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4화 (34/853)

제 34장. 양염석

양준은 속으로 소식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밖에서 벌어진 일을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소무영보다는 낫구나.”

소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양준은 보건대 15~6세 정도로, 이제야 육체 경지 8단계에 이른 것을 보면 자질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녀의 눈에 들 리가 없었다. 지금도 소무영을 구해 준 정을 봐서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충고 하나 할게.”

“사저, 이야기하세요.”

양준은 담담한 얼굴빛으로 말했다.

“소무영과 멀리해. 그와 함께 있으면, 네 실력도 거기가 끝이야.”

양준은 살짝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무영을 깎아내릴 수 있지만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소무영은 누나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으나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가 봐. 난 이제 수련할 시간이야.”

소안은 말을 마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물러나 문을 닫았다. 그들은 밖에 나가서야 서로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내쉬었다. 방 안에서는 압박이 너무 컸다. 미인을 보는 것은 눈이 즐겁지만 시간이 오래되면 몸도, 마음도 다 얼어붙을까 겁이 났다.

“난 며칠 전 맡긴 단약이 어떻게 됐는지 보러 갈게요.”

이운천이 한마디 하고서는 작별을 고했다.

“나도 갈래.”

몇 사람이 급히 따라나섰다.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 일을 보러 갔다. 이내, 소무영과 양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양준은 소무영도 무슨 일이 있는 듯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제도 가서 일 봐. 나는 여기서 돌아볼게.”

소무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제가 봐줄게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지만, 간혹 간사한 이들도 있으니 얼간이 취급받아 바가지를 뒤집어쓰면 안 되죠.”

소무영과 갈라진 뒤, 양준은 흑풍시장을 돌아다녔다.

이곳에서 세 문파의 제자들은 돗자리를 깔고 앞 가판대에 팔려는 물건을 놓아두거나 필요한 물건을 간판에 적어 내걸었다.

한참 동안 거닐다 보니, 양준은 이곳에서 가판대는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부 급이 낮은 연단사(煉丹師)들이 간판을 내걸고 무보수로 단약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양준은 줄곧 양성을 띤 물건을 눈여겨보았다. 사실 흑풍시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의 가슴에 있는 양원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질서한 반응은 이쪽에 양성을 띤 보물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한 바퀴 돌아본 결과, 양준은 대부분의 물건들이 품급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초에 들어 있는 양기는 곤룡골에서 흘러나오는 양기보다 짙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것들이 그의 눈에 들 리가 없었다.

몇몇 물건이 마음에 들어 가격을 물어보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탄식할 뿐이었다. 부르는 값이 너무 높아 지금의 그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양준은 반 시진이나 돌아다녔으나 아무 수확도 없었다. 대신 회원단의 가격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회원단은 육체 경지 7단계에서 9단계 사이의 무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한 알에 대략 쉰 냥 정도밖에 안 되었다.

소무영이 그에게 준 병에는 열 알이 들어 있으므로 한 병의 가격이 대략 오백 냥쯤 되었다.

‘오백 냥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군.’

눈앞 가판대에는 붉은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양준은 돌이 뿜어내는 뜨거운 양기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곤룡골의 양기보다 몇 배나 더 짙었다. 만약 이 돌 속의 양기를 흡수할 수 있다면 적어도 두세 방울의 양액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는 며칠 동안의 힘든 수련과 맞먹는 양이었다.

눈앞의 말을 건네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주인이 틀림없이 가격을 높이 부를 것을 알면서도, 양준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주인은 마치 누가 그에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양준을 힐끗 훑어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양준은 허세를 부리며 다른 물건들을 집어 들고 값을 물었다. 주인은 말을 아끼며 되는 대로 대꾸했다. 곧이어 양준은 무심코 그 붉은 돌을 발견한 것처럼 한마디 물었다.

“이건 얼마죠?”

주인은 냉소했다. 이번에는 몇 마디 더 보탰다.

“이건 여기서 가장 비싼 물건이오. 삼천 냥이오.”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이 부르네. 내가 낼 수 있는 가격하고는 너무 차이 나잖아. 더 이야기할 수가 없겠군.’

물건을 내려놓고 일어서려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리따운 여인이 그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너였구나.”

호미아는 꽤나 뜻밖이었다.

“무슨 일이야?”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방탕한 이 여인에게 어떤 호감도 없었다. 지금은 옷차림이 아주 단정했지만 그날 그녀의 가벼운 모습은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호미아는 양준의 냉담함을 알아차리고는 그에게 곱게 눈을 흘기더니 애교스럽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와서 인사하는 거야.”

“그래. 그럼 갈게.”

양준은 담담하게 한마디 대꾸하고는 돌아서 가 버렸다.

“야…….”

