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장. 스스로 자초한 일
“그럼 사제, 우리 시작할까?”
양준은 이운천의 의견을 물었다.
“좋아요.”
이운천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공수하며 말했다.
“사형께서 가르침을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단계를 노출하지 않았다. 이운천은 자신이 말했다가 양준이 놀라서 도망칠까 봐 걱정이었고, 양준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제 조호가 패한 데 이어 오늘의 분노까지 더해진 이운천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달려들었고, 양준과 이운천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이운천은 필살기인 쌍장(雙掌)을 아래위로 뒤집으며 날렸다. 기술은 점점 빨라지고 점점 강해졌다.
양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른 몸이 근육으로 팽팽해졌다. 며칠간 수련한 결과가 이 순간에 드러났다. 그는 장권과 옆차기로 응대했다.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치자 이운천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맞은편에서 강대한 힘이 전해졌던 것이다. 그 힘에 그는 제대로 서 있기 힘들어 연신 뒤로 밀려났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손바닥은 마치 암석에 부딪힌 것처럼 뼈가 저릿해졌다.
한 번 밀리게 되자, 이운천은 더 치열하게 달려들었다. 날랜 신법(身法)으로 양준과 공방전을 벌였다. 그는 양준의 주위를 맴돌면서 적절한 시기에 쌍장을 날렸다. 어느새 십여 장이 양준의 몸에 떨어졌다.
‘쩨쩨한 자식, 감히 나를 아침 일찍 공헌당으로 보내 고생하게 해?’
이운천은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만 같았다. 장마다 힘을 가득 실어 날렸다. 쌍장이 양준의 몸을 가격할 때마다 퉁퉁, 소리가 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소무영은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마치 자신이 직접 싸우는 것처럼 통쾌했다.
쌍방이 모두 육체 경지의 무인이었다. 수련에서 이제 갓 걸음마를 떼었기에 싸움을 할 때 쓸 수 있는 수단이 아주 적었다. 게다가 양준은 현재 자신의 신체 자질을 시험하려 하고 있었고, 그 덕을 이운천이 보게 되었다.
얼마 뒤 접전을 거쳐, 양준은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괜찮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그는 목적을 이루자 더는 이운천과 싸움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이운천은 한창 승세를 타서 공격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거듭 물러나기만 하던 양준이 갑자기 흥분하는 것이 보였다. 이운천은 그 눈빛을 보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금 양준에게서 느껴지는 흥분은 왠지 모르게 잔혹한 느낌이 들었다.
이운천은 마음속으로 아차 싶었다. 그가 거리를 벌리려는 순간, 양준이 한 발짝 내디디면서 바위처럼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운천은 높이 뛰어올라 양준의 추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양준은 이운천의 허리를 향해 힘껏 뛰어올라 발차기를 했다.
처참한 비명소리와 함께 이운천은 몇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이운천이 미처 일어서기도 전에 양준이 달려들어 그를 올라타고 앉았다. 두 주먹이 쉬지 않고 내리꽂혔다.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시합은 결국 이운천의 애걸복걸로 끝났다.
원래 이운천은 쓰러져 심하게 두들겨 맞을 때에도 끝까지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양준은 그의 공격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맞아도 끄떡하지 않고, 미친 듯이 계속 주먹을 내리쳤다.
얼마 안 되어 이운천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공격을 받을 때, 자신과 양준의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준은 맞으면 맞을수록 흥분하지만, 그는 맞으면 맞을수록 죽을 맛이었다.
‘세상에, 얻어맞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니.’
나중에 이운천은 심지어 양준의 온몸이 불그스름하고 피부 아래로 혈액이 요동을 치며 핏줄이 솟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의 흉악한 모습은 미친 사람 같아 보였다.
이운천은 한순간 양준이 정말 미친 줄로 알았다. 하지만 시합이 끝나자 놀랍게도 양준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상냥한 얼굴을 하고서 다정하게 그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웃는 얼굴로 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야 빗자루를 들고 자리를 떴다.
양준은 싸울 때와 싸우지 않을 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운천은 온몸이 다 쑤셨다. 양준의 주먹을 너무 많이 맞아 상처를 안 입을 수가 없었다.
‘완전 밑천도 못 건졌잖아!’
이운천은 분통을 터뜨렸다.
양준은 겨루기 싫다고 여러 번 거절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기어코 공헌치 20점으로 약초를 바꿔 오면서까지 겨루자고 매달렸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왕창 얻어터졌다. 상대는 약초를 가져갔고, 자신은 도전에서 졌기에 공헌치도 감점되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런데 스스로 자초한 거잖아?’
이운천은 몹시 후회됐다.
소무영과 무리들도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이운천과 양준이 맞붙는 순간, 그들은 환호성까지 질렀었다. 이운천의 계략이 드디어 성공해 곧 양준이 얻어맞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미리 경축했다.
