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1화 (71/853)

제 71장. 궁지에 몰리다

“하하하!”

문비진은 파안대소했다. 그는 이제 전력을 다해 한 번만 더 일격을 날리면 빛의 장막이 깨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가 다음 일격을 날리기 직전, 산골짜기에서 들끓던 음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귓가에 울리던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던 소리도 한순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하응상은 하늘의 별처럼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이며 부드럽게 소리쳤다.

“봉인(封)!”

그 순간, 하응상의 준비가 마침내 끝났다.

철커덩-

하늘에서 갑자기 혼을 빼앗는 곡조와 같은, 쇠사슬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놀라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공중에는 굵고 검은 쇠사슬들이 떠 있었다. 쇠사슬은 모두 짙은 음기로 만들어져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음기 쇠사슬은 혈전방과 풍우루 패거리의 머리 위에서 맴돌더니, 이내 갑자기 아래로 덮쳐들었다.

문비진은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결국 한 걸음 늦었음을 알면서도 서둘러 빛의 장막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같은 시간, 하응상은 몸을 휘청거리며 더는 천급 비보를 가동하지 못했다.

문비진이 날린 일격은 결국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그대로 하응상에게 날아들었다.

결정적인 순간, 줄곧 옆에서 경계하던 양준은 드디어 자신이 나설 기회를 찾게 되었다. 장풍이 하응상을 적중하기 바로 직전, 양준은 하응상을 와락 잡아당겼다. 그러나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장풍은 그녀의 몸을 쓸고 지나갔다. 여린 몸이 흠칫하더니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양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최대한 빨리 달아났다.

적들의 수가 너무 많은 데다, 실력도 너무 강했다. 그는 그들과 정면으로 충돌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양준이 하응상을 데리고 도망칠 때, 음기 쇠사슬이 혈전방 제자들을 향해 덮쳤다.

쇠사슬은 모두 여덟 개였다. 문비진은 하응상의 중점 공격 대상으로, 쇠사슬 세 개가 차례로 그에게 덮쳐들었다. 나머지 쇠사슬 다섯 개도 혈전방 제자들에게 덮쳐들었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은 놀란 얼굴을 하고서 이젠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쇠사슬은 그들을 휘감은 뒤, 곧바로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대로 쇠사슬 여덟 개가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문비진은 문득 자신의 진원 경지 실력이 무형의 힘에 억눌린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끙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입을 벌리는 순간, 한 줄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혈전방의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고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실력이 좀 뒤처진 기동 경지 제자는 순간 숨이 끊기더니 땅바닥에 쓰러져 절명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야!?”

용휘가 크게 화를 냈다. 방금 전까지 그는 하응상의 천급 비보가 깨진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응상을 가지고 놀아야 쾌감을 느낄지 궁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자기 쪽에서 한 명이 죽고, 다섯 명이 중상을 입었다. 심지어 문비진조차 무기력해졌다.

용휘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멍청하게 주는 떡도 못 받아먹다니!”

“용 공자, 진정하세요.”

문비진은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을 가까스로 참고, 원기를 돌리면서 한기를 몰아내며 힘없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저 여인이 아마 사전에 이곳에 진법을 쳤던 모양입니다.”

“쓸모없는 것들!”

용휘가 화가 나서 날뛰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을 상대했는데도 이리 여지없이 무너지다니.”

문비진의 얼굴에는 한 줄기 노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억지로 화를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 여인도 지금 원기를 모두 썼으니 아주 힘들 것입니다. 지금 그들을 따라잡는다면, 그들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를 바 없습니다.”

용휘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뭘 기다려. 빨리 쫓아가!”

문비진은 눈길을 돌려 풍우루의 제자들을 바라보더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너희들에게 살 기회를 주겠다. 만약 그 여인을 잡아 온다면, 이 문비진이 너희들을 안전하게 이곳에서 데리고 나갈 것이다.”

방금 전, 하응상의 쇠사슬 여덟 개는 모두 혈전방 제자들을 겨냥했다. 덕분에 풍우루 제자들은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상태도 혈전방보다는 훨씬 나았다.

노랑은 감히 문비진의 명령에 반항할 수 없었다. 지금 상대방이 아무리 형편없어 보여도 자신들이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노랑이 입을 열어 물었다.

“문 선배님께 감히 묻겠습니다. 그 여인이 반격할 힘이 없는 게 확실합니까?”

“확실하다.”

문비진이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지금 쫓아가서 너희들 중 누구라도 공격만 한다면 그녀를 잡을 수 있다. 그 여인을 데려와서 용 공자께 넘기면 그에 따른 이익이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저희가 추격하겠습니다!”

