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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68화 (68/853)

제 68장. 내 곁을 떠나지 마

하응상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곧 그를 뒤따라 가벼운 몸놀림으로 내려갔다. 착지할 때 위험할 것 같으면 도와줄 심산이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아직 지면과 십여 장 떨어져 있을 때, 양준이 갑자기 두 발로 옆의 벼랑을 걷어찼다. 그 반작용을 이용해 그는 다시 몇 번 공중제비를 돌며 힘을 줄였다. 그리고 거칠게 사선으로 날아갔다.

그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착지했다. 양준은 두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땅바닥에 구덩이를 만들어 내며 먼지를 한껏 휘날렸다.

곧이어 하응상이 가볍게 그의 곁에 착지했다.

한 명은 선녀가 내려온 듯하고, 다른 한 명은 돌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듯했다. 그 시각적 차이는 확연했다.

어쨌든 양준도 무사히 뛰어내렸다. 하지만 양준의 온몸의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응상은 입을 오므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녀의 눈썰미로 방금 전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제의 난처함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삼십 장 높이였다. 개원 경지 4단계의 실력으로 중간에 단 한 번의 힘을 빌려 무사히 착지한 것만도 기적이었다.

하응상은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초닷새야. 이틀이 지나면 초이레가 돼. 난 이곳에 뭘 좀 설치할 거야. 여기는 위험하지 않으니 사제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양준은 냉엄한 얼굴로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응상은 그제야 달려 나갔다. 나가기 직전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한참 설치해야 할 거 같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 아니면 내가 너를 찾지 못할 수도 있어.”

양준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응상의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양준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두 손으로 끊임없이 다리를 주무르면서 한동안 고통스러워했다.

비록 땅바닥에 떨어질 때는 적지 않게 완충했지만, 그래도 꽤 아팠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마비되었던 다리가 풀렸다. 양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하응상은 이곳에 위험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한 번 둘러본 결과, 산골짜기에는 확실히 어떤 이상도 없었다.

하응상은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녀가 무엇을 설치하러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창백한 그녀의 안색을 보면 설치하는 데 정신력과 원기 소모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나 체력 회복 좀 하고 있을게. 오늘 밤 자시(子時)가 되면 구음이 모이는 곳에 음기가 모일 거야. 그때부터 해 뜨기 전까지 반드시 구음응원로를 찾아서 거두어들여야 해. 시간을 놓치면 다시 숨어버릴 거야.”

하응상은 다급하게 한마디 당부하고는 단약 몇 알을 꺼내 입에 넣더니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양준은 옆에 서서 하응상을 호법(護法)하며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산골짜기 몇 리 밖, 혈전방과 풍우루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라한 모습으로 쉬고 있었다.

이번에 그들은 양준과 하응상을 따라 흑풍산에 깊이 들어왔다가 정말 큰 손해를 보았다. 처음 출발할 때는 17~8명이었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13명 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요수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혈전방 쪽에는 아직 7명이 남아 있었다. 그중 이합 경지 고수 한 명을 잃었고, 나머지 이합 경지 세 명도 조금이지만 모두 몸에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 문비진도 가슴 쪽에 한 자 길이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 두 기동 경지 제자도 피로에 절어 있었다.

풍우루 쪽 제자들은 6명밖에 남지 않았다. 기동 경지 1단계인 노랑을 제외하고 개원 경지 제자 네 명이 남았다. 그리고 육체 경지 제자 한 명이 운 좋게 살아남았다. 다만 놀란 나머지 그는 정신줄을 놓은 듯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온전한 사람은 용휘뿐이었다.

그는 신분이 특수했다. 전투 때마다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 안쪽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다.

며칠을 쫓아 겨우 이곳까지 이르렀다. 용휘는 인내심을 잃고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

“문 당주, 계속 쫓아야 해? 이제 더 쫓았다간 손실만 더 커질 거야. 할아버지께서 추궁하시면 누가 책임질 거야?”

문비진은 화가 치밀었다. 용휘가 이 과실을 자신이 떠안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네 비위나 맞추려고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이번 일이 이렇게 위험할 줄 알았으면 진작 그 작은 마을에서 양준을 죽여버리는 건데.’

하지만 생각은 이렇다 해도, 겉으로는 부드럽게 설명했다.

“쫓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보아하니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군요. 앞의 산골짜기가 바로 그들의 목적지입니다.”

이 말을 들은 용휘는 기운을 차렸다.

