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장. 몽 주인의 요구
공헌당 안,
몽 주인은 모처럼 잠을 자지 않고 계산대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양준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공헌당 안으로 들어오는 양준과 소무영을 바라보았다.
소무영이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몽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소무영은 이전에 몽 주인을 항상 ‘어이, 영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 그가 어찌 감히 몽 주인 앞에서 방자하게 굴겠는가?
몽 주인이 빙그레 웃었다.
“녀석, 얌전해졌군.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게냐?”
몽 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네.”
패거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양준만 남고 다른 놈들은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소무영 일행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둘러 몸을 굽혀 인사하고는 물러났다. 그들은 공헌당을 나선 뒤에야 깨달았다. 몽 주인이 그들을 도운 것은 전적으로 양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니면 왜 양준만 남으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왜 양 사형을 도와준 거지?’
홀로 남은 양준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몽 주인, 저한테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몽무애는 허허 웃더니 계산대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두 손을 뒷짐 지고 양준의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고개를 들고 물었다.
“네가 보기에 내가 너한테 뭘 바랄 거 같으냐?”
“모르겠습니다.”
양준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내가 알면 왜 묻겠어?’
몽무애가 말했다.
“네가 이리 강직하게 나오니, 나도 얼렁뚱땅 대하지 않으마. 너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라 믿는다. 내가 이번에 너를 도와준 것은 네 도움이 필요해서다.”
양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실력이 대단한 몽 주인도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거지?’
몽 주인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위험한 일은 아니야. 네가 조건에 부합하기만 하면 돼. 위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이익이 있을 거다.”
양준은 몽 주인이 마지막 말을 할 때, 얼굴에 달갑지 않은 기색이 언뜻 비치는 것을 예민하게 감지했다.
“당신에게 도움을 주려면, 요구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고요?”
양준은 더욱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도 이것저것 가리다니, 참 별난 사람이야.’
몽 주인이 말했다.
“내 조건에 부합해야 할뿐더러 또 다른 사람도 만족해야 해.”
“뭐가 이리 번거로워요. 안 할래요.”
양준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려 했다.
“가지 마!”
몽 주인은 다급해졌다. 어렵사리 적격자를 찾아냈는데 이렇게 보내 버릴 수는 없었다.
“양준, 너 이러면 안 돼. 내가 그래도 네 생명의 은인이지 않으냐. 이렇게 나를 실망시킬 것이냐?”
“그럼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마시고, 툭 털어놓고 이야기해 보세요. 제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 테니까. 도울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손을 내밀어 봐. 먼저 체내 원기를 한 번 살펴볼게.”
몽 주인도 더는 뜸 들이지 않았다.
양준은 의심스러운 듯이 그를 한 번 훑어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몽 주인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몽무애는 두 손가락을 양준의 손목에 걸쳐 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변화무쌍해졌다. 표정 변화가 어찌나 빠른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좋다. 좋아. 정말 순수한 태양의 원기구나.”
몽무애는 손을 거두어들이며 크게 기뻐했다.
“도움을 주는 게 제가 수련한 원기와 연관되나요?”
양준이 짐작하며 물었다.
“물론 관련 있지.”
몽무애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내가 왜 너를 찾겠어. 양준, 한 가지만 더 물을게. 꼭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물어보세요.”
몽무애는 갑자기 어색해하며 눈빛이 갈 곳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한참 뒤에야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긴장되고 기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너 아직 동정이냐?”
그는 긴장으로 목을 길게 내밀었다. 그러다 보니 양준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양준은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그가 다시 경계심을 높이고 물었다.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노친네, 무슨 특이한 취향은 없겠지? 너무 터무니없는 질문이잖아!’
“왜 도망가?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몽무애는 쫓아가서 양준을 구석으로 몰아붙인 뒤, 근엄한 표정에 목소리까지 깔고서 다시 물었다.
“너 도대체 동정이야, 아니야?”
“도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
양준은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몽무애는 양준의 이 모습을 보고서야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더니 몇 걸음 물러서서는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이놈 자식이 왜 이리 불결해!”
“도대체 누가 불결한지 모르겠네요. 온종일 여제자들 엉덩이하고 허벅지만 보면서.”
양준이 가차 없이 응수했다.
“또 그 소리냐.”
몽무애는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누가 들을까 두려운지 연신 굽신거리며 말했다.
