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40화 (40/853)

제 40장. 다시 찾은 흑풍시장

양기가 스며들며 뜨거운 열기가 경맥을 타고 온몸에 퍼졌다.

진양결이 미친 듯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똑 똑‘ 소리와 함께 단전에서 양액이 한 방울씩 축적되었다. 곤룡골에서 넘쳐나는 양기도 양준의 확장된 모공 속으로 스며들었다. 겉과 속이 결합되고 있었다.

체내에서 원기의 움직임이 점차 강해졌다. 원대한 시야를 가진 사람이 양준의 지금 모습을 보았더라면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그 어떤 육체 경지의 무인도 몸에 이 정도로 짙은 원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육체 경지의 무인은 경맥이 좁고 단전의 용량도 작아 이토록 강하고 짙은 원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원기가 일렁이는 정도만 보아도 개원 경지의 무인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이제 겨우 육체 경지 8단계일 뿐이었다.

이때, 양준은 압력을 느꼈다. 이런 압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자신의 몸이 속박된 기분이었다. 이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면 돌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뜨뜻한 원기가 운행되면서 보이지 않는 이 속박을 불태웠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준은 이 속박이 천천히 옅어지고 얇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돌파가 코앞이었다. 양준은 정신이 맑아졌고 진양결의 운행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쿵-

마치 쇠사슬을 벗어던진 것처럼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각종 압력과 괴로운 느낌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육체 경지 9단계였다! 양준은 지금 개원 경지의 문밖에 서 있는 것이었다.

경지를 돌파함과 동시에 단전 안에 축적되어 있던 양액들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면팔방으로 흩어져 양준의 오장 육부, 피와 살, 경맥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양액의 양염지력도 풀어져 몸속의 이물질을 태우며 오장 육부와 경맥을 단련했다.

한참 뒤, 양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이번 돌파가 가져온 거대한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실력만 보아도 이미 돌파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지금 성소봉과 노도 두 사람을 마주친다면 양준은 양액을 쓰지 않고도 손쉽게 둘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력이 강해진 것 말고도 양준은 돌파할 때 경계를 살짝 건드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것은 너무나도 현묘하여 지금은 깨우칠 수 없었다. 나중에 돌파한 다음 다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경맥 안에는 진양원기가 넘쳐났지만 단전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자세히 느껴 본 양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삼양과 세 알로 만들어진 양액과 그가 전에 제련한 한 방울까지 모두 열 방울이었는데, 지금은 조금도 남지 않고 전부 몸속에 스며들어갔다. 몸은 크나큰 이득을 얻었지만, 양액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물론, 돈만 있다면 양액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양성을 띠는 천재지보(天才地寶)만 구할 수 있으면 바로 양기를 흡수하여 다시 양액을 제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양준이 가난뱅이라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성소봉과 노도를 죽이고 얻은 전리품 말고는 돈이 될만한 물건이 없었다.

제자리에 앉아 잠깐 생각해 본 양준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내가 천재지보는 살 수 없다고 해도 씨앗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삼양과 나무의 성공적인 선례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적당한 씨앗만 찾으면 양액의 비범함으로 영과 같은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씨앗 같은 물건은 좀 희소했다. 그날 흑풍시장에서 양준은 씨앗을 파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초(靈草), 영수(靈樹)의 씨앗은 적합한 환경을 찾아서 심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공들여 보살펴야 했다. 또 몇 년 기다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누가 그런 고생을 견디겠는가? 그럴 시간과 정성이 있다면 열심히 수련하는 게 나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파는 사람이 없었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이 있을 리 없었다.

‘일단 흑풍시장에 가봐야겠어!’

마음을 굳힌 양준은 능소각을 벗어나 흑풍시장으로 향했다.

두 번째로 온 것이지만 양준은 이곳이 매우 익숙했다. 보름 만에 온 흑풍시장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가판대 위의 천재지보는 좋은 것들로 가득하여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가판대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역시 씨앗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미리 짐작했던 것이라 양준도 실망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지난번에 마주친 혈전방의 가판대로 걸어갔다. 그 사람에게 남은 씨앗이 더 없나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가지 않아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양 사형!”

양준이 고개를 돌려서 보니 이운천이 반가운 얼굴로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앞에도 가판대가 있었는데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약초도 있었고 약병도 몇 개 있었는데, 안에는 단약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넌 왜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는 거야?”

