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장. 개원 경지 3단계
한 번의 접전 후, 양준은 달빛을 빌려 자신을 습격한 사람의 체형을 똑똑히 확인했다. 여인이었다. 다만 검은 면사포로 가리고 있어 용모를 확인할 수 없었다.
“뭐야, 계집이었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레 한마디 중얼거렸다.
하응상은 그 말에 화가 나서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손바닥에서 원기가 일렁이더니 온 하늘에 장영(掌影)으로 가득 찼다. 그 장영은 양준의 머리를 향해 덮쳤다.
양준은 낮게 기합을 외치더니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주먹 위에 뜨거운 원기가 몰리며 그대로 하응상에게 주먹을 날렸다.
상대방이 여인이긴 하지만 양준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상대의 실력이 분명 자신보다 뛰어난 데다 공격해 오는 기술마다 치명적이어서 양준은 감히 건성건성 상대할 수 없었다.
전광석화 같은 교전이 벌어지고 양준과 하응상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형세는 양준이 불리했다. 그의 초식은 동작이 크고 힘이 많이 들어 살상력이 크기는 하지만 하응상처럼 민첩하고 변화가 많지 않았다. 양준이 두 번 공격할 때 하응상은 세 번 공격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하응상은 몸매가 날렵해서 요리조리 옮겨 다니며 양준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양준은 계속해서 밀리자 무척 골이 났다. 그는 상대방의 실력이 자신보다 약간 높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상대방이 진짜 실력을 감추고 그와 상대해 주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상대를 이기는 것이 더 이상했다.
검은 면사포 아래로 화가 잔뜩 나 삐죽 나왔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입을 함부로 놀리더니, 맞아도 싸다!’
잠깐 사이에 양준은 너무 많이 맞아서 온몸에 통증을 느꼈다. 익숙한 아픔이 온몸에 퍼지자 체내의 피가 다시 한번 들끓으며 커다란 강물처럼 콸콸 밀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면 심지어 파도가 바닥을 치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순식간에 체내에 열기가 퍼지며 실력이 점점 높아졌다.
하응상의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양준의 체내 원기의 흐름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실력은 그새 육체 경지를 돌파하고 개원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 늘어났다.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실력이 늘었다.
그 뜨거운 원기가 감도는 주먹은 점점 더 빨라지고 힘이 실렸다. 하응상은 점점 그를 상대하기 어려워졌다. 그녀는 좀 더 높은 실력으로 상대하려다가 내키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누가 나를 죽이라고 시켰어?”
격렬한 교전 중에 양준이 음침한 표정으로 물었다. 목소리가 낮고 무거웠다.
하응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양준의 초식을 파하고 있었다.
싸움이 지속되며 양준의 실력이 그녀와 비슷해져 현재 그녀는 전혀 우세하지 않았다. 그의 주먹에 스치기라도 하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힘을 좀 더 방출해서 체내에 들어온 순수한 양기를 없애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진양경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순도는 일반적인 무예로 수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한 번의 정면 교전 후, 양준과 하응상은 두 손바닥이 마주쳤지만 둘 다 밀려나지 않았다.
실눈을 뜨고 상대방을 살피던 양준의 시선이 그녀의 이마에 머물렀다. 그곳에 옅은 흉터가 있었다. 그는 약간 놀라며 말했다.
“너는… 내가 아는 한 사저를 닮은 것 같아.”
하응상은 양준의 양기 침입을 막고 있는 와중에 그의 말을 듣고 순간 정신이 흐트러졌다. 그녀는 속으로 들켰나 하고 생각했다. 이마에 난 옅은 흉터 때문에 양준이 의심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양준이 기억하길 하 사저는 이마에 파란 보석 장식을 달고 있었는데 마침 흉터를 가리고 있었다.
하응상은 긴장한 탓에 눈을 연신 껌벅거렸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양준은 호탕하게 웃으며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아 품에 와락 당기더니 면사포를 벗기려고 했다.
그때에야 하응상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맨얼굴로 양준을 마주하기 싫었다. 첫 번째는 양준에게 압력을 주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약간 부끄러웠다. 이전에 어색한 일이 있었던 탓에 면사포를 그리 쉽게 벗을 수 없었다.
다급해진 그녀는 실력을 감출 여유도 없이 한줄기 거대한 원기가 폭발했다. 양준은 소리를 지르면서 저 멀리 밀려났다. 나가떨어진 그는 바닥에서 몇 바퀴 구르기까지 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 여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은 이미 어디론가 도망친 후였다.
“설마 진짜야?”
양준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상대방의 반응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게다가 마지막 그 원기의 폭발에 양준은 상대방의 실력이 자신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진짜 자신을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손가락만 까닥하면 될 일이었다. 어디 그렇게 오랫동안 교전할 수 있겠는가?
진짜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양준은 방금 교전을 거쳐 몸의 속박이 이미 풀어진 상태였다. 얼른 가부좌를 하고 바닥에 앉은 그는 천지의 기운을 자세히 느꼈다.
