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장. 장로회
“너희들…….”
해홍진은 질투로 미칠 것 같았다. 처음 소안이 인정했을 때는 그다지 믿지 않았지만, 눈앞의 광경을 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언제 소안이 이렇게 남자를 부드럽게 대하는 걸 본 적이 있던가? 다른 남자가 자신의 손을 만지는데도 그녀가 반항하지 않다니… 그녀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면 감히 양준의 실력으로 소안에게 그럴 수 있을까?
“사매, 너 같은 이가 어찌 이런 쓰레기에게 반한 것이냐?”
“누가 쓰레기라는 거야?”
양준과 소안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표정은 폭풍우가 쏟아지기 전날 밤처럼 어두컴컴했다.
두 사람은 마치 이미 상의한 듯, 마음이 통하는 것처럼 동시에 대답을 했다. 말투나 표정도 똑같았다.
해홍진은 그들이 소리치는 바람에 멍해졌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소안을 보며 애달프게 말했다.
“신분이나 지위를 보면 이 자는 그저 예비 제자에 불과하다. 실력으로 봐도 겨우 개원 경지 3단계다. 사매, 어떻게 이런 쓰레기를 좋아하는 것이냐?”
“우리 둘의 일이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소안은 연기에 몰입했다. 그녀는 이 기회에 해홍진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우리라는 친근한 단어마저 사용했다.
“사형, 혹시 첫눈에 반한다는 말 아세요?”
양준이 놀리듯 해홍진을 바라봤다.
“닥쳐라!”
해홍진은 사나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내가 사매와 말하는데 어디 너 같은 놈이 끼어드느냐?”
양준은 실눈을 뜨고 쓴웃음을 지었다.
해홍진의 침착함과 대범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질투와 분노로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져 흉할 대로 흉해졌다.
“나는 네 나이 때 이미 기동 경지에 진입했다. 하지만 너는 지금 겨우 개원 경지 3단계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합 경지의 정상이다. 두 개의 경지, 그리고 여섯 단계나 차이 나는데 네가 나와 비할 수 있겠느냐?”
“곧 따라잡을 테니 기다리세요!”
양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행동에 옮겼을 때만 쓸모가 있었다.
“해홍진, 더는 너랑 실랑이 벌이고 싶지 않아. 비켜, 집법당 덕에 양준이 중상을 입었어. 상처를 치료해 줘야 해!”
소안이 싸늘하게 말했다.
“오늘 누구도 여기를 떠날 생각하지 말거라!”
해홍진이 소리치더니 가슴 아프게 소안을 바라봤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명령을 내렸다.
“집법당 제자들은 들어라, 만약 밖으로 나가려는 놈이 있으면 모두 죽여라! 너희들의 소 사저라 해도 절대 봐줘서는 안 된다.”
깊이 사랑할수록 미움도 깊은 법이었다. 이 시각 해홍진은 이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백여 명의 집법당 제자들이 잠깐 망설이더니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한번 소안 일행을 둘러싸고 포위했다.
“꼭 이렇게까지 할 거야?”
소안의 맑은 두 눈에 위험한 빛이 스쳐갔다.
해홍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매,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아. 그러나 여기를 지나가고 싶다면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
소안은 화가 나 씩씩거렸다.
그녀는 집법당이 두렵지 않았다. 실력이 진원 경지 3단계인 그녀는 해홍진보다도 경지가 3단계나 높았고, 빙심결을 쓰면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양준과 이운천 일행이 문제였다. 그녀는 혼자서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 없었다.
쌍방은 대치하고 있었다. 소안은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뛰어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집법당 제자들도 먼저 나서서 공격하지 못하고 그들을 막기만 했다.
*아랫사람들이 감옥 앞에서 이 난리를 치고 있을 때, 능소각의 어르신들은 다른 곳에서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로전,
능소각의 대장로 위석동(魏昔童), 이 장로 소현무(苏玄武), 삼 장로 하배수(何杯水), 사 장로 주비(周非), 오 장로 우자재(尤自在)가 모두 모여 있었다.
다섯 장로는 두 줄로 나눠 앉았다. 한쪽에는 대장로 위석동이 상석에 앉고, 사 장로 주비와 오 장로 우자재가 아랫자리에 앉았다.
다른 쪽은 이 장로 소현무, 삼 장로 하배수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능소각 내 장로 파벌이었다.
마찰이 생겼던 위장과 소무영이 아래쪽 바닥에 나란히 무릎 꿇고 앉아, 순서대로 오늘 발생한 일을 이야기했다.
소무영이 먼저 말했다. 그는 모두 사실대로 말했다. 위장이 어떻게 자신을 막았고, 어떻게 자신에게 도전하여 싸우게 되었고, 또 어떻게 모욕당했는지, 크고 작은 일 모두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보태지 않고 전부 말했다.
다섯 장로는 다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장이 다시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위장이 하는 말은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소무영이 말한 것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양준이 나타난 이후의 이야기부터 위장은 온갖 거짓말로 자신이 유리하게 말했다. 그는 눈물 콧물 쥐어짜며 양준이 손에 은밀한 무기를 쥔 채 수운쇄자갑을 찢고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 나게 할 정도로 절절했다. 과장된 몸동작과 결합되어 그때의 상황을 몇 배나 과장되게 표현했다.
