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장. 하응상의 결단
광산에 도착했을 때 양준은 이곳에서 다른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 사실을 호미아에게 알려주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이곳은 혈전방의 구역이라서 욕심이 나도 손댈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호미아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오늘 도와준 것을 양준은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야?”
양준의 말에 호미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말 못 믿겠어?”
“믿지!”
호마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양준은 은근 감동했다.
“그럼 됐어.”
양준이 살짝 미소 지었다.
“아래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물건은 분명 가치가 있을 거야. 그것 외에 다른 것도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는 감이 안 잡혀. 짐작하건대, 이 아래 숨겨진 비밀이 바로 혈전방 광산의 기이한 힘의 근원이 아닐까 싶어. 혹은 이것들 때문에 지하 광맥이 흐르는 걸 수도 있어.”
호미아는 감격스러웠다. 양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아래의 비밀은 매우 중대했다.
“너는 똑똑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잘 알겠지.”
양준이 엄숙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알아.”
호미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이제 가자.”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흑풍림에서 걷는 동안, 호미아와 양준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둘은 이 순간이 가져다주는 분위기를 즐겼다.
호미아는 무척 기뻤다. 양준이 그녀에게 중요한 소식을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양준의 마음속에 심어졌던 인상이 바뀐 게 분명했다. 저번에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마음대로 부려먹었던 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의 태도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제 여기서 헤어지자.”
양준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호미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제야 그들이 어느새 네 갈래 갈림길에 도착한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참 빠르네.’
호미아는 조금 아쉬웠다.
“잘 가.”
양준은 인사를 마치고 다급하게 능소각을 향해 걸어갔다.
‘참 소탈한 사내구나.’
호미아가 씁쓸하게 웃었다.
*양준은 곤룡골 옆에서 열심히 수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몇 그루의 삼양과 나무가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제일 큰 나무에는 이미 세 개의 열매가 맺혀 곧 익기 직전이었다. 가장 작은 나무는 금방 흙을 뚫고 올라온 새 묘목이었다.
혈전방의 광산에서 돌아온 이후, 양준은 이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했다.
양준은 강해지려는 오기가 생겼다. 용재천에게 받은 치욕은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반드시 돌려줄 것이다.
거의 열흘 동안 힘들게 수련해서 육체 경지 9단계에 도달했다. 9단계를 곧 돌파할 듯했지만 결국 마지막에서 좌절했다. 양준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하나의 큰 경계를 돌파하려면 기연이 필요했다. 작은 경계를 돌파할 때처럼 쉽지 않았다. 체내의 원기가 충족하다고 해도, 적당한 시기에 깨우쳐야 할 것을 깨우쳐야 했다.
며칠 동안의 수련은 나름 순조로웠다. 매일 빗자루질을 하지 않아도 되니 수련할 시간이 늘었다.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는 다 쓴 지 오래였다. 이상한 향의 억제와 저항이 없으니 진양결의 운행 속도가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그래서 양준은 천지의 양기를 더 잘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제련한 양액은 모두 삼양과의 씨앗을 성장시키는데 사용해서 단전에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늘과 땅의 힘이 주변에 집결되어 있어 양준이 개원 경지의 경계를 돌파하기만 하면 그의 체내에 흡수하여 그의 체질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양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마음은 조급하지도 초조하지도 않았지만,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고통을 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이슬도 무거워진 깊은 밤, 아득한 밤 하늘 아래 곤룡골 옆에서 양준은 문득 방황의 경계에 빠져들었다. 온몸의 원기가 흐트러지고 미간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양준을 묵묵히 지켜보던 하응상은 살짝 놀라서 ‘어’ 하고 소리를 냈다. 거리가 꽤 있었지만 하응상은 이상한 원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원기의 파동은 음침하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저건 분명 주화입마의 전조야. 양준은 겨우 육체 경지 9단계를 돌파했을 뿐인데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나?’
안 좋게 말하면, 양준과 같은 실력이 비천한 무인은 주화입마에 빠지려고 해도 그 자격이 없었다. 실력이 더 높아지면 그때에야 수련 중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양준의 몸에서 벌어진 것이다.
