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장. 특수 체질
“왜 이렇게 흔쾌히 승낙하는 거야?”
몽 주인은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몽 주인이 저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몽무애를 바라보았다. 몽무애의 전후 태도 변화가 너무나 빨랐다.
“내가 너한테 도움을 청한 건 맞지만, 네가 너무 흔쾌히 승낙하니 의심스럽구나.”
몽무애는 연신 손을 저었다.
“네 해명이 필요해.”
“도대체 제 도움이 필요한 건가요, 필요하지 않은 건가요?”
양준이 귀찮아서 따지고 들었다.
“필요해. 물론 필요하지.”
“그럼 또 뭘 묻는 거예요. 제가 승낙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래 맞아. 양준이 시원하게 동의하면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난 왜 어딘가 잘못된 거 같지?’
몽무애는 멍해졌다.
양준은 한 걸음, 한 걸음 하응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하응상이 그의 발걸음 소리에 흠칫 놀랐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양준은 이미 그녀의 곁에 와 있었다.
하응상은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두 번이나 그와 밤에 만났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부끄러운 일이 생겼다. 그녀가 어떻게 마음을 진정할 수 있겠는가?
“하 사저, 어떻게 이곳에 있나요?”
“난… 너를 도와 열매를 지키고 있었어. 네가 며칠 동안 오지 않아서, 누가 열매를 따 갈까 봐 걱정돼서.”
하응상은 서둘러 해명했다.
양준은 고개를 돌려 둘러보았다. 전에 심은 세 그루의 나무에는 열매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한 그루에만 곧 익을 열매 세 개가 달려 있었다.
“이건 네 열매야. 내가 그것들을 단약으로 만들었어.”
하응상은 작은 병 하나를 꺼내 양준에게 건넸다.
양준이 받아 보니 병 속에는 아홉 개의 붉은색 단약이 들어있었다. 약에서는 짙은 양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다른 어떤 재료도 섞이지 않아 더없이 순수했다.
‘근데… 삼양과 열매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단약을 제련했지?’
“사저는 제가 이곳에서 수련하는 걸 알고 있었나요?”
양준은 고개를 들어 하응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면 그녀가 어떻게 이곳에서 줄곧 삼양과 나무를 지키고 있었겠는가.
하응상이 쭈볏쭈볏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무심결에 보게 됐어”.
“그날 밤, 사저가 맞죠.”
양준은 빙그레 웃었다. 마음속에 따뜻함이 밀려왔다.
그날 밤 양준이 개원 경지를 돌파할 때, 복면을 쓴 여인이 그를 기습했다. 원래 그는 상대방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은 단지 자신을 도우려 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실력으로 복면을 쓴 여인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양준은 당시에도 조금 의심했었지만, 이제 그 복면 여인의 신분이 확실시되었다.
지금 이 순간, 양준의 마음속은 온통 하응상에 대한 감동뿐이었다.
이때 몽 주인이 갑자기 나타나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늙은 암탉이 병아리를 보호하듯 제자를 등 뒤에 숨겼다.
양준은 의혹에 찬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몽무애는 콧방귀를 뀌며 도도함과 의기양양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대답했다.
“얘는 내 제자다.”
“당신 제자라고요?”
양준은 놀라서 하마터면 턱이 빠질 뻔했다. 두 눈은 끊임없이 하응상과 몽무애를 번갈아 보았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뜻밖이야. 몽 주인처럼 믿음직하지 못한 사람이 제자를 두었다니. 이건 뭐 남의 자식을 망치는 게 아닌가?’
“너희 둘은… 아는 사이냐?”
몽무애가 양준을 흘겨보며 물었다.
“몰라요!”
하응상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대답하는 한편, 몽무애 뒤에 숨어서 손을 힘껏 저었다.
양준은 곧 그 뜻을 알아차리고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안다고 할 순 없어요. 다만 이전에 사저께서 저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어요.”
몽무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응상도 이 일을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날 밤 대련을 통해 하응상이 양준의 몸에 있는 양기의 순수함을 알게 된 것이었다.
“몽 주인, 하 사저는 무슨 도움이 필요한 거죠?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양준이 정색하며 물었다. 하응상의 일이므로 당연히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몽무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끼는 제자를 바라보며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쟤는 괜찮으냐?”
하응상의 귓불이 갑자기 빨개졌다. 시선을 내리자 긴 속눈썹이 마구 떨렸다. 그녀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보일락 말락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에 몽무애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됐다. 됐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놈으로 하자.”
양준은 한쪽에 서서 오리무중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입을 열어 묻지는 않았다.
잠시 뒤, 몽무애가 갑자기 엄숙하게 물었다.
