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장. 불굴지오
소현무는 도리어 맞고 있는 양준을 눈을 찌푸리고 유심히 주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는 무언가를 깨닫고 있는 것 같구나.”
“무슨 뜻이에요?”
소무영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소현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양준은 지금 비참하게 맞고 있는 듯 보이지만, 분명 이 싸움을 빌려 무언가를 깨닫고 있었다. 일종의 심경(深境)일 수도 있고 무예일 수도 있었다. 한기에 둘러싸여 덜덜 떨고 있는 몸 안에 한 점의 뜨거운 불씨가 퍼지고 있었다. 일단 이 불씨가 불타기 시작하면 양준은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경지에 진입할 수 있었다.
‘만약 성공하면 양준은 앞으로 대단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소현무는 아직까지 양준과 같은 예비 제자의 신분으로 이런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할아버지, 누님이 이렇게 때리다가는 양 사형이 죽을 거예요.”
소무영은 조급해졌다.
소현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이는 공격할 때 정도를 안다. 지금 안이의 초식에는 살의가 없다. 양준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말을 마친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그런데 안이가 왜 저 자를 때리는 거지?”
소현무는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소안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늘을 뒤덮은 눈보라가 사라지더니 소안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고, 양준은 그대로 바닥에 내던져져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옷이 찢어지고 밖에 노출된 피부는 모두 동상을 입은 것처럼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별빛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소안은 마치 선녀가 내려온 것 같았다. 뒤에는 둥근달이 높게 걸려있었고, 밤바람이 불어오자 그녀의 옷깃이 흩날렸다. 그녀의 출중하고 고귀한 기질은 보는 사람들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겸손해지게 했다.
쩍-
또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의 몸에 서리가 한 층 덮였다. 곧이어 하나의 커다란 얼음조각이 그를 완전히 감쌌다.
얼음조각은 각이 분명하고 아주 맑고 투명했다. 얼음 층을 뚫고 양준의 머리카락 한 올마저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소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준을 뚫어지게 보더니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저 자가 얼음을 깨고 나올 때까지 지키고 있거라!”
소현무가 엄숙하게 소무영에게 명령했다.
소무영은 긴장되어 이마에 땀이 솟았다.
“할아버지, 저렇게 두면 양 사형이 얼어 죽지 않을까요?”
소현무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죽지 않는다, 저건 그의 조화(造化: 운명에 정해진 것으로 겪어야 할 일)이니라.”
그는 말을 마치자 돌아서 떠나갔다.
소무영 일행은 그제서야 살금살금 앞으로 다가가 커다란 얼음조각을 둘러싸고 두드려댔다. 그러나 이건 소안이 한빙경으로 제련한 것인데 어찌 그들이 부술 수 있겠는가?
“큰일 났어요, 양 사형은 아직 상처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지금 또 이 안에 얼어있으니 이걸 어쩜 좋아요?”
정원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소무영이 그를 째려보았다.
“할아버지가 이건 양 사형의 조화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냐? 모두 함부로 깨부수지 말거라. 만일 이 얼음을 부숴버리면 양 사형이 다칠지도 모른다. 우린 여기서 지키기만 하면 된다.”
“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경(五更: 새벽 3시~5시)까지 지켰지만, 그 얼음조각은 여전히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 안에 얼어붙어 있는 양준도 마치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호흡이 약했다. 그저 두 눈을 부릅뜬 채 소안이 사라진 자리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소무영 일행은 상의 끝에 두 사람만 여기에 남아서 지키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볼일을 보러 갔다.
이 상황은 줄곧 사흘이 지속되었다. 작은 다락방 앞에 있는 얼음조각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한 명 갇혀 있었다. 그 장면은 충분히 괴이했다.
소무영 일행도 몇 번을 교대하여 근무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매번 두 사람이 남아서 이곳을 지켰으나 줄곧 얼음이 부서지는 흔적을 볼 수가 없어 다들 조급해했다.
이 사흘 동안 양준은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비록 눈은 줄곧 뜨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정신을 깨달음에 집중하고 있었다.
뼈의 움직임을 느끼고, 불굴의 의지가 가져다주는 따뜻함을 느끼고, 이 따뜻한 기운이 몸에 퍼진 후 자신의 실력이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느끼고 있었다.
소안이 남겨 놓은 얼음덩어리가 그에게 매우 좋은 깨달음의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그 얼음덩어리 안에 숨겨져 있는 한빙경이 시시각각 그의 몸에 침입하여 그의 경맥에 뛰어들었다.
한빙경은 지금의 그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막아냈다. 바로 금신의 기묘함 덕분이었다.