“양준아, 이제 그 말은 안 하면 안 되겠느냐? 나는 그저 그 아이들의 발육 상태를 알아보려고 한 것뿐이야. 걔들을 어쩌려는 게 아니었다고.”
몽무애가 수그러들자 양준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정색하며 물었다.
“제 도움이 필요한 게, 그 질문과 연관이 있는 건가요?”
“그래.”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몽무애의 표정도 엄숙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양준아,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너 여자하고… 흠흠… 해봤어?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양준이 멋쩍은 얼굴로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아니요.”
“좋았어.”
몽무애는 가슴을 누르던 큰 돌을 드디어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잘했다, 참 착하기도 하지.”
이 시대에 많은 남자들은 열넷, 열다섯이 되기만 하면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 가난한 집안 아이도 가릴 것 없이 대를 잇기 위해 일찍 결혼했다. 부귀한 집안 아이는 더욱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있는 집 자제들은 이마에 피도 마르기 전에, 잠자리 시중드는 계집종만 몇이나 되었다.
오직 무인만이 한마음 한뜻으로 수련했다. 너무 호색한이 아닌 이상 동정을 늦게까지 지켰다. 심지어 어떤 무인은 평생 이성과 육체적 접촉을 하지 않기도 했다. 수련과 강대함을 추구하는 무인의 눈에 아름다운 여인도 백 년 뒤면 백골에 불과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무도(武道)의 절정뿐이었다.
능소각의 남제자들 중에는 열대여섯 살부터 기루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몽무애는 양준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나 신중을 기하기 위해 확실하게 물어보아야 했다.
“그래서 제가 도울 수 있는 건가요?”
양준이 곁눈질로 몽무애를 훑어보았다.
“만약 네가 할 수 없다면, 천하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야. 내 관문은 넘은 셈이다.”
몽무애는 기분이 좋아 저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방금 전에, 또 다른 사람도 만족해야 한다고 하셨죠?”
양준이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몽무애는 미소를 거두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애가 만족해야 해. 만약 그 애가 만족하지 않으면 이 일은 성사될 수 없어. 솔직히 말해, 몇 달 전에도 조건에 부합되는 사람을 한 명 찾았어. 그런데 그 애가 원하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 됐다. 그 애가 있는 곳으로 내가 널 데리고 가주마. 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되면…….”
한참을 뜸을 들였지만 몽무애는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야 양준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양준은 급히 말했다.
“먼저 약속해 주세요. 저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도우려는 거예요. 만약 그 사람이 지나친 요구를 하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나쁜 자식.”
몽무애는 한창 마음이 울적해 있었다. 양준이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회피하려는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자식, 무슨 일을 도와주는 줄 알면 두말없이 승낙할 거면서. 지금 내 앞에서 속셈을 차리고 선심을 쓰는 척한단 말이지.’
양준은 몽무애를 뒤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곤룡골 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방향도 그가 항상 수련하는 위치였다.
‘거기 가서 뭐 하려는 걸까? 평소에 수련하면서 그곳에 사람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곤룡골은 본래 험한 곳이어서 그쪽으로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가 평소 수련하던 곳과 백 장쯤 떨어진 곳에서 몽무애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앞쪽을 가리켰다.
“저기를 보거라.”
양준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그가 평소 수련하던 곳에는 뜻밖에도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그가 심어 놓은 삼양과 나무 앞에 서서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두색 치마가 바람에 휘날려 옷자락이 춤을 췄다. 그녀는 면사포를 쓰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마에는 푸른색의 보석이 박혀 있어 그녀의 아름다움과 청순함을 돋보이게 했다. 또, 맑은 두 눈에는 순진무구함이 가득 담겨 있어, 그녀를 소녀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를 보자, 양준은 그날 밤 달빛 아래에서 자신의 낡은 침대에 누워 잠자던 여인이 떠올랐다.
“사저였군요.”
양준의 눈빛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저 애를 알아?”
몽무애는 금세 경계심을 높였다. 그의 사랑스러운 제자는 양준과 말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양준은 왜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인 것처럼 말할까?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사저인가요?”
양준이 몽무애를 바라보며 물었다.
“맞아.”
몽무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울게요.”
몽 주인의 예상과 달리, 양준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통쾌하게 승낙했다. 몽무애는 마음속으로부터 이유 없이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갑자기 양준을 찾은 것이 후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