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69화 (69/853)

제 69장. 드디어 마주친 추격자

한편, 혈전방 일행들도 산골짜기 아래의 기척을 감지하고 모두 달려왔다.

아래쪽에서 음기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바라보며 문비진은 생각에 잠겼다.

반면, 용휘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문 당주, 저들이 이미 물건을 손에 넣은 거 아니야?”

양준과 하응상이 물건을 손에 넣는 순간, 그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공격할 수 있었다.

문비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아래쪽을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아래쪽에는 분명 무언가 이상이 있을 터였다. 다만, 그의 식견과 경험으로 문제점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용휘가 계속 보채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손에 넣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현상은 어떤 중요한 보물이 나타날 때만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아니면 우리…….”

문비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용휘가 귀찮아하며 끊어 버렸다.

“더는 기다릴 필요 없어. 보물이 나타난 거라면, 그들이 있든 없든 상관없잖아. 문 당주, 지금 공격해. 저들을 처리하고 나서 보물을 취해도 늦지 않아.”

문비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죠.”

용휘의 눈은 어둠 속에서 사악한 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양준,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지.’

혈전방 일행은 더 이상 행적을 감출 겨를도 없었다. 문비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산골짜기로 뛰어내렸다.

이때, 풍우루의 육체 경지 제자는 수십 장의 높이에 두려워 감히 뛰어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짜증을 내던 용휘가 그런 그를 발로 걷어찼다.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노랑 일행은 화가 났지만 감히 따질 수도 없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굴욕감을 느낄 뿐이었다.

*혈전방과 풍우루 패거리들은 너무 소란스럽게 내려왔다. 특히 육체 경지 제자가 죽기 직전 내지른 비명은 처량하기 그지없어 조용한 야밤에 먼 곳까지 퍼져나갔다.

양준과 하응상은 이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얼굴빛이 변하며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며칠 동안 이렇게 많은 적들이 자신들을 쫓아오고 있는지 정말 모르고 있었다. 문비진의 추적 능력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거리를 정확히 지켜 발각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응상은 이합 경지의 고수지만 너무 먼 곳의 움직임까지는 느낄 수가 없었다.

“누가 이곳에 온 거지?”

하응상은 예쁜 눈썹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

양준도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하응상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평소에 그저 평범한 산골짜기에 불과했다. 매년 7월 7일에나 이변이 일어날 뿐, 그때를 제하고는 전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 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마침 근처에 있다가 이쪽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끌렸거나, 아니면 계략적으로 두 사람을 내내 쫓아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후자의 가능성이 더 컸다. 온 사람들의 머릿수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뛰어내리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이곳은 흑풍산 안쪽이었다. 만약 이들이 정말 입산해 약을 구하거나 요수를 사냥하려는 것이라면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데려올 리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일 리도 없었다.

“좀 소란스러워질 거 같네요.”

생각을 다듬는 가운데 양준은 위험을 감지했다.

“우리 우선 피해요.”

“좋아!”

하응상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가려고?”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두 사람과 십여 장 떨어진 곳에 그림자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순간 하늘을 가르는 장풍이 두 사람의 걸음을 막았다.

양준과 하응상은 상대의 높은 실력에 깜짝 놀랐다. 둘은 동시에 재빨리 몸을 뒤로 피했다. 한편 체내의 원기를 운행시키며 은연중에 경계했다.

찾아온 이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내기 전에, 양준은 낯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문비진이 먼저 도착해, 양준과 하응상을 막아섰다. 그는 두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더니 더는 공격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양준이 그의 눈에 들 리 없었다. 오히려 얼굴을 가린 하응상 때문에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참 섬세하고 청순한 아가씨군.’

비록 얼굴을 똑똑히 볼 수는 없지만, 하늘의 별과 같이 맑은 눈동자는 절대 일반 여인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물며 하응상은 몸매도 빼어났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 여색을 탐하지 않는 문비진도 가슴이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용휘가 본다면 어떤 추태를 보일지 모를 일이었다.

세 사람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대치하는 중이었고, 그사이 양준은 줄곧 퇴로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중년 남자는 실력이 월등하게 높았다. 그가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모든 퇴로를 차단 당한 것 같았다.

“저 자는 진원 경지 고수야. 사제,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

하응상이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작은 목소리로 양준에게 말했다.

‘진원 경지라고?!’

양준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의욕을 억눌렀다.