“헛소리하지 말거라!”
소무영이 듣더니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
“넌 보지도 못했잖아!”
위장은 소무영이 맞아 기절해서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딱 잡아뗐다.
“사실이긴 개뿔! 이 말썽을 일으키고도 헛소문이나 퍼뜨리는 쓰레기같은 놈! 거짓말을 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구나.”
“다 입 다물 거라!”
대장로가 의자를 호되게 내리쳤다. 소무영이 자신의 앞에서 손자를 욕하는데 대장로가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를 내는 건 화를 내는 거고, 아랫사람들 사이의 일이라 그가 직접 나서서 혼내줄 수는 없었다.
“흥!”
소현무가 콧방귀를 뀌었다.
위석동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이미 다 들었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줄곧 이 장로 소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소현무가 말했다.
“뭐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실이 뻔하잖아요? 아이들이 도전하고 겨루다 생긴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면 되죠. 장로회까지 움직일 필요가 있나요?”
위석동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항상 대장로의 뜻을 따르는 사 장로 주비가 말했다.
“둘째 사형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처음에는 아이들이 겨루는 것이었지만, 그 양준이라는 놈이 사단을 일으킨 후에는 본질이 달라졌어요.”
“어떻게 달라졌지? 다들 보는 앞에서 그도 광명정대하게 위장에게 도전했어. 이는 문파의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위장이 실력이 부족하여 진 건데 누구를 탓하느냐?”
소현무는 자신의 손자가 모욕을 당한 것이 화가 나 한껏 날이 선 말투로 대꾸했다.
사 장로가 다시 말했다.
“만약 그가 진짜 도전하고 겨뤄서 위장을 이겼다면 크게 비난할 것이 없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싸우는 과정에 그는 무기를 꺼냈고, 그 무기로 위장의 수운쇄자갑을 찢었어요. 문파의 규칙에는 제자들 사이에 겨룰 때 무기를 쓰면 안 된다고 적혀있어요. 양준은 이 규칙을 어겼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해요!”
소현무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넷째야, 규칙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 건 아니잖아? 장문인이 오랫동안 나오시지 않으니 설마 누군가 간이 부어 사사로이 규칙을 고쳤느냐?”
이 말은 의미심장했다. 대장로파는 모두 표정이 굳어졌다.
위석동이 말했다.
“그럼 둘째 사제가 말해보거라. 종규에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느냐?”
소현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종규에는 제자들 사이에 겨룰 때 무기를 쓰면 안 된다고 되어 있지요. 또 자신의 실력을 높일 수 있는 어떠한 단약이나 밀보도 써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겨루는 쌍방은 자신의 무예와 손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요. 큰 사형, 제 말이 맞죠?”
위석동은 낯빛이 싸늘해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그럼 됐네요!”
소현무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위장과 소무영이 겨룰 때, 왜 그는 방어밀보를 입은 거죠? 이건 문파의 규칙을 어긴 게 아닌가요? 또 어떻게 처벌해야 하죠?”
소현무는 양준을 어떻게 처벌할지는 말하지 않고, 위장도 함께 묶어 버렸다. 대장로는 되려 표정이 멍해지더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위장이 정말로 자신의 재간으로 소무영을 이겼다면, 소무영이 무예를 제대로 연마하지 않을 걸 탓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금 위장은 방어밀보가 지켜준다는 것을 믿고 제 손자를 모욕했어요. 큰 사형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소현무가 호통을 치더니 손바닥으로 자신의 의자 손잡이를 산산조각 냈다.
위석동은 하는 수없이 태도를 낮추어 말했다.
“둘째 사제, 화를 가라앉히거라, 위장의 그 방어밀보는 확실히 내가 그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나도 그저 그가 위험할 때 대비하게 하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 아이 심보가 고약하여 방어밀보의 힘을 빌려 다른 사람과 겨룰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번 일은 위장의 잘못이다.”
말을 마친 위석동은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위장, 아직도 소 사제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거냐?”
위장은 그래도 영리한 편이었다. 대장로의 말을 듣고는 바로 소무영을 향해 공수하고 말했다.
“소 사제,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다. 사과하마. 사제는 도량이 넓은 사람이니 속에 담아두지 말기를 바란다.”
“흥!”
소무영은 고개를 돌려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말을 이 정도까지 했는데 소현무라고 어찌할 수 있겠는가?
위석동이 또 말했다.
“위장도 잘못이 있지만 양준이 범한 잘못은 더욱 크다. 손에 예리한 무기를 들고 하마터면 위장을 죽일 뻔했다. 만약 집법당 제자들이 제때에 손을 쓰지 않았다면 위장은 지금 아마 이미 죽었을 것이다. 이번 일은 아주 중대한 사안이니 양준은 반드시 엄하게 징벌하여 일벌백계해야 한다.”
사 장로 주비와 오 장로 우자재가 연이어 고개를 끄떡이며 맞장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