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0화 (50/853)

제 50장. 죄를 뒤집어쓰다

위장이 수운쇄자갑을 믿고 까부는데 양준이라고 양액을 쓰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너 감히 나에게 상처를 입히기만 해봐!”

위장은 볼이 부들거리며 흉악하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목숨이 양준의 손에 있었지만 위장은 전혀 겁내지 않았다.

‘나는 대장로의 친손자야!’

신분이 존귀한 위장을 능소각의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너 아직 모르지. 우리 할아버지가 대장로야. 나를 다치게 하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위장이 험상궂은 소리로 위협했다.

양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손끝에 혈홍색 칼날이 더 위험하게 번뜩이며 두 눈에 붉은빛이 더 짙어졌다.

“네가 먼저 죽을까? 아니면 내가 먼저 죽을까? 그걸 모르겠네.”

양준은 흥미진진하게 위장을 살폈다. 그는 괴이한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줬다.

한줄기 새빨간 선혈이 위장의 가슴 쪽에서 스며 나왔다. 위장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저도 몰래 신음 소리를 냈다. 한줄기 뜨거운 원기가 그의 몸에 들어왔다. 살과 껍질이 타는 듯이 아팠다.

“너 감히…….”

위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준을 쳐다봤다.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능소각에 감히 자신을 다치게 할 사람이 있다니.

“할 수 있든 없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그러니 네가 말해봐, 내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양준은 계속 힘을 썼다. 칼날이 반촌이나 들어가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위장은 몸을 흠칫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너를 죽일까 걱정되지 않아?”

“문파 내 제자들끼리 겨루기에서 생사는 자신의 책임이다.”

양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네 무예가 다른 사람보다 못해서 죽은 건데 누구를 탓하겠어. 대장로면 또 어때서? 능소각이 그 사람 것도 아니잖아.”

위장은 덜컥 겁이 났다. 눈앞의 이성을 잃어버린 듯 미쳐 날뛰는 동문을 보자 마음속에서 한기가 퍼져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위장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양준이 끼어들었다.

“네가 졌다는 두 글자를 말하기 전에 나는 너를 죽일 거야.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위장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는 방금 전까지 졌다고 인정할 생각이었다. 동문 제자들 사이의 겨루기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패배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면 다른 쪽도 더 이상 결투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위장은 감히 그 두 글자를 말할 수 없었다. 상대방의 두 눈에 전혀 농담의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진지하기 그지없는 눈빛이었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위장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원하는 거 없어. 다만, 나는 네가 소무영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네가 소무영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방어밀보의 위력이잖아.”

양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보다 못하다고?”

위장은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발끈해서 외쳤다.

“내가 뭐가 소무영보다 못한데? 실력도 더 좋고, 출신도 그보다 더 좋은데, 어디가 소무영보다 못하다는 거야?”

양준이 고개를 갸웃하고 훑어보더니 말했다.

“못 믿겠어? 보여줄게.”

말을 마친 그는 손가락에 갑자기 힘을 줬다. 위장은 저도 몰래 낮게 신음을 토했다. 낯빛이 순식간에 노래지고 몸이 비틀거렸다.

양준은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위장의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이운천 일행과 죽어라 싸우다가 위장이 제압되자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넋을 놓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누가 위장을 구하고 싶으냐?”

양준이 소리 높여 물었다.

아무도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다들 방금 양준의 범접할 수 없는 힘에 놀란 상태였다. 자리에 있는 소년들은 다들 고작 열몇 살 정도였다. 어디 이런 흉악한 장면을 본 적이 있겠는가?

“위장을 구하고 싶으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해. 내가 기분이 좋으면 살려줄 수도 있다.”

양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냉담하게 말했다.

위장의 부하들은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 말은 위장이 소무영의 부하들에게 한 말이잖아.’

‘소무영의 부하들은 그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고 위장에게 머리를 조아렸어. 우리도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야 하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 진짜 꿇는다면 체면이 바닥 날 거야. 이후에 무슨 낯짝으로 능소각에 계속 남는담? 하지만 무릎을 안 꿇었다가 위장이 우리를 탓하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서로 머리를 굴릴 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너희들은 위장이 죽기를 바라는 거군.”

양준이 가볍게 탄식하더니 손끝의 칼날을 위장의 몸에 좀 더 밀어 넣었다.

위장이 놀라서 혼비백산했다. 그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의 손에 들린 무기가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심장을 찌를게 분명했다. 그건 치명적이었다.

위장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온통 땀 범벅이 되어서 목이 쉬도록 부하들에게 외쳤다.

“뭣들 하는 거야? 얼른 무릎을 꿇어! 내가 죽으면 너희들 중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줄 알아!”

