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3화 (63/853)

제 63장. 약령성체

약왕곡의 단약 제련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일지라도 아마 하응상과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저는 무슨 체질인 거죠?”

양준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몽무애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약령성체(藥靈聖體) 체질이다.”

“단약을 제련하는 것과 연관이 있나요?”

“맞아.”

몽무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체질은 아주 특수해서 수천, 수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해. 약령성체 체질의 사람은 어떤 단약을 복용해도 아무 후유증이 없다. 너도 아마 알고 있겠지. 약에서 3할은 독이야. 지금은 많은 단약이 수련에 도움을 주고, 심지어 실력을 크게 성장시켜 준다지만 한 사람이 단약을 복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지. 하지만 약령성체는 다르다. 약령성체는 몸 자체가 가장 좋은 약 가마로서 단약을 복용하면 어떤 유해한 것도 모두 정제될 수 있어. 이 아이는 수련을 시작한 지 겨우 다섯 해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이합 경지 절정에 도달했다. 내가 일부러 저 아이의 힘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미 진원 경지에 올랐을 거야.”

양준은 깜짝 놀랐다. 다섯 해 동안 수련해서 이합 경지 절정에 오르다니. 해홍진도 겨우 같은 경지였다. 그런데 그는 얼마 동안 수련했는가? 아마 십몇 년은 족히 될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 억제하면서 얻은 성과라니… 만약 억제하지 않았으면 소안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단 말이 아닌가?

양준은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자질은 눈앞의 사저와 비할 때 하늘과 땅 차이였다.

‘눈앞에 있는 이 분이야말로 능소각 최고의 천재였군.’

다만 하응상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량의 영약의 힘도 있었다.

몽무애가 말을 이어 갔다.

“약령성체는 체질에 맞는 신공(神功)을 수련하면 원기가 있는 천하 만물을 모두 단약으로 제련할 수 있어. 심지어 천지의 영기도 응상이 원하면 단약으로 만들 수 있지.”

원기만 있으면 천하 만물을 모두 단약으로 만들 수 있다. 천지의 영기도 제련할 수 있는데, 삼양과는 물론 말할 것도 없었다.

양준은 하응상이 장차 최고의 연단사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유일무이한 체질만으로도 그녀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 응상이가 진원 경지에 오르려 해. 다만 그전에 한 가지를 제련해서 체내에 흡수해야 해. 하지만 그건 저 애 혼자서 취할 수가 없단다.”

몽무애가 근엄하게 양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제 도움이 필요한 건가요?”

양준이 물었다.

몽무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약이죠?”

“구음응원로(九陰凝元露). 진원(眞元)을 응결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약이야. 만약 응상이가 이것을 제련하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나도 저 아이의 경지를 억제하지 않았을 거야.”

이합 경지에서 진원 경지로 올라가면 체내 원기가 진원으로 바뀌며 질적으로 몇 배가 좋아진다. 이 역시 모든 무인들이 거치는 과정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천재지보를 곁들인다면 진원의 질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었다.

구음응원로는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이러한 천재지보였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천재지보에 속했다.

“구음응원로는 자체에 영성(靈性)이 있어 얻기 어렵단다. 만약 부적격자가 그것을 건드리면 즉시 영기가 되어 사라지지. 순수한 원기를 가진 자만이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 그래서 너를 찾은 거야.”

“구체적으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양준이 묻자, 몽무애가 갑자기 짜증을 냈다.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 때가 되면 당연히 알려줄 것이다.”

양준은 코를 매만졌다.

‘몽 주인이 왜 갑자기 이리 화를 내지?’

“그건 어디 있어요? 언제 시작하죠?”

“흑풍산 안쪽에 구음이 모이는 곳이 있어. 매년 7월 7일이 음기가 모이는 날이야. 오직 그날에만 구음응원로가 나타나 천지의 음기를 흡수한단다.”

“그럼 며칠 안 남았네요.”

양준이 대충 계산해 보니 7월 7일까지는 십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너만 괜찮다면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이번에 놓치면 또 내년을 기다려야 해.”

몽무애가 정색하며 말했다.

“저는 언제든지 갈 수 있습니다.”

양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이틀 뒤에 공헌당에 오너라. 재료를 좀 더 준비해야 해.”

몽무애가 한마디 당부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해요.”

그들은 이틀 뒤 공헌당에 모이기로 약속하고, 양준이 먼저 자리를 떴다.

몽무애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지었다. 곧이어 얼굴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얘야, 정말 할 것이냐?”

하응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몽무애가 말했다.

