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0화 (70/853)

제 70장. 음기가 모이는 날

“용 공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래 문비진은 혹여나 싸우다가 하응상에게 부상이라도 입히면 용휘에게 문책을 당할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손발을 부러뜨려도 괜찮다고 하니 이제 염려할 일이 뭐가 더 있겠는가?

‘용 공자가 그래도 스스로를 좀 알고 있군. 자신이 저 여인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야. 여인의 손발을 분질러 버리면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

양준과 하응상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얼굴에 노기를 드러냈다.

문비진이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용 공자의 말을 들었으면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고분고분 얌전하게 잡히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지.”

하응상은 가볍게 침을 뱉었다.

“꿈도 꾸지 마.”

“그래, 어쩔 수 없군.”

문비진은 차갑게 웃었다.

“네가 자초한 거야.”

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는 공중으로 몸을 날리더니 연신 장풍을 날렸다. 계속해서 장풍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호랑이의 포효 소리가 은은하게 섞여 들려왔다. 그가 날린 장풍이 갑자기 여러 마리의 호랑이 머리로 변하더니 으르렁거리며 하응상에게 달려들었다.

하응상은 장풍에 담긴 위력을 감지하고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춤추듯 신속하게 지풍(指風) 몇 개를 날리며 맞섰다. 곧이어 괴이한 인결(印訣)을 만들어 이마의 푸른 보석을 찍자 온몸의 원기가 강렬하게 요동쳤다.

그녀가 날린 지풍은 위력이 작지 않았지만, 문비진의 공격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달려드는 호랑이 머리의 속도를 약간 늦추기만 했을 뿐 곧 완전히 먹혀 버렸다.

이내, 문비진의 공격이 하응상의 코앞에 이르렀다.

너무 갑자기 시작된 공격에 양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호랑이 머리 몇 개가 줄지어 하응상을 물려고 달려들었다. 이대로라면 당장 그녀가 중상을 입을 터였다. 이때 갑자기 그녀 이마의 푸른 보석에서 신비하고 묘한 잔물결이 일었다. 그 잔물결과 함께 반원 모양으로 빛의 장막이 불쑥 나타났다. 빛의 장막은 마치 거꾸로 엎어 놓은 커다란 사발처럼 그녀와 양준을 감쌌다.

문비진의 공격이 마침내 빛의 장막에 이르렀다. 그러나 위풍당당하던 호랑이 머리는 빛의 장막에 닿자마자 슬픈 울부짖음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하응상은 담담한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문비진은 착지하고 나서 놀란 눈빛으로 빛의 장막을 바라보더니 엉겁결에 소리 질렀다.

“천급 비보다!”

이 말에 줄곧 음란한 눈빛을 드러내던 용휘를 포함해서 모든 이가 눈이 벌겋게 되었다.

“뭐라고?”

용휘는 가까스로 하응상의 몸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문비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문 당주, 방금 뭐라고 했어?”

문비진은 얼굴 근육을 부들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눈에는 탐욕의 빛이 번쩍였다.

“천급 비보입니다! 제 공격을 손쉽게 막아낼 수 있다니. 저건 천급 비보가 틀림없습니다.”

“정말이야?”

용휘는 저도 모르게 흥분했다.

‘아니, 양준 이 피라미 같은 자식을 없애려 했을 뿐인데, 웬 떡이야. 미인뿐만 아니라 천급 비보까지 얻게 되다니. 게다가 수비형 비보가 공격형 비보보다 훨씬 더 귀하거늘.’

천급 비보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혈전방에도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호만이 소유하고 있었다.

‘비보를 할아버지께 드리면, 할아버지 실력이 더 상승할 거야. 그러면 호만도 상대가 안 되겠지. 꼭 빼앗아야 돼!’

용휘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문 당주, 저 물건을 빼앗으면 장차 혈전방 부방주 자리는 당신 거야.”

문비진은 그 말에 기운을 번쩍 차렸다.

“용 공자, 감사합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문비진은 이 천급 비보의 수비를 깨뜨리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방금 전 그의 일격이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하응상의 실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빛의 장막은 절대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공격하면 빛의 장막을 깨뜨릴 기회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공격해!”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비진은 가볍게 소리를 지르며 먼저 빛의 장막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이와 동시에 혈전방 제자들도 자신들의 공법을 펼쳤다.

빛의 장막에는 순식간에 일련의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장막 속에 싸여 있는 하응상과 양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 모든 공격이 빛의 장막에 의해 차단되었다.

돌발적인 이변은 양준에게 탈출의 희망을 심어 주었다. 그의 눈에는 영리한 빛이 반짝였고 두뇌도 급속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빛의 장막이 깨지기 전에 퇴로를 찾아야 했다.

“사제, 무섭지 않아?”

