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2화 (32/853)

제 32장. 능소각에 십일 장로라고 있어?

양준의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소무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네. 기다려 보세요. 갖은 방법을 동원해 사형을 유혹할 거예요. 목적을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고요. 사형은 여복이 참 많네요.”

“그런 여자는 별로야.”

양준은 이 일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넘겼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더니, 이거였어?”

“물론 아니죠.”

소무영은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사형, 이번에 성소봉 그들을 상대하느라 많은 원기를 소모했죠? 보상해 드리려고요.”

“보상해 주겠다고?”

“네.”

소무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속에서 병 하나를 꺼내 양준에게 주었다.

“이건 회원단(回元丹)인데, 원기 회복에 좋아요. 사형이 드세요.”

양준은 회원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 단약은 약효가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편이었다. 양준과 같은 육체 경지 7단계 정도의 무인을 대상으로 한 단약이었다.

육체 경지 7단계에서 9단계까지, 무인의 체내에는 원기가 생겨나고 무예의 수련을 통해 양이 서서히 증가했다. 그러나 개원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원기를 신속하게 회복할 수 없었다. 일단 손실되면 큰 대가를 치르고 다시 수련해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회원단은 수련하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이런 단약은 육체 경지 7단계 내지 9단계의 무인들에게 인기가 있어 가격이 비쌌다. 그러나 개원 경지 이상의 무인들에게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다만 양준의 상황은 남들과 달랐다. 그가 수련하는 진양결은 체내의 원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원기가 소진되면 양액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회원단 한 병은 양준에게 별로 가치가 없었다.

양준이 괜찮다고 거절하려던 순간, 소무영은 마치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정색하며 말했다.

“저는 남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아요.”

“좋아. 그럼 받을게.”

양준도 사양하지 않았다.

소무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형, 내일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어디?”

양준이 미심쩍어 하며 물었다.

소무영은 웃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기다리라고만 했다.

*흑풍림 속, 능소각 일행 십여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양준은 어제 소무영이 데려가겠다던 좋은 곳이 흑풍림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숲속을 걸으면서 이곳에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지 않다면 이런 길이 생길 수가 없었다.

‘흑풍림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건가?’

양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인영(人影)들이 보였고 걸어가는 방향이 그들과 같았다.

“사형, 그날 우리가 왜 흑풍림 근처에서 성소봉 패거리들을 만나게 되었는지 아세요?”

소무영은 양준과 나란히 걸어가다가 뜬금없이 물었다.

양준은 얼굴빛이 살짝 변하면서 어렴풋이 짐작했다.

“설마 성소봉 패거리도 흑풍림에 가려던 건가?”

“맞아요. 우리 능소각과 풍우루, 혈전방 사이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요. 세 문파 제자들이 흑풍림에 들어가려면 모두 그 길을 지나야 해요.”

“왜 모두 이곳으로 모이는 거지?”

“하하!”

소무양이 의기양양해서 웃었다.

“사형 몰랐죠. 흑풍림에는 시장이 있어요. 우리 세 문파 제자, 나아가 오매진의 모든 무인이 거래하는 곳이에요. 제자들은 자신이 불필요한 수련 재료로 유용한 물건을 바꾸거나 돈을 받고 팔기도 해요. 흑풍시장만큼 번화한 곳도 없어요. 꼭 한 번 구경해야 돼요.”

이운천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네, 사형. 이곳에서 좋은 물건을 찾을 수도 있어요. 지난번에 소 공자는 은자 열 냥을 주고 천원과(天元果) 하나를 샀어요.”

“천원과?”

양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네. 지급 하품의 영과예요. 파는 사람이 물건을 잘 몰라 제가 이득을 봤어요.”

소무영은 이 일을 말하면서 의기양양해졌다.

지급 하품 영과를 돈으로 바꾸면 적어도 천 냥은 되었다. 그런데 소무영은 은자 열 냥을 주고 샀으니 그야말로 큰 이득을 본 셈이었다.

양준은 흑풍시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능소각에 입문한 지 삼 년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이런 곳을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소무영 패거리는 이곳을 즐겨 찾는 모양이었다. 모두 상당히 익숙한 듯했다. 양준은 그들의 대화에서 재밌는 일들도 적지 않게 알게 되었다. 양준은 시장에 대해 은근히 기대감이 생겼다.

자신은 진양결을 수련하니, 이곳에서 양성을 띤 영약을 찾아 복용할 수도 있었다. 다만 주머니 사정이 빠듯했다. 어제 소무영이 준 회원단 한 병을 떠올리자 그제야 숨통이 좀 트였다.

흑풍시장은 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양준이 갑자기 물었다.

