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37화 (37/853)

제 37장. 공범

노도는 가지고 있는 무예를 전부 사용했다. 그는 좌우로 움직이며 양준과 정면으로 맞붙지 않고, 체력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양준의 몸속에 있는 원기가 전부 소진되면 그는 도마 위에 오른 생선이 되는 셈이었다.

노도의 책략은 틀리지 않았다. 일반적인 육체 경지 제자라면 이 방법이 가장 좋았다. 가장 적은 대가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달랐다. 방금 전에 양염석의 모든 양기를 흡수하여 그의 경맥 안에는 원기가 가득 차 있었다. 소모전을 벌이다가는 노도가 먼저 지칠 수 있었다.

곧, 노도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맨 처음에 양준은 그저 육체 경지의 무인이었다. 주먹이든, 속도든, 아니면 힘이든 다른 사람보다 좀 강하기는 했지만 육체 경지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늘어나는 그의 몸의 상처에 따라, 양준의 실력은 점점 강해졌고 주먹도 점점 더 힘이 실렸다. 그의 기운도 점차 더 강해졌다. 노도가 가장 무서운 것은 그의 초식 중에 섞여 있는 뜨거운 힘도 점차 더 짙어졌다는 것이다.

양준의 실력은 마치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본래 무인이 싸우다 보면 체내 원기가 소모됨에 따라 전투력이 점차 약해진다. 그런데 왜 양준은 되려 강해진다는 말인가?

계속되는 공격에 노도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양준의 주먹에 가슴을 맞았다.

무거운 힘에 노도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속에 침입한 뜨거운 기운은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강했다.

두 눈이 시뻘건 양준을 보자 노도는 도망치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눈속임으로 수를 쓴 노도는 뒤쪽으로 몸을 빼고서는 먼 곳으로 날듯이 뛰어갔다. 그는 헐떡이며 소리를 질렀다.

“양준, 네가 성 사제를 죽였으니 내가 반드시 너도 죽일 것이다!”

노도는 개원 경지 5단계로 지금 양준을 이기지는 못해도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 점에 대해 노도는 항상 자신했다. 방금 전의 접전에서 그는 양준이 특별한 무예를 수련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노도가 도망치려고 하니 양준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멍하니 노도가 도망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순간, 양준은 뭔가 떠올랐다. 그는 단전 안의 마지막 양액을 손끝에 모았다.

그리고 한번 몸을 돌린 양준은 다른 한 손을 뻗어 손끝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이 나타났다.

이 한 방울의 양액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얇은 칼날로 변했다. 칼날의 모양이 잡히자마자 양준이 노도를 향해 날렸다.

슉-

양액으로 만든 칼날이 공기를 가르고 노도의 등에 명중했다.

도망치던 노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더니 풀썩, 하고 땅에 고꾸라졌다.

숲은 고요하기만 했다. 이따금씩 벌레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초라하기 그지없는 몰골이었다.

호미아는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차가웠다. 그녀는 마음속으로부터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녀가 줄곧 떠나지 않은 것은 양준이 버티지 못할 때,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을 습격하러 온 풍우루의 두 제자가 오히려 양준에게 살해당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개원 경지였다. 한 사람은 1단계였고, 다른 한 사람은 5단계였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육체 경지인 양준을 상대하다가 패배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순간, 호미아는 흠칫 놀랐다. 양준이 고개를 돌리고 잡아먹을 것 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양준의 시선에서 자신을 죽여 입을 막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미아는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가만히 있어.”

양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호미아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양준이 정말 자신을 죽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생사가 오가는 순간, 일개 소녀인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남녀 간의 관계에서 그녀는 마음껏 으스댈 수 있었지만, 실제 무공 실력은 높지 못했다.

양준은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성소봉과 노도의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몸을 마음껏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은 은자와 단약 두 병을 찾아냈다.

단약 두 병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돈이 될 만했다.

아쉬운 것은 그가 제련한 양액을 다 써버려 지금 단전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결투를 끝내자 경맥 안의 진양원기도 거의 소모되고 말았다.

“너 혹시 돈 필요해?”

호미아는 양준이 시체를 뒤지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서 말했다.

“내가 줄 수 있어. 네가 날 죽이지만 않는다면.”

호미아는 지금 양준 앞에서 감히 몸을 야하게 놀리며 꼬실 용기가 없었다. 심지어 말하는 목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양준은 덤덤하게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말했다.

“내가 도적도 아니고 네 돈 뺏어서 뭐 하게? 돈이 부족하면 나 스스로 벌 거야!”

