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장. 가르침을 한 수 청하다
소무영이 버둥거리며 이운천 일행에게 말했다.
“이놈 말 듣지 마!”
퍽소무영이 뺨을 또 한 대 맞았다.
이운천 일행은 대경실색했다. 머뭇거릴수록 소무영이 더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위장을 악에 받쳐 쳐다보며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양준은 그들을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들이 소무영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니.’
사내는 무릎을 함부로 꿇지 않는다. 서로의 감정이 무척 깊은 게 아니라면 누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무릎을 꿇겠는가?’
양준은 이운천 일행이 소무영이라는 금수저 옆에 붙어 콩고물이나 얻어먹으려고 하는 줄 알았다.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위장은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갑자기 허허 웃었다. 그는 높은 곳에서 소무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이것들을 이렇게 말 잘 듣는 개로 만들어 놓았다니, 예상 밖이군.”
소무영의 눈가에 치욕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위장에게 얻어맞아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운천 일행이 바닥에 무릎을 꿇자 눈물이 무기력하게 흘러내렸다.
이운천 무리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자 위장은 얼굴에 득의양양해하는 기색이 더 짙어져서 큰 소리로 웃었다.
“무릎만 꿇어서는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데.”
이운천 무리들은 이를 악물고 포복 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머리를 바닥에 대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 사형, 부디 관대하게 처리해 주세요.”
위장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이운천 일행의 의리에 그도 살짝 놀랐다.
“위장!”
소무영은 입안 가득한 피를 꿀꺽 삼켰다.
“너와 나는 이제부터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위장은 두 손을 모으더니 소무영의 가슴께로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소무영은 피를 토하며 기절했다.
“소 공자!”
이운천 무리들은 울부짖었다. 위장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용을 저버릴 줄은 몰랐다.
“소무영 패거리들 하나도 놓치지 마.”
위장이 잔인하게 하명하며 소무영의 몸에서 일어났다. 그는 죽은 개를 걷어차듯 소무영을 한 발로 걷어찼다. 방금 이운천 일행과 대치하던 능소각 제자들이 차갑게 웃으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이운천 일행의 앞을 막으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운천 일행은 머리끝까지 치민 화를 어떻게 풀지 몰랐는데 마침 상대가 제 발로 찾아왔다. 그러니 응하지 않을 리가 있나?
이건 대놓고 패싸움을 하겠다는 거였다. 다만 서로 고정된 상대가 있을 뿐이었다.
위장은 싸늘한 미소를 짓고 이운천 일행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
“누구든 굴복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때려라. 사람을 죽이면 내가 책임진다.”
그는 소무영을 따르는 자들에게 사람을 잘못 따르면 어떤 결과가 있는지 교훈을 줄 작정이었다.
양준은 이운천 일행과 가까이 있었기에 위장의 한 부하에게 걸렸다. 그 자는 양준 앞으로 뛰어오더니 제 이름을 내뱉고 상대가 반응할 새도 없이 바로 달려들었다.
양준은 벼락처럼 빠르게 상대의 배를 걷어찼다. 그 자는 바로 쭈그리고 앉았다.
그 자의 실력은 육체 경지 8~9단계 정도였다. 규칙대로라면 양준에게 도전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달려든 것이니 남 탓을 할 게 없었다.
혼란스러운 싸움터를 피해 양준은 소무영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응?”
위장은 양준을 살피다가 의혹이 생겼다.
그는 소무영의 부하가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양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소무영에게 다가갔다. 손을 들어 호흡을 확인해 보니 그저 기절한 것이었다.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너는 누구냐?”
위장은 기분이 상했다. 자신과 소무영 사이에 거리가 있었는데 이 자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소무영의 상처를 살폈다. 이건 분명 그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양준은 일어나서 위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가 묻잖아, 누구냐고.”
위장이 턱을 치켜들고 사납게 물었다.
“예비 제자 양준, 가르침을 한 수 청한다.”
양준이 위장에게 공수했다. 이건 능소각 제자들이 도전장을 내미는 예의였다.
“양준?”
위장의 표정이 멍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네가 요즘 한창 잘나간다는 양준이야?”
“문파에 양준이라는 이름이 또 없다면 아마 내가 맞을 거다.”
“웃기는군! 고작 예비 제자가 감히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자격은 되나?”
위장의 비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문파의 규칙상, 제자들 사이에 실력 차이가 세 단계 이상 나지 않으면 서로 도전할 수 있다.”
“나는 개원 경지 3단계다. 네놈은 뭐냐?”
위장이 비아냥거렸다. 예비 제자란 개원 경지를 돌파하지 못한 제자였다. 그렇다면 자신과 세 단계는 넘게 차이가 날 것이다.
“나도 개원 경지 3단계다.”
양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가 있나, 양준이 이미 개원 경지 3단계라고?”
