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장. 양준을 기습하다
제자들은 소무영의 진심 어린 말에, 이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소무영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한 이상, 이미 인의를 다한 것이었다.
이운천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르죠. 만약 성사되면 그 나쁜 자식이 우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할 수도 있고요. 소 공자, 이번에 저는 목숨 걸고 함께 해보겠습니다.”
“저희도 함께 할게요.”
제자들이 일제히 말했다.
소무영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밤중이 다 되어 모두 소무영의 방에 모였다.
“준비됐어?”
소무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번에는 반드시 그 나쁜 자식을 혼내주고 말겠어.”
소무영은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번뜩이는 눈만 내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복면을 썼다. 모두 흥분한 상태였다.
“출발!”
소무영이 크게 외치며 명을 내렸다.
검은 그림자 열몇 개가 신속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능소각에서도 밤이면 제자들이 숙직을 서고 순찰을 했다. 그러나 소무영 패거리는 능소각의 사람들이었다. 순찰하는 제자들의 행동 규칙을 손금 보듯 꿰고 있어 쉽게 피할 수가 있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바로 지금 소무영이 가장 좋은 예였다.
얼마 안 되어 소무영의 패거리들은 양준의 오두막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모였다. 모두 숨소리를 죽여가며 분노에 찬 눈길로 칠흑같이 어두운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집 안에 빛이 꺼진 걸 보니, 잠든 모양이야.”
소무영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이운천에게 말했다.
“양준의 실력이 약하지 않으니, 잠시 뒤에 우리 둘이 먼저 가서 제압한 다음, 형제들이 달려들어 그를 힘껏 때려주는 거로 하자.”
“좋아요.”
이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때려도 돼.”
소무영이 말하자, 제자들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소무영은 손을 홱 저으며 바로 오두막으로 돌진했다. 그림자 열몇 개가 어둠 속에서 빠르게 이동했다. 모두 수련을 거친 사람들이라 기척을 내지 않고 움직였다.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분노가 쌓여 있었다. 양준을 흠씬 두들겨 패 설욕할 생각을 하니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오두막과는 이제 몇 장의 거리만이 남아 있었다. 소무영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더욱 짙어졌고, 입꼬리는 저도 모르게 위로 올라가 있었다.
이제 오두막의 문이 눈앞에 있었다. 소무영은 이미 한 손을 뻗어 문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때, 별안간 이상한 향기가 코끝으로 밀려왔다. 소무영이 가볍게 냄새를 맡아 보니, 향기가 약간 이상했다. 맡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으나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였다.
소무영은 의아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한 걸음에 오두막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소무영은 몸이 나른해지며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느닷없는 이변에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 그는 온몸의 힘이 반이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동시에 눈앞이 흐려지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다시 한 걸음 더 내디디자, 소무영은 코가 먼저 땅에 닿으며 쓰러졌다. 코에서 뜨거운 열기가 두 갈래로 흘러나오더니 입안이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털썩- 털썩-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오두막을 향해 돌진하던 능소각 제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소무영처럼 땅바닥에 쓰러졌다. 하나같이 온몸이 나른하고 무기력하게 넘어졌다. 신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며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야?”
소무영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이운천에게 물었다.
이운천은 일어서려고 발버둥 쳤으나 도무지 기운이 없었다. 땅에 엎드린 채 힘없이 헐떡이면서 얼굴빛도 보기 흉해졌다. 그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소 공자, 아마도 중독된 것 같아요.”
“중독됐다고?!”
소무영은 대경실색했다.
“그것도 맹독 같아요……. 소… 공자, 전 안 될 것 같아요. …꼭 복수해 주세요!”
이운천은 부들부들 떨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이운천은 머리를 떨어뜨리더니 더는 기척이 없었다.
소무영은 공포에 질려 급히 이운천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깨울 수가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이 데려온 형제들이 모두 화를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알 수 없는 공포와 당황스러움, 그리고 슬픔이 가슴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놀랍게도 이 순간, 소무영은 오히려 냉정해졌다.
‘여기는 능소각이다. 어떻게 독살당할 수 있지? 게다가 이런 맹독에. 불과 숨을 세 번 쉬는 동안, 이리 많은 목숨이 허무하게 죽다니……. 누가… 왜 독을 쓴 거지?’
소무영이 궁리하는 와중에 귓가에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야?”
양준의 목소리였다. 소무영은 양준이 뼈에 사무치도록 미웠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맞아. 양준이 독을 쓴 거야. 나쁜 자식. 우리는 그냥 혼쭐 내주려고 했을 뿐인데. 이처럼 악랄한 수단을 쓰다니. 너무 잔인하잖아?’
