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장. 용재천의 진의
용재천은 말이 끝나자마자 실력 차이도 무시한 채, 양준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이 날아오자 양준은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제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는 건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수단으로 그를 속박했기 때문이었다.
양준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 빌어먹을 노인이 이 정도로 낯짝이 두꺼울 줄은 몰랐다. 일부러 자신을 몰아붙이는 태도가 느껴졌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죽음의 기운이 정면으로 덮쳤다. 신유 경지 고수가 주는 거대한 압력에 양준은 심장박동마저 정지되어,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살려는 의지가 피어올랐다.
문득 뼛속에서 열기가 들끓더니 순식간에 온몸에 퍼졌다. 그때, 양준은 자신을 속박하던 힘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느꼈다.
다급해진 양준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몸을 피했다.
용재천은 대충 손을 휘둘러도 이 능소각의 제자를 한 방에 때려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지 못하게 그가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
‘이럴 수가?’
용재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 신유 경지의 금고수단(禁锢手段)을 이놈이 파했다고?’
양준이 피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용재천이 대충 휘두른 장권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용재천의 공격이 양준을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양준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낯빛이 창백해지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겨우 몸을 가누고 용재천을 보는 양준의 두 눈에는 싸늘한 기색이 더해졌다.
조금 전까지 양준은 용재천의 태도에 화가 났다면 이제는 원수나 다름없었다. 상대방은 그의 목숨을 취하려는 의도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개미의 목숨을 취하는 듯한 태도였다.
용재천은 양준이 방금 자신의 수법을 어떻게 풀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죽일 마음이 생겼으니 쉽게 멈출 수 없었다. 시작하면 끝을 봐야 했다. 그는 다시 양준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호미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양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용재천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용 할아버지, 양준은 제 친구예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광산의 정보를 캐내려 한 자는 죽이라는 것이 방주의 명령입니다!”
용재천은 호미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쳤다.
호미아는 종종 젊은 사내들과 왕래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듯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지킨 적은 없었다. 그 젊은 사내들의 목숨에 대해 호미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녀에게 선택받은 사내들 가운데 열 중 여덟은 좋은 결과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몸을 사리지 않고 이 능소각의 제자를 두둔하고 용재천을 질타했다. 이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용재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깐 생각하더니 살기가 더 짙어졌다.
호미아는 양준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이를 악물고 용재천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말했잖아요. 이 친구는 뭐 좀 사려고 온 거지 광산의 정보를 캐내려고 온 게 아니에요! 용 할아버지, 제 말도 못 믿어요?”
호미아가 이렇듯 양준을 감싸니 용재천도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아가씨의 말을 믿습니다.”
“그럼, 왜 계속 공격하려고 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가씨, 화를 푸세요.”
혈전방은 풍우루나 능소각과는 달랐다. 혈전방은 가족 세력이었다. 호씨 가문이 주인이니 용재천이 제아무리 부방주라고 해도 호미아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아가씨도 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광산은 애들 장난이 아니에요. 외부인은 절대 못 들어갑니다!”
말을 마친 용재천은 더 이상 호미아를 알은체하지 않고, 양준을 향해 콧방귀를 뀌더니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양준은 심호흡으로 가슴에서 들끓는 기혈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어르신, 잠깐만요!”
용재천은 귀찮은 듯 고개를 돌리고 실눈으로 양준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살기가 일렁였다.
“어르신, 지금의 저는 당신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양준이 천천히 호미아의 앞으로 나왔다. 그는 용재천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의 굴욕은 참겠지만, 5년 뒤, 혹은 10년 뒤에 반드시 이 빚을 받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 꼭 살아계십시오!”
양준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진지했다.
용재천은 낯빛이 차가워지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는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네가 그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 같구나! 버릇없는 놈, 앞으로 조심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용재천이 자리를 뜨자 호미아가 미안한 표정으로 양준에게 연신 사과했다.
“미안해, 용 할아버지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너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닌데.”
“괜찮아.”
양준은 심호흡을 했다. 조금 전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여운이 남았다. 금신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그 뜨거운 열기 덕분에 용재천의 수법을 파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용재천이 왜 나를 몰아붙였을까?’
양준은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득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호미아를 보자 대충 그 이유가 짐작되었다.
