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8화 (28/853)

제 28장. 호미아

소무영의 도발에 대해 양준은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소무영은 정말로 그를 증오할 수도 있었지만 양준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마음가짐과 시야가 달랐다. 이런 티격태격 다투는 싸움에 대해 양준은 자신이 수련한 성과를 시험하는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비록 맨 처음에 그는 소무영과 유쾌하게 만난 것은 아니었으나 후에 그가 자꾸 찾아와 트집을 잡으면서 몇 번 마주치다 보니 양준은 소무영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좀 거들먹거리는 경향이 있을 따름이었다.

만약 이런 사람에게 잘해준다면 그도 분명 잘해줄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과 척을 진다면 그 사람은 마치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번거롭게 굴 것이다.

소무영과 무리들이 며칠 동안 줄곧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마도 양준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왜 날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겨서 달려와 전서를 준 거지?’

양준은 원래 소무영을 상대하지 않으려 했으나 빗자루질을 하며 고민하다가 일단 가보기로 결정했다.

소무영은 소인배가 틀림없었다. 그는 문파의 규칙대로 도전하지 않고 스스로 전서를 보냈다. 아마도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 생각인 게 분명했다.

그가 선택한 곳도 이상했다. 흑풍림은 흑풍산 아래에 있었는데 소나무 숲이었다. 꼼수를 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들은 사람 수는 많지 않았지만 소무영은 육체 경지 9단계, 이운천은 육체 경지 7단계에 도달했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육체 경지 5~6단계에 이른 사람들이었다. 양준은 이러한 적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양준은 제대로 된 전투로 자신의 수련을 검증해 보아야 했다. 이것은 동문과의 겨루기와는 다른 결투였다.

*바로 이때, 소무영과 패거리들은 능소각에서 흑풍림으로 가는 길에 매복하지도 않고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며칠 전 밤에 갑자기 봉변을 당하고,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던 추한 모습을 떠올린 소무영은 안색이 좋지 못했다. 그날 밤 무슨 영문인지 양준의 오두막으로 쳐들어갔던 형제들은 갑자기 모두 쓰러졌다. 그 모든 것이 이상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깨어난 그들은 밖에서 노숙했음에도 여름이라 추운 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밤새 모기 등 벌레에게 뜯겨 깨어났을 때 각자 몸에 벌레에게 물린 곳이 수백 곳이나 되었다. 피가 모기에게 얼마나 뜯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소무영 패거리들은 침대에 몸져누웠다. 그들은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진 상태였다.

조금 회복이 된 뒤, 소무영은 형제들을 데리고 능소각을 도망쳐 나왔다. 양준을 건드릴 수 없다면 숨으면 그만 아닌가.

그러다 어제 이운천이 새 무예를 익히자 소무영의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또 꿈틀거렸다. 그래서 오늘 이운천더러 전서를 보내게 하여 양준을 흑풍림으로 부른 것이었다.

문파 내에서 도전을 하지 않은 것은 소무영이 이운천에 대해 그다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만약 이운천이 질 경우, 한꺼번에 달려들 수 있었다. 문파의 규칙이고 뭐고 신경 쓸 필요 없이 양준을 두들겨 팰 수 있었다. 마음속의 울화를 풀 길이 없자 그는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소무영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운천이 부랴부랴 뛰어왔다.

“줬어?”

소무영이 매서운 눈빛으로 물었다.

“네.”

“그래, 그 자식이 오기를 기다리자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양준이 보이지 않자 소무영은 좀 짜증이 났다. 그는 왔다 갔다 하며 입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 자식, 혹시 올 용기가 없는 거 아니야?”

욕을 하자마자 이운천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 공자, 누군가 옵니다.”

“응?”

소무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양준이 죽으러 찾아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양준이 아니었다.

“소 공자, 풍우루(風雨樓) 사람입니다.”

이운천은 걸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소봉(成少峰) 같은데요!”

“성소봉이라고?”

소무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고개를 들고 보니 정말 성소봉이 사람들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소 공자, 잠시 자리를 피할까요?”

이운천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는 소무영과 성소봉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 문파에서 육체 경지 단계의 우두머리 인물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적지 않게 겨루었고 서로 이긴 적도, 진 적도 있었다. 만약 지금 마주친다면 분명 마찰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왜 피해?”

소무영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저 자식을 굳이 피해야 될 이유가 있나?”

이운천도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 이 일은 한 사내의 체면이 달려있는 문제였다. 소무영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이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상대 측에 사람이 많아 정말 싸움이 난다면 이쪽에서 손해를 볼 것 같았다.

