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5화 (65/853)

제 65장. 조우하다

양준과 하응상은 말을 몰아, 쉴 새 없이 달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뒤에서 두 패거리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두 패거리 모두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응상의 실력은 높았지만, 아직 신식을 수련하지 못해 주위의 움직임을 광범위하게 살피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내내 아무 말 없이 달리기만 했다. 하응상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양준이 바짝 뒤따랐다. 말 두 필이 앞뒤로 달렸다.

그들은 밤이 되어서야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불을 피우고 쉬었다. 두 사람은 오매진에서 사 온 음식을 꺼내 조금씩 먹은 뒤, 모닥불 옆에 앉았다.

하루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양준은 하응상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 수줍음이 많았다. 말 몇 마디에 금방 귀가 빨개졌다. 말을 할 때도 나긋하고 부드러워 성질이 아주 무른 듯했다.

그녀의 이런 성격 때문에, 양준은 그녀가 놀랄까 두려워 먼저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사흘 동안 달려 두 사람은 마침내 능소각에서 천 리나 떨어진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들은 마을에 말을 맡겨 두고 객잔을 찾아 잠시 묵기로 했다.

하응상은 여기서부터 말을 타고 갈 수 없다고 했다. 산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밤, 객잔 안은 적막에 싸였다.

양준이 쓰는 방은 하응상의 바로 옆방이었다. 방 안은 환했으며, 양준은 가부좌를 하고 수련하고 있었다.

양준은 그날 금신의 오묘함을 알게 되고, 불굴지오라는 신비한 무예를 깨친 다음부터 진양결에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양기가 있는 환경에서 진양결을 운행해야만 양기를 흡수해 양액을 응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양기가 없는 환경에서도 진양결을 운행해 천지의 양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체내 진양원기가 양기를 불태우면 다시 금신에 흡수되었다.

수련 환경의 제약은 일시에 사라졌다. 이는 양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이때, 양준의 옆방에 있는 하응상은 잡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흘간의 동행에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열 마디를 넘지 않았다. 하응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이 도움을 청했으면서 이리 홀대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매번 그에게 말을 건네려 하면, 왠지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몰래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던 탓에, 갑자기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하응상이 수심에 잠겨 고뇌하는 동안, 객잔 내 다른 두 패거리들은 모두 양준과 하응상의 움직임을 살폈다.

한 객실 안, 용휘는 혈전방 정예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희미한 촛불이 춤추듯 일렁이자 그 불빛에 용휘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혈전방 패거리는 소식을 전해 받은 다음 곧장 이들을 쫓아 나섰다. 그러나 출발이 늦다 보니 오늘에야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있은 뒤, 용휘가 갑자기 말했다.

“문 당주(堂主), 도대체 언제 공격할 거야? 양준은 바로 이 객잔에 묵고 있어. 문 당주의 솜씨면 쉽게 이길 수 있잖아.”

문비진(文飛塵)은 중년의 사내로, 실력이 진원 경지 5단계인 혈전방 당주였다. 용휘는 정확한 정보를 입수했기에 고수를 대동했다. 하응상을 잡기 위해서였다.

패거리에는 문비진 외에도 이합 경지의 고수들이 적지 않았다. 사람 수는 6~7명 안팎이었다. 용휘는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문비진이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용 공자, 제가 지금 저들을 공격해도 문제 될 건 없습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요.”

“그럼 뭘 기다리는 거야?”

용휘가 금세 흥분했다.

“양준은 죽이고 여인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해. 소문으로 절세미인이라고 하더군. 자식이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그러면 똑같은 수단으로 돌려줘야지. 남이 제 여자를 건드리면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느끼게 해줄 거야.”

문비진은 용휘의 본성을 잘 알고 있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용 공자께서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들이 천 리도 마다하지 않고 왜 여기까지 왔을지?”

“문 당주는 알고 있어?”

용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문비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이번 여정은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겁니다. 흑풍산에 들어가 천재지보를 찾으려 하는 거 같습니다.”