수백, 수천 번 막아내면서 양준은 금신의 신비함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실력을 높일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체내의 자그마한 뜨거운 불씨는 조금씩 확산되었다. 금신의 현묘한 비밀을 알게 된 후 불씨가 순식간에 불타올라 온몸에 퍼질만한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쩍-
한편에서 지키고 있던 소무영과 이운천은 그 소리에 놀라 서둘러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커다란 얼음조각에 한 가닥 한 가닥 가는 틈이 생겨났다.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했다.
“양 사형이 곧 나온다!”
소무영이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말이 끝나자 얼음조각이 와르르 무너지더니 작은 불빛이 되어 공기 중에 사라져버렸다.
양준은 처참한 몰골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벌거벗은 윗몸은 여전히 매우 가냘파 보였다.
얼음을 깨고 나온 양준은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마치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소무영과 이운천은 방해할 엄두도 못 내고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양준의 미간 사이의 근심이 사라지더니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이건 불굴지오(不屈之敖)라고 불러야겠어!”
불굴지오, 이건 양준이 이 사흘 동안 깨달은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기한 무예였다. 공격하는 데 사용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몸을 강대하게 할 수 있었다.
이건 금신에게서 알아낸 무예이니 금신하고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오직 자신이 위기에 처하고, 마음속에 불굴의 의지가 있어야만 이런 신기한 무예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일단 발휘만 하면 금신이 힘을 제공하여 자신의 실력을 잠시나마 증진시킬 수 있었다.
양준은 전에도 무의식중에 불굴지오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무예는 그것의 원리를 모를 때와 원리를 깨달았을 때, 두 가지 상황에서 발휘하는 작용이 완전히 달랐다.
양준은 이제야 진정으로 이 신비한 무예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수확은 컸지만 양준은 조금 아쉬웠다. 그는 금신 속에 또 다른 오묘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그것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회가 많으니 급할 것 없다.’
양준은 스스로 위안했다.
양준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다가 소무영과 이운천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양 사형 몸은 괜찮아요?”
“나? 완전 멀쩡해.”
양준은 손발을 움직였다. 문득 전에 입은 상처가 완전히 나은 걸 발견했다.
“어서 빨리 옷부터 입어요. 아니면 누님이 돌아와서 보고 또 사형을 때릴 거예요.”
소무영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양준은 능소각 이 장로의 저택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소무영 일행은 옆에 앉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날 밤 소안이 왜 양준을 그리 심하게 공격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양준은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참, 위장 쪽에서 그 이후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지?”
양준은 말을 돌렸다. 그는 그날 감옥에서 떠난 뒤 바로 정신을 잃었고, 뒤이어 얼음 속에 갇혔던 탓에 문파에서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장로회에서 더는 그 일에 대해 따지지 않기로 했어요.”
소무영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의혹이 담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번에 우리가 무사한 것은 제 할아버지 덕이 아니에요.”
“응?”
양준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 장로가 해결하신 게 아니었어?”
“아니에요.”
소무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이 그날 장로전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주고는 끝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알아맞혀 보세요. 제가 할아버지께 맞았을 때, 누가 왔을까요?”
“누군데?”
“사형도 아마 생각지 못했을 거예요. 바로 공헌당 몽 주인이에요. 몽 주인이 장문인의 옥패를 들고 와서 그분의 명을 전했어요.”
“몽 주인이?”
양준은 깜짝 놀랐다.
“몽 주인이 아니었으면 양 사형은 지금 아마 대장로의 엄벌을 받고 있을 거예요.”
소무영은 이 말을 하면서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양준은 소탈하게 웃었다.
“소 사제는 그렇게 마음 쓸 필요 없어.”
소무영은 연신 미안해하며 말했다.
“사형은 정말 대인배예요.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할게요. 할아버지의 이번 일 처사는 정말 형편없었어요.”
양준은 이를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윗사람 간 다툼에서 수하 제자를 바둑돌로 삼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소무영이 또 말했다.
“몽 주인은 정체를 알 수가 없어요. 할아버지도 그분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다만 몽 주인이 왜 이 일에 끼어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장문인과 친분도 있다니.”
양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몽 주인은 탐욕스러운 데다 이익이 없으면 참견할 리가 없는 사람이야. 이렇게 직접 나선 걸 보니 꼭 바라는 것이 있을 거야. 근데 뭐, 우리를 도운 것도 사실이잖아. 아무튼 가서 감사 인사쯤은 해야지. 내친김에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도 알아보고 말이야.”
“사형 말이 맞아요.”
소무영이 말했다.
“그럼 지금 가자.”
지체할 일이 아니었다. 패거리들은 기세등등하게 공헌당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