호미아는 바싹 따라오더니 양준과 함께 걸었다. 그러고는 알게 모르게 가냘픈 몸을 양준에게 들이밀며 걷는 한편, 그의 반응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 여인이 낯가죽도 두껍다는 것을 알아챘다. 분명 상대하기 싫다고 겉으로 확연히 드러냈건만, 그녀는 줄곧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왜 자꾸 따라와?”

양준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키지 않는 듯이 물었다.

“너를 따라가는 게 아니야. 이곳은 흑풍시장이야. 나는 아무 데나 거니는 거야. 왜 내가 신경 쓰여?”

호미아는 교태를 부리며 웃었다.

“더는 따라오지 마. 아니면 나도 더 이상 참지 않겠어.”

양준은 화가 났다.

호미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는 듯했다.

“어떻게 할 건데? 혹시 지난번처럼?”

양준은 호미아의 억지에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양준의 냉담함을 알아채고 더는 집적거리지 못했다. 다만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양준은 양원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걷다가, 한 가판대 앞에 멈춰 섰다.

가판대를 살짝 훑어본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 가판대 물건들은 정말 괜찮았다. 게다가 대부분 그의 구미에 맞는 것들이었다.

갓난아이 주먹만 한 둥근 돌들이 뜨거운 양기를 짙게 뿜어내고 있었다. 방금 전, 가판대에서 본 돌보다 양기가 훨씬 더 강했다. 다만 크기가 좀 작았다.

‘아까 것보다 비싸지는 않겠지?’

양준은 한참 망설였다. 주인이 열정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뭐가 마음에 들어? 여기는 물건도 좋고 값도 저렴해. 절대 놓치지 마. 스스로 쓰든, 넘겨 팔든 절대 밑지지 않는 거래가 될 거야.”

양준은 염치 불고하고 물었다.

“이 돌은 얼마죠?”

주인은 고개를 숙여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양염석(陽炎石)을 말하는 거구나. 비싸지 않아. 오백 냥이야!”

양준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적당한 가격인 줄 알지만,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비싸.”

그는 전 재산을 털어도 오백 냥밖에 없었다.

주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기 물건은 다 가격을 명시해 놓아서 절대 터무니없이 가격을 부르지 않아. 다른 가판대에 가 봐. 그들이 파는 가격을 보면 여기가 얼마나 저렴한지 알 거야.”

이 말은 사실이었다. 양준은 비록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가격은 많이 알아보았다. 주인이 비싸게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래라면 가격 흥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양준은 하는 수없이 주인과 설전을 벌이며 상대방이 이익을 양보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주인은 거듭 고개를 저었다. 결국 주인도 답답한지 힘들게 말했다.

“이 물건들은 내 개인 소유가 아니야. 방(幇)을 대신해 파는 거여서 가격은 절대 내릴 수가 없어. 아니면 내 주머니 돈으로 변상해야 해. 날 좀 힘들게 하지 마.”

“방이요?”

양준은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호미아를 바라보았다.

이 부근에 방이라고는 혈전방 하나밖에 없었다.

호미아가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여기는 우리 집 가판대야. 이 돌 가지고 싶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 하나만 들어줘. 그러면 여기 있는 돌 다 줄게.”

호미아는 눈동자를 살살 굴렸다.

“아가씨……!”

주인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이 물건들을 그의 손에서 잃어버리면,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괜찮아. 내가 아버지한테 말할게.”

호미아가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 말에 주인은 곧장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때? 딱 한 가지만 들어주면 돼.”

호미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너희 남자들한테는 아주 간단한 일이야.”

“필요 없어.”

양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말하지 않아도 호미아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너……!”

호미아는 뾰로통해서 양준을 노려보았다. 눈빛으로는 거의 사람을 잡아먹을 듯했다.

사실 그녀는 양준에게 그렇게 확 사로잡힌 건 아니었다. 다만 그날 먼저 몸으로 유혹했으나 그를 정복하지 못했다. 이는 그녀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오히려 자신이 살짝 손해를 보기도 했다.

‘내 미색에 넘어오지 않는 남자는 없어!’

호미아는 줄곧 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는 양준을 굴복시키고 그가 굴복하는 순간, 몸을 빼 그를 구경거리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호미아가 남자를 갖고 싶다면, 그냥 손가락을 까딱하기만 해도 한 무리가 달려들 것이다. 만약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스스로를 희생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녀는 요망하고 방탕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을 현혹시키는 겉모습일 뿐이었다.

‘너 같은 걸 정복하지 못할 리가 없지!’

호미아는 마음속으로 단단히 별렀다.

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가판대 주인에게 말했다.

“싸게 줘!”

주인은 울상을 하며 말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싸게 팔란 말이야!”

호미아가 이를 살짝 깨물었다. 아름다운 눈에는 한기가 감돌았다.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려 하는데, 양준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됐어. 오백 냥에 살게요.”

오백 냥에 사면, 남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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