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몽무애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끝난 뒤일 것이다.제 64장. 노려지는 양준
양준과 하응상은 오매진에 가서 말 두 필과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 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물건을 살 때 양준은 하응상에게 목적지에 대해 물었다. 하응상의 말에 따르면, 목적지는 흑풍산 내부에 위치해 있으며, 오매진에서 약 열흘 정도 가야 하는 여정이라고 했다. 조금 멀긴 했지만 시간은 충분했다.
*두 사람이 능소각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이 소식은 해홍진에게 전해졌다.
해홍진은 그날 감옥에서 소안과 양준의 사이가 친밀한 것을 보고 며칠 동안 술에 매달린 채 우울함을 달래며 의기소침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맑은 정신으로 다시 궁리해 보니 그날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 꼭 사실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소안이 어떤 성격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실력과 평소 도도한 성격으로 볼 때, 절대 개원 경지 3단계밖에 안 되는 양준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었다. 하물며 그전에 두 사람은 아무런 접점도 없어 남남에 가까웠다.
그제야 해홍진은 그날 두 사람의 행동이 연기였음을 눈치챘다. 그때 당시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진위를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어제도 소안을 찾아가 마음을 털어놓았다. 여전히 소안의 마음은 얻지 못했지만, 마음속의 응어리는 사라지게 되었다.
‘소안이 다른 남자에게 가지 않는 이상, 조만간 내 사람이 될 거야.’
해홍진은 자신이 있었다. 능소각에서 그와 소안은 각기 가장 우수한 남녀 제자였다. 두 사람의 결합은 웃어른들이 바라는 바였다.
오늘 아침, 해홍진은 다시 흑풍시장으로 가서 소안을 찾아보려던 참이었다.
그가 막 문을 나서려는데, 한 집법당 제자가 갑자기 허둥지둥 뛰어 들어오더니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해 사형, 양준이 방금 전에 능소각을 떠났어요.”
해홍진은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혼자 떠났어?”
“아니요. 하응상이라는 암당 제자와 함께 갔어요.”
그 제자가 대답했다.
“하응상? 나도 알아. 실력은 나랑 비슷한데 핵심 제자는 아니야. 어딘가 이상하단 말이지.”
해홍진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들이 어디로 갔어?”
해홍진은 잠깐 생각하더니 갑자기 눈에서 광기가 일었다.
‘정말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구나. 그놈이 이 시간에 능소각을 떠났다니. 만약 밖에서 그를 죽일 수 있다면, 내 마음속 원한이 풀릴 게 아닌가!’
“목적지는 알 수 없지만, 보니까 먼 길을 떠나는 것 같았어요. 오매진에서 말 두 필을 샀거든요.”
“먼 길이라? 좋아. 아주 좋아.”
해홍진은 연거푸 ‘좋아’를 내뱉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
“가서 믿을 수 있는 사제들을 좀 불러와. 실력은 적어도 이합 경지가 되어야 한다. 함께 데리고 가야겠어.”
“사형, 뭘 하시려는 건가요?”
“내가 뭘 하려는지 잘 알잖아.”
해홍진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쫓아가서 양준을 죽일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소식이 새어 나가면 안 되기에, 내친김에 하응상도 처리할 생각이었다.
“사형,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합니다.”
집법당 제자의 얼굴빛이 약간 당황한 듯했다. 양준은 괜찮았다. 개원 경지 예비 제자로 설령 밖에서 죽는다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암당 제자 하응상은 달랐다. 그녀의 정체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지만 실력이 이합 경지 절정에 있으니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녀가 죽으면 능소각에서 조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일에 가담한 사제들은 누구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잔소리야?”
해홍진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내가 직접 가서 사람을 찾아야 해?”
해홍진은 이미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양준을 죽일 생각뿐이었다.
“사형, 지난번 일로 대장로께서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한동안은 누구도 양준을 해코지하면 안 된다고요. 잊으신 건 아니죠?”
그의 귀띔에 해홍진은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지난번에 대장로께서 갑자기 지령을 보내왔었지. 당분간 누구도 양준을 괴롭히면 안 된다고.’
다만 그 지령은 좀 뜬금없었기에 해홍진은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놓쳐야 된단 말이야? 이번에 양준을 못 죽이면 또 언제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만약 이후에 줄곧 문파 내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으면 어쩌지?’
해홍진이 한창 단념하지 못하고 속을 앓고 있는데 집법당 제자가 무슨 좋은 수를 떠올렸는지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해 사형, 우리는 건드릴 수 없지만, 남들은 다르죠. 양준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아주 많아요.”
“무슨 뜻이야?”
해홍진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
그 제자가 대답했다.
“듣자 하니 혈전방 부방주 용재천의 작은 손자 용휘가 지난 한 달 동안 줄곧 양준의 소식을 탐문하고 있었다고 해요.”