“용 할아버지가 너를 광산에 들이지 말라고 했고, 나도 그의 체면을 깎을 수 없어. 우리 이렇게 하자. 내가 가서 그 씨앗을 사 올게. 너는 여기서 잠깐 기다려.”
호미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양준도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몸에 지니고 있던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다 꺼냈다. 그리고 호미아에게 그 씨앗을 주운 혈전방 제자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흑풍시장에서 이미 주인에게 확인을 한 터였다.
호미아는 광산으로 들어갔다. 양준은 지상에 있는 집들을 훑어보았다. 방금 용재천이 그중 한 집에 들어갔다. 그 집에서 한 쌍의 눈이 자신을 살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집안에는 노인과 젊은 사내가 있었다. 둘은 창가에 서서 양준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노인은 방금 양준과 접전을 한 용재천이었다. 젊은 사내는 용재천의 손자 용휘(龍輝)였다.
용휘는 음침한 눈으로 양준을 보며 불만 섞인 말투로 말했다.
“할아버지, 방금 왜 저 자를 안 죽였어요?”
용재천이 싸늘하게 말했다.
“호미아가 보호하는데 어떻게 죽이겠느냐?”
“그러니까 더 죽여야죠. 저는 미아가 한 번도 어느 사내에게 이렇듯 마음을 쓰는 걸 못 봤어요. 저놈은 미아와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남겨두면 화근이 될 거예요.”
“음, 확실히 호미아가 누구를 이렇게 보호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 자를 위해서 나에게 말대꾸까지 하다니….”
용재천이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미아가 지금 광산에 들어갔어요. 할아버지, 지금 한 번 더 공격하는 게 어때요?”
용재천은 못난 손자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공격하는 건 문제없다. 저 자를 죽이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저 자가 죽으면 호미아가 너를 원망할 것이다.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
용휘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저렇게 저 자와 미아의 사이가 발전하게 둬요? 저는 못 참겠어요.”
“너도 참!”
용재천은 탄식했다.
“네 형을 좀 본받거라. 그가 좋아하는 여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잘 살펴보고, 호미아를 얻고 싶으면 심혈을 좀 더 기울여야 한다. 이 할애비가 너를 위해 사람을 죽여줄 수는 있지만 여인의 마음까지 대신 얻어줄 수 없지 않으냐? 호만은 슬하에 아들이 없고 교아, 미아 두 딸만 있다. 너와 네 형이 이 둘을 사로잡는다면 혈전방은 이제 우리 용씨 가문의 것이다! 우리 용씨 가문은 아래위로 삼대가 혈전방을 위해 수십 년을 싸웠다. 이제 주인이 되는 재미도 느껴야 하지 않겠느냐.”
용휘는 그 말을 듣자 의욕이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용씨 가문이 주인이 될 차례죠.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반드시 두 자매를 사로잡을 거예요.”
“음, 그런 기개가 있으면 됐다.”
용재천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용휘는 독기 어린 눈으로 먼 곳에 있는 양준을 노려보며 미련을 못 버리고 말했다.
“할아버지, 저 자는…….”
“스스로 기회를 잡거라. 저 자는 실력이 높지 않으니 네가 상대할 수 있을 거다.”
“네.”
용휘는 싸늘하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손을 쓸 때가 아니야. 저놈이 능소각의 제자라고 하니 독 안에 든 거나 마찬가지야.’
양준이 밖에서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호미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네 개의 씨앗을 양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임무 완성!”
혈전방의 아가씨가 사려는 물건을 어느 제자가 감히 안 팔 수 있을까?
“고마워.”
양준은 네 개의 씨앗을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양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를 한 번 도와줬으니, 나도 보답할게.”
호미아가 의아해하며 쳐다봤다.
“무슨 뜻이야?”
양준이 손짓했다.
“따라와.”
호미아는 양준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고분고분 따라갔다.
대략 삼십 장 정도의 거리를 걸어 나오자 양준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가볍게 발을 구르며 말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를 잘 기억해 둬. 이 땅속 깊은 곳에 평범하지 않은 물건이 있어.”
호미아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의아해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양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내가 어떤 무예를 연마했는데 일정한 범위 내에 양기가 흐르는 물건이 있으면 느낄 수 있어. 이 아래에 그 보물이 있어. 그 보물이 뿜어내는 양기가 양염석보다 백 배는 더 순도가 높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