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장. 혈전방의 광산
양준과 호미아는 시끌벅적한 흑풍시장을 떠났다. 호미아의 안내로 두 사람은 흑풍림의 북쪽으로 걸어갔다. 호미아는 즐거운 듯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얼굴은 발그레했다.
“그날 일은 미안해.”
양준이 갑자기 사과했다. 그날 그가 한 말이 분명 지나쳤다.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느낌이었다.
호미아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나를 욕한 것도 아닌데 뭐. 몇 년 동안 더 듣기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으니까.”
“나를 원망하진 않아?”
양준은 의아했다.
“원망할 게 뭐 있어?”
호미아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사실 원망했지. 그런데… 너의 행동 때문에 미워할 수 없게 됐어.”
“어떤 행동?”
“하하, 그날 성소봉과 노도가 불쑥 나타났을 때 내 앞을 막아줬잖아. 무의식적인 행동일지는 몰라도 그동안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지켜주려 한 건 처음이었어.”
“그래?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런데 너도 참 대단하다.”
양준은 약간 탄식했다. 멀쩡한 소녀가 스스로 명예와 절조를 깎으며 오직 혈전방을 위해 많은 인재를 찾으러 나섰다. 비록 목적은 불순했지만 그 속에는 효심이 담겨 있었다.
“하하…….”
호미아는 간드러지게 웃었다.
“대단할 것도 없어. 분위기를 맞춰 주는 것도 하나의 생존방식일 뿐이야.”
“하하, 나는 여자는 잘 몰라서…….”
“정말?”
호미아는 눈이 번뜩였다.
“응. 그래서 방금 너희 두 자매에게 이용당했잖아.”
양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호미아는 양준을 한 번 흘겨보았다.
“참 못되게 말하네. 지금 언니가 없으니 망정이지 있었다면 한 대 맞았을 거야.”
“네 언니는…….”
“진원 경지 1단계야.”
호미아는 약간 거만하게 대답했다.
“대단하네.”
소안은 진원 경지 3단계였다. 그녀는 호미아의 언니보다 실력이 높았지만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호미아는 언니를 얘기하면서 양준이 했던 말이 또 떠올랐다. 그녀는 요절복통하며 꽃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 웃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양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호미아가 숨 좀 돌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호미아는 한참을 웃고 나서야 점차 숨을 돌렸다. 그녀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너도 용기가 참 대단한 것 같아. 언니에게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한 명도 없었어. 언니의 거기가… 정말 짝짝이야?”
“옷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어. 나중에 그녀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줘.”
양준은 멋쩍게 웃어넘겼다.
“그럼 내건 어때? 정말 균형이 맞아?”
호미아는 수줍은 얼굴로 대담하게 물었다.
“네 몸매는 아주 좋아.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호미아는 순간 더할 수 없이 기뻤다. 이렇게 직설적이고 아무런 목적 없는 칭찬이 요 몇 년 동안 들은 말 중 가장 듣기 좋은 말인 것 같았다.
“얼마나 더 가야 도착이야?”
양준은 그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아서 화제를 돌렸다.
“한 시진은 더 가야 해. 흑풍림이 워낙 넓어서.”
호미아가 설명했다.
“거기에는 지하 광맥이 하나 있는데 몇 년 전 우리 혈전방에서 발견한 거야. 그래서 사람을 보내 주둔하여 지키며 채굴 중이야. 거기에서 나온 물건들은 아주 신기해.”
“어떻게 신기한데?”
양준이 물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속성의 돌밖에 없어. 하나는 네가 산 적 있는 양염석이고, 다른 하나는 음원석(阴元石)이야. 신기하지 않아? 두 속성의 돌은 서로 상극이고 속성은 정반대야. 그런데 그 광맥에서 함께 생기는 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정말 신기하군.”
양준의 얼굴에는 감동의 빛이 어렸다.
양염석에는 양성역량이 잠재돼 있지만, 음원석에는 음성역량이 잠재돼 있었다. 그 둘은 서로 대립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절대 함께 생길 수 없었다.
“혈전방의 고수들도 그 광산이 이상하다고 느껴서 몇 년 동안 채굴을 했지만 별다른 발견은 하지 못했어. 오히려 우리 혈전방이 그 광산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지.”
호미아는 양준을 남이라 여기지 않고 마음속에서 생각한 대로 말했다.
“그건 혈전방의 운이지.”
양준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호미아는 응하고 대답하더니 갑자기 침묵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너도 운이 좋았어. 오늘을 놓치면 나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 이건 네 복이야.”
“어디로 가려고 했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야.”
호미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설명하면서 양준의 안색을 슬쩍 훑어보았다.