“양준, 이 세상에서 어떤 이들은 천부적으로 재능이 남다르다는 걸 알고 있느냐?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일반인들은 아예 넘볼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양준은 표정을 바로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몽 주인이 지금 이야기하는 건, 특수 체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몽무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의 체질은 수련에 적합하고, 어떤 이의 체질은 부상을 입으면 쉽게 회복되며, 또 어떤 이의 체질은 전투에 적합하다. 별의별 종류의 체질이 다 있어.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특수 체질을 가지고 있으면 특정 분야에서 선인들이 꾀할 수 없는 높이에 이를 수 있다.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은 이런 체질을 매우 부러워하지. 다만 특수 체질을 가진 사람은 아주 드물어. 백만 명 중에서 하나 나타날까 말까 하는 정도야. 오늘 특수 체질의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된 걸 행운으로 생각하거라.”
양준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그는 놀란 눈빛으로 몽무애 등 뒤에 서 있는 하응상을 바라보았다.
“설마 하 사저가…….”
“허허……”
몽무애는 도도함이 넘치는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상의 체질은 일반인과 다르단다.”
양준은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참 뜻밖이군. 쉽사리 수줍어하고 겁이 많은 하 사저가 이 같은 행운아일 줄이야.’
“사저는 무슨 체질인가요?”
양준은 저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몽무애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나무의 열매가 마침 잘 익었구나. 얘야, 네가 가서 따오너라.”
“네.”
하응상은 몽 주인의 말대로 마지막 삼양과 나무 앞에 가서 가볍게 나무 위의 열매 세 알을 땄다.
양준은 중간에 끼어들어 캐묻지 않았다.
“얘야, 저놈한테 네 솜씨를 좀 보여주거라.”
몽 주인이 허허 웃었다.
하응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양준 앞에 다가섰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흰 손은 가늘고 길었다. 그녀의 작은 손바닥 위에는 방금 딴 삼양과 열매 세 알이 놓여 있었다.
“사제, 봐.”
하응상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체내의 원기를 살짝 돌렸다.
양준은 경이로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응상이 운기조식을 함에 따라 작은 손에 놓인 삼양과가 붉은색의 원기를 뿜어냈다.
이는 과일 속에 잠재돼 있던 양기였다. 양준이 수련하는 진양결은 양기에 극히 민감했다. 당연히 삼양과 속 원기가 미친 듯이 밖으로 뽑혀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삼양과에서 뿜어져 나온 양기는 하응상의 눈앞에 모이더니 응결된 채 광풍이 몰아쳐도 흩어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양과 세 알은 원래의 색깔을 모두 잃었고, 안에 품고 있던 양기가 한 방울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열매 세 알은 신속하게 쪼그라들더니, 바람이 불자 가루가 되어 공기 속에 흩어졌다.
하응상이 다시 움직였다. 한 손으로는 응결된 양기를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은 허공에서 쉬지 않고 춤추듯이 움직였다.
그녀의 동작과 함께 곤룡골 아래의 양기가 마치 물기둥처럼 하늘로 치솟더니 일제히 그녀 쪽으로 몰려왔다. 그녀는 손이 가는 대로 양기 한 줄기를 잡아 눈앞의 붉은 기체 덩어리 속에 집어넣었다.
손의 동작이 점점 빨라졌다. 하응상은 곤룡골에서 양기가 치솟아 올라올 때마다 잡아서 눈앞의 붉은색 원기 덩어리에 넣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눈앞의 붉은 원기 덩어리는 커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그 속에 품고 있는 양기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잠시 뒤, 하응상은 곤룡골의 양기를 더는 잡지 않았다. 이내 두 손으로 붉은색 원기 덩어리를 가운데로 압축했다.
양 손바닥이 신속하게 모였다. 그녀가 다시 손을 펼치자 손바닥에는 붉은색의 단약 세 알이 놓여 있었다. 단약은 둥글고 윤기가 나며 색깔이 매혹적이었다. 단운(丹暈)과 단문(丹紋)이 뚜렷하게 보였다.
양준은 이미 완전 빠져들어 있었다.
눈앞의 광경은 신비한 재간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더 이상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이때에야 양준은 하응상이 준 단약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게 되었다. 모두 이렇게 제련된 거였다.
‘그런데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닌가?’
연단사는 원래 드물었다. 단약을 제련할 때도 실패할 위험이 뒤따랐다. 게다가 연단사가 약을 제련할 때면 특수한 도구, 이를테면 약 가마나 불이 필요했다.
그런데 하응상은 손만 썼을 뿐, 삼양과 외에는 아무 재료도 더 첨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손쉽게 단약 세 알을 제련해 냈다.
“가져가!”
하응상이 양준 앞에 손을 내밀었다.
양준은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속의 충격을 가라앉혔다. 그는 단약 세 알을 받아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단약마다 삼양과 한 알에 들어있는 양보다 양기가 많아진 걸 알 수 있었다. 단약을 제련할 때 곤룡골의 양기를 빌렸기 때문이었다.
“사저가 단약을 제련하면 약왕곡(藥王谷) 사람들은 그냥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네요.”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아직까지 단약 제련 과정을 이처럼 간소화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