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장. 진양결
요즘 들어 매번 경지를 돌파할 때마다 양준은 네 번째 장의 봉인을 해제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매번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마 육체 경지의 분기점인 7단계에 이르러야만 네 번째 장에 변화가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과연 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번째 장에서 반짝반짝한 금빛이 떠올랐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금빛은 책장의 속박에서 벗어나 직접 양준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머릿속에 갑자기 정보가 떠올랐다.
진양결(眞陽訣)!
이는 이번 돌파 뒤에 검은 책이 그에게 준 것이었다. 다시 자세히 훑어본 양준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진양결은 일반 무예와는 조금 달랐다. 일반 무예는 모두 고정된 초식이 있었다. 설령 변화가 있다 해도 근본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나의 근본적인 구조가 있어 그 범주를 벗어나면 해당 무예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양결은 그런 것이 없었다. 고정된 초식이 없고 변화무쌍해 자신의 마음대로라고 할 수 있었다. 혹은 전혀 초식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진양결의 첫 번째 다른 점이었다.
진양결은 수련하는 것도 간단했다. 다만 수련 조건에 대한 제약이 있었다. 반드시 양기가 있는 환경에서만 수련할 수 있었다.
이 공법으로 수련한 진양원기(真阳元气)는 체내에 일정 정도 쌓이면 액체화되어 단전에 모을 수 있었다.
이는 여느 무예나 공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인의 육체는 언젠가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고, 일단 절정에 도달한 뒤에는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지 않는 이상, 더는 체내의 원기를 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진양결은 달랐다. 한계에 달하면 진양원기는 액체가 되어 단전에 스며들었다. 경맥을 말끔히 청소한 후 계속해서 수련할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았다. 다시 말해, 이 공법을 수련하면 한계치에 다다르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며, 양기만 있으면 무한정 수련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진양결의 두 번째 다른 점이었다. 이 차이점들은 진양결의 비범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일단 수련해서 양액(陽液)을 만들어 내면 싸울 때 양액을 이용해 공격할 수 있었다.
양준은 잠깐 생각한 뒤, 진양결을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공헌치가 없어 문파에서 무예를 배울 방법이 전혀 없었다. 다음으로 그는 검은 책에서 알려준 것이 범상치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문파의 무예가 진양결보다 꼭 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수련 환경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햇빛도 양기이므로 햇빛만 있으면 진양결을 수련할 수 있었다. 물론 효율이 매우 떨어질 뿐이었다.
햇빛은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춘다. 그러니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흡수할 수 있겠는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자 양준은 즉시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햇빛을 듬뿍 받으며 두 눈을 감았다. 마음속으로 진양결의 운기조식 노선을 생각하면서 단전 내 유일한 한 갈래 원기를 진양결의 노선에 따라 운행시키기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동안 수련했는데도 체내의 원기는 손톱만큼 증가되었다. 원기의 유동 속도도 거북이 기듯이 느리기만 했다. 그러나 양준은 처음 수련에서 이만한 성과를 얻은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했다.
수련은 오랜 축적 과정으로서, 짧은 시일에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인내심만큼은 항상 자신 있었다.
사흘이 걸려서야 양준은 겨우 단전 내의 원기를 명치까지 끌어올렸다. 강하지 않은 원기를 제어해 명치 부근의 요혈(要穴)을 누비게 했다.
검은 책에서 얻은 정보에 따라 체내에 양원인(阳源印)을 형성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양결을 수련하는 첫걸음이었다.
양원인은 별다른 용도가 없이 오직 양기의 존재를 감지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양준은 이력이 부족하고, 실력도 아직 약한 데다 자신만의 신식(神識)도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짙은 양기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양원인이 있으면 달랐다. 양원인은 양기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 양기가 존재하기만 하면 반응을 일으켰다.
체내의 한 줄기 원기가 가슴에서 끊임없이 누비고 다녔다. 양준은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진중한 태도를 보였다. 양원인으로 응결하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했다. 도중에 어떠한 착오라도 생기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대략 두 시진이 지났다. 햇빛 아래 단정하게 앉아 있는 양준은 이미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오랫동안 땀을 흘리는 바람에 수분 부족 증상이 나타났고, 입술도 하얗게 바랬다. 그러나 양준은 의연한 표정으로 여전히 끊임없이 원기를 가슴 쪽 요혈에서 운행시켰다. 그는 조금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가슴 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곧이어 마치 달군 인두로 살을 지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양준은 눈을 번쩍 뜨고 이를 악문 채 가까스로 버텼다.