위장의 부하들은 그제야 흠칫하며 황망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운천 일행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조금 전 받았던 치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통쾌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양준은 위장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너와 소무영의 차이가 뭔지 알겠지?”

위장은 양준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었다. 이내 그의 두 눈이 돌변하더니 원망과 독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부하들을 훑어봤다.

이운천 일행은 소무영의 목숨을 위해 달게 모욕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어떠한가? 자신이 고함을 지르고 목숨으로 협박해서야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양준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확실히 위장과 소무영의 차이가 눈에 훤히 보였다. 인격적인 면에서 위장은 소무영보다 못했다.

“이제 만족해?”

위장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양준을 차갑게 쳐다봤다.

양준은 실눈을 뜬 채 표정이 변했다.

위장이 대경실색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설마…….”

양준이 대답하기 전에 멀리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다들 멈추거라!”

소리가 막 울려 퍼지자마자 한 사람이 양준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 사람은 다짜고짜 양준의 어깨를 밀쳤다. 비할 수 없는 힘이 전해졌다. 양준은 끙끙거리며 그대로 날아갔다.

“양 사형.”

이운천 일행은 아연실색하여 얼른 다가가 양준을 일으켰다.

양준은 헛기침을 하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살펴봤다. 위장 옆에 한 청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청년은 흉악한 얼굴로 양준을 주시하고 있었고, 한 손으로 비틀거리는 위장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 청년이 입을 열었다.

“장 공자, 괜찮습니까?”

위장은 양준을 독하게 주시하며 몸이 휘청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괜찮으면 됐습니다. 내가 조금 늦었습니다.”

청년은 대장로의 부하인 집법당 제자 조정문이었다. 그의 실력은 위장보다 높았지만, 신분상 지위는 당연히 위장보다 못했다.

“늦지 않았어.”

위장은 냉소를 지으며 의문스럽게 물었다.

“조 사형, 집법당의 제자로서 우리 문파 규칙을 잘 알고 있지. 누군가 문파에서 사람을 죽이면 무슨 벌을 받지?”

조정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지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정황의 경중을 살피어 가벼우면 손발을 부러뜨려 능소각에서 쫓아내고, 무거우면 바로 현장에서 죽여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를 해야 합니다.”

위장은 “허허” 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는 양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 했으니 조 사형이 알아서 처리해.”

뒷받침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위장이 얌전히 뜻을 굽혀 일을 원만하게 끝내려 하겠는가?

조정문은 성이 나서 목청을 높이며 크게 외쳤다.

“이 말이 사실이냐?”

위장은 계속 냉소를 지었다.

“조 사형이 올 때 모든 것을 보지 않았어?”

그는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이 제자가 확실히 흉기를 들어 장 공자의 가슴에 겨누고 있는 걸 봤습니다. 내가 제때 막지 않았더라면 장 공자는 잔혹한 수단에 당했을지도 모르죠. 대낮에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르려 하다니.”

두 사람은 맞장구를 치며 호흡이 완벽하게 맞았다. 그들은 잠깐 사이에 양준에게 살인자라는 말도 안 되는 죄명을 뒤집어씌웠다.

“헛소리에요.”

이운천은 울부짖었다.

“아까 양 사형과 위장은 단지 도전하고 대련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디 당신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심각했습니까? 사실을 왜곡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죠?”

조정문이 콧방귀를 뀌었다.

“정말 대련이 맞나?”

조호가 말했다.

“믿지 못하겠으면 여기 구경하고 있는 사제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들이 모두 증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일은 위장이 먼저 일으킨 것이고, 양 사형은 거기에 연루됐을 뿐이에요.”

“누군가는 증언해야 하는데 누가 증언할 거냐?”

위장은 냉소를 지으며 사방을 둘러봤다.

구경하던 능소각 제자들은 갑자기 뿔뿔이 흩어져 하나둘씩 현장을 떠났다. 그들은 능소각 장로들의 싸움을 다소 들은 적이 있어, 눈앞의 모습을 보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이 어느 한 쪽의 미움을 사든 앞으로 능소각에서 지내기는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운천은 그 광경을 보자 치가 떨렸다. 하지만 그는 다시 열을 올리며 말했다.

“이 일에 우리 모두 관여했으니 세세히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증인이에요.”

조정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들은 패싸움을 하여 원래 죄가 있는데 무슨 증언을 하겠다는 거지?”

“패싸움을 했다고?”

조호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위장이 부하를 시켜 우리에게 먼저 덤빈 건데 패싸움이라니? 집법당의 제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간이 부었군.”

조정문이 질책했다.

“집법당은 능소각의 규칙을 대표하는 공정한 집행 기관이다. 그런데 집법당의 권위를 의심하다니 죄가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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