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6화 (66/853)

제 66장. 왜 양준을 쫓는 거야?

노랑은 생각을 더듬다가 낯빛을 바꾸며 넌지시 물었다.

“당신은 혈전방의 용휘인가요?”

용휘가 가볍게 웃었다.

“나를 알아?”

노랑이 난감해하며 웃어 보였다.

“용씨 어르신의 후손이시잖습니까.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나를 알고 있다니, 그럼 일이 더 쉽게 됐군.”

용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노랑은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찌하여 천 리 밖에서 혈전방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눈앞의 형세로 봤을 때, 그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 묻자. 왜 양준을 쫓는 거야?”

용휘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물었다.

노랑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용휘가 자신을 탓하려는 줄 알고 당황하면서도 감히 숨기지 못하고 자초지종을 말했다.

“용 공자, 저는 그저 양준이 제 동생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고 의심했을 뿐입니다. 진짜 그를 어쩌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혹시 거슬리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애들을 데리고 풍우루로 돌아가겠습니다. 절대 다시는 양준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용휘가 피식 웃었다.

“지금 나랑 양준이 친구인 줄 아는 거야?”

“그럼 아닙니까?”

노랑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용휘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양준의 신분으로 감히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노랑은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도 아닌데, 나와 그 자식 사이 은원에 뭔 간섭이야? 쓸데없이 참견하고 난리야.’

“눈치 없는 자식, 용 공자께서 이번에 너희 목숨을 구한 것이다. 고마운 줄을 모르네.”

혈전방 제자 하나가 때맞춰 훈계했다.

노랑 일행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혈전방 제자가 냉소하며 말했다.

“너희들 양준의 실력이 보잘것없다는 것만 알지. 그와 동행한 여인이 이합 경지의 고수라는 건 알아?”

그 한마디에 노랑 일행은 식은땀을 쫙 흘렸다. 이합 경지의 고수라니. 지금 노랑의 실력인 기동 경지 1단계보다 거의 두 단계 이상의 경지 차이였다.

만약 싸우게 되면 그 여인 혼자서도 노랑 일행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그제야 노랑은 자신이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한순간 두렵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용 공자,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우루의 다른 제자들도 서둘러 감사를 표했다.

“흥, 알았으면 됐어.”

용휘는 남들의 추대를 매우 즐기는 듯했다.

“내가 이번에 온 것은 바로 양준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서다. 다만 며칠 더 기다려야 해. 너희들이 경거망동해서 하마터면 그들이 낌새를 알아채고 내 큰일을 그르칠 뻔했잖아.”

“저희는 몰랐습니다. 용 공자께서 용서해 주십시오.”

노랑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머리를 더욱 조아렸다.

“됐다. 더는 따지지 않으마. 아무튼 우리의 목표가 같으니 너희들도 나를 따라라. 내가 양준을 사로잡으면 그때 네 동생의 행방을 알아보도록 해.”

노랑은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력이 보잘것없는 그들이 반항할 수나 있겠는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용 공자께서 분부만 하십시오. 저희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죽을 각오로 돕겠습니다.”

“일단 돌아가. 내일 다시 찾을 거야.”

용휘가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

“네.”

노랑 일행은 바닥에서 일어나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방을 나선 다음에야, 그들은 자신들의 옷이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이 나간 뒤, 용휘가 의아한 눈빛으로 문비진을 바라보았다.

“문 당주, 왜 그들을 데리고 가려는 거야? 저 자들은 실력이 너무 낮아 쉽게 걸릴 거 같은데. 우리들만으로는 양준을 죽이고 그 여인을 사로잡기 어렵다는 거야?”

방금 전에 용휘가 한 말은 모두 문비진이 미리 일러준 것이었다. 용휘는 일단 하라는 대로 하긴 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양준을 죽이고 여인을 사로잡는 데는 그들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양준과 그 여인은 지금 흑풍산 내부로 들어가려 하고 있죠. 둘은 필히 사전에 무언가를 준비해 두어서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죠. 우리가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흑풍산은 깊게 들어갈수록 위험한 곳입니다. 요수는 물론이고, 천연 함정이나 독물질만으로도 인원 손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앞에서 길을 터 준다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죠.”

용휘는 그제야 문비진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있었다. 풍우루의 제자들을 희생물로 삼아 가능한 우리 측의 인원 손실을 줄이려는 것이었다.

“음, 문 당주가 사려 깊었군. 내가 경솔했어.”

