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52화 (52/853)

제 52장. 누가 양준이냐?

“사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저는 그와 말조차 나눠 본 적이 없어요.”

하응상은 말하면서 제 발이 저렸다. 그녀는 지난밤의 어색함이 절로 떠올랐다.

“스승으로서 네 마음을 막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엔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없단다. 언젠가 너는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높은 곳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몇백 년, 몇천 년을 살게 되겠지. 그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은 네 앞에서 서서히 늙어 죽을 것이다. 나는 네가 그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진 않구나. 잘 기억해 두거라. 무예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 고독하고 쓸쓸할 것이다.”

몽무애의 말은 탄식하는 듯하기도 하고,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하응상은 자연스럽게 그의 말속에 숨은 비통함을 눈치챘다.

‘혹시 사부가 이런 일을 겪었었나?’

그녀가 다시 물어보려는데 몽무애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각,

한 제자가 흑풍시장 능소각 나무집 앞으로 다급히 달려왔다. 그는 문 앞에 서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더니 숨을 고르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

“소 사저.”

“무슨 일이냐?”

안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듣기 좋았지만 말투는 선을 딱 긋는 듯 차가웠다.

그 제자는 온몸에 난 땀이 하마터면 얼어버릴 뻔했다. 제자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소무영이 결투 중에 맞아 쓰러졌어요. 그의 부하들은 집법당에 잡혀 감옥에 갇혔고요.”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나무집의 문이 열리더니 하얀색 옷을 입은 소안이 제자 앞에 나타났다.

제자는 뒤로 두어 발작 물러서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소안의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용모를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똑바로 말하거라. 어떻게 된 것이냐?”

소안이 담담하게 물었다.

쩌억-

나무집 안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음산하고도 차가운 한기가 가득 차고, 바닥에서는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는 부랴부랴 요점만 추려 일의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했다. 말을 마치고 한참이 지나도록 반응이 없자 그는 참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소 사저?”

불러도 여전히 반응이 없자, 그는 용기를 내어 살며시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어디에도 소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아이고야!”

이 능소각의 제자는 순간 허탈한 표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 사저는 너무 차갑다! 나중에 만약 누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면 아마 한여름에도 솜 이불을 덮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소 사저와 같이 얼음처럼 깨끗하고 고귀한 사람에게 어울릴 만한 남자는 이 세상에 없겠지?’

*능소각 감옥 안,

양준과 이운천 일행은 여전히 감옥 안에 갇혀있었다. 잡혀온 지 이미 한 시진 남짓이 지났지만 밖에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운천 무리는 점점 초조해졌다. 소무영이 왜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소무영은 그때 맞아서 기절했기 때문에 지금 깨어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그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당연히 구하러 올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집법당 제자가 양준을 가둬 둔 곳으로 다가와 자물쇠를 열며 소리쳤다.

“누가 양준이냐?”

양준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지?”

“나와!”

집법당 제자가 명령했다.

“너를 만나려는 사람이 있다.”

양준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콧방귀를 뀌더니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양 사형, 가지 말아요. 소 사저가 우리를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려요.”

이운천은 깜짝 놀라 양준을 와락 잡아당겼다.

“손 놔!”

집법당 제자가 그 모습을 보고 호통쳤다.

“누가 감히 집법당과 맞서는 것이냐? 그 결과는 너희들도 잘 알겠지.”

양준이 이운천에게 말했다.

“내가 가볼게. 걱정하지 마.”

이운천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으며 신신당부했다.

“양 사형, 조심해요!”

감방을 나서자 집법당 제자는 다시 감방 문을 잠갔다. 그리고 양준을 데리고 밖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 돼, 그들은 어떤 방 앞에 도착했다. 집법당 제자는 방문을 밀어 열더니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끔 보고는 방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집법당 제자가 뒤를 바짝 따라 들어와 바로 방문을 닫아걸었다.

방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양준은 뒤로 돌아서 자신을 데리고 들어온 집법당 제자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쳤다. 뜨거운 진양원기가 몸속에 들어오자 집법당 제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밀려나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는 설마 양준이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방심한 나머지 기습을 당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겁대가리가 없구나!”

