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장. 달라진 양준
소무영의 패거리들은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안녕, 사제들. 이렇게 일찍 일어나 수련을 하다니, 정말 부지런하구나.”
소무영 패거리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양준의 시선이 조호와 이운천을 향했다. 아직 얼굴이 푸석푸석한 두 사람은 무의식중에 뒤로 움츠러들었다. 양준의 주먹이 떠오르자 두 사람은 왠지 오싹해졌다.
“왜 왔어?”
소무영이 멋쩍어 하며 양준이 찾아온 목적을 뻔히 알면서도 한마디 물었다. 어쨌든 어제 그는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쳤었다.
“도전하러.”
양준은 환히 웃으며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친절하게 물었다.
“요즘 도전받지 않은 사제가 누구지? 나랑 한 번 겨루자.”
능소각 문파 규칙에는 동문끼리 겨룰 때 도전을 피해서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를 어기는 자는 문파에서 쫓겨났다.
이 규칙에 따라, 소무영의 수하들은 양준이 아무리 두려워도 그가 도전하면, 닷새 안에 남에게 도전받지 않은 이상, 흠씬 두들겨 맞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도전에 응해야 했다.
이날, 소무영의 수하 장삼(張三)이 두들겨 맞았다. 양준은 만족스럽게 떠났고, 소무영은 그의 뒷모습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튿날, 양준이 또 찾아왔다. 소무영의 수하 이사(李四)가 한바탕 구타를 당했다. 양준은 만족해하며 떠나갔고, 소무영은 으름장을 놓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양준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소무영의 수하인 왕오(王五)가 재수 없이 걸려 멍이 들도록 얻어맞았다. 양준은 또다시 만족해하며 자리를 떴다. 소무영은 욕하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양준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소무영도 요령이 생겨 더는 욕하지도, 위협하지도 않았다. 이런 것들은 양준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양준은 그의 위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소무영은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은 채, 양준을 매섭게 쏘아봤다.
이렇게 거듭 시달림을 당하게 되자 소무영의 수하들이 가만있으려 하지 않았다.
‘양준, 이 자식,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잖아. 능소각의 일반 제자가 얼마나 많은데, 다른 사람은 찾지도 않고 하필이면 우리 패거리만 찾잖아. 분명 앙갚음하려는 거야.’
게다가 그들 패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양준이 하루에 한 명씩 도전하고 순환까지 하면, 매일 빈손으로 돌아가는 날이 없었다.
양준의 이 거동은 능소각 내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예비 제자 양준의 대반전은 모든 이의 주목을 받았다. 양준은 조호를 두들겨 팬 다음부터 사람이 완전 달라진 것 같았다. 이제 더는 누구나 심심하면 한 번 건드려 보던 동네북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한 번씩 도전했고, 도전마다 모두 이겼다. 더군다나 소무영이 양준에게 시달려 기가 확 꺾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무영이 어떤 사람인가. 대단한 뒷배경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소무영마저도 양준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다른 일반 제자들은 더욱이 양준을 건드릴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지금 누구도 양준에게 도전하지 못했다. 입문한 지 삼 년이 다 되어 예비 제자로 강등되고, 빗자루질 하는 일까지 겸하는 양준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모두들 양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측했다. 육체 경지 4단계, 5단계, 심지어 8단계까지 추측하는 이도 있었다. 육체 경지 7단계인 이운천을 이긴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양준의 진짜 경지를 알 수 없었다.
오직 하응상만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간 양준이 남들과 싸울 때마다 몰래 훔쳐보았다. 양준보다 훨씬 높은 경지의 실력을 가진 그녀는 양준의 경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양준의 진짜 실력을 알아챈 하응상은 놀라고 말았다.
‘이운천을 이겼을 때, 분명 육체 경지 5단계에 불과했어. 그런데 불과 나흘 만에 경지가 6단계에 이르다니. 수련 속도가 어떻게 이리 빠를 수 있지? 특수 체질인 나도 육체 경지에서 적지 않은 단약을 복용했는데 진전이 이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어.’
의혹을 풀기 위해, 하응상은 양준의 오두막으로 찾아갔다. 몰래 숨어서 그가 도대체 어떻게 수련하는지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지켜봐도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양준은 오직 권법술을 수련할 뿐이었다. 다만 권법술을 펼칠 때, 몇 번만 펼치면 늘 기진맥진해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하응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본 동작을 하는데 왜 저리 힘들어하지. 무슨 현묘한 무공도 아닌데 말이야.’
며칠 동안 계속 지켜보았지만, 하응상은 아무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양준에게 비밀이 있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조사하기는 어려웠다. 남을 엿보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늘 나체 상태인 소년을 엿보는 것은 더욱 그러했다.
지켜볼 때마다 하응상은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아니 왜 수련할 때마다 웃통을 벗는 거야. 갈비뼈가 훤히 보이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래도 확실히 전보다 튼튼해지고 살도 좀 찐 것 같군.’
