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장. 육체 경지 8단계 돌파
“너… 참 대단하구나.”
순간, 호미아는 앵두같이 빨간 입술로 말을 건네며 혼을 빼놓을 것 같은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양준은 크게 웃으며 돌아서더니 호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만 가 봐.”
호미아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양준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여태껏 실패한 적 없는 자신의 유혹이 아무 효과도 없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몸을 탐내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평소 그 때문에 서로 질투하는 사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오늘은 모처럼 그녀가 한 남자에게 흥미를 느껴 먼저 유혹했지만 오히려 무시당하고 말았다.
‘저거 남자 맞아?’
호미아는 잠깐 멍해 있다가,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자태로 땅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빨간 입술을 깨물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재미있다?”
말을 마치고는 까르르 웃더니 그대로 가 버렸다. 그녀는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를 흔들면서 걸어갔다.
소무영 일행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온통 부러움과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양준이 이런 좋은 일을 거절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저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다.
‘호미아가 나한테 저런 말을 한다면, 나는 어찌했을까?’
‘자칫하면 달려들었을 거야! 아니, 아니지. 틀림없이 달려들었지.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떨어진 거잖아. 왜 거절하겠어? 어차피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호미아가 떠나간 뒤,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좋은 기회를 날려 보낸 데 대해 아까워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준은 웅크리고 앉아 땅에 쓰러진 풍우루 제자의 옷을 찢어 상처 난 손바닥을 휘감았다.
소무영 일행들을 보니, 모두들 머쓱한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걸을 수 있어?”
양준이 물었다.
소무영 패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그들은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 능소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제각기 흩어져 치료하러 갔다. 오늘 한판 싸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랫사람끼리의 싸움이었다. 삼대 세력 간에 늘 있는 일이어서 크게 놀랄 것도 없었다. 중요한 인물이 죽지 않는 한, 각 문파의 윗사람들은 서로 눈감아주며 관여하지 않았다.
*양준은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남은 어혈연고 반병을 꺼내려다가 잠깐 생각을 해보더니, 그만두었다.
오늘 입은 상처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은 장검에 관통된 손바닥 상처였다. 다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손바닥 상처도 보기만 흉할 뿐,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성소봉의 검을 잡을 때, 뼈와 경맥을 피했기에 손바닥에 구멍이 났지만 살갗만 다쳤을 뿐이었다.
지난번 얼룩등거미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와 거의 비슷했다. 지난번에도 사나흘이면 회복되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금신에서 발산되는 따뜻한 열기뿐만 아니라 체내의 진양원기도 상처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었다. 두 가지 힘이 함께 작용하자 상처 회복도 한결 더 빨라졌다.
진양원기도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안, 양준은 곧장 곤룡골 쪽으로 달려가 양기를 흡수했다. 오늘 싸움에서 양액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체내의 진양원기는 적지 않게 소모되었기에 시급히 보충해야 했다.
한창 양기를 흡수하고 있는 가운데, 양준은 갑자기 체내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외부 양기가 체내로 마구 스며든 것이다. 이는 잠깐 사이 벌어진 일로, 평소 하루 내지 이틀 동안 수련해야만 흡수할 수 있는 양이었다. 오늘 소모된 진양원기가 보충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양원기가 더욱 짙어져 동시에 경맥도 더 단단해지고 더 넓어진 것 같았다.
‘육체 경지 8단계에 도달한 건가?’
양준은 정신을 차리고 희색을 띠었다.
‘이렇게 빨리 육체 경지 8단계를 돌파하다니.’
이는 뜻밖이었다. 원래 그는 적어도 7~8일은 더 수련해야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역시 결투를 해야 더 빨리 효과가 나타나나 보군.’
양준은 기쁜 마음에 진양결을 더욱 열심히 수련했다. 한 단계를 돌파한 뒤, 양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날 밤, 양준은 오두막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부상을 당한 만큼, 밤을 새워 수련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 후 며칠간 양준은 밥 먹고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곤룡골에서 수련했다.
소무영 패거리들은 그사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모두 치료 중인 모양이었다.