노랑의 눈에는 광기와 독기가 번쩍였다. 그는 요 며칠 혈전방에게 적지 않게 괴롭힘을 당했다. 함께 온 풍우루의 사제들도 여러 명이 죽어 나갔다. 육체 경지 제자들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노기를 문비진에게 발산할 수 없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노기가 양준과 하응상에게로 전이되었다.

하응상은 이미 반격할 힘이 없었다. 더군다나 양준은 처음부터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풍우루 패거리가 음산한 산골짜기 뒤로 사라진 뒤에야 문비진이 혈전방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쫓아가서 그 여인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 그 여인은 배후에 뒷받침해 주는 강자가 필히 있을 것이다. 일단 소식이 누설되면 우리 혈전방에 큰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다.”

“네.”

혈전방 제자들은 지금 하응상이 펼친 진법으로 인해 허약하기 그지없었지만, 일이 중대했기에 억지로 버티며 풍우루 제자들을 쫓아갔다.

결국 이곳에는 용휘와 문비진 두 사람만 남았다.

용휘가 좀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문 당주,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문비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여인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제 실력이 기동 경지 3단계로 억제되었습니다. 몸 안에 스며든 쇠사슬이 원기 운행과 단전을 묶어 버렸어요.”

“세상에 그런 수가 있단 말이야?”

용휘는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문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러한데 다른 제자들은 아마 더 심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은 3할도 안 될 거예요.”

“그럼 어떡하면 돼?”

용휘가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문비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여인은 엄청난 진법을 사용한 데다, 또 오랫동안 수비 비보를 가동했어요. 지금 체내의 남아 있는 원기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 일격에 당하기도 했고요. 그녀는 꼼짝없이 잡힐 것입니다. 그들을 찾기만 하면, 천급 비보도 여인도 모두 용 공자의 것입니다.”

용휘는 이 말을 듣고서야 안심했다.

“그렇군, 아까는 내가 흥분해서 말이 좀 심하게 나왔어. 마음에 두지 말기를 바라. 일이 성사되면 꼭 할아버지께 문 당주의 노고를 이야기 드릴게.”

“괜찮습니다. 모두 한 집안 식구지 않습니까.”

문비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만 지금 용 공자께서는 저를 위해 호법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체내의 쇠사슬을 없앨 수 있는지 좀 시도해 보겠습니다.”

“좋아!”

두 사람은 이야기하는 내내 양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하응상이야말로 난감한 존재였다. 양준은 보잘것없었다. 지금 하응상은 온몸의 원기가 완전히 소진되어, 마치 가시를 다 뽑힌 고슴도치와 같았다. 누가 손을 쓰더라도 그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각, 양준은 하응상과 함께 산골짜기 변두리의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길이가 십 장가량 되는 바위틈에 이르렀다.

양준은 하응상을 안에 들어가게 하고 본인은 밖에서 막았다. 바위틈 앞에는 관목 수림이 있어 마침 입구를 막고 있었다.

두 사람은 좁은 틈에 비비고 서 있다 보니 거의 한 몸이 되었다.

“말하지 마세요. 누가 쫓아오고 있어요!”

양준이 한 손으로 하응상을 껴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하응상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죽였다.

얼마 안 되어 노랑이 사람들을 데리고 그들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들은 서로 십몇 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 깊고 산골짜기에 음기가 짙은 탓에 두 사람은 완벽하게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노랑 일행이 멀리 간 다음에야, 하응상은 참지 못하고 피를 뿜었다. 쓰고 있던 면사포가 삽시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방금 전 문비진의 일격에 그녀는 결국 상처를 입고 말았다.

“괜찮아요?”

양준이 긴장해서 물었다.

“단약을 좀 꺼내 줘!”

하응상이 맥없이 말했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져 땅바닥에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

“어디 있어요?”

“품 안에!”

양준은 서둘러 그녀의 품 안에 손을 들이밀었다. 이내 깜짝 놀라 다시 손을 움츠리더니 눈앞의 하응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만 참으세요!”

양준은 지금이 위급한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는 꾸물대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신신당부하고서야 다시 손을 넣어 그녀의 옷 속을 더듬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양준이 옷 속을 더듬는 한편 위로했다.

하응상은 끝내 참을 수가 없어 억지로 기운을 내어 힘없이 말했다.

“다른 쪽에 있어!”

“아…….”

양준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니까 한참을 찾아도 못 찾았지. 이쪽에 없었군.’

그가 다시 다른 한쪽에 손을 깊이 넣어 찾은 끝에 겨우 작은 병 몇 개를 찾아냈다.

“어느 병인가요?”

양준이 물었다.

“가운데 그거.”

하응상은 힘이 없어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눈짓으로 가리켰다.

양준은 재빨리 가운데 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병안에서 단약을 쏟아내 면사포를 들고 전부 하응상의 입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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