공헌치 20점짜리 내 지급 하품 혈령지가…….”

“이게 혈령지라고요?”

하응상은 탁자 위에서 이미 가루가 된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부가 늙어서 눈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어떻게 혈령지라는 말인가?

“아니다. 내가 잘못 봤다.”

몽 주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계산대 위의 가루를 날려보냈다.

“참, 넌 오늘 이 사부를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몽 주인은 표정을 가다듬고 엄숙하게 물었다.

“경지를 돌파했습니다.”

몽 주인의 얼굴이 흠칫 떨렸다. 그는 하응상의 경지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군. 너의 체질이야말로 이 공법에 딱 맞지. 자, 이 단약을 먹어 네 단계를 단단히 하거라.”

“네.”

하응상은 단약을 받아 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부의 상처는 어떠신가요?”

몽 주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야.”

*양준은 흥분과 기대에 찬 얼굴로 다시 오두막에 돌아왔다.

이제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가 준비되었다. 게다가 수량도 적지 않으니 한동안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양준은 그 향로가 정말 자신의 수련에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오두막 쪽은 능소각에서 가장 외지고 황폐한 곳에 있어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양준은 자신의 비밀이 들통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검은 책을 소환하고는 세 번째 장을 펼쳤다. 그리고 향로를 꺼내 침대 옆에 두었다.

그는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를 꺼내 향로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순간, 이상한 향내가 오두막에 가득 찼다. 양준은 깊이 숨을 들이쉰 뒤, 마음속으로 느껴 보았다. 이 향내는 좀 특별하기는 했지만 주의할 만한 곳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를 맡아봐도 몸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향로 구멍에서 솟아오르는 향기는 조금도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고 양준의 콧구멍으로 들어왔다. 마치 가늘고 긴 뱀처럼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양준의 콧구멍을 거쳐 그의 몸속에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몸속에 갑자기 무언가 흘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양준은 신경을 늦추지 않고 향로를 들고서 밖으로 나가 수련하려 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려고 발을 뗀 양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발은 철근이라도 단 것처럼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발을 내딛자 그의 체력도 빠르게 소모되었다.

또 한 걸음 내딛자 양준은 온몸이 허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식은땀이 그의 등줄기에서 흐르더니 몸의 근육이 모두 팽팽해졌다. 아직 수련한지 얼마 안 된 기감이 경맥 안에서 풀떡풀떡 뛰고 있었고, 온몸의 뼈가 ‘우두둑’ 소리를 냈다.

세 번째 걸음을 내딘 양준은 두 다리가 나른해져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손에 든 향로도 떨어트린 뒤였다.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양준은 숨을 거칠게 헐떡거렸다. 가슴팍이 격렬하게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근육과 내장, 뼈가 모두 팽창했다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저릿한 느낌이 점점 더 강해져서 양준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억지로 꾹 참았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 과도하게 지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전에 몇 번 느낀 적이 있어 그나마 익숙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명 세 걸음만 걸었을 뿐인데 어떻게 모든 체력을 다 소모했다는 말인가? 체력을 다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몹시 지쳐 있었다. 마치 며칠 동안 제대로 밤잠을 자지 못해서 잠이 몰려오는 것처럼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이 순간,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의 약효가 양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두 약초는 모두 약간의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독성이 강하지 않아 몇 포기 정도는 먹어도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신경을 다치게 하고 하나는 몸을 다치게 했다. 양준은 자신의 현재 상태와 대조했을 때, 뭔가 알 것 같았다.

바로 그가 향로의 향을 흡입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삼엽잔혼화든 절지고목초든 모두 약한 독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원인은 향로일 것이다. 분명 향로가 두 약초의 약효를 극대화했을 것이다.

금신을 얻은 양준은 회복 능력이 매우 강해졌고, 수련을 해도 지친 감을 느끼지 못해 극한까지 단련하지 못했다. 극한에 도달하지 못하면 잠재력을 끌어 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고작 세 걸음 걸었을 뿐인데 이미 기진맥진해진 상태였다. 이렇게 쉽게 극한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데 앞으로 수련이 안 될 걱정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양준은 사람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발굴하느냐에 달렸다. 자질이라는 것은 한 무인의 성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노력도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자질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줄곧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두 손에 천천히 힘을 주어 지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두 다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양준은 실핏줄이 불거져 나온 얼굴로 두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일어났다.

몸속의 모든 체력이 이미 소진된 것처럼 의식도 점차 흐려졌지만, 마음속의 집념은 강하게 분출되었다.

‘일어나자! 일어서면 한계를 넘어서는 거야!’

이토록 시간이 천천히 흐른 적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은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두 다리도 땅을 밟고 서 있었다. 그는 두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조금씩 움직였다. 일어나는 몸의 자세는 몹시 꿋꿋했다. 속도는 느렸으나 그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드디어, 그의 몸이 우뚝 일어섰다. 살짝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발은 꿋꿋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이 순간, 양준은 웃음이 나왔다. 정신과 몸의 체력은 이미 고갈되었고 두 눈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고, 머리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는 여전히 웃음이 나왔다.

이겼다! 남을 이긴 것보다 자신을 뛰어넘은 이런 기쁨이 훨씬 더 컸다!

양준이 기절하려던 순간,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퍼졌다. 이 기운은 뼛속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그의 몸 구석구석에 생기를 가져다주었다.

고갈된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다. 심지어 정신도 맑아졌다. 비록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양준도 더 이상 억지로 버티지 않고 바닥에 앉아서 몸의 변화를 느껴 보았다. 저릿하던 느낌도 사라지고 오히려 매우 개운해진 감이 들었다.

온몸의 피와 살도 규칙적으로 꿈틀거렸다. 또 꿈틀거림과 동시에 더욱 단단해지고 폭발력을 갖추었다. 경맥 안의 기감은 쉬지 않고 풀떡거렸으며 뼈도 많이 단단해진 듯했다.

그는 단시간 만에 자신의 몸이 많이 강해진 것을 느꼈다.

양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에 뼈에서 용솟음치는 뜨거운 느낌은 아마도 금신의 작용일 것이다. 앞뒤로 이런 일을 몇 번 겪자 양준도 중요한 것을 알아차렸다. 곤경에 닥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야만 금신의 잠재력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힘들 때 타협하고 포기했더라면, 금신도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특이한 금신이야!’

양준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지금에서야 그는 향로가 왜 수련에 도움이 되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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