*며칠 뒤, 이른 아침, 양준이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데 소무영이 이운천과 패거리들을 거느리고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날 싸움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씩씩하게 소무영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다만 며칠간 휴식을 취하고 나서도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처참했다. 눈언저리가 퍼렇게 멍들고 입가가 부르튼 게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양준은 슬쩍 바라보고는 저도 모르게 웃으면서 말했다.
“소 사제, 왜 또 근질근질한 거야?”
소무영은 얼굴을 붉히더니 잠깐 양준을 노려보다가 그의 앞에 다가섰다. 그러고는 다시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다소 복잡해 보였다.
“조호, 너 양 사형 대신 빗자루질 좀 해.”
소무영이 조호에게 손짓했다.
“네.”
얼마 전, 양준에게 세 수만에 쓰러졌던 조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양준에게서 빗자루를 넘겨받았다.
“이래도 될까.”
양준이 암당 제자를 힐끗 보았다. 상대방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가 버렸다.
“자, 오두막으로 가요. 할 말이 있어요.”
소무영이 입을 열었다.
오두막 옆, 소무영과 양준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엉거주춤하고 앉아 있었다. 눈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들 뒤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창 땀을 뻘뻘 흘리며 양준을 대신해 지붕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고 있었다.
그날 일을 통해 소무영 패거리는 양준과의 은원을 내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관계를 갖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왜 저희를 구한 거죠?”
한참 침묵이 흐른 뒤, 소무영이 비로소 입을 열어 물었다.
“왜……?”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들이 나를 사형이라고 부르잖아. 당연히 사형의 모습을 보여 줘야지.”
물론 가장 주요한 것은 소무영의 본성이 그리 악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무영은 고개를 돌려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요?”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그럼 뭐가 더 있어?”
소무영은 침묵했다. 그는 마음속이 씁쓸해서 한참 뒤에야 말했다.
“좋아요. 저희를 사제로 생각해 주시니, 저희도 앞으로는 사형으로 모실게요. 그동안 미안했어요.”
“원래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어.”
양준이 말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더니 하하 웃었다.
은원을 내려놓자 소무영도 더는 뻘쭘해하지 않고 진심으로 양준을 사형으로 대했다.
잠시 뒤, 소무영은 갑자기 입술을 물며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더듬더듬 물었다.
“사형, 뭐 좀 물어볼게요.”
“뭘?”
양준이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날… 흠… 만져 봤어요?”
소무영은 감히 양준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뭘 만져?”
양준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거 있잖아요.”
“그거 뭐?”
소무영이 울컥하더니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 호미아 있잖아요…….”
양준은 실소를 터뜨렸다.
‘과연 소년은 호기심이 왕성하군. 이 자식이 이런 일까지 물어보다니. 너무 뻔뻔스러운 거 아니야?’
“너희들도 다 봤잖아?”
“잘 안 보였어요… 정말 만졌어요?”
소무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만졌으면 뭐 어때?”
양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녀가 내 손을 올려놓은 거야. 난 그냥 혼 좀 내줬을 뿐이고.”
소무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떤 느낌이었어요?”
“사제는 못 만져 봤어?”
양준은 의문스럽다는 듯이 소무영을 바라보았다.
‘이 금수저가 이리 순정남이었단 말인가?’
소무영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사형은 전에도 만져 봤어요?”
양준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에는 뾰로통하면서도 기쁨 어린 얼굴이 아른거렸다. 양준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지난 일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군.”
소무영은 잠깐 멍해 있다가 개중의 다른 뜻을 알아듣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허풍이죠? 사형은 입문하고 나서 지난 삼 년 동안 사람들과 사귀지 않은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럴 기회가 어디 있어요? 있다면 삼 년 전이겠죠. 근데 삼 년 전이면, 사형, 몇 살이에요?”
삼 년 전, 열두 살이었다.
‘겨우 열두 살이었어. 요망한 계집이 어린 나에게도 손쓸 줄이야. 그년도 겨우 열다섯이었고. 둘 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망정이지, 정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그 요망한 계집을 떠올리자 양준은 가슴이 찡해졌다.
‘그 계집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사형, 조심하세요. 호미아는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이번에 사형이 그 여자의 체면을 구겨 놓았으니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나한테 복수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