호미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은 법. 그녀는 양준의 화를 돋울까 두려웠다.

“이리 와.”

양준이 갑자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호미아는 몸을 흠칫 떨더니 눈에서 눈물이 일렁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애원하는 눈길로 양준을 바라보며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가 두려운 거야? 오라면 와!”

양준은 좀 짜증이 났다.

호미아는 하는 수없이 양준에게 걸어가 천천히 양준에게서 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그리고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려움을 눈치챈 양준은 웃음이 나왔지만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 말에 순순히 따르면 건드리지 않을게.”

덤덤한 말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호미아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순순히 따를게.”

“그래.”

양준은 그제야 만족했다. 그는 허리를 숙이고 노도의 시체를 어깨에 멘 다음 성소봉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얘를 들어.”

비위가 상했지만 그녀는 몸을 숙이고 성소봉의 시체를 둘러멨다. 그녀도 무인인지라 사내 하나 정도는 그녀에게 별로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따라와.”

양준은 방향을 살펴보더니 흑풍림의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호미아는 그가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감히 묻지 못했다. 그저 양준을 따라 걸어갈 뿐이었다.

양준은 시체를 버리려는 것이었다. 방금 전의 있던 곳도 깊은 곳이었지만 흥분한 남녀가 밀회를 즐길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만약 발견된다면 골치 아파질 게 뻔했다. 그럴 가능성이 작았지만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소봉과 노도의 사인은 매우 특별했다. 모두 뜨거운 원기에 급소가 관통되어 죽은 것이었다. 만약 풍우루가 이 단서를 따라 조사한다면 자신이 드러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양준은 시체를 멀리 버려 풍우루 사람들이 영원히 찾지 못하게 해야 했다.

두 사람은 숲속 깊은 곳을 향해 걸었다. 호미아는 몇 번이나 말을 걸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한 시진 뒤, 그들의 앞에 호수가 나타났다. 양준은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여기야.’

그는 시체를 내려놓고, 큰 바위 두 개를 찾아와 성소봉과 노도의 시체에 묶었다. 그리고 그들을 호수로 던져버렸다.

손을 툭툭 턴 양준이 말했다.

“너도 이제 나와 공범이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리고 덤덤하게 호미아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은 호미아는 오히려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양준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녀를 죽일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목숨이 보장되자 호미아는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져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보다 영리하네.”

양준은 가볍게 웃었다.

사실 양준도 그전까지 호미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을 그녀가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살려두자니 걱정거리를 남겨 두는 셈이었고, 죽이자니 왠지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미아는 그저 옆에서 구경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랫동안 길을 걷다 보니 양준도 그사이 뭔가 떠올랐다. 이번 일은 성소봉과 노도가 먼저 싸움을 건 것이었다. 만약 이 일을 호미아가 떠벌린다 해도 양준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너 사람 많이 죽여 봤어?”

호미아는 긴장이 풀리자 양준을 바라보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이야.”

“하지만 아주 능숙하던데? 저자들을 죽일 때,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잖아. 전혀 처음 같지 않았어.”

그녀의 말을 듣자 양준도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러네, 사람을 처음 죽이는 건데 왜 아무렇지도 않지?’

비록 흥분되는 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두렵지도 않았다. 그때 그는 싸우느라 머릿속에 그들을 죽일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믿든지 말든지.”

양준은 많은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호수를 둘러싸고 반 바퀴 돌았다. 그리고 시체를 버린 곳과 거리가 멀어지자, 발걸음을 멈추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이번 싸움으로 양준의 몸에도 상처가 많이 났다. 깨끗이 씻어야 돌아갈 수 있었다.

호미아는 호수 옆에 서서 기다렸다. 그녀는 속으로 몹시 들어가고 싶었다. 한 시진 전이라면 그녀는 분명 같이 뛰어들어가 양준을 희롱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용기가 없었다.

양준이 씻고 나서 올라오자 호미아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잠시만, 나도 씻을래.”

방금 전, 시체를 메고 먼 길을 오다 보니 호미아는 온몸이 찝찝했다.

“그래.”

양준은 옷을 짜고 호수 옆에 있는 돌 위에 누워 햇볕을 쪼이며 체력을 회복했다.

호미아는 옷을 벗지도 못하고 호수에 들어갔다. 늘씬한 몸이 물고기처럼 호수에서 마음껏 헤엄쳤다. 그녀는 때때로 몰래 양준을 훔쳐보았다. 양준이 눈을 뜰 생각조차 없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는 두 배로 충격을 받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