잠시 뒤, 혈전방과 풍우루 패거리들이 도착했다. 사람들은 문비진 주위에 흩어져 서더니 모두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양준과 하응상을 바라봤다.

“네놈들은 누구지?”

양준은 실눈을 뜨고 훑어보았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의문스러워 저도 모르게 물었다.

“너를 죽이러 온 사람이다!”

용휘가 문비진의 뒤에서 홀연히 나타나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하응상을 보는 순간, 그의 눈은 음욕으로 뒤덮였다. 그는 거리낌 없이 하응상의 몸매를 훑으며 칭찬했다.

“아름답군. 아름다워! 참, 청순하고 매력적인 여인이야. 이번 걸음이 정말 헛되지 않았군.”

하응상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혐오감을 드러낸 채 조용히 양준의 뒤에 숨었다. 그녀는 실력이 양준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결국 세상 물정을 모르는 여인이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양준은 아무런 심적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평정심을 가지고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우리에게 원한이 있는 거야?”

지금 양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방은 절대 우연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필히 사전에 모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만나자마자 적의를 불태울 수 없었다.

다만 몽 주인 제자의 적인지, 자신의 적인지 확실하게 알아보아야 했다. 설령 죽더라도 제대로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있지.”

용휘는 승기를 잡고 있다고 확신했기에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혈전방 부방주 용재천의 작은 손자 용휘다. 네가 감히 호미아에게 집적거려 놓고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나 봐?”

양준은 깜짝 놀랐다. 이번에 찾아온 골칫덩이가 이런 사람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원한을 갖게 된 이유도 참 어처구니없었다. 자신은 호미아와 도합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 교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남에게 연적으로 취급되다니. 소인배는 참 종잡을 수 없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용재천을 언급하자, 그는 저번에 혈전방 광산 지역에서 만났던 노인이 떠올랐다. 양준은 그때 용재천이 주었던 굴욕을 잊은 적이 없었다.

용휘가 말을 마치자, 노랑도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노도는 내 동생이다. 성소봉과 함께 실종됐지. 그들의 실종이 너와 연관이 있느냐?”

뜻밖에도 두 패거리가 함께 자신을 노리고 찾아온 것이었다. 양준은 금세 사건의 자초지종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참, 대단하군. 처음으로 문파에서 멀리 떠나왔는데, 두 패거리에게 찍히다니. 이번에는 내가 사저에게 누를 끼쳤네.’

양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빛도 담담했다. 그는 손을 뻗어 하응상의 손가락을 가볍게 주무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따가 기회 봐서 저는 상관하지 말고 도망가세요!”

자신으로 인한 문제인 만큼 하응상이 자신과 함께 고생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 혼자서 가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을 데리고 있으면 짐이 될 뿐이었다.

양준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맞은편의 사람들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용휘가 크게 웃었다.

“도망가려고? 그렇게 쉽지는 않을걸. 내가 너희들과 함께 산속에서 여러 날 동안 고생했는데 보답이 없으면 안 되지. 양준, 오늘은 기필코 네 제삿날이 될 거다. 네 옆에 있는 계집은 내 노리개로 전락할 거고. 걱정하지 마. 싫증 날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죽일 테니까.”

양준은 얼굴빛이 차가워지더니 소리쳤다.

“어서 가요!”

동시에 손을 뒤로 돌려 하응상의 팔을 낚아챘다. 그녀의 경악스러운 눈빛을 보며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멀리 던졌다.

“어딜 도망가려고!”

문비진이 차갑게 웃었다. 그의 신형(身形)이 이리 번쩍 저리 번쩍하더니, 홀연히 하응상의 뒤에 나타나 그녀의 등에 일격을 날렸다.

문비진의 일격은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하응상의 퇴로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하응상의 반응도 느리지 않았다. 갑자기 양준에게 던져졌지만 문비진의 일격이 날아오기 전에, 이미 몸을 돌려 문비진과 맞섰다. 그러고는 상대방의 힘을 빌려 다시 가볍게 양준의 곁으로 떨어졌다.

이 광경을 본 양준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원 경지의 고수가 진을 치고 있고, 상대방은 머릿수도 많은 데다 실력도 높았다. 게다가 이미 사전에 모의를 한 듯했다. 아무래도 이번 재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문 당주, 저 여인을 잡아. 감히 반항하면…….”

용휘는 냉혹한 표정으로 음흉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사지를 부러뜨려도 상관없어. 얼굴만 상처 입히지 않으면 돼. 저 면사포 속에 어떤 얼굴이 숨겨져 있는지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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