그때, 천지의 기운이 동요하더니 양준을 향해 밀려들었다.
양준은 심호흡을 했다. 온몸의 모공이 활짝 열려서 마치 고래가 물을 들이켜듯이 천지의 기운을 체내로 흡수하고 그 방대한 힘이 체내에서 감돌며 체질을 변화시켰다.
무인들마다 큰 경지를 돌파할 때 기연을 얻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는 자신의 노력에 따라 좌우되었다.
*하응상은 놀란 표정으로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양준이 자신을 한눈에 알아볼 줄 몰랐다. 하지만 다행히 그가 돌파하는 것을 도왔으니 헛고생은 아니었다.
하응상이 당황하고 있을 때 주변에 그림자가 언뜻 비치더니, 소박한 차림의 노인이 갑자기 나타났다. 노인은 머리와 수염이 하얗고 외모가 자애로웠다.
상대방의 용모를 확인한 하응상은 얼른 공손하게 인사했다.
“장문 사숙 잘 지내셨습니까?”
노인이 자애롭게 웃었다.
“너는 능소각의 제자가 아니니 예를 갖출 필요 없다.”
하응상이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장문께서는 제 사부와 친한 벗이니 당연히 제 사숙이지요.”
장문인은 하응상이 이토록 영리하고 철이 든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몽무애는 운이 좋구나. 너 같은 착한 제자를 뒀으니.”
장문인은 자신의 두 제자를 떠올리며 길게 탄식했다.
하응상은 장문인의 사연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장문인의 어두운 표정을 보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못 했다.
곧이어 장문인은 가만히 손을 뻗어 하늘을 가리더니 양준 쪽으로 밀쳤다. 그 순간 하응상은 그쪽의 천지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큰손이 누군가 엿보는 것을 가린 것 같았다.
“저놈이 경지를 돌파하며 일으킨 움직임이 작지 않을 거다. 남에게 들키기 전에 일단 먼저 사고를 방지해야지.”
장문인이 먼저 설명했다.
하응상은 속으로 의아했다. 늘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던 장문인이 왜 양준에게 이토록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의심스러웠지만 더 물을 엄두도 못 냈다.
두 사람은 백 장의 거리를 두고 양준 쪽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천지의 기운이 몸에 들어와 양준의 체내의 혈육과 피부에 충돌했다. 비록 그쪽의 원기 파동을 느낄 수 없었지만 육안으로는 볼 수 있었다. 양준 주변의 십여 장 거리에서도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것을 보니 움직임은 분명 작지 않았다.
‘개원 경지를 돌파하는 것뿐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
하응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양준의 몸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빼빼 말랐던 몸이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천지의 기운이 너무 많이 몸에 흡수됐기 때문이었다.
하응상이 양준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을 때, 그의 몸은 다시 움츠려 들더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장문인의 수단에 가려졌지만 하응상도 그쪽에서 섬뜩한 원기의 파동을 느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뒤에 있었다. 천지의 기운이 양준의 몸에 완전히 흡수된 뒤, 그의 앞에 있는 곤룡골 내에서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붉은색 원기가 솟구쳐 나왔다는 것이다.
그 원기는 곤룡골 밑에서 솟아올라 양준의 모공을 따라 파고들었다.
하응상도 양준이 처음 흡수한 것은 천지의 기운이고, 두 번째 흡수한 것이 태양의 원기라는 것을 알아챘다. 태양의 원기도 천지 기운의 일종이었지만 단일 속성이었다.
그 원기가 양준의 몸에 완전히 흡수된 뒤에야 그쪽의 움직임이 사그라졌다.
“됐다.”
장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양준 쪽을 가린 힘을 거뒀다. 그는 휙 하더니 자취를 감추었는데 담담한 목소리가 하응상의 귓가에서 울렸다
“사부에게 안부를 전하거라.”
“네.”
하응상은 공손히 대답한 뒤 양준이 돌파한 성과를 알아보러 갔다.
양준의 경지를 한눈에 알아보고 하응상은 넋이 나갔다.
개원 경지 2단계!
하응상은 잘못 감지한 줄 알고 미심쩍은 듯 다시 살펴봤다. 양준은 정말 개원 경지 2단계가 돼 있었다.
양준의 이번 돌파는 큰 경지를 돌파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기초 위에서 또 작은 경지를 돌파한 것이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응상은 체질이 특이하여 수련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매번 돌파할 때마다 한 단계씩 밟아 나아갔고, 단번에 두 단계를 돌파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양준의 그런 쾌거를 직접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의아하게 여기고 있을 때,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있던 양준이 갑자기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거였구나.”
말이 끝나자 양준의 몸속 원기 파동이 더욱 격렬해졌다.
‘개원 경지 3단계! 괴물이다.’
하응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감에 타격을 받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 시진 더 머물렀다. 하응상은 양준이 더 이상 승급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