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장. 온몸을 감싼 사악한 기운
첫 번째 접전에서 양준이 발휘한 실력은 그가 관찰했던 것처럼 그저 개원 경지 4단계밖에 안 되어 무서워할 것이 없었다.
두 번째의 접전에서 양준의 실력은 개원 경지 5단계로 상승했다.
네 번째, 양준이 휘두른 주먹과 폭발시킨 원기의 파동은 개원 경지 6단계 정도였다.
일곱 번째는 개원 경지 7단계!
열두 번째는 개원 경지 8단계!
싸움이 계속될수록 양준의 실력은 쭉쭉 상승하고 있었다. 참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기이한 일이었다.
게다가 실력의 상승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노랑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도 양준의 실력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올라갈지 알 수 없었다. 만약 기동 경지까지 올라간다면 그는 승산이 없었다. 상대방의 원기가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노랑은 이미 더 이상 양준과 정면으로 접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아무런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접전할 때마다 양준의 몸은 돌처럼 제자리에 박힌 채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연속으로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노랑은 신법을 이용하여 재빠르게 변하는 술수를 사용하며 돌파구를 찾아 양준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양준의 수비는 간단하나 물샐틈없이 촘촘하여 필살기를 쓸 기회조차 찾지 못했다.
마침내, 양준의 실력이 개원 경지 9단계가 되었다!
노랑은 눈 주변이 떨렸다. 그는 이번 접전이 시작됨에 따라 양준의 실력이 역시나 또 한 단계 상승하여 개원 경지 정상에 다다른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원기 파동은 드디어 잠잠해졌다. 더 이상 위로 오르려는 추세가 보이지 않았다. 이 발견에 노랑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동 경지 1단계로, 개원 경지 9단계에 비했을 때 한 단계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이 한 단계 경지의 차이는 큰 차이였다.
그래서 노랑은 그럼에도 양준을 격살할 자신이 있었다.
‘이놈은 분명 실력을 증가시키는 단약을 먹어 이렇게 되었을 거야. 하지만 모든 단약은 다 후유증이 있는 법이지. 저놈의 본질은 겨우 개원 경지 4단계밖에 되지 않으니 체내에 저장한 원기는 나와 비할 바가 못 돼!’
노랑은 양준이 힘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하여 목숨을 취할 생각이었다.
노랑이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 있을 때, 양준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기척이 들리더니 어둠 속에서 붉은빛이 폭발하며 노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자세히 보니, 양준의 몸에서 불길이 사납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불길이 아니라 체내의 원기가 일정한 정도로 짙어지면 밖으로 내뿜어지는 열기였다. 붉고 뜨거운 원기가 그를 겹겹이 둘러쌌다. 일순간, 뜨거운 열기가 썰물처럼 밀려오자 산골짜기의 음기는 마치 상극을 만난 것처럼 좀처럼 주변에 모여들지 못했다.
양준의 얼굴은 이 뜨거운 빛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홀딱 벗은 윗몸의 단단한 근육들이 팽팽해졌다.
그의 두 주먹은 피범벅이었고, 복부에는 반 척 정도 길이의 검에 베인 상처가 있었다. 여전히 밖으로 피가 흐르고 있어 그 모습은 몹시 공포스러웠다. 그의 두 눈은 벌게져서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끝없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노랑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연신 뒤로 물러났다. 그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풍마(瘋魔)?”
그는 양준이 싸우는 도중에 체내의 원기를 통제하지 못해 원기가 폭주하여 의식을 잃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기동 경지 이후의 경지에서만 나타날 수 있었다. 한낱 개원 경지의 무인에게 어떻게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풍마라고?”
양준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았다. 그의 시선은 공포스러웠으나 얼굴은 한없이 평온한 것이 입마 후의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비웃으며 말했다.
“식견이 짧기는!”
말하는 사이, 온몸을 불태우던 원기는 순식간에 거두어졌고, 하늘로 치솟던 불길도 사라졌다. 두 주먹을 감싸고 있는 붉은 진양원기만 남았다.
보아하니 이 두 주먹은 불타오르는 불길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불길은 바람에 마구 휘날렸지만 꺼지지는 않았다.
“의식이 아직 남아 있었어?”
노랑은 의아한 눈길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준의 눈에서 이성을 찾으려고 했지만 벌건 눈동자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기색도 없었다. 오직 광기 어린 전의와 살육의 기운만 남아 있었다.
‘그럴 리 없는데. 이건 분명 풍마의 상태인데, 그의 두 눈은 이미 인간의 모습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사고가 가능한 거지?’
“내가 풍마라고?”
양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 한 걸음에 그와 노랑 사이의 거리는 극도로 가까워졌다.
노랑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양준의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노랑은 다급히 뒤로 물러서며 공격 태세를 취했다. 양준의 발걸음을 막으려는 시도였다.