소무영은 양준에게 악담을 퍼붓고 싶었지만, 의식이 금방 흐려졌다.
‘젠장,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단 말인가? 아직 포부를 제대로 펴 보지도 못했는데 이곳에서 요절하게 되다니. 하늘이 나를 시기하는구나. 하늘이 나를 시기하는 거야.’
양준이 소무영 패거리 앞으로 다가왔다. 쭈그리고 앉아 그들의 복면을 벗겨 보니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잠시 생각해 본 그는, 곧 그들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비참하게 당한 일로, 밤에 자신을 기습해서 보복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다만 그들은 정말 운이 없었다.
양준은 손에 든 향로를 들여다보며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생각지 못한 사고였다. 평소 양준은 잠자기 전에 꼭 향로를 검은 책에 넣어 두었다. 다만 오늘 밤에는 수련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피곤했다. 향로를 거두어들이는 것도 잊고 깜빡 잠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향로 안의 약초가 채 타지 않은 상태였고, 때마침 소무영 패거리들이 뛰어들어 냄새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향의 위력은 대단했다. 양준이 처음으로 냄새를 맡았을 때도 세 걸음밖에 못 걷고 땅에 쓰러졌었다. 금신을 가진 양준마저 그러한데, 하물며 소무영 패거리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들은 금신을 가지지 못했다. 오늘 맡은 양으로도 아마 며칠은 요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부주의한 양준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지만, 소무영 패거리의 안일함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만약 그들이 이상한 향기를 맡은 순간, 숨을 죽였다면 아마 이렇게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휴, 고생을 사서 하네.”
양준은 탄식하며 향로를 검은 책 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니 난감하기만 했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그들을 모두 끌어낸 뒤, 아무 데나 내버려 두었다.
오두막으로 돌아온 양준은 계속해서 잠을 청했다.
그는 오늘 일로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서둘러 육체 경지를 돌파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향로를 밖에 두고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약 육체 경지를 돌파해 개원 경지에 이르면 이렇게 번거로울 필요가 없었다. 체내 원기가 검은 책을 느낄 수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향로를 계속 검은 책 속에 넣어 두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양준은 줄곧 열심히 수련했다. 두 가지 약초를 아껴 쓰면서 사용했지만 여전히 날이 갈수록 부족해졌다.
사흘 뒤 아침, 양준은 육체편을 수련한 뒤, 보랏빛 기운을 흡입하는 동시에 체내 경맥의 기감이 갑자기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수많은 벌레들이 경맥에서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양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기감을 느껴 보았다.
기감이 요동침에 따라 피와 살이 꿈틀대며 온몸이 짜릿짜릿해지더니 말로 표현할 수없이 후련해졌다. 이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지고 복부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 동시에 기감의 요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건 원기야!’
양준은 드디어 한고비를 넘기고 육체 경지 7단계에 올라섰다. 체내에 원기가 생겨난 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었다.
인생의 첫 원기는 언제나 단전(丹田)에서 생겼다. 이때의 원기는 보잘것없었다. 무인이 싸우는 데 전혀 힘이 되지 못했다. 일단 사용하는 순간, 바로 사라져 버렸다. 아직 체내 주천(周天)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원기를 생성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체내에 원기가 생겼으므로 무인은 이때부터 무예를 수련할 수 있었다.
장권이나 옆차기 같은 기본 동작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무예는 원기에 힘입어 펼칠 수 있는 초식으로 무공의 뿌리와 같았다.
같은 주먹이라도 육체 경지 6단계와 7단계가 내지르는 효과는 전혀 달랐다. 만약 육체 경지 6단계가 내지르는 주먹이 이백 근의 힘이라면, 7단계가 내지르는 원기를 이용한 주먹은 오백 근 내지 천 근에 가까운 힘이었다.
물론 일반 무인들은 육체 경지에서 쉽사리 무예를 사용하지 않았다. 원기 회복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개원 경지에 이르러야만 원기를 마음대로 사용해 싸울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설령 원기가 소진됐다 해도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결국 원기를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육체 경지 7단계부터 무인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한 갈래의 원기를 밑거름으로, 끊임없이 늘리고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무예를 수련하는 것이었다.
무인들은 보통 무예를 수련하면서, 원기를 강화하고 체내 주천을 열어 개원 경지에 이르렀다.
양준도 예외가 아니었다.
육체 경지 7단계에 이르렀음을 확인한 양준은 곧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급히 방으로 돌아가 검은 책을 불러냈다.
그러고는 바로 네 번째 장으로 넘어가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