“사실 구음응원로를 제련하지 않아도 너는 진원 경지에 오를 수 있어. 다만 나중에 실력이 조금 떨어질 뿐이야.”

하응상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부님을 도와드리려면, 실력이 좋을수록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고 키워주셨어요. 저도 사부님을 돕고 싶어요.”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을래?”

몽무애가 이틀의 시간을 남겨 둔 까닭은 하응상이 좀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응상의 얼굴이 빨개졌다.

“괜찮아요. 전 양준이 싫지 않아요.”

몽무애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놈 좋은 일만 하는구나.”

대수롭지 않아 하는 양준의 모습을 떠올리자 몽무애는 화가 나서 이가 갈렸다.

‘자식, 단지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얼마나 큰 이익을 얻을지도 모르면서. 서로 눈이 맞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군. 이곳은 응상이가 몸담을 곳이 아니란 말이다.’

몽무애는 애달픈 심정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양준은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며칠간 돌아오지 않았지만, 오두막은 먼지 한 톨도 없이 여전히 깨끗했다.

‘누가 청소한 거지?’

몽 주인이 어물쩍 넘어갔지만, 양준은 어디로 가야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구음이 모이는 곳이면 그곳은 분명 음기가 짙을 것이다. 자신의 진양원기는 마침 음기와 상극이었기에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니, 만일을 위해 양액을 비축해둬야 할 것 같았다.

마침 하응상이 그를 위해 삼양과로 만들어준 단약이 있었다. 이는 양액을 보충하는 좋은 수단이었다.

삼양과 나무 네 그루에, 나무마다 열매가 세 개씩 열렸다. 그리고 열매 모두 새빨간 단약 열두 알로 제련되었다. 단약 한 알에 양액 세 방울을 응결할 수 있으니, 모두 서른여섯 방울의 양액을 얻을 수 있었다.

양액은 전투에도, 음기를 막는 데도 모두 쓰임새가 있었다. 이는 그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양준은 열두 알의 단약을 먹고, 하루 종일 시간을 들여 단약의 약효를 모두 흡수했다.

양액은 예상을 초월해 모두 마흔 방울이나 축적되었다. 전에 단전에 있었던 몇 방울까지 더하면 축적된 양액의 양은 상당히 풍부했다. 이번 여정의 밑천이 좀 생긴 셈이었다.

양준은 많은 양액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단약을 흡수한 뒤 경지를 돌파해 개원 경지 4단계가 되었다.

이번 돌파는 정말 아무 기미도 없어 심리적인 준비도 없었다. 돌파도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이미 경지를 돌파한 후였던 것이다.

양준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는 며칠 동안 먹은 단약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소안의 집에서 단약 십여 병을 먹고, 뒤이어 삼양과로 만든 단약 열두 알을 먹었다. 이처럼 거대한 원기가 모였으니 돌파하는 것도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틀 뒤 아침, 양준은 공헌당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잠시 뒤 대문이 열리고 하응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어깨에 많은 물건들이 들어있는 작은 봇짐을 메고 있었다.

“사제 왔구나.”

하응상은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몽 주인은요?”

“어제 갑자기 고질병이 재발하는 바람에 치료를 받아야 해서 사부는 함께 갈 수 없어.”

하응상은 말하면서 눈을 끊임없이 깜빡였다. 촘촘한 속눈썹도 덩달아 떨렸다.

양준이 의심스러운 듯이 그녀를 훑어보자, 그녀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럼 기다려야 하나요?”

양준은 마음속으로 약간 짐작이 갔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아니야. 그곳이 어디인지 내가 알아. 그리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거든. 사부님께서는 기다릴 것 없다고 하셨어.”

양준이 더는 캐묻지 않자, 하응상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네, 알겠어요.”

양준은 좀 망설이다가 결국 승낙했다.

“그럼 이번에 사제한테 신세 좀 질게.”

하응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저, 별말씀을요.”

양준은 씩 웃었다.

두 사람은 곧 가벼운 옷차림으로 능소각을 떠났다.

*그 시각, 몽무애는 공헌당 아래채 탁상 위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다. 탁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요리와 좋은 술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몽무애가 잠들기 전에 좋은 술과 음식을 맛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요리들은 모두 하응상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단지 요리 속에 특수한 조미료를 넣었을 뿐이다. 그녀의 약령성체를 밑바탕으로 제련해 낸 특수 조미료는 몽무애 같은 고수들도 당해 낼 수 없었다.

몽무애는 평생 영리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제자의 손에 당하리라고는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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