양준의 불타오르는 오른쪽 주먹이 그의 손을 강타했다. 그러자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리며 노랑의 다섯 손가락에 맞았다.
노랑의 질겁한 비명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종잇장처럼 하늘 높이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다섯 손가락에서는 극심한 고통이 전해졌다. 시선을 돌려 보니 그의 손가락은 구부려져 펼 수조차 없게 되었다.
손가락은 온통 빨갛게 데인 데다가 뼈도 모두 부러진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극악무도한 뜨거운 원기가 그의 몸속으로 침입하여 불길이 그의 경맥, 그리고 피와 살을 태우고 있었다.
노랑은 지체하지 않고 얼른 다른 손을 내밀어 팔을 몇 번 찍어서 상대방의 원기가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 동작을 마친 그는 눈앞에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어 보니 양준이 이미 자신의 옆에 다가와 있었다. 양준의 두 주먹 위의 불길은 점점 더 짙어졌다.
지금 이 상태에서 노랑이 어떻게 더 싸울 수 있겠는가?
그제야 그는 이제 막 기동 경지 1단계로 진입한 자신이 개원 경지인 양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의 기운을 다 쓴 노랑은 몸을 돌려 신법을 펼치며 뒤로 뛰어갔다. 동시에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휘파람 소리는 당혹스러움과 공포를 담은 채 먼 곳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양준은 발아래에 불빛이 나타난 것을 느꼈다. 속도는 그조차도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빨라졌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노랑의 뒤를 쫓으며 계속해서 거세게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퍽
노랑은 연속으로 몇 번이나 주먹에 얻어맞았지만 전혀 반항할 기운이 없었다. 그는 주먹에 맞아 머리가 어지럽고 의식이 몽롱해졌다.
한참 도망가던 노랑은 자신이 양준의 추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순간, 소년의 혈기가 폭발한 그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서 일그러진 얼굴로 울부짖었다.
“응격장공(鷹擊長空), 양준, 죽어라!”
이건 노랑이 수련한 가장 강한 공법이었다. 온몸의 원기를 두 손에 모은 뒤, 두 손을 겹쳐서 몸 앞을 막아 보호했다. 그리고 양준의 가슴팍을 조준하여 두 손으로 찢으려고 했다.
기동 경지 1단계의 무인이 전력으로 폭발하자 지금의 양준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노랑의 두 손에 거대한 살상력이 담겨 있는 것을 느끼고 안색이 무거워졌다.
만약 그에게 잡힌다면 자신의 가슴팍이 바로 찢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양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불길을 내뿜는 주먹도 그 기세가 약해지지 않은 채, 노랑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두 사람 모두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이건 마지막 일격일 것이 분명했다.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격이었고, 한쪽이 죽지 않으면 다른 한쪽이 죽는 일격이었다!
퍽!
양준의 주먹은 노랑의 얼굴을 내리쳤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면서 노랑은 거대한 힘의 작용에 뒤로 날아가며 자빠졌다. 그는 허공에서 몇 바퀴나 구른 다음 ‘털썩’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솩!
노랑의 쌍조(雙爪)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양준의 가슴팍에 닿았다. 하지만 예상처럼 양준의 배를 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양준의 가슴팍에 반은 깊고 반은 옅은 핏자국 열 갈래를 남겨 놓았을 뿐이었다.
결정적인 순간, 양준이 몸을 옆으로 돌린 것이 아주 중요한 작용을 했다. 노랑의 한 손의 손가락뼈는 이미 부러져서 응격장공을 펼쳐도 두 손의 힘이 달랐다. 양준이 몸을 돌린 것은 바로 이 점을 파악하여 그의 두 손이 동시에 힘을 쓸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노랑의 이 술수를 파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대응 방식은 순전히 운이 좋은 결과이기도 했고, 본능적인 반응이기도 했다. 양준은 싸우는 도중에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목숨을 건 결투가 이렇게 승부가 난 것이다. 양준은 여전히 온몸에 사악한 기운을 품은 채,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노랑은 죽은 개처럼 땅에 널브러져 피범벅이 된 얼굴로 악에 받쳐 자신에게 걸어오는 양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죽어서도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노랑은 입안에서 맴도는 핏물을 꿀꺽 삼키고 독하게 말했다.
양준은 허리를 숙이고 그를 바라보다가 발 한 쪽을 들어 거세게 밟았다.
“하하… 혈전방의 사람들이 내 신호를 듣고… 죽이러 올 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랑은 양준에 의해 목이 으스러져 목숨을 잃었다.
양준에 의해 풍우루의 다섯 명은 모조리 전멸했다.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체내에서 소용돌이치는 열기와 격앙된 전의를 느끼던 양준은 차가운 얼굴로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