용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 공자는 총명하지만,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시지요. 심성이 순박해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문비진이 허허 웃었다.

사후에 풍우루 제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이심전심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응상이라는 여인은 나이가 어려도 벌써 이합 경지 절정의 실력을 가졌다. 배후에 틀림없이 고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대처하려면, 아예 건드리지 않거나,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했다. 따라서 풍우루의 사람들은 절대 살려 두어서는 안 되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서야, 혈전방 패거리들은 비로소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양준과 하응상은 문비진이 짐작한 대로 마을에서 방향을 바꾸어 흑풍산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떠난 지 반나절이 지나서야,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도 뒤를 쫓아 산으로 들어갔다. 하응상의 실력이 높았기에 너무 가까우면 발각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지면 놓칠까 걱정이 되었다. 반나절의 시간차가 가장 적절했다. 문비진은 다년간 강호에 몸담고 있다 보니 추적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산속에서 두 젊은이의 종적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흑풍산에 들어가자 양준과 하응상의 속도는 자연히 느려졌다.

말을 탈 때의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도, 둘 사이의 간격도 없어졌다.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루 사이에 많이 친해졌다.

밤이 되자, 두 사람은 큰 나무를 찾아 나무줄기에 올라가 쉬었다.

나무줄기가 아주 넓어 둘은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을 수 있었다. 이때, 양준은 하응상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꼬마 사저.”

서로 친해지자 양준은 그녀와 거리감이 없어졌고, 따라서 호칭도 변했다. 양준은 하응상이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 같았다.

“사저면 사저지, 왜 꼬마를 붙여?”

하응상이 뾰로통한 얼굴로 물었다.

“이 봇짐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요?”

양준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가 한쪽에 놓아둔 봇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오는 내내 참아왔던 질문이었다.

“이거!”

과연 하응상은 쉽게 화제를 바꾸었다. 그녀는 봇짐을 소중하다는 듯이 품 속에 껴안고서 말했다.

“이건 사부께서 수년 동안 준비하신 재료야. 만약 사제가 구음응원로를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바로 제련해야 돼. 구음응원로는 아주 특별하기 때문에 한 시진 내에 제련하지 못하면 서서히 없어지거든.”

“그렇군요.”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

하응상이 갑자기 다정하게 양준을 불렀다.

“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마침,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양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물어보고 서로 솔직하게 대답하자, 알았지?”

“좋아요.”

“그럼 내가 먼저 물어볼게.”

하응상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물어보세요. 속이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하응상은 가볍게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부한테서 들었어. 사부께서 도움을 청했을 때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도움이 필요한 이가 나라는 걸 알았을 때는 사제가 단번에 승낙했다고 하던데, 왜 그랬어?”

“왜일 것 같아요?”

양준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하응상은 얼굴을 붉혔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네가 딴마음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하셨어.”

“몽 주인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양준은 순간 화가 났다.

하응상은 자신의 사부를 아무 거리낌도 없이 깔끔하게 팔아넘겼다.

“이 노친네가!”

양준은 분해서 씩씩거렸다.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그럼 왜 단번에 승낙한 거야?”

양준은 곁눈질해 그녀를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사저, 몽 주인의 말이 맞아요. 제가 사저한테 흑심을 품어서 흔쾌히 승낙한 거예요.”

그가 천천히 하응상 쪽으로 다가갔다.

하응상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뒤로 움츠러들었다. 곧이어 갑자기 무엇이 떠올랐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제는 내 상대가 안 돼.”

이 말은 사실이었다. 양준은 자신이 여기서 조금만 더 제멋대로 굴면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날려질 것 같았다. 하응상은 확실히 순진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하지는 않았다.

양준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품 속에서 병 하나를 꺼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것 때문이에요.”

하응상이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그것은 능소각의 외상약, 어혈연고였다.

근 두 달 전의 광경이 뇌리에 언뜻 떠올랐다. 하응상은 즉시 입을 막고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이 어혈연고를 아직도 가지고 있을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문파에 입문한 지 삼 년 남짓 되었는데, 이 어혈연고는 제가 처음으로 느낀 따뜻함과 관심이었어요.”

“어떻게 알았어?”

하응상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 연고는 자신이 준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당시 양준은 혼수상태가 아니었던가?

양준이 눈썹 끝을 찡긋했다.

“향기로 알 수 있었어요.”

하응상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단지 공헌치 10점밖에 안 되는 어혈연고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도우려 했어. 사부님의 말씀은 확실히 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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