“지난번에 너에게 혼난 뒤 갑자기 요 몇 년 동안의 방법이 틀렸다는 걸 느꼈어. 비열한 수단으로 끌어들인 인재들이 의식하는 건 혈전방이 아니라 나잖아. 내가 그들이 원하는 걸 줄 수 없으니 그들도 자연히 혈전방을 위해 진짜로 힘을 쓰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언니처럼 강해지면 아버지의 걱정도 덜어드릴 수 있으니 폐관 수련을 하려고 했어.”
“좋은 생각이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미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양준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덤덤한 기색으로 자신의 말에 별다른 감정의 기복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기분이 나빠져 대화할 흥도 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앞에서 길만 안내했다.
호미아가 말을 하지 않자 양준도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한 시진 넘게 걷고 나서야 혈전방의 광산에 도착했다.
그곳은 흑풍림의 한복판이었는데, 주변에 십여 리나 되는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맥이 지하에 있어 양준과 호미아는 광산이 얼마나 북적거리는지 보지 못했다. 다만 지상에는 큰 구멍이 있었고, 지하로 직통하고 있었다.
백 장 가까이 떨어져 있었지만, 양준은 가슴 쪽 양원인에서 작지 않은 반응을 느꼈다. 그것은 지하의 양염석 때문에 생긴 반응이었다. 실력이 늘어남에 따라 양원인이 양기를 느낄 수 있는 범위도 다소 늘어났다.
두 사람이 도착하자 지상에 있던 혈전방 제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한 노인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양준과 호미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공수했다.
“아가씨.”
“용 할아버지.”
호미아는 그 노인을 다정하게 부르더니 양준을 끌어당겨 소개했다.
“이 분은 우리 혈전방의 부방주인 용재천, 용 할아버지야.”
양준은 얼른 인사를 했다.
“용 선배님을 뵙습니다.”
용재천은 양준을 경멸하듯 힐끔 쳐다보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신유 경지였고, 혈전방의 부방주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데 양준과 같은 하찮은 놈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또 여인의 덕을 보려는 기생오라비 군.’
용재천은 양준과 같은 사람을 특히 경멸했다. 호미아의 체면을 보지 않았다면 그는 바로 이 자리에서 양준을 죽였을 것이다.
“아가씨, 광산에는 뭐 하러 오셨어요?”
용재천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상하게 물었다.
“여기는 덥고 지저분한데, 어디 아가씨가 올 만한 곳인가요. 어서 돌아가세요. 방주께서 아시면 저를 욕할 거예요.”
“아버지가 용 할아버지를 어떻게 욕하겠어요. 용 할아버지는 혈전방의 삼조 원로(三朝元老, 삼대에 걸친 왕조나 군주에 벼슬한 중신)인데.”
호미아가 애교를 부리자 용재천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용 할아버지, 제 친구가 광산에 있는 혈전방 제자들에게서 물건을 사려고 해요. 우리가 들어가게 해줄 수 있어요?”
호미아가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광산에 들어가겠다고요?”
용재천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는 양준을 경계하며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자는 혈전방의 제자가 아니지요?”
양준이 앞으로 나서더니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는 능소각의 제자입니다.”
“혈전방의 제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용재천은 두 눈을 부릅뜨고 기분이 상한 말투로 비아냥거렸다.
“혈전방의 제자도 광산에 함부로 못 드나드는데 외부인인 너는 오죽할까.”
말을 마친 용재천은 고개를 돌리고 호미아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아가씨, 어떻게 외부인을 여기로 데려올 수 있어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입니다. 요 몇 년 동안 우리 혈전방은 이 광산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죠.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어떤 소인배들은 어떻게든 광산의 소식을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제가 이곳을 지키고 있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릅니다.”
양준은 표정이 굳어졌다.
‘이 노인이 빈정거리는 게 듣기가 참 거북하네.’
호미아는 양준이 기분이 상한 것을 느끼고 얼른 말했다.
“용 할아버지 오해예요. 양준은 무엇을 알아보려고 온 게 아니라 그저 뭘 좀 사려는 것뿐이에요.”
용재천이 피식 비웃었다.
“물건을 사겠다고? 무슨 물건을 여기까지 와서 사? 핑계도 참 재미있군. 네가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썩 꺼지거라. 이후에 감히 또 여기에 나타나면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
양준은 속에서 화가 치솟았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자기가 무슨 무림 고수인 줄 아는 거야?’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양준은 그와 실력 차이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짜로 싸우면 이 노인의 입김만으로 자신은 죽을 수도 있었다.
억지로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 충돌이 발생한다면 손해 보는 건 자신이었다.
용재천은 양준의 그런 모습에 그를 더 얕잡아봤다.
양준은 용재천을 노려보며, 체내 원기가 걷잡을 수 없이 일렁거렸다.
양준의 체내 변화를 느낀 용재천이 버럭 화를 냈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 나와 싸우기라도 할 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