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장. 위장
양준은 곤룡골에 밤새 앉아 있었지만, 수련하지 않고 어젯밤 돌파했을 때의 진리를 느끼고 있었다.
어젯밤의 돌파는 앞뒤로 두 가지 기운이 몸으로 주입됐다. 하나는 천지의 기운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힘은 일부분만 단전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뼈에 흡수됐다.
두 번째는 곤룡골 밑에서 끌어온 태양의 원기였다. 그 힘은 다섯 방울의 양액으로 변하여 단전에 축적되었다.
양준은 밤새도록 머리를 굴려 대략적인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금신은 자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통증을 느낄 때 전투력을 향상시켜줬다. 하지만 그 향상된 전투력도 기운의 뒷받침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외부의 기운을 흡수해야 했다. 그 기운이 바로 천지의 기운이었다.
흡수한 천지의 기운은 필요할 때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금신의 신묘함이자 자신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양준은 지금까지 진양결을 수련했으니, 그동안 자신이 양성을 띤 힘만 흡수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지금으로선 이것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진짜로 다른 힘을 흡수할 수 있다면 앞으로 더 빨리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발견에 양준은 조금 즐거워졌다. 진양결이 강하긴 했지만 그것도 제한이 있었다. 만약 자신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앞으로 수련 환경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양준은 일어서서 자신의 실력을 느꼈다. 확실히 경계를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단번에 개원 경지 3단계까지 뚫었다.
어젯밤, 자신의 몸에 주입된 두 가지 기운의 거대함을 생각하자 가슴이 벅찼다.
체내에 원기가 처음 생겨났을 때 개원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원래 양준의 몸에는 적지 않은 원기가 있었지만 이번 돌파는 의미가 달랐다.
원기가 체내에서 대주천을 이루며, 진양결의 회전 속도도 크게 빨라졌다.
게다가 그 경지를 넘어서면 더 쉽게 수련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제는 좋은 수련 환경이 갖춰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곤룡골에서 돌아온 양준은 마음이 아주 상쾌해졌다. 큰 경지의 돌파로 그는 이제 세상이 달라 보였고 오십 장 이내에 있는 사람들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었다.
오두막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양준은 갑자기 익숙한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자세히 들은 뒤 실소했다.
‘소무영이 또 얻어맞은 건가?’
여기는 문파 내부여서 남에게 얻어맞으면 싸움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기술이 남보다 못하니 남을 탓할 수도 없었다.
소무영이 얻어맞고 있는 곳은 양준에게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양준은 그쪽으로 구경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양준은 한 번 훑어보고 그곳 사람들이 두 파로 나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잘 아는 이운천과 조호 일행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다만 그들의 표정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다른 무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상황이 조금 이상해서 양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봤다. 문파 제자 간의 대련은 누가 이기든 절대 이 지경이 될 수 없었다. 이운천 일행은 분명 격분하여 패싸움을 하려는 모양새였다.
이 두 패거리들 외에 많은 능소각의 제자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고, 수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가운데를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일말의 의혹을 품고 양준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이운천 일행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슬쩍 쳐다보니 소무영이 얻어맞아 코가 시퍼렇게 부어오르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그와 비슷한 연배의 소년과 싸우고 있었다. 그 소년은 차분하고 느긋했다. 어느 한곳도 다친 곳이 없었고, 비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소무영을 공격하는 한편 말로 그를 자극했다. 소무영은 낮게 기합 소리를 내더니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쉽게 대응했다.
잠깐 보던 양준은 미간을 약간 찡긋했다. 뭔가 이상했다. 소무영의 공격은 그 소년을 명중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아예 그 소년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주먹이 상대방의 몸에 떨어졌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무영에게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
두 사람이 초식을 나누며 방출한 원기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즉 실력이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왜 저런 차이가 나는 거지?’
“이게 무슨 일이야?”
양준은 이운천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이운천이 고개를 돌리더니 얼굴에 기쁜 기색이 돌았다.
“양 사형!”
그 부름 소리에 조호 일행도 양준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맞은편의 무리들과 대립했다.
“소무영이 왜 저 자의 상대가 안 되는 거야?”
양준이 의문스러웠던 부분을 물었다.
“둘의 실력이 비슷하잖아?”
이운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노해서 말했다.
“네, 소 공자는 개원 경지 2단계고, 저 자는 개원 경지 3단계예요. 사실 공평하게 대결하면 소 공자가 이기지는 못해도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 자는 비열하기 그지없어요. 동문 제자들 사이의 대련에서 방어밀보를 입었잖아요. 소 공자의 수단이 어디 먹혀들기나 하겠어요?”
양준은 그 말에 표정이 굳었다.
“방어밀보라니?”
“그러니까요.”
이운천이 이를 악물었다.
“저 자는 대장로의 친손자예요. 이름은 위장(魏庄)이라고 하는데 방어밀보는 대장로가 저 자에게 선물한 거래요.”
