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장. 십일 장로
곤룡골은 능소각에서 제자들을 유배 보내는 곳이기도 했다. 몇백 년 동안, 능소각에서는 큰 죄를 저지르거나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제자들을 수련의 경지를 폐지한 후 곤룡골로 유배하였다.
양준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 큰 죄를 저질렀다면 죽이면 될 일이었다. 왜 굳이 유배를 보내는 것일까? 수련의 경지를 폐지하고 이곳에 내던지는 자체가 죽으라는 말이었다.
그는 천천히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서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골짜기를 바라보며 의문에 잠겼다.
‘이곳에 어떻게 양기가 있는 거지?’
그리고 이 아래쪽에는 짙은 양기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양기가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산골짜기 끝에 서 있어도 양준은 공기 중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따뜻한 느낌은 태양의 힘은 아니었지만 태양의 힘보다 훨씬 따뜻했다.
잠시 생각한 양준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열심히 양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진양결을 수련할 때, 양기가 짙은 환경에서 수련할수록 수련 속도가 빨랐다.
지금 그의 몸속에는 원기가 부족하여 진양결의 운행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이 양기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면 수련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미 저녁 무렵이라 태양이 지고 있어 햇빛이 얼마 없었지만, 양준은 지금 수련하는 효율의 정도가 요 며칠간 일출 때 수련했던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나절 동안 수련하였다.
이튿날 새벽, 양준은 눈을 뜨고 자신의 수련 성과를 살펴보았다.
양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전에는 비록 햇빛 아래서 수련한다고 해도 사흘에야 겨우 원기를 조금 수련할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하룻밤만 수련해도 사흘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효율이었다.
몸속의 원기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처럼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밤의 촛불같이 나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기가 강해짐에 따라 양준은 몸을 통제하는 것이 전보다 많이 쉬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새로운 날이 밝았다. 양준은 진양결 수련을 잠시 멈추고 일어서서 반 시진 동안 육체편을 수련했다.
곤룡골 옆에서 양준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비록 하룻밤 내내 수련했지만 그는 전혀 피곤한 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기운만 펄펄 솟구칠 뿐이었다.
그가 가진 삼엽진혼화와 절지고목초는 이미 거의 소진된 상태여서 향로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수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양준은 소무영 패거리를 찾아가 싸우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소무영 패거리들은 능소각에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종적을 감추었다.
양준은 비록 그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원수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그들에게 도전했던 것도 자신의 성장을 검증하기 위해서이지, 딱히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양준은 그들이 밤에 자신을 습격했던 것을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았다.
자신이라도 복수할 실력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복수했을 것이다.
다시 곤룡골 옆에 앉은 양준은 사람을 날려보낼 것 같은 광풍을 무시한 채, 속으로 묵념했다. 그러자 조금밖에 없는 원기가 경맥에서 용솟음치며 계속해서 순환했다.
원기가 순환하자 피부의 모공이 열리며, 공기 중에 떠다니는 양기를 몸속으로 흡수했다.
온몸의 열이 올랐고, 마치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한 것처럼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틀간의 수련을 거쳐 양준은 몸속의 원기가 많이 강해졌음을 느꼈다. 원기에는 온화한 양염지력(陽炎之力)이 있었다.
이것은 진양결을 수련할 때, 가장 선명한 특징이었다. 몸속의 원기는 양력을 흡수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자연스레 양성을 띠었다.
양준은 다른 사람들이 육체 경지 7단계에 도달했을 때, 몸속에 원기가 얼마나 있는지 잘은 몰랐지만 자신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진양결이 있어서 천지의 양기를 흡수한 것이지만 이 세상에 진양결 같은 신묘한 공법이 또 얼마나 있겠는가?
이날, 양준은 수련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떴다.
이 며칠 동안 흡수했던 양기가 점차 무거워지고 경맥 안에서 느껴지는 열감도 점차 강해졌다. 양준은 그가 흡수한 양기가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일단 양기가 몸속에서 포화되면 액체로 응결되어 단전에 양액으로 저장된다. 이 양액이라는 것은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했다. 결투에 쓰일 수도 있었는데, 상상치도 못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양준은 그것이 몹시 기대되었다.