소무영은 양준이 두들겨 맞은 다음, 다가가서 몇 마디 비아냥거리며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려고 했다. 그러나 싸움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켜보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 접전에서 양준과 이운천은 무승부였다.
한순간 소무영은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는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이운천이 무슨 경지야?”
“육체 경지 7단계요. 경지가 오른지 얼마 안 돼서 무예는 아직 수련하지 못했어요.”
옆에 있던 한 제자가 대답했다.
“양준은?”
소무영이 다시 물었다.
“아마 육체 경지 4단계겠죠?”
대답이 좀 애매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은 실력이 세 단계나 차이 났으나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어제 조호가 양준의 초식 세 번에 쓰러진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양준이 보여주는 실력이면, 설령 조호가 최선을 다해 싸운다 해도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소문난 동네북의 실력이 왜 이렇게 강하지? 진짜 실력이 있었다면 전에는 왜 모든 도전에서 졌을까?’
양준은 입문한 지 삼 년 남짓 되었는데, 입문해서 일 년 뒤부터 도전을 받기 시작해 어제까지 단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거의 이 년이나 되는 시간이었다.
소무영과 무리들이 놀랄 일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원래 그들은 양준이 이운천과 맞서며 잠깐이라도 쓰러지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여겼다. 양준이 이기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준이 정말 이운천을 이기자, 그들은 일순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육체 경지 4단계가 육체 경지 7단계를 이기다니. 이는 능소각 몇백 년간의 역사에서 여태껏 없었던 일이었다.
소무영이 넋이 나가 멍해 있는데, 갑자가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양준이 빗자루를 손에 들고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이 매우 친절하게 말했다.
“소 사제, 다음에 이런 일을 꾸밀 거면, 꼭 나한테 미리 알려줘.”
“뭐야? 이미 알고 있었어?”
소무영은 입가를 실룩였다.
양준은 하하 웃었다.
“이운천 사제는 어제 사람들 뒤에 숨어 있었지. 내가 별다른 장점은 없어도 기억력 하나는 좋거든.”
“엉큼하기는!”
소무영은 이를 갈았다. 이제야 그는 자신들이 양준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피차일반이야. 아, 맞다. 나 내일도 도전할 수 있어. 매일 한 번의 도전 기회가 있잖아. 너희들 덕분에 잘 놀았어. 내일 또 보자.”
소무영 패거리는 얼굴빛이 금세 차가워졌다.
‘아니, 지금 무슨 뜻이지? 도전에 맛 들인 거 아니야?’
이운천의 현재 모습과 자신과 이운천의 실력 차이를 떠올리자, 거의 모든 이가 온몸이 오싹해지며 두려움에 싸여 말했다.
“소 공자,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소무영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도전은 문파의 오래된 관습이었다. 어느 제자가 남에게 도전받아 본 적이 없겠는가. 자신이 아무리 뒷배경이 있다지만, 그렇다고 문파의 규칙을 함부로 깰 수는 없었다.
“걱정하지 마. 그냥 으름장을 놓는 걸 거야. 정말 너희들한테 도전하면 내가 저 자식을 뼈도 못 추스르게 할 거야.”
소무영이 이처럼 말하자, 다른 제자들은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날마다 도전하는 것은 양준도 그냥 갑자기 뱉어 본 말이었다. 능소각 제자들은 매일 한 번씩 도전할 기회가 있었다. 전에 그는 한 번도 이 권리를 사용해 본 적이 없어 깜빡 잊고 있었다. 오늘 이운천이 일깨워 준 덕에 이 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하루에 한 번 도전하고 일반 제자를 이기면 공헌치는 2점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티끌 모아 태산 아닌가. 한 달을 적립하면 그 양도 적지 않았다.
하물며 수련은 홀로 해서는 발전할 수 없었다. 매일 동문들과 겨루면서 몸을 쓰는 것이 유익했다. 어차피 시간도 많이 들지 않았다. 소일거리로 긴장을 해소하면서 공헌치도 얻을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따져 보니 그래도 오늘 도전으로 많은 수확을 얻게 되었다. 공헌치 2점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절지고목초를 열 포기나 얻게 되었으니 횡재한 셈이었다.
‘매일 약초 열 포기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양준은 상상의 나래를 폈다.
오두막으로 돌아온 양준은 향로를 꺼내 약초를 태우며 힘든 수련을 계속했다.
*그다음 날, 한 무리의 능소각 제자들이 함께 모여 수련하고 있었다. 비록 힘든 수련이지만 웃고 떠들며 그 속에는 즐거움도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한 사람이 공포에 질린 채 한곳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 소 공자…….”
“왜?”
소무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가 정말 왔어요.”
“누가 왔는데?”
소무영은 귀찮아하며 그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양준이 웃는 얼굴로 빗자루를 들고 한쪽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