처음으로 양준의 나체를 봤던 광경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몰래 비교해 보았다. 비교를 마친 뒤, 그녀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양준은 누군가 며칠 동안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지 못했다. 그는 매일 능소각의 빗자루질을 마친 뒤, 소무영 패거리를 찾아가서 도전하고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수련했다. 비록 단조롭고 재미없는 생활이지만 꽉 찬 느낌이 들었다.
향로의 작용은 대단했다. 어제 이미 육체 경지 6단계를 돌파했고, 매일 반 시진씩 하는 육체편 수련과 더불어, 체내 기감이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한고비만 남겨 놓았다. 이 고비만 넘기면 육체 경지 7단계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경지에 오르면 체내에는 약간의 원기가 생성되었다. 양은 적지만 그래도 원기였다. 체내에 원기가 생기기만 하면 무예를 수련할 수 있었다.
육체 경지 7단계에서 9단계는 체내에서 원기가 생성되고 늘어나며 강화되는 단계였다. 또한 원기가 온몸의 경맥으로 흐르면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단계이기도 했다. 원기가 체내에서 대주천을 형성하고 천지지교(天地之橋)를 뚫어야만 육체 경지를 돌파하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거의 목숨을 건 수련을 통해, 양준은 매일 자신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향로의 특이한 향을 맡으면서 짧게나마 권법술을 펼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새벽녘에 하는 육체편 수련도 전보다 훨씬 쉬워졌으며 날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만약 조건이 따라 준다면, 양준은 자신이 정말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쯤 되어 난감한 일이 생겼다. 절지고목초가 동이 나고, 삼엽잔혼화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요 며칠 양준은 약초를 엄청 아껴 썼다. 그러나 약초의 소모가 너무 빨라 어느 순간 동이 나 버렸다. 그는 하는 수없이 공헌당에 가서 남은 공헌치로 약초를 바꾸었다.
이번에 몽 주인은 선심을 써서 약초 몇 포기를 더 얹어 주었다. 그 대신 양준을 붙잡고서 어떻게 실력이 이리 빨리 늘었는지 캐물었다.
보아하니 양준이 소무영 패거리를 괴롭힌 일이 몽 주인한테도 전해진 모양이었다.
양준은 몽 주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주책없고 호색가인데다 낯짝이 두껍긴 했지만, 양준과 잘 맞았다.
하지만 실력이 갑자기 성장한 것에 대해 사실대로 그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양준은 흑풍산에 들어가서 무의식중에 열매 하나를 먹었는데, 그다음부터 갑자기 각성해서 어떻게 수련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몽 주인은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저번에 양준이 흑풍산에 들어간 시기와 요 며칠의 사건들을 생각해 보면 그의 설명이 일리가 있었다. 결국 기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공헌당에서 나온 양준은 근심에 빠졌다.
나머지 공헌치를 모두 약초로 바꾸었으나 사나흘 정도밖에 버틸 수 없는 양이었다.
‘이다음엔 또 어디 가서 약초를 구해야 하나?’
지금은 매일 남에게 도전해서 공헌치 2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도전으로 얻은 공헌치들은 매월 초여드레가 되어야만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아직 스무 날 가까이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못 기다리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수련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금세 며칠이 지났다. 양준은 매일 부지런히 수련하여, 이제 막 육체 경지 7단계로 돌파하려는 기미를 보였다. 매일 애써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양준의 편한 생활에 비하면, 소무영 패거리는 심한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다. 요즘 양준은 매일 그들을 찾아와 귀찮게 했다.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고,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소무영은 양준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지 차이가 너무 커서 아예 도전할 수가 없었다. 그는 줄곧 양준이 육체 경지 4~5단계인 줄로 알고 있었다.
소무영은 이렇게 당하기만 하고 가만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인심도 흩어지게 될 터였다.
궁리 끝에, 소무영은 큰마음을 먹고 양준에게 당했던 능소각 제자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렀다. 그러고는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밤, 양준을 급습해 설욕한다!”
규칙대로 할 수 없다면, 그냥 규칙을 버리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기습한다고요?”
“응.”
소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양준 그 자식이 뻔뻔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정정당당하게 도전해서 이긴 거잖아요. 우리가 밤에 몰래 기습하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처벌을 받을 거예요.”
이운천이 머뭇거렸다.
자리에 있던 대다수는 이운천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소무영은 분노해서 말했다.
“그 자식은 해도 너무한단 말이야. 우리의 입장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매일 찾아오잖아. 만약 혼쭐을 내주지 않으면 언제까지 날뛸지 몰라. 아무튼, 오늘 밤 나는 꼭 그자를 찾아가 혼내 줄 거야. 너희는 가고 싶으면 나를 따르고, 안 와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만약 정말 일이 생기면, 나 소무영이 모두 책임질 것이니 너희들은 걱정할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