해홍진도 물론 용재천을 잘 알고 있었다. 혈전방 내에서 명망이 있는 인물로 신유 경지에 달한 강자였다. 하지만 그의 작은 손자는 평범했다. 아마 올해에 기동 경지를 돌파한 듯했다.
“용휘는 왜 양준에 대해 알아보고 다니는 거지?”
해홍진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집법당 제자가 살짝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마 호미아라는 계집과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용휘가 줄곧 호미아를 쫓아다니며 그녀를 자신의 여자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는데, 최근 호미아와 양준의 사이가 수상하다는 소문을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용휘가 언젠가 양준을 죽여 자기 여자를 건드린 결과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대요.”
해홍진이 잠깐 생각하다가 의심 어린 눈초리로 물었다.
“근데 너는 어디서 이런 상세한 소식을 알아낸 거야?”
설령 용휘가 정말로 양준의 목숨을 취하려 한다 해도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경솔하게 행동하면 양준이 미리 알아챌 것이 아닌가? 만약 양준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면 그가 어찌 감히 능소각을 떠나겠는가?
집법당 제자는 어색해하며 쭈뼛거리기만 할 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서 말해!”
해홍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집법당 제자는 하는 수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얼마 전 오매진 춘풍세우루(春風世雨樓)에서 술을 마셨는데… 마침 용휘가 바로 옆 칸에 있지 뭡니까. 그자가 여인에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해홍진은 화가 나서 사제를 힐끗 보았다. 그곳은 오매진의 기루였다. 사제가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절대 술만 마셨을 리는 없었다.
집법당 제자가 또 말했다.
“해 사형, 만약 용휘가 이 소식을 알게 되면 절대 양준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직접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용휘는 호색한이에요. 만약 그에게 양준이 절세미인과 같이 있다는 걸 말해 주면, 그가 어찌할 거 같은가요?”
해홍진은 눈이 반짝거렸다. 곧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묘책이군.”
‘남의 손을 빌려 양준을 없앤다. 참 묘한 수로구나.’
해홍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정을 내렸다.
“용휘가 양준을 찾고 싶어 한다면 소식을 전해. 다만 이 일은 은밀하게 해야 한다. 절대 우리가 소식을 전했다는 것이 탄로 나면 안 돼. 그리고 잊지 말고 말해 줘. 양준 옆에 여인이 이합 경지 절정이라고.”
“네.”
집법당 제자는 명을 받들고 서둘러 나갔다.
‘양준, 두고 보자. 다만… 하응상이 좀 아깝군.’
하응상은 언제나 면사포를 쓰고 다녔다. 비록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해홍진은 그녀가 절세미인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여인이 용휘의 손아귀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순간 해홍진은 용휘가 부러워졌다.
*능소각 집법당에서 양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오매진에서도 암암리에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양준과 하응상이 말을 타고 떠난 지 얼마 안 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우두머리는 얼굴빛이 음산하고 차가웠다. 그자는 양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물었다.
“똑똑히 봤어? 저 자가 양준 맞아?”
“노랑(怒浪) 사형,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양준이 틀림없습니다. 지난번에 저 자에게 한바탕 얻어맞은 뒤, 성소봉 사형이 노도 사형을 찾아갔어요. 기회를 봐서 혼쭐을 내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같이 흑풍시장에 간 뒤로부터 두 사람 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노랑의 얼굴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가서 말 좀 사 와. 따라가 보자. 내 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어.”
노도가 성소봉과 함께 실종된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노랑은 아무리 찾아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끝에 이제야 양준과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아낸 참이었다.
내막이 도대체 어떠한 지는 양준을 쫓아가서 자세히 물어봐야 했다. 만약 정말 그와 연관이 있다면 형님인 그가 동생을 대신해 복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랑 패거리에서는 그의 실력이 가장 높았지만, 그는 기동 경지를 돌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체내 원기가 불안정한 시기였다. 이 경지의 무인들은 화도 잘 내고, 쉽게 감정에 휘둘리기도 했다. 노랑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개원 경지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 육체 경지였다. 모두 실력이 높지 않았으며 머릿수가 많을 뿐이었다.
노랑은 양준의 실력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양준과 함께 있는 여인은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여인도 별 볼일이 없을 것 같았다. 대충 봤을 때, 나이도 어리고 능소각의 이름난 제자도 아닌 듯했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정말 경지가 높다면 굳이 말을 살 필요가 있었겠는가? 실력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다리로 달리는 것이 말보다 훨씬 빨랐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노랑은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하응상이 말을 산 것은 양준을 위해서였다. 양준은 개원 경지 4단계밖에 안 되어 걸음이 빠르지 않았다.
노랑 일행은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말발굽 자국을 따라 그들을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