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장. 기묘한 씨앗
‘전혀 설레지 않는 건가?’
한참 뒤에야 호미아는 깨끗이 씻고 호수를 나왔다.
축축한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요염한 몸매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녀는 전혀 수줍어하지 않고 발그레한 얼굴로 양준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돌 위에 비스듬히 앉아 햇볕을 쪼였다.
양준은 눈을 뜨고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몸매 괜찮네.”
양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호미아는 빨간 입술을 꼭 깨물고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난 남자와 그런 짓을 해본 적이 없어. 심지어 내 몸을 건드려 본 사람도… 너밖에 없어. 이 몇 년간 내가 그러고 다닌 건 혈전방에 인재를 많이 영입하기 위한 것도 있고, 능소각과 풍우루 제자들 사이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것도 있었어. 너에게 집적거린 것도 그런 목적이었어.”
양준은 그 말을 듣고 멍해지더니 깊은 눈매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말 안 믿어?”
호미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이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남자를 가리지 않는 줄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녀를 공주,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뒤에서는 천박하고 음탕하다고 욕했다.
“믿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와 무슨 상관이야?”
호미아는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다시는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게.”
이번 일로 그녀는 타격을 크게 받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양준은 안도가 되었다. 드디어 이 골칫거리를 떨어뜨린 셈이었다.
호미아의 옷이 마르자, 두 사람은 호수를 떠났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까 봐 양준과 호미아는 일찌감치 떨어져서 각자의 문파로 돌아갔다.
*양준은 오두막에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바로 곤룡골로 갔다. 이번 결투로 그가 요 며칠 힘들게 수련했던 것이 전부 소모되었다. 당연히 몸속의 진양원기를 빨리 보충해야 했다. 아니면 다음번에 비슷한 일을 마주했을 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양액을 두 번 사용해 본 양준은 그 위력에 흥분되어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양액의 위력이 이토록 강할 줄 몰랐다. 지금 육체 경지 8단계에 불과하지만 경지가 더 높아진다면 양액의 위력도 더 강해지지 않겠는가? 양준은 다급히 수련하고 싶어졌다.
그는 곤룡골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수련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양준은 한참 뒤적거리다가, 품에서 씨앗 한 알을 꺼낼 수 있었다. 이 씨앗은 오늘 혈전방의 가판대에서 양염석을 살 때, 주인이 덤으로 준 것이었다.
이는 지급 하품 영과인 삼양과(三陽果)의 씨앗이라고 했다.
양준은 이 씨앗을 심고 싶었다. 비록 몇 년 뒤에 자랄지 알 수 없었지만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은 양기가 가득하여 이런 과일나무를 심기에는 몹시 적합한 곳이었다.
하지만 씨앗을 꺼내는 순간, 양준은 이 씨앗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낮에 이 씨앗을 보았을 때만 해도 달리 특별한 데가 없었다. 안쪽에 미약한 양기만 느껴질 뿐, 무시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씨앗은 빨갛고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빨간 보석처럼 생긴 씨앗을 손 위에 놓자, 씨앗 안에서 규칙적인 움직임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사람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리고 씨앗은 양기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 힘이 낮에 받았을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멍하니 씨앗을 바라보고 있던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단전 안에서 사라진 그 양액 한 방울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았다.
‘분명, 이 씨앗이 흡수해 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 평범한 씨앗이 어떻게 이처럼 변할 수 있겠는가? 양준은 외부의 도움 없이 양액 한 방울을 제련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양준은 참지 못하고 씨앗 안의 양액을 다시 흡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그만두었다. 양액을 흡수한 씨앗을 심었을 때,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 것이다. 진귀한 양액 한 방울과 비교했을 때, 양준은 이 씨앗을 심은 뒤의 변화가 더 궁금해졌다.
양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부근에서 그나마 푹신한 땅을 찾아 조심스럽게 흙을 헤치고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물을 길어서 부었다.
양준은 그제야 앉아서 진양결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양액 한 방울을 투입했는데 그 보답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이 며칠 간의 수련으로 양기를 흡수하는 속도는 전보다 많이 빨라졌다. 하룻밤의 수련 끝에 경맥 안에서 원기가 다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2~3일 뒤면 양액 한 방울을 제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 양준은 육체편을 반 시진 동안 수련했다.