“소 사제, 우리 능소각에 십일 장로라고 있어?”

그는 그날 곤룡골에서 만났던 노인이 떠올랐다. 노인은 곳곳에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어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십일 장로라고요?”

소무영이 깜짝 놀랐다.

“능소각에 웬 십일 장로에요?”

“아 그래. 그냥 물어본 거야.”

양준은 바로 알아차렸다. 그날 노인이 십일 장로라고 소개할 때부터 약간 의심이 들었었다. 이제 보니 역시 가짜 신분이었다. 다만 노인은 성정이 자애롭고 그에게도 악의를 품고 있지 않았다. 그도 물론 괜히 미움을 살 수 있는데, 끝까지 캐묻고 싶지 않았다.

이운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양 사형은 종일 수련하다 보니 우리 능소각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네요. 능소각에는 모두 다섯 명의 장로만 있을 뿐이에요. 확실히 십일 장로는 없어요.”

그들은 모두 과거 무시를 당하던 양준의 비참한 처지를 알고 있었다. 나중에 또 난감한 문제를 물을까 두려워, 그들은 곧 좋은 마음으로 능소각의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소무영은 받쳐 주는 장로가 있다 보니, 능소각에 대해 남들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능소각 장문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소무영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내가 노친네에게서 들었는데, 우리 장문인은 대단한 분이라고 해. 지금 실력은 이미 신유(神游) 경지 최고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더군. 이제 딱 마지막 한고비만 넘기면 돌파할 수 있다고 해. 그러면 사방 수천 리 안에서는 제일 고수일 거래.”

‘신유 경지 최고 단계라니!’

양준은 깜짝 놀랐다.

무인의 수련 등급은 육체 경지에서 시작해 위로 가면서 개원 경지, 기동(氣動) 경지, 이합(離合) 경지, 진원(眞元) 경지, 신유 경지 순이었다. 경지마다 다시 9단계로 나뉘고 실력이 높을수록 돌파하기가 힘들었다. 신유 경지는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경지였다. 뜻밖에도 능소각의 장문인이 이미 경지의 최고 단계에 올라 있었다.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야말로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혈전방의 방주 호만이나 풍우루의 루주(樓主) 소약한(簫若寒)도 겨우 신유 경지 6~7단계에 불과해. 우리 장문인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

소무영은 이를 이야기하면서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문파 장문인의 실력이 강할수록 문하 제자들은 영광으로 생각했다.

“장문인께서는 돌파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이운천이 흥미진진하게 물었다. 만약 장문인이 경지를 돌파한다면 사방 몇천 리 안에서 능소각은 가장 큰 문파가 될 수 있었다.

소무영의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이운천은 소무영의 이런 모습에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사실 장문인께서는 십여 년 전에 이미 신유 경지 정상에 올라 있었다고 해.”

“그런데 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한 거죠?”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십몇 년이나 지났다. 수련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진작 돌파했을 시간이었다.

소무영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함부로 얘기해 줄 수가 없어.”

“소 공자, 이러시면 안 되죠. 형제들의 호기심만 잔뜩 불러일으켜 놓고 그냥 놔두는 게 어디 있어요. 너무 잔인해요.”

조호가 큰소리로 떠들어 댔다. 다른 이들도 소무영에게 계속 이야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좋아. 하지만 기억해 둬. 이 일이 밖으로 전해지면 안 돼. 아니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소무영은 잔뜩 폼을 잡고서 주의를 살펴보고 나서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십여 년 전, 우리 능소각에 큰일이 있었대. 바로 그 일 때문에 장문인의 경지가 줄곧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인데요?”

듣고 있던 제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장문인께서는 평생 아내도, 자식도 없이 제자 두 명뿐이었는데… 일은 바로 이 두 제자에게서 시작된 거야. 두 제자 중 큰 제자는 부지런하고, 작은 제자는 총명했대. 두 사람 모두 재능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고. 장문인께서도 아낌없이 가르치셨지. 둘은 나름 성적도 좋았어. 실력에서 어깨를 견주며 서로 뒤처지지 않았대. 다만 두 사람의 성정이 서로 달라, 장문인이 가르치는 방식도 좀 다르게 하셨지. 큰 제자는 많이 칭찬해 주는 반면, 작은 제자는 엄격하게 대했대. 이런 스승의 교육 방식에 작은 제자가 장문인의 의도를 오해하게 된 거야. 큰 제자만 편애한다고 생각한 거지. 질투가 점차 증오로 변했고 작은 제자는 큰 제자와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지. 심성도 점점 더 나빠지더니 어디서 웬 사악한 공법을 찾아서 수련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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