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3화 (33/853)

제 33장. 장문인의 비밀

“아…….”

사람들이 듣다가 탄식하였다.

소무영이 계속해서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렸다.

그는 언변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 수준 또한 일품이었다. 언사가 예리하고 짧은 몇 마디 말로 사제 간의 원한 관계를 사람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 주었다.

양준은 그저 묵묵히 듣고 있을 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었다. 다만 소무영이 부풀려 이야기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 공법을 수련한 뒤, 작은 제자의 성정은 크게 달라졌지. 대신 실력도 그만큼 많이 늘어 큰 제자는 아예 적수가 안 되었어. 작은 제자는 자신의 실력이 강해지면 장문인이 자신을 편애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가 사악한 공법을 수련한 사실을 끝내는 장문인이 알게 되었지. 장문인은 몹시 가슴 아파하며 제자의 공력을 없애기로 결정했어. 그런데 장문인이 손쓰기 전에 제자가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던 거야. 이 소식에 제자는 철저하게사악한 기운에 사로잡혀 마도(魔道)에 빠져들게 되었대. 십여 년 전 그날 밤, 능소각은 피바다가 되었지. 큰 제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작은 제자는 죄가 두려워 도망쳤어.”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소무영은 잠깐 뜸을 들였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이 긴장해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만족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룻밤 사이, 장문인의 머리에는 서리가 내렸지.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제자 두 명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입마(入魔)했으니 말이야.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너희들도 짐작이 가지? 그 후부터 장문인은 두문불출하셨대. 그분의 종적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가 심신(心神)이 흐트러져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뜻밖에도 몇 년 뒤, 장문인은 다시금 사람들 앞에 나섰어. 그분은 천 리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가서 작은 제자를 잡아들였고, 그를 곤룡골에 가두었대.”

양준은 순간 가슴이 떨렸다. 갑자기 의문스러운 십일 장로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난 보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러 온 것이란다.’

‘곤룡골에 갇힌 사람을 보러 온 게 분명해. 설마 십일 장로가…….’

소무영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일이 있은 뒤에, 장문인은 더는 경지를 돌파할 수가 없었어. 그냥 지금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해.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한, 평생 마음 편히 살 수가 없겠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사람들은 모두 탄식했다. 능소각 장문인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마도에 빠진 작은 제자를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했다.

양준도 마음이 들떠 있었다.

‘십일 장로가 장문인일까? 만약 소무영이 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노인이 장문인일 수도 있어.’

*바로 이때, 앞쪽에서 한바탕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흑풍림 속 커다란 공터에는 사람들이 붐볐고, 인근 세 문파의 제자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크고 작은 가판대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 놓여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옆에는 수십 채의 나무 집이 있었다. 나무 집은 초라한 편이었다. 크고 작은 것이 있는데, 작은 것은 거주용이었고, 큰 것은 비바람을 피하는 데 이용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자, 다 왔어.”

소무영은 양준을 데려와 그에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이 있을 경우 이곳에 오면 거래할 수 있었다.

“여기 참 괜찮네.”

양준은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다소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소무영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이곳에는 저희 같은 무인들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이 다 있어요. 게다가 안전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세 문파의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서 치안을 유지해요. 저기 나무 집 몇 채 보이죠. 저기가 바로 우리 능소각 제자들이 있는 곳이에요. 제 누나도 저기에 있어요.”

“누나?”

양준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갑자기 지난번 소무영이 그를 괴롭히러 왔을 때, 자신의 누나가 핵심 제자라고 하던 것이 떠올랐다. 핵심 제자라면 능소각의 희망이었다.

소무영이 금세 경계하며 말했다.

“먼저 경고하는데요, 제 누나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마세요.”

양준은 기가 차서 실소하고 말았다.

소무영이 또 말했다.

“그런데 뭐, 집적거리려고 해도 그럴 재간이 없을 거예요.”

“네 누나가 그리 대단해?”

“그럼요. 진원 경지 3단계예요. 또래 중에서 누나의 상대가 되는 사람은 몇 안 돼요.”