육체편의 수련은 단 하루도 빼놓은 적이 없었다. 매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는 빗자루질을 하는 것과 육체편을 수련하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사제를 찾아가 좀 괴롭히고 공헌치를 버는 것도 있었다. 남은 시간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수련에 몰두했다.
반 시진 뒤, 양준은 수련을 마쳤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삼양과 씨앗을 심은 곳을 힐끗 쳐다본 그는 그만 놀라서 굳어지고 말았다.
그 푹신한 땅 위로 한 척 높이의 나무 싹이 자라 있었다. 묘목이 가늘었고 몇 잎밖에 없는 나뭇잎은 연한 색을 띠었다. 묘목은 작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생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천지의 속박을 벗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니겠지?’
양준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삼양과 나무가 이렇게 컸다는 말인가? 일순간, 양준은 수련에 정신이 팔려 며칠이 지난 사실을 잊은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의 몸속의 진양원기는 별로 많아지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인 것이 분명했다.
‘이 모든 게 씨앗에 스며들어간 양액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양준이 알게 된 지식에서 양액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무궁무진하다고만 했지 싸움에서만 쓸 수 있다고 한 적은 없었다.
만약 이 씨앗의 변화가 양액의 작용이라면 눈앞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룻밤에 한 척이 자랐으니 며칠 더 지나면 꽃이 피고 열매도 맺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몹시 흥분되었다. 삼양과는 지급 하품의 영과였다. 그 안에 담긴 양성 기운은 그의 진양결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삼양과 한 알은 며칠 수련한 것과 비슷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자신의 투자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열심히 기다려서 며칠 뒤에 이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지 보는 것이었다.
여기는 곤룡골 옆이라 평소에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양준은 이곳에서 여러 날 동안 수련했지만 십일 장로 말고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 나무를 발견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두막으로 돌아온 양준은 오늘의 일을 마치려고 했다. 그러나 한참을 찾아도 빗자루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한참 뒤에, 한 능소각 제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양준의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양준은 이 사람을 알고 있었다. 바로 소무영 패거리 중 하나였다. 실력은 육체 경지 5단계밖에 되지 않았으며 이름은 정원(鄭源)이었다.
양준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정원이 다급히 다가와 말했다.
“양 사형, 돌아오셨어요?”
“응, 정 사제는 뭐 했길래 내 빗자루를 들고 오는 거야?”
정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빗자루질을 해드렸죠. 사형께서는 앞으로 이런 잡다한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사제들이 매일 한 사람씩 와서 사형의 일을 도와드릴게요. 사형께서는 수련에만 힘쓰시면 됩니다.”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그 말을 들은 양준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 빗자루질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품이 많이 들었다. 능소각에 남아 있을 생각만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에 이 일을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예비 제자로서 일을 찾아 하지 않으면 능소각에 머무를 수 없었다.
“사형,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사제들끼리 서로 도와야지요. 지난번에 사형께서 성소봉 그 인간들을 혼내주지 않으셨더라면 사제들이 한을 풀 길이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 많아서 하루에 한 명씩 번갈아 하다 보면 한 사람당 한 달에 두세 번만 하면 되는걸요. 사형께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고생하시고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사형께서도 거절하지 마시고 사제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돕게 해주세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양준이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그럼 사제들의 신세를 져야겠군. 정 사제, 들어와서 물이라도 마셔.”
“아니에요. 소 공자께서 엄령을 내리셨어요. 다들 지금 힘들게 수련하는데 누구든 게으름을 피우면 더 이상 형제가 아니라고요. 전 갈게요. 사형도 정진하세요.”
정원은 말하면서 빗자루를 내려놓고 뛰어갔다.
양준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그날 소무영을 구한 것이 잘한 일 같았다. 소무영은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신세를 지면 배로 크게 갚았다.
덕분에 앞으로 빗자루질 하는데 시간 낭비할 일이 없어진 양준은 기쁜 나머지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길가에서 육체 경지 7~8단계로 보이는 능소각 제자를 잡고 공수하며 말했다.
“사제, 나와 겨루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