용휘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야? 흑풍산에는 천재지보가 천지에 널려 있어. 그래도 산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문비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능소각에서도 흑풍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을 타고 천 리를 달려 여기서 멈췄단 말이죠. 제 짐작이 맞는다면, 내일 그들은 여기서 산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하다는 것은, 찾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안다는 것이죠. 만약 우리가 조용히 쫓아가다가 그들이 천재지보를 찾는 순간을 기다려서….”

문비진의 생각은 매우 세밀하고 분석도 상당히 완벽했다.

용휘의 눈이 번쩍 빛났다.

“우리가 공격해 뺐으면 되겠군.”

문비진이 웃었다.

“용 공자의 말이 맞습니다. 다만 용 공자가 지금 당장 미인을 안고 싶다면, 오늘 밤에 공격할 수는 있습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용휘의 얼굴에는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비진이 적절하게 말을 이었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미인뿐만 아니라 천재지보도 용 공자가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보물을 찾았는데 우리가 빼앗는다면, 양준은 아마 화가 나서 피를 토할지도 모르지요.”

그의 말에 주저하던 용휘가 단호해졌다.

“좋아. 어차피 우리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그러면 양준을 며칠 더 살려 두지. 우리는 앉아서 어부지리나 하면 되니까.”

문비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못 참는 것을 참을 수 있다니, 용 공자는 필히 큰일을 할 사람입니다. 탄복해 마지않습니다.”

“하하, 문 당주, 과찬이야.”

용휘는 사탕발림에 기분이 좋아졌다.

문비진이 용휘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혈전방 방주 호만은 일대 호웅이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아들이 없었다. 오직 꽃다운 딸 둘뿐이었다.

문비진이 보건대 장차 혈전방의 가업은 조만간 용씨 가문에 넘어가게 될 터였다. 지금 이 소공자와 관계를 잘 닦아 놓기만 하면, 용씨 가문이 혈전방을 장악했을 때 그에게도 이익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이때, 문밖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비진이 가볍게 외쳤다.

방문이 열리고 밖에서 경계하던 혈전방 제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자는 용휘에게 예를 올린 뒤, 문비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비진의 안색이 갑자기 이상해지더니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 거였군.”

말을 마치자, 그는 방에 있던 몇몇 제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가서 잡아와. 절대로 용 공자의 큰일을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네.”

제자들은 대답과 함께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용휘가 물었다.

문비진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용 공자, 일이 참 재미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쫓아올 때, 길에 나 있던 수많은 말발굽 자국들이 생각나십니까? 우리가 전해 받은 소식에 양준 일행은 두 사람뿐이었죠. 그래서 수많은 말발굽 자국들이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의 것인 줄로 짐작했었는데, 뜻밖에도… 우리 외에 양준을 추적하는 이가 또 있었습니다.”

용휘는 놀라서 입을 열었다.

“그게 누군데?”

“풍우루 제자들입니다. 지금 양준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양준과 함께 있는 여인의 실력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호박 쓰고 돼지 굴로 들어가려는 격이군.”

용휘는 냉소를 머금었다.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방금 전에 나갔던 혈전방 제자들이 모두 돌아왔다. 그리고 당황한 기색의 노랑과 풍우루 제자들도 함께였다.

노랑 패거리는 놀라서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들은 오늘에야 어렵사리 이곳까지 쫓아왔다. 그리고 방 안에서 양준을 어떻게 기습할지 계획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자신들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는 고수들에게 붙잡힐 줄 어찌 알았으랴.

노랑은 겁에 질려 혼비백산했다. 방 안에 내팽개쳐지자 연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저희들은 죄지은 게 없습니다. 관대히 봐 주십시오.”

“입 닥쳐!”

혈전방의 한 제자가 노랑의 뺨을 후려쳤다. 노랑은 입안에 피가 가득 찼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고분고분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풍우루 제자들은 두려움에 젖어 사방을 둘러보고는 오들오들 떨었다. 그들은 실력이 높지 않았지만,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이 공격해도 자신들을 모두 죽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알아챌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고수는 족히 6~7명이었다.

‘누구의 심기를 건드린 거지?’

풍우루 패거리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천리를 어기는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기껏해야 방금 전, 방 안에서 양준을 어떻게 기습할까 계획했을 뿐인데… 그리고 아직 실행도 하지 않았는데.’

노랑은 문득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이 낯익어 보였다. 그자는 미소를 지은 채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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