“또 금수저야?”
양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소무영도 지켜주는 장로가 있었지만, 위장은 대장로의 친손자였다. 둘 다 버팀목이 있고 신분이 비슷하니 다른 사람은 소무영을 때릴 수 없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문 제자들끼리 겨루는데 방어밀보를 입는 건 지나친 처사였다.
“대장로와 이장로가 항상 안 맞잖아요. 그러니 소 공자와 위장도 서로 적대적이죠. 이번에 기회가 생겼으니 반드시 소 공자를 단단히 혼내려고 할 거예요.”
이운천은 매우 초조해했다.
양준이 말했다.
“오, 시시한 집안싸움이었군.’
“양 사형, 얼른 소 공자를 구해 줘요. 사형도 그의 성격을 잘 알잖아요. 계속 싸우면 반드시 중상을 입을 거예요.”
이운천이 사정했다.
양준은 표정이 담담했다.
“동문 제자들끼리 겨루는데 실력이 밀리면 맞아야지. 능소각 제자가 그걸 두려워하면 되겠어?”
“하지만 이 싸움은 불공평하잖아요. 위장은 방어밀보의 힘을 믿는 거라고요.”
양준이 차갑게 웃었다.
“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 약육강식, 이미 잘 알고 있잖아.”
이운천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서 양준을 바라봤다.
동문 제자들 사이의 겨루기에 그들은 확실히 끼어들면 안 됐다. 양준이 근래에 갑자기 용맹스러워지긴 했지만 문파의 규칙이란 게 있었다.
‘저번처럼 소무영을 구해주길 바라면 안 되겠지?’
소무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초식을 쓰는데 힘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위장은 크게 웃으며 여간 득의양양한 게 아니었다. 그는 가슴팍을 치며 말했다.
“소무영, 사정을 봐주지 말고 마음껏 쳐.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게. 네 주먹을 맞고 아파하면 내가 진 거야.”
소무영은 두 눈이 풀렸다. 두 주먹에는 핏자국이 얼룩덜룩했다. 위장이 입은 방어밀보는 방어 능력뿐만 아니라 원기를 반사하는 능력까지 있었다. 소무영이 주먹을 날릴 때마다 역으로 자신의 힘을 감당해야 했다. 그의 주먹에 난 상처들은 그렇게 생긴 것이었다.
위장의 재수 없는 말에 소무영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경멸하는 말투로 말했다.
“너 사내라면 당장 그것부터 벗어. 오늘 너를 때려눕히지 못하면 내가 네 손자다!”
위장은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음침하게 웃었다.
“용기가 가상하네. 나를 희롱하다니, 네가 내뱉은 말에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위장은 격노한 것 같았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소무영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비틀거리던 소무영은 손을 돌려 막았지만 상대방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얼굴은 주먹에 부딪혀 금세 부어올랐다. 몸도 그 힘에 나가떨어졌다.
위장은 그 기세로 달려들어 끝을 보려고 했다. 그는 소무영을 바닥에 눕히고 두 주먹으로 미친 듯이 내리쳤다.
소무영은 있는 힘껏 반항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위장이 입고 있는 방어밀보의 효과는 작지 않았다. 소무영의 실력으로는 그것을 부술 수 없었다.
“할아버지라고 불러봐. 그럼 봐줄게.”
위장이 한참 두들겨 패던 것을 멈추고 위협했다.
소무영은 싸늘하게 위장을 쳐다보며 가소로운 듯 웃었다.
지난번에 성소봉이 돌로 그의 머리를 내려칠 뻔했을 때도 굴복하지 않았는데 이번이라고 타협할까?
“어디 계속 웃어봐!”
위장은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소무영의 치아가 하나 날아가고 코에서 피가 흘러나와 얼굴이 처참하고 볼품없었다.
위장의 수단은 성소봉보다 더 잔인했다.
“소 공자!”
이운천 일행은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한걸음 나섰다. 하지만 문파의 규칙이 걸려 구하러 달려들 수 없었다.
위장은 더 때리지 않고, 오히려 이운천 일행을 보며 실실거렸다.
“이 자식을 구하고 싶어?”
이운천 일행은 대답하지 않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분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내가 묻잖아. 이 자식을 구하고 싶어?”
위장은 소무영의 따귀를 때리더니 독하게 질문했다.
소무영이 또 공격을 받자 이운천 일행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더 잔인한 수단을 쓸까 두려웠다.
“그럼 다 꿇어! 너희들이 절을 몇 번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 소무영을 봐 줄 수도 있어.”
위장은 소무영을 어찌하지 못하자 이운천 일행을 노렸다. 이 자들은 소무영의 부하이니 이들을 모욕하는 게 소무영을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
이 말에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운천 일행의 낯빛도 어두워지며 매우 치욕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