하응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가 여기에 있는 것도 스스로 찾아온 것이었다. 양준을 몰래 관찰한 것도 이 년여의 시간이 지나니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며칠 동안 양준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그녀는 문득 허전한 느낌이 들고 무슨 일을 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곤룡골에서 그를 발견했을 때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돌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이곳에 온 후, 하응상은 양준이 곧 돌파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동안 기다렸지만 양준은 결국 실패했다. 게다가 또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졌으니 그녀가 어찌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하응상이 은근히 조급해하고 있을 때 양준의 몸에서 갑자기 순수하고 짙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열기에 주화입마의 흔적이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다. 양준의 몸 안의 원기 파동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진양경(真阳劲)!”
하응상의 작은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떻게 이렇게 순수할 수가!”
그 뜨거운 열기는 분명 양의 속성을 가진 원기였다. 능소각의 제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의 속성과 양의 속성의 무예를 연마한 후 체내에 이런 뜨거운 원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어느 제자도 양준만큼 순수하지 않았다.
양준의 실력이 높지 않았기에 그 뜨거운 열기는 짙지 않았다. 그러나 유난히 깨끗하고 아무런 불순물이 섞여있지 않은 것이 마치 오염되지 않은 수원 같았다.
그때, 하응상은 양준이 또다시 주화입마의 전조에 들어선 것을 발견했다. 한줄기 사악한 기운이 뜨거운 원기를 대신해 양준의 체내에서 서서히 퍼져나갔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한줄기 진양경이 그 사악한 기운을 눌러 원기의 움직임을 안정시켰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이 되었다. 하응상은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어느 무인이 개원 경지를 돌파할 때도 이런 이상한 현상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개원 경지를 돌파할 때 천지의 저항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이 경지는 단계가 낮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넘어설 수 있었다. 양준의 상황은 좀 달랐다. 그가 받는 저항은 그 누구보다도 더 컸다. 높은 경지를 돌파할 때의 어려움과 맞먹을 정도였다.
양준도 곤욕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방금 그는 어렴풋이 한 가닥의 오묘한 힘을 알아낸 것 같았다. 이미 한 발을 개원 경지의 문턱에 들여놓았을 때, 갑자기 뼛속에서 사악한 기운이 솟아나더니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체내의 진양원기가 폭발해서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렸다.
체내의 두 갈래 힘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한 갈래는 양준 스스로 연마한 진양원기였고, 다른 하나는 뼛속에서 솟아오르는 사악한 기운이었다. 두 기운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양준의 몸을 전쟁터 삼아 싸웠다. 사악한 기운이 우세를 차지하면 그의 의지는 흐릿해지고 흥분과 살의가 마음속에서 용솟음쳐 아무나 찾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싶었다.
또 진양원기가 우세를 차지하면 정신이 또렷하고 몸이 가뿐했다. 두 힘은 끝도 없이 싸웠다. 마치 영원히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양준은 너무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하응상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양준을 돕기로 했다. 보통의 경우에는 경지를 돌파할 때 방해하면 안 됐다. 그러나 그녀는 양준의 체내에서 격동하는 전의를 생생하게 느꼈다. 그건 피를 갈망하는 전의였다.
결투라도 하지 않는 이상, 양준을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없었다.
하응상은 처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왔다. 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었기에, 그가 자신을 알아볼 것 같았다. 그녀가 다시 곤룡골로 돌아왔을 때 양준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상태가 아까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하응상은 망설임 없이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아름다운 두 눈에 살기가 번뜩이더니 손바닥을 날렸다.
이미 그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하응상은 어떤 빈틈도 보일 수 없었다. 양준이 전심전력으로 응해야만 그를 도와 경계를 돌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하응상은 바로 필살기를 썼다.
양준의 실력은 육체 경지 9단계였기에 하응상은 개원 경지 2~3단계의 힘만 발휘했다.
중요한 순간에 있던 양준은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들어 이유 없이 소름이 쫙 돋았다. 자신도 모르게 생사의 위기감이 들었다.
의혹을 품던 찰나, 한 줄기 장풍이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습격이다!’
양준은 짧은 찰나 각성하고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손을 꺾어 주먹을 한방 날렸다.
체내에 들끓는 전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누군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대체 누가 자신을 습격하는지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그는 한바탕 속 시원히 싸우고 싶을 뿐이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원기가 뒤흔들렸다. 양준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하응상은 그 힘을 빌려 공중회전을 하더니 가뿐하게 착지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비록 개원 경지 3단계 정도의 힘밖에 쓰지 않았지만 양준과 막상막하로 싸울 수준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를 압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