“그들이 찾으려는 물건이 바로 앞에 있다는 말이야?”

“맞습니다. 그들은 어제 여기에 도착한 듯합니다. 하지만 줄곧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목적지에 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문비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뭘 더 기다려? 우리가 여기까지 쫓아온 게 바로 지금을 위해서잖아.”

용휘는 색욕이 들끓었다. 천재지보 같은 건 그다음이었다. 그는 지금 당장 하응상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며칠 동안 힘들게 참았는데, 이제 어찌 더 참을 수가 있겠는가?

문비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비록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찾고자 했던 물건을 손에 넣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용 공자, 조금만 더 참으세요. 어차피 이제 그 여인은 달아날 수도 없습니다.”

용휘는 왠지 짜증이 났다. 지난번 작은 마을에서도 문비진은 똑같은 말을 했다. 결과적으로 여기까지 쫓아왔지만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런데 지금 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이상했다. 잠깐 생각을 하고는 용휘가 말했다.

“이틀만 더 기다리지. 이틀이 지나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공격하는 거야.”

문비진은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무능한 놈. 머릿속에 여자밖에 없군. 이런 자식이 앞으로 무슨 성과를 이루겠어.’

*밤이 깊어지고 바람이 거세졌다. 산골짜기에서 회복하던 하응상이 드디어 눈을 떴다. 피로가 완전히 가신 모습이었다.

하응상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양준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자시야. 그때가 되면 골짜기에는 음기가 가득 차게 돼. 사제는 내 옆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마. 사제는 경지가 높지 않아 체내 원기가 제한돼 있잖아. 음기를 감당할 수 없을 거야.”

하응상은 엄숙하게 당부했다.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단전에 양액 몇십 방울을 저장해 두었기에 원기 소모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해줄 수는 없었다.

이때, 갑자기 산골짜기에 이변이 일어났다.

이치대로라면, 대지 아래로 몇십 장쯤 움푹 팬 이런 골짜기는 사면이 암벽에 둘러싸여 있어 바람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 순간 갑자기 주변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윙윙하는 소리는 마치 야밤에 여인이 우는소리 같아 소름이 끼치고 간담이 서늘해지게 했다.

음산한 바람과 함께 지면으로부터 한기가 치솟았다. 이에 자극받은 양준의 진양결이 저도 모르게 운행되기 시작했다.

이런 한기는 한겨울에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이 가져다주는 매서운 느낌과는 달랐다. 오히려 귀기(鬼氣)가 서려 있어 뼛속까지 스며드는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진양결 운행이 한층 더 빨라져서야 양준은 마침내 마음속의 한기를 몰아낼 수 있었다.

“사제.”

하응상이 갑자기 양준을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기더니 보라색 옥패를 꺼내 손에 쥐었다.

하응상에게 다가서는 순간, 양준은 주위의 한기가 갑자기 사라지고 대신 온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내 곁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마. 이 옥패는 음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어.”

하응상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양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보라색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또 하나의 비보였다. 하응상이 손바닥에 쥐고 원기를 불어넣자, 옥패는 희미한 빛을 발산하며 주위의 음기를 전부 몰아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사저의 손목에 찬 팔찌도 비보, 지금 쥐고 있는 옥패도 비보. 도대체 비보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야?’

“왜 나를 그렇게 쳐다봐?”

하응상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목소리가 작아졌다.

양준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제야 뭔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옥패의 작용 범위는 그리 크지 않았다. 때문에 두 사람은 거의 붙어 서 있었다.

“네 원기는 매우 소중해. 여기서 낭비하면 안 돼. 구음응원로를 거둘 때 써야 한단 말이야.”

하응상은 말을 돌리며 자신의 주의력을 딴 데로 돌리려 했다.

“지금은 막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야. 이제 자시가 되면 온 산골짜기에 짙은 음기가 꽉 차게 돼. 사제는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마. 아니면 정말 끔찍한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몰라.”

“알겠어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누구도 말하지 않고 서로 붙어 서서 조용히 자시를 기다렸다.

하응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양준은 그녀의 난감한 모습을 알아차리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면 저 나가 있을게요.”

그는 음기의 침입을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그의 진양원기는 음기와 상극으로 설령 소모된다 해도 얼마 소모되지 않을 것이다. 하응상은 너무 부끄럼을 탔다. 양준은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괴로웠다.

“안 돼!”

하응상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내 곁에 서 있으면 돼. 절대 나가지 마.”

그녀가 고집을 부리자 양준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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