양준은 살짝 놀랐다. 젊은 제자로서 진원 경지까지 수련한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진원 경지에서 더 올라가면 신유 경지였다. 바로 지금 장문인의 경지였다.

“네 누나는 그렇게 대단한데, 너는 왜 육체 경지밖에 안 돼?”

양준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소무영을 바라보았다.

소무영은 마치 아픈 곳을 찔린 듯, 금세 겸연쩍어 하며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제가 노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열심히 수련할 거예요. 결코 예비 제자인 사형에게 뒤처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며칠 전에 당한 것이 소무영의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가요. 먼저 제 누나를 소개해 줄게요. 누나가 지키면 흑풍시장에서 일을 보는 게 훨씬 더 편할 거예요.”

소무영의 누나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패거리들의 낯빛이 금세 엄숙해졌다. 소무영 자신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몸가짐을 깔끔하게 정돈하였다.

행동에서 보이다시피, 소무영은 누나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고 우러러보았다.

“쟤네 누나 이름은 뭐야?”

양준이 이운천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소안(蘇顔)이라고 해요.”

‘이름은 듣기 좋군.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네.’

얼마 안 되어, 그들은 한 나무 집에 도착했다. 양준이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이 나무 집뿐만 아니라 옆의 다른 몇 채도 능소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보아하니 이 몇 채에는 능소각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무영은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숨을 가볍게 들이쉬고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 다음 한 손을 들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목소리도 얌전한 고양이 같았다.

“누나, 저 왔어요.”

이운천 일행은 억지로 웃음을 참다 보니 어깨를 마구 들썩였다. 양준 역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소무영은 등 뒤 사람들의 표정을 안 봐도 안다는 듯 고개를 돌려 쏘아봤다.

“들어와.”

안쪽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산골짜기의 샘물과도 같아 새롭게 들렸다.

소무영은 사람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고는 걸어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간 뒤, 양준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집은 그의 오두막보다 더 초라해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집 안에 들어서면, 바깥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모두 차단되어 매우 조용했다.

‘나무 집에 현묘함이 있는 모양이군. 아니면 이런 효과가 있을 리 없지.’

한창 집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소무영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양준이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소무영이 억울한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땅바닥에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눈같이 흰옷을 입고, 얼굴빛이 차가운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아름다운 검은 머리를 묶어 올린 상태였다. 곱게 휜 버들잎 같은 눈썹, 아름다운 두 눈, 작고 앙증맞은 코, 붉게 물든 뺨 그리고 작은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옥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피부에, 몸매는 가냘프고 아름다웠다.

다만 그녀의 분위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 바람에 나무 집의 온도도 몇 도는 더 내려간 듯했다.

여인은 다리를 꼬고 앉아 소무영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여인이 바로 소안이었다.

“왜 때리는지 알아?”

소안이 물었다.

소무영은 고개를 저었다. 누나의 눈에 흉악한 빛이 서리자 곧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말해 봐.”

소안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그러나 감히 반항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양준은 소무영이 왜 자신의 누나를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구든지 이런 누나가 있다면 견디기 힘들 테지. 아무리 대단한 미인이라 해도 말이야.’

“제가 맞았기 때문이에요.”

소무영은 누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답하면서도 몰래 소안을 훔쳐보았다.

소안의 얼굴은 차갑기만 했다.

“왜 맞았지?”

“실력이 남보다 못해서요…….”

소무영이 고개를 숙였다.

“실력이 왜 남보다 못해?”

소안이 끝까지 캐물었다.

소무영은 주눅이 들어 대답했다.

“열심히 수련하지 않아서…….”

소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

“네, 알겠어요.”

“오늘 네가 한 말을 잘 기억해 둬. 앞으로 게으름 피우면 남이 아닌 내가 직접 문책할 거야.”

소무영은 금세 얼굴빛이 변했다. 그러고는 누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수련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소안은 소무영을 훈계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드디어 양준의 몸에 닿았고, 눈에는 한 줄기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성소봉을 때린 이가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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