방 안에서 바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림자 서너 개가 동시에 움직이며 양준을 향해 덮쳐왔다.

양준은 그중 한 사람의 공격밖에 막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공격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양준에게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입가에 피가 흘러나오자, 양준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며, 그의 경맥에서 진양원기가 빠른 속도로 흘렀다. 뼈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는 온몸에 전해져,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쿵!

포위되어 매질을 당하던 양준은 몸을 일으키며 발을 날렸다. 두 사람이 양준의 발에 맞고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양준이 바닥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옆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 자는 양준의 발을 잡더니 그대로 그를 집어던졌다.

양준은 한차례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장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선 그는 입가의 피를 닦더니 어두컴컴한 불빛을 빌려 방안의 형세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곳은 밀폐된 밀실이었다. 방 안에는 집법당 제자 다섯 명이 있었다. 방금 싸울 때 전해진 원기의 파동으로 양준은 이 자들의 실력이 대략 모두 개원 경지 8~9단계 정도 된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방금 자신을 날려버린 제자는 온몸에 원기가 들끓고 있었다. 이미 기동 경지에 진입했다는 뜻이었다.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경지 차이도 너무 컸다. 이 전투는 승산이 없을 게 뻔했다.

그러나 양준은 웃고 있었다. 위기 속에서 그의 가슴속에 전투 의지가 세차게 끓어올랐다.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덤비다니, 간이 부었군”

기동 경지의 집법당 제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다른 네 사람은 모두 그자의 뒤에 서서 싸늘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양준을 단단히 혼내주라는 조정문의 명령을 받았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양준이 먼저 자신들을 공격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양준은 벽에 기대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그는 벌건 두 눈으로 다섯 사람을 훑어보며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나를 때리려고 하는데 나는 반항하면 안 되나?”

기동 경지의 집법당 제자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비소를 금치 못했다.

“꽤 똑똑하구나. 우리의 뜻을 알았으니 반항하지 마. 장 공자의 분이 풀릴 때까지 우리에게 얌전히 맞아. 만약 반항하면 사지가 온전치 못할지도 모르니!”

“어디 한 번 해보던가!”

양준은 냉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어리석은 놈! 공격해!”

명이 떨어지고, 다섯 사람이 동시에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애초에 그들의 실력이면 혼자서 양준을 상대해도 충분했다. 지금 다 같이 공격하는 것은 양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밀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주먹질과 발길질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간혹 한두 마디씩 비명소리가 들려오며 사방으로 피가 흩뿌려졌다.

양준의 실력은 이들에 비하면 현저한 차이가 났다. 게다가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하는데 어찌 당해낼 수 있을까?

양준이 상대를 한 대 치면 네다섯 대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멈춰라!”

한참 후, 기동 경지의 집법당 제자가 소리쳤다. 그는 서둘러 무리에서 물러나더니 말했다.

“이제 그만 때려. 더 때리면 죽을 수도 있어.”

다른 네 명도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양준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이 볼을 잡고 말했다.

“저놈에게 한 대 맞았는데 하마터면 이가 나갈 뻔했어.”

다른 한 사람은 바지 가랑이를 잡고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하마터면 저 자 때문에 대가 끊길 뻔했어. 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먼저 쓰러진 사람은 나였을 거야.”

급소는 피했지만 그는 허벅지가 여전히 타는 듯이 아팠다. 양준이 있는 힘을 다해 반항하며 걷어찼는데 그 위력은 대단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는 몸이 오싹했다.

다섯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이렇게 실력 차이가 현저한 전투에서 결과적으로 양준을 때려눕히긴 했지만 그들 모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이를 생각하자 다섯 사람은 순식간에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너무 창피하잖아!’

‘겨우 개원 경지 3단계의 예비 제자 하나가 어떻게 이토록 잔인하지?’

방금 그를 둘러싸고 때릴 때는 별로 주의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믿기지 않았다.

“퉤…….”

이때, 기척 소리가 들려오자 다섯 사람은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응당 바닥에 쓰러져 있어야 할 양준이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안에 고여 있던 피를 뱉어냈다.

그의 몸 주변을 붉은빛이 감싸며 뜨거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 마치 천만 년이나 잠잠하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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