아픔은 갑작스레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슴 쪽은 이미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심지어 살짝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극심한 고통의 감각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며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양준은 어렴풋이 가슴 쪽에 뭔가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고개를 숙여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양원인이 형성된 건가?’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틀림없이 양원인이 성공적으로 형성됐을 거야, 그것도 가슴 한가운데. 다만 내가 보지 못할 뿐이지. 그런데 양원인이 생겼으면 양기에 대해 어느 정도 반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아무 느낌도 없을까? 설마 이 부근에는 짙은 양기가 없는 건가?’
양준은 양원인을 시험해 보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켜 능소각 안쪽으로 걸어갔다. 걷는 한편, 가슴 쪽의 느낌을 주의 깊게 살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갑자기 따듯한 열기가 전해졌다. 양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그의 생각이 옳았다. 체내에 양원인이 형성된 게 틀림없었다. 방금 전에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것은 그 부근에 양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반응이 있는 것을 보니 부근에 짙은 양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양준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진양결은 수련 환경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격했다. 양기가 짙을수록 수련 속도는 더욱 빨랐다. 양준처럼 오로지 햇빛의 힘에만 의존해 수련하면 가장 느릴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양원인이 느끼는 양기의 방향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려갔다. 잠시 뒤, 그는 어떤 곳으로 뛰어들었다.
막 들어서는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양준, 어떻게 이 시간에 왔느냐?”
고개를 들어 보니, 몽 주인이 계산대 뒤에서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헌당이었군!’
양준은 몽 주인을 힐끔 보다가 다시 공헌당 뒤쪽의 후당을 훔쳐보고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양기의 출처가 분명했다. 공헌당 창고에 양성을 띤 물건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공헌당 거잖아.’
원하면 오직 공헌치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공헌치는 0점이었다. 전에 공헌치를 긁어모아 모두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를 바꿨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떠올리자 양준은 금세 실망하고 말았다. 몽 주인이 묻는 말에도 대꾸하지 않고 풀이 죽어 고개를 돌리고 나가 버렸다.
양준은 능소각 안에서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가슴 쪽 양원인이 때때로 양기가 나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데 양기가 있는 곳은 전부 문파 내 권력자의 거처, 아니면 남의 주머니 속이었다.
양준은 복면을 쓰고 강탈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왜소한 체구와 상대의 실력을 떠올리고는 이 생각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비록 양성을 띤 보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아무 성과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차례 확인해 본 결과, 양원인은 오십 장 이내에서 양기의 존재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오십 장이 넘으면 양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이것도 아마 그의 실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실력이 오를수록 양원인이 양기를 감지할 수 있는 범위도 더 커질 것이라 짐작했다.
능소각에서 돌아다닌 지도 어느덧 두 시진 이상 흘렀다. 일부 금지된 구역을 제외하고 구석구석을 다 돌았으나 여전히 아무 수확도 없었다.
‘양원인이 느낄 수 있는 물건인 만큼 가치도 대단할 테지. 그런 물건을 누가 큰길에 던져두겠어? 내 생각이 안일했던 거야. 흑풍산에 다시 한번 가볼까? 산속에는 분명 양성을 띤 물건이 있겠지?’
이 생각의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와중에 가슴 쪽 양원인이 또다시 뜨거워졌다. 양준은 거의 본능적으로 양원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걷지 않아 천지를 가르는 산골짜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순간, 광풍이 그의 얼굴을 향해 불어왔다. 양준은 하마터면 바람에 밀려 넘어질 뻔했다.
양준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어떻게 여기일 수 있지?’
눈앞은 너비가 천백 척만큼 넓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산골짜기였다. 이곳은 바로 능소각에서 가장 위험하고 신비로운 곤룡골이었다!
곤룡골은 산골짜기 자체가 아주 이상했다. 능소각이 위치한 곳은 산맥이 아니라 평지 위였다. 이 산골짜기는 산골짜기라기보다 땅이 갈라지며 생긴 틈이었다. 다만 그 틈이 너무 클 뿐이었다.
곤룡골은 능소각이 금지하지 않은 금지된 구역이었다. 이곳은 이상할 정도로 위험하고 광풍이 몰아치고 있어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굴러떨어질 수 있었다. 일단 떨어지면 무조건 죽은 목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