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장. 양액의 위력
성소봉은 양준과 거리가 오 장쯤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에 찬 칼을 빼어 들면서 호미아에게 말했다.
“호미아, 우리는 단지 저 자식의 목숨을 취하려는 것뿐이야. 다치지 않도록 한쪽으로 피해 있어.”
노도가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다치기라도 하면, 내 마음이 아플 거야.”
성소봉과 노도는 한마디씩 내뱉으며 온 목적을 말해 주었다. 양준은 살짝 놀랐다. 두 사람이 이처럼 잔인하고 악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분쟁으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양준이 경계하는 와중에, 호미아가 조용히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양준, 너 죽고 싶지 않으면 고분고분 내 말 들어. 노도는 보름 전에 이미 개원 경지 5단계를 돌파했어. 실력은 성소봉보다 한참 위야. 게다가 지금 쟤들은 둘이잖아. 넌 절대 적수가 못 돼.”
“그래서, 너한테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양준이 의아해서 물었다.
“쟤들은 감히 나를 죽이지는 못해. 내 요구만 들어주면 너의 안전을 책임져 줄게.”
호미아는 신분이 꽤 높았다. 만약 그녀가 전력을 다해 양준을 지키려 한다면 성소봉과 노도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의 체면을 봐주려 할 것이고, 기껏해야 양준을 흠씬 두들겨 패는 것으로 끝낼 것이다.
“필요 없어.”
양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단 말이야?”
호미아는 화가 나 양준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눈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황당함을 담고 있었다.
“미안. 내가 결벽증이 좀 있거든. 그리고 누가 죽고, 누가 살지는 겨뤄 봐야 알 거 아니야.”
양준은 맞은편에 있는 두 사람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이 대답을 듣자, 호미아는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냉소를 짓더니 이를 악물며 모질게 말했다.
“그럼 알아서 해!”
말을 마치고, 그녀는 뒤로 몇 장 물러서며 수수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
성소봉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줄 알고 있었어.”
호미아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노도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양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양손을 뒷짐 지고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양준이라 했지? 저승에 가면 나를 탓하지 말고, 남의 일에 참견한 너 자신을 탓해. 네가 알아서 목숨을 끊을래, 아니면 내가 도와줄까?”
말투가 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양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내 목숨을 원하면, 네 실력으로 가져가든가!”
말하는 동시에, 그는 몰래 진양결을 운행했다.
진양결이 막 시작되는 순간, 양준은 한 줄기 화끈한 열기가 혈을 따라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열기 속에는 방대한 양기가 뒤섞여 있었다. 순간 타는 듯한 뜨거운 감각에 경맥이 몹시 아팠다. 가슴 쪽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살갗이 타 들어갔다.
양준은 크게 놀랐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던 경맥은 순식간에 적응되었다. 방대한 양기는 경맥으로 계속 흘러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경맥에는 진양원기가 가득 차 꿈틀대고 있었고, 단전에는 양액 한 방울이 더해졌다.
똑-
잠시 뒤, 또 작은 물방울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똑-
양액 두 방울이 만들어졌다. 다만 그중 한 방울은 무슨 영문인지 생기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극성스러운 양기가 비로소 움직임을 멈췄다.
‘양염석!’
양준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품 속에서 회원단 한 병을 주고 바꾼 양염석을 꺼냈다. 원래 양기가 가득했던 돌은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돌 속의 양기는 이미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짧은 시간 내에 모두 그에게 흡수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액 두 방울이 만들어졌다. 다만, 한 방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원래 단전에 들어 있던 한 방울까지 포함하면 아직 양액 두 방울이 남아 있었다.
‘흡수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거의 주입식이잖아. 미처 반응할 겨를이 없네.’
성소봉과 노도도 양준 쪽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가슴 쪽 이상 현상에 대해 상황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도는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그가 즉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성 사제, 같이 공격하자. 늦으면 괜히 성가셔질 수 있겠어.”
“좋아요.”
성소봉은 양준이 한순간이라도 빨리 죽기를 바랐다. 더는 망설이지 않고 흉악한 얼굴빛을 하고서 장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좌우 양쪽에서 돌풍같이 신속하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양준의 눈앞에 이르렀다.
노도는 실력이 성소봉보다 한수 위라 동작도 조금 빨랐다. 주먹에 원기를 꽉 채워 양준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노도는 개원 경지 5단계였고, 체내에는 이미 많은 양의 원기가 축적되어 있었다. 그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노도가 내지른 주먹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무예를 쓴 게 분명했다.
이에 양준은 피하지 않고 주먹으로 맞받아쳤다.
‘탁’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준의 손목에서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움켜쥔 주먹에는 마치 무수히 많은 칼날에 베인 것처럼 한순간에 상처가 촘촘하게 생겨났다. 몸은 저도 모르게 몇 발짝 물러섰다.
반면 노도는 괴성을 질렀다. 주먹이 뜨겁게 달궈진 인두를 깨부순 것만 같았다. 살갗이 데인 것처럼 아팠다.