양준이 다가가 물었다. 패거리에게 수련에만 몰두하라고 소무영이 엄령을 내렸다고 저번에 정원이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경지를 돌파하자마자 소 공자께서 바람 쐬러 나가서 경지를 단단히 하라고 하셨어요. 마침 형제들도 수련하는 데 보조적인 물건들이 필요해서, 겸사겸사 필요 없는 물건들도 팔 겸 나왔죠.”

이운천이 설명했다.

“그랬군.”

양준은 세세하게 이운천을 살펴보았다. 그는 며칠 전보다 좀 강해진 것 같았다. 아마도 육체 경지 8단계를 돌파한 듯했다.

“사형께서는 여기 웬일로 오셨어요?”

이운천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물건 좀 사려고.”

“뭘 사시려고요? 저한테 있나 보세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이운천은 가판대 위의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기를 띠는 영초의 씨앗 같은 거 있어?”

이운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이 시장에서 씨앗을 파는 사람은 아주 적어요.”

씨앗은 비싸지 않지만 희귀한 물건이었다.

“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사형을 대신해 간판을 걸게요. 혹시 씨앗을 팔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무튼 전 이틀간 계속 여기 있을 거니 운이 좋다면 파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죠.”

이운천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래, 부탁할게.”

이운천은 당장 그 자리에서 간판을 들고 글을 써서 옆에 세워 두었다.

양준은 이운천과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소무영이 지난번에 타격을 크게 받고 소안에게서 모진 말을 들은 뒤, 이 철없는 공자가 드디어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요 며칠간 밤낮 가리지 않고 수련하여 이미 개원 경지를 돌파했다고 했다.

이운천과 작별한 뒤, 양준은 지난번에 양염석을 팔던 가판대 앞으로 갔다.

낯이 익은 주인을 만나자 양준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못 찾을까 걱정했네.’

“어? 손님, 또 오셨네요?”

혈전방의 이 제자는 지난번에 양준이 호미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본 터라 양준을 기억하고 있었다. 호미아와 아는 사이인 것을 의식하여 존댓말까지 쓰면서 상대했다.

“이번에는 뭘 사시겠어요?”

주인이 물었다.

“지난번에 저에게 준 그 삼양과 씨앗이 또 있나요?”

양준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저한테도 그 한 알밖에 없었는데 덤으로 드린 거예요.”

“그랬군요.”

양준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말을 마친 양준은 옆으로 가려고 했다. 그는 시장을 다시 한번 돌아볼 생각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팔고 있는데 만약 운이 좋다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인은 떠나가는 양준의 뒷모습을 보더니 한참 고민하다가 그를 불렀다.

“손님, 잠시만요.”

양준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시죠?”

“사실 삼양과 나무의 씨앗이 한 알밖에 없는 건 아니에요. 여러 알 있었는데 제가 한 알밖에 구하지 못한 거죠.”

그 말을 들은 양준은 얼굴이 활짝 피었다.

“다른 씨앗들은 어디 있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가져갔어요. 손님이 정말 씨앗이 필요하시다면 그들을 찾아가 보세요.”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는데요?”

양준이 다급히 물었다.

주인의 얼굴에 머뭇거리는 기색이 드러나더니 한참 뒤에야 말했다.

“우리 혈전방의 광산에 있어요. 그들 모두 거기서 양염석과 다른 광물들을 캐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곳은 혈전방 제자들이라고 해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 하물며 손님은 외부인이잖아요.”

“그럼 그 사람들은 거기서 언제쯤 나오나요?”

양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만약 손님이 그들을 찾는다면 한두 달은 기다려야 할 거예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다간 시기를 다 놓치겠어.’

“제가 그들을 찾으러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전 그저 그들에게서 삼양과 나무 씨앗을 사려는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방법이 없어요. 저도 혈전방에서 평범한 제자일 뿐이니까요.”

주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곧이어 눈동자를 굴리더니 말했다.

“하지만 그분이라면 방법이 있죠.”

양준은 깜짝 놀라며 다급히 물었다.

“그게 누군데요?”

주인은 웃으면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해졌다.

“아가씨께 도움을 청하면 되죠. 아가씨와 같이 간다면 아무도 막지 않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양준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전 호미아와 특별한 사이가 아니에요.”

“네, 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주인은 멀리 나무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참 공교롭게도 아가씨가 시장에 오셨거든요. 지금 저기서 쉬고 계세요. 만약 씨앗이 급히 필요하다면 아가씨께 부탁해 보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