하응상이 갑자기 입을 열어 한마디 물었다.

“네?”

양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 죽을지도 몰라. 두렵지 않아?”

“두렵긴요. 사저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양준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는 용휘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저 자를 사로잡으면 흥정할 패가 생기는데.’

그러나 혈전방 제자들의 봉쇄를 뚫고 용휘를 사로잡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하응상이 나서더라도 아마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난 두렵지 않아!”

하응상이 가볍게 웃었다.

“저 자들은 아직 무엇을 마주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어.”

양준은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미처 그녀의 말뜻을 알아채기도 전에 갑자기 산골짜기의 날씨가 급변했다.

자시가 되었던 것이다.

7월 7일, 음기가 모이는 날. 구음이 모이는 이곳. 땅 위에서는 갑자기 한 줄기 또 한 줄기의 음침하고 차가운 음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음기가 용솟음치는 모습은 마치 대지에서 기괴한 연기가 끊임없이 위로 뻗쳐오르는 것 같아 사람을 두렵게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산골짜기 전체의 온도가 하락했다. 뼈가 시릴 정도로 몰려드는 한기에 모든 이가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다.

빛의 장막을 포위 공격하고 있던 혈전방 제자들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원기를 운행시켜 음기의 침입을 막았다.

다행히도 음기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 살상력은 없었다. 운기조식을 해서 막으면 큰 피해는 없었다. 풍우루 제자들도 막아 낼 수 있었으므로 혈전방 패거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이곳에서 오래 머물면 온몸의 원기가 소진되어 그대로 얼어 죽을 수도 있었다.

잠시 뒤, 산골짜기 전체가 음기에 묻혔다.

이때, 하응상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몸놀림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기괴한 수인(手印)을 연이어 날림과 동시에 그녀의 체내 원기가 수많은 줄기로 나뉘어 사면팔방으로 흩어졌다.

하응상의 동작에 따라, 산골짜기의 짙은 음기가 반응을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펄펄 끓는 물과도 같았다. 음기는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듯 산골짜기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용솟음쳤다. 그 장면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안 돼!”

문비진이 놀라서 소리 질렀다. 그는 하응상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진원 경지 5단계 고수로서 눈썰미는 어느 정도 있었다.

‘여인이 산골짜기에 무슨 진법을 설치해 놓은 모양이군. 지금 진법을 가동시키려고 하는 거야.’

만약 미지의 진법이 가동된다면, 무슨 이변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힘내. 그리고 어서 이 장막을 찢어 버려!”

문비진이 소리쳤다. 진법이 가동되기 전에 하응상을 사로잡아야 했다. 아니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너희들도 어서 도와. 아니면 당장 죽여 버리겠다!”

문비진이 풍우루의 제자들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노랑 일행은 감히 머뭇거리지 못했다. 원래 이런 격전에 그들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들도 자기 주제를 아는지라 줄곧 옆에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비진이 명을 내리자 부득이하게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공격은 매우 미약했다. 그래도 빛의 장막의 수비를 약간이나마 소모시킬 수는 있었다.

모든 일행이 죽을힘을 다해 빛의 장막을 맹공격했다.

빛의 장막에는 겹겹의 잔물결이 일면서 곧 찢어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장막 안에서 양준은 안절부절못했다.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자신은 실력이 너무 낮아 아예 손댈 수가 없었다. 오직 하응상의 곁을 지키면서 만에 하나 빛의 장막이 깨질 경우,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려 할 뿐이었다.

하응상의 동작은 점점 더 빨라졌다. 두 손은 이미 잔영(殘影)이 보일 정도였다. 산골짜기의 음산한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더 거세졌다.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아 으스스했다.

문비진의 어두운 얼굴에는 일말의 탐욕이 섞여 있었다. 수비 비보의 등급을 과소평가한 듯했다. 이 비보는 적어도 천급 상품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리 장시간 동안 깨지지 않고 수비할 수가 없었다.

천급 상품이라, 신유 경지 고수의 온 힘을 다한 일격도 견뎌 낼 수가 있었다. 이 비보를 가지고 있으면 명줄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았다.

족히 30분의 시간이 지난 뒤, 빛의 장막에 자그마한 틈이 생겼다.

틈이 나타남에 따라 하응상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그녀는 수비 비보를 가동하는 데 대량의 원기를 소모했다. 지금은 또 미리 설치해 둔 진법도 가동해야 했다. 그녀의 체내 원기는 마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콸콸 밖으로 흘러나갔다.

희망이 보이자, 문비진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재촉해 공격하는 한편, 자신도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그는 몸의 원기를 폭발시켜 일격을 날렸다.

문비진의 일격이 빛의 장막을 내리치자 장막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응상은 몸을 비틀거리더니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찌지직-

드디어 빛의 장막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금이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