“너무 뜨거워!”
개원 경지 5단계의 실력으로 육체 경지 무인의 원기 침입을 막아 내지 못했다. 이는 실로 괴이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한 번 접전한 뒤, 각자 물러났다.
성소봉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복수의 한을 담아 양준을 내리쳤다. 그 자리에서 베어 죽이려는 기세였다.
노도의 주먹에 한 대 얻어맞자, 양준은 또다시 온몸의 피가 끓어올랐다. 뼈에는 신속하게 뜨거운 열기가 퍼졌다. 열기가 흩어진 뒤, 마치 힘이 샘솟는 것만 같았다. 눈동자가 천천히 빨갛게 달아올랐고 원래 온화하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양준은 성소봉이 내리치는 검을 한 손으로 잡으려 했다.
성소봉은 냉소했다.
“지난번에 너한테 당했지. 내가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할 것 같아?”
말하는 사이, 검의 기세가 바뀌더니 찌르기에서 베기로 전환해 양준의 손가락을 자르려 했다. 양준의 반응도 느리지 않았다. 상대의 기술이 바뀐 것을 알아채고 손으로 잡으려던 것을 손가락으로 집는 것으로 바꾸었다.
‘푹’ 하는 소리가 나며 장검이 양준의 손가락을 베었다. 순간, 성소봉의 얼굴에는 기쁨이 번졌다.
호미아는 입을 틀어막으며 가슴 아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양준의 태도를 떠올리자 다시 갈기갈기 찢겨 죽어야 속이 후련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성소봉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놀랍게도 그의 검은 양준의 손가락을 베지 못했다.
‘내 검은 예리한 무기야. 고작 육체 경지인 무인의 육체가 어떻게 이리 단단할 수 있지? 개원 경지였어도 방금 전 검에 베였다면 온전할 수 없었을 텐데.’
양준은 입을 벌리고 섬뜩한 웃음을 흘리더니 하얀 이를 드러냈다. 성소봉은 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두 눈을 보고 당황했다. 급히 뒷걸음질 치는 한편,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노 사형, 도와주세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양준이 이미 달려들었다. 단전 내 양액 한 방울이 양준의 손끝에 맺혔다. 그는 그대로 성소봉의 이마를 가격했다.
성소봉은 입을 크게 벌렸다. 갑자기 숨소리가 끊기더니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의 이마에는 젓가락만 한 굵기의 구멍이 나 있었고, 두개골을 관통하고 있었다. 구멍은 매끈하고 반듯했으며 피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성소봉은 억울했는지 눈을 크게 뜬 채로 죽었다.
“으악!”
두 명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노도와 호미아의 목소리였다.
성소봉이 죽었다. 한순간에 허무하게 양준의 손에 죽어버렸다.
지난번 양준이 풍우루 제자들과 큰 싸움을 벌일 때, 호미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아서 양준의 실력이 놀라울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개원 경지 1단계인 성소봉이 육체 경지인 양준의 손가락 하나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게 무슨 무예지? 어떻게 저런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성소봉 이마의 구멍은 분명 강한 양성을 띤 물건에 의해 탄 것이었다.
이 순간, 호미아는 공황에 빠졌다. 양준의 살인 수단을 보고 난 뒤, 그녀는 양준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또 사람을 죽일 능력도 있었다.
노도도 깜짝 놀랐다. 방금 전 양준에게 주먹을 한 번 휘두른 뒤, 두 번째 수를 쓰지도 않았는데 그의 사제가 눈앞에서 죽은 것이다. 이 변고에 그는 입이 떡 벌어졌다.
“감히 성 사제를 죽이다니!”
노도는 울부짖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손가락 하나의 위력은 너무나도 강했다. 절대적으로 강한 무예임이 틀림없었다. 노도는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일었다. 그는 이걸 막지 못할 것 같았다.
“너도 죽여줄게.”
이번 상황은 지난번과 달랐다. 지난번에는 패싸움이라 양준이 봐줄 수 있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을 또 봐준다면 그것은 바보나 다름없었다.
양준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싹을 잘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 두 사람이 그를 따라 여기로 온 것은 분명 자신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양준이 빠른 속도로 그에게 뛰어오는 것을 보고 노도는 갑자기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허세 부리지 말고 목숨을 내놓아라!”
노도는 소리를 지르며 양준을 향해 쌍권을 내질렀다.
‘저놈은 육체 경지밖에 안 되는데 체내에 원기가 얼마나 남아 있겠어? 방금 전의 공격으로 분명 많이 소모됐을 거야.’
그렇다면 더 이상 그런 수단을 쓸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노도도 겁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직접 겨루어 보자 노도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양준은 원기를 사용할 줄 알았다. 그와 접전할 때마다 그의 초식에서 뜨거운 힘이 느껴졌다. 이 힘에 노도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양준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는 것만으로는 그를 억누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