말하는 사이, 성소봉은 이미 소무영을 발견하고는 기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사람들과 말을 하며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무리는 한데 마주쳤다. 소무영 쪽 사람들이 차지한 이 거리는 능소각에서 흑풍림으로 갈 때 꼭 지나야 하는 경로지만, 풍우루에서 흑풍림으로 갈 때도 꼭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 이 길은 사실 네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각각 능소각, 풍우루, 혈전방(血戰幫)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소무영과 무리들이 길에 서 있자 마치 성소봉이 가는 길을 막은 꼴이 되고 말았다.

“누가 이렇게 눈치 없이 행동하는가 했더니 소무영이었군!”

성소봉은 앞으로 다가와 경멸 어린 눈길로 소무영을 훑어보며 비꼬기 시작했다.

소무영은 눈을 흘기고는 여전히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성소봉을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무시를 당하자 성소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하, 저 자는 네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데.”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듣기 좋았으나 방정맞은 느낌을 주었다.

소무영이 웃음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성소봉 뒤에 서 있는 요염한 소녀가 보였다. 이 소녀는 널찍한 윗옷을 입고 있었는데 반쯤 드러난 분홍색 어깨는 탐스러울 정도로 윤기가 맴돌았다. 하반신의 치마도 봉긋한 엉덩이만 가리고 희고 긴 다리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막신을 신은 발조차도 작고 귀여웠으며 발가락이 통통한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소녀의 나이는 소무영 무리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걸을 때마다 허리를 씰룩이는 것이 몹시 성숙해 보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하고 좀 부자연스러웠다.

“호미아!?”

이 소녀를 본 소무영은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소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소무영조차 이런데 나머지 패거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나같이 눈이 등잔만 해져서 호미아의 잘 빠진 몸매를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비록 강호 여인은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지만 호미아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여인은 몹시 드물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겨우 열대여섯 살 된 소녀일 뿐이었다. 연한 피부와 몸매가 가져다주는 살상력은 더없이 치명적이었다.

이운천을 포함한 패거리들은 마침 청춘이 불타오르는 시기라서 혈기가 왕성했다. 이런 자극적인 장면을 보니 그 마음이 어떻겠는가?

능소각 제자들의 음탕한 시선에 호미아는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시선을 더욱 즐겼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나를 알아?”

소무영은 다급히 목을 가다듬고 시선을 억지로 돌렸다. 그의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당연히 알지.”

호미아는 혈전방 육체 경지 제자들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혈전방 방주의 막내딸이었다.

하지만 평판이 좋지 못해 혈전방의 방주 호만(胡蠻)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밖에서 사고를 치게 내버려 두었다. 호미아는 아직 나이가 어렸지만 추종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다만 오늘 그녀가 왜 성소봉과 함께 어울리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성소봉도 그녀의 치마폭에 놀아난 건가?’

여기까지 생각한 소무영은 부럽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부러운 것은 성소봉에게 이런 여자복이 있다는 것이었고, 통쾌한 것은 한낱 여인에게 정복당했기 때문이었다.

소무영은 얼굴에 괴이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성소봉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이미 경멸이 담겨 있었다.

이 시선에 성소봉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더구나 능소각 제자들이 호미아의 몸을 훑어보는 것이 보여 기분이 더더욱 나빠졌다. 그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호미아의 앞길을 막았다. 그렇게 능소각 제자들이 호미아를 바라보는 음탕한 시선을 차단했다.

이 무심한 듯한 행동에 호미아는 입을 다물고 미소를 지었다.

“소무영, 좋은 말로 할 때 비켜.”

성소봉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는 예의를 차리기조차 귀찮았다.

소무영은 냉소를 지었다.

“길이 뻥 뚫려 있는데 각자 알아서 한쪽으로 갈 것이지. 우리가 네 길을 막기라도 했다는 거냐?”

“그래!”

성소봉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내가 길을 비키기 싫다면?”

소무영도 날카롭게 맞섰다. 두 사람의 갈등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의 수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무영이 어찌 그를 무서워하겠는가?

“성 동생, 소 동생이 이곳에 서 있어도 괜찮아. 우리가 길을 돌아가면 되지. 누구도 너한테 뭐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호미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보기에는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 같았지만 실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소무영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여자 역시 마음이 음험하기 짝이 없군.’

그녀는 혈전방 사람이니 당연히 능소각과 풍우루가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기를 바랐다.

성소봉은 호미아의 말을 듣고 머뭇거리던 마음을 확고히 정했다. 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꺼지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

호미아 앞에서 으스대고 싶은 성소봉이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는가?

호미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흥미진진하게 두 사람을 힐끗 보고 몰래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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