“양준은 3년 동안 육체 경지 3단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다고 했잖아? 잘못 말한 거 아니야? 아니면 내가 잘못 들었나?”
“이상하다, 얼마 전에 나에게 도전할 때도 육체 경지 8단계였는데, 한 달도 채 안 돼서 개원 경지까지 도달했다고?”
여러 가지 의혹들이 쏟아졌다.
위장도 의심의 눈초리로 양준을 훑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미 개원 경지까지 돌파했는데 왜 아직 예비 제자지?’
양준이 어젯밤에야 돌파한 것을 위장이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육체 경지 9단계에서 바로 개원 경지 3단계까지 돌파한 건 더욱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제 내가 너에게 도전할 자격이 되는 거지?”
양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의 눈에는 살기가 번뜩였다.
“네가 진짜로 그 실력이라면 자격이 있지.”
위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열하게 웃었다.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양준이 냉담하게 말했다.
“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랄게.”
“뻔뻔하게 큰소리 치기는.”
위장이 버럭 화를 냈다. 자신은 방어밀보를 입고 있으니 개원 경지의 정상급 무인이 와도 자신을 공격하지 못했다. 즉 그들이 와도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고작 개원 경지 3단계인 양준이 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자, 네가 먼저 한 대 때려.”
위장이 의기양양해서 양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양준이 사양할 사람인가?
양준은 바로 달려들어 주먹을 위장의 가슴팍에 내리꽂았다.
뜨거운 진양원기를 담아 주먹을 날렸지만 위장을 전혀 다치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양준의 몸이 튕겨 나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내려다보니 주먹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자신의 원기에 역으로 다친 것이다.
“하하, 주제 파악도 못하네.”
위장은 점점 더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깜짝 놀랐다. 양준의 눈이 갑자기 빨갛게 물들더니 한 줄기 강렬한 원기 파동이 그의 몸에서 전해졌다. 그 원기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양준의 두 눈에는 위축되거나 놀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참을 수 없는 흥분뿐이었다. 마치 흉악한 야수의 눈처럼 빛을 내며, 흥미 있는 사냥감을 만나 곧 덮치기 직전 같았다.
위장은 저도 몰래 움찔했다.
양준이 섬뜩하게 웃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단전에 축적해둔 양액 한 방울이 손끝에 나타나더니 얇은 혈홍색 칼날로 변했다. 혈홍색의 빛이 번뜩이더니 촤락 하는 소리와 함께 양준과 위장의 몸이 교차되어 스쳤다.
위장은 복부가 서늘한 느낌에 내려다보고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내 수운쇄자갑(绣云锁子甲)!”
그의 몸에 딱 맞게 입은 수운쇄자갑은 범급 방어밀보였다. 등급이 높지는 않지만 위장과 같은 경지의 무인들에게 딱 적합했다. 대장로가 어디서 얻어왔는지 모르지만 위장에게 하사했다. 대장로가 대놓고 개원 경지의 무인들 중 이 방어밀보의 방어 능력을 뚫을 자는 없다고 했다. 혹시 살상력이 거대한 무예를 쓴다면 모를까.
위장이 큰 기대를 품고 있던 방어밀보가 겨우 한 번 만에, 그것도 개원 경지 3단계인 예비 제자의 손에 의해 기다랗게 찢어졌다.
‘저 자가 방금 쓴 게 무슨 무예지? 설마 저것도 밀보인가? 수운쇄자갑보다 등급이 높은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 순간, 위장은 놀랍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놀란 것은 수운쇄자갑이 상대의 일격도 방어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마음이 아픈 건 방어밀보가 찢어져서 방어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극도로 분노한 위장은 돌아서서 양준을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감히 내 방어밀보를 망가뜨리다니 죽여버리겠다.”
위장도 개원 경지 3단계였다. 원기가 폭발하자 당연히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양준은 육체 경지일 때 벌써 개원 경지 5단계인 적수를 죽인 적이 있는데, 고작 3단계라고 뭐가 다를까?
위장이 면전까지 오기를 기다렸다가 양준은 혈홍색 칼날을 교차로 홱홱 그었다.
위장의 몸이 갑자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위장의 주먹이 양준까지 고작 세 촌의 거리를 두고 아무리 날려도 다가가지 못했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고개를 숙여 보니 양준이 들고 있던 혈홍색 칼날이 자신의 가슴팍까지 온 게 보였다.
“방어밀보도 별거 아니구나.”
양준이 차갑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지나가자 위장이 입고 있던 수운쇄자갑이 여러 갈래로 찢어졌다.
양준도 뜻밖이었다. 양액으로 만들어낸 칼날이 이렇게 날카로울 줄 몰랐다.
위장과 진짜 싸운다면 양준은 이길 수는 있어도, 절대 이렇게 손쉽게는 이길 수 없었다. 이번에는 양액의 위력으로 우세를 차지한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