눈을 뜬 양준은 잠깐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수련에 심취한 나머지 이 사람이 언제 왔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사람은 옆으로 돌아서 있었는데 옷소매가 나풀거리는 청색의 장포를 입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머리와 수염은 온통 하얗게 세었고, 아래턱에 깔끔하게 정돈된 염소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나이만 보았을 때, 공헌당의 몽 주인과 비슷해 보였지만 기질은 완전히 달랐다.
이 사람을 처음 본 순간, 양준의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신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질은 몽 주인 같은 여색을 좋아하는 망나니와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한 명은 하늘이었고 한 명은 땅이었다.
이 사람은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앞의 곤룡골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그는 학식이 넓은 지자(智者: 슬기로운 사람)이자 무예가 출중한 웃어른이었다. 뭔가 생각난 양준은 얼른 일어나 제자의 예를 올렸다.
“제자 양준, 선배님을 뵙습니다.”
양준의 목소리에 놀란 듯, 노인은 천천히 돌아서서 인자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제자가 어떻게 불러야 하겠습니까?”
분위기로 보아 문파의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양준은 한 번도 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세히 물어야 했다.
노인은 머뭇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양준이 어려운 질문이라도 한 것처럼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십일 장로라고 부르면 된다.”
‘십일 장로라고?’
양준은 좀 의문스러웠다. 능소각 장로는 몇 명 되기는 했지만 절대 열한 명까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웃어른인데다 이렇게 말을 하니 양준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예를 올렸다.
“제자, 십일 장로를 뵙습니다.”
십일 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애로운 얼굴로 부드럽게 물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중이냐?”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양기를 다루는 무예 말이냐?”
“네.”
‘내가 여기서 양기를 흡수하는 것을 느꼈다니… 분명 보통 실력은 아닐 거야.’
“수련은 어떻게 되어 가느냐?”
“수련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십일 장로는 또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양준은 하나하나 대답했다. 그는 속으로 조금 감동스러웠다.
‘이 장로는 참 다정다감하시네. 가장 낮은 단계의 제자인 나한테도 이렇게 관심을 보이시고.’
양준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장로에게 호감이 생겼다. 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십일 장로님, 제가 이곳에서 여러 날 동안 수련했는데 한 가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십일 장로는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이 곤룡골 아래쪽에는 어째서 양기가 많은 겁니까?”
십일 장로는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당연히 이 아래쪽에 양성을 띠는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것쯤은 그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아래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모를 뿐이었다.
“이 곤룡골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느냐?”
십일 장로는 갑자기 주제와 동떨어진 얘기를 꺼냈다.
양준은 비록 그가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성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십일 장로는 곤룡골을 힐끗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에 의해 검으로 쪼개진 것이다.”
양준은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이 정도로 넓고 깊은 산골짜기가 검으로 쪼갠 것이라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더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눈앞의 십일 장로는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검을 한 번 휘두른 힘이 이토록 대단한 거지?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경지에 도달한 걸까?
“수백 년 전, 이곳에는 능소각이 없었다.”
십일 장로는 깊은 시선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준은 이 어르신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 얘기를 하리라 생각하여 숨을 멈추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때, 조사(祖師: 종파의 창시자)가 이곳을 지나며, 우연히 실력이 대단한 마두(魔頭)를 만났지. 두 사람은 이곳에서 큰 전쟁을 치렀는데 구체적인 전쟁 상황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맨 마지막에 그 마두는 자신이 조사의 상대가 안 됨을 알고 검으로 이 골짜기를 만들었단다.”
십일 장로는 말하면서 한 손으로 선을 그어 곤룡골을 두 쪽으로 나누는 시늉을 했다.
“마두는 곤룡골 바닥으로 도망쳤고, 조사도 그를 추격했지. 그래서 갖은 고생 끝에 그 마두를 죽였지만, 몸이 죽고 영혼이 사라졌어도, 그 마두의 실력이 뛰어난 탓에, 조사는 시름이 놓이지 않았단다. 그래서 이곳에 능소각을 세워서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더 이상 위해가 없다고 여긴 다음에야 홀연히 떠난 것이지. 이것이 바로 우리 능소각의 유래란다. 곤룡골이 생긴 지 수백 년 동안 바닥은 캄캄했다. 또 나중에 많은 죄를지은 제자들을 유배하면서 어떻게 우연히 양성을 띠는 보물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르지. 이것이 바로 네가 이곳에서 양기를 흡수할 수 있는 이유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문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
“십일 장로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도 그 보물을 보기 위해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