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장. 대담한 도발
휘파람 소리가 전해지자 양준은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날뛰었다. 휘파람 소리가 구름을 뚫고 산골짜기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어디 한 번 싸우러 와봐! 혈전방 놈들아!’
이건 싸움을 청하는 신호이자 대담한 도발이었다!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양준은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번거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산골짜기는 사방이 몇십 리나 될 정도로 매우 컸지만 밤이 깊어 조용하니, 분명 그들이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올 것이다.
사실 지금 상황에 가장 맞는 행동은 그냥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그는 연속으로 세 번이나 싸운 데다, 다섯 명을 죽인 양준의 체력은 이미 대단히 소모된 상태였고, 몸의 상처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혈전방 사람들과 정면으로 접전할 수 있겠는가?
이곳을 떠나 몸이 회복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기회를 틈타 공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떠나지 않았고, 또 떠날 생각도 없었다. 지금의 그는 모든 기운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만약 이곳을 떠난다면 분명 싸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일단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불굴지오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불굴지오의 힘이 없다면 그는 겨우 개원 경지 4단계의 무인일 뿐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적을 해치우는 거야!’
양준은 절정에 오른 기세를 이용하여 이곳에 온 혈전방 제자들을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응상의 예상이 정확해야만 가능했다.
혈전방 사람들은 풍우루의 제자들과 급이 달랐다. 그들 대부분은 이합 경지의 고수였다. 평소라면 이런 등급의 무인들과 상대도 될 수 없겠지만, 지금 그들은 구음팔쇄진에 봉인되어 실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양준의 휘파람 소리가 전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응상은 번쩍, 눈을 떴다. 긴장과 후회로 얼룩졌던 마음이 드디어 안도되었다.
‘죽지 않았어! 아직 죽지 않았어!’
하응상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줄곧 양준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또 양준이 자신을 이곳에 내버려 둔 채,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양준이 떠난 뒤, 하응상은 자책과 후회에 잠겼다.
상대편이 인원도 훨씬 많은 데다 양준보다 실력도 높았기에 그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필사적으로 그를 말렸어야 했어. 내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그녀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양준이 떠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녀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으로 데리고 온 탓에 양준을 이런 큰 위험에 끌어들인 것 같아, 하응상은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며, 풍우루와 혈전방이 양준을 쫓아 이곳까지 왔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모든 일의 원흉은 사실 양준이었다.
하응상은 이제서야 안심되었다. 그녀의 사제는 아직 무사했다. 게다가 양준의 휘파람 소리에는 두려움 대신 전의가 느껴졌다. 그건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신호였다.
그가 지금 뭘 마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응상은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회복하고 나가서 양준을 돕고 구해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골짜기 저편에서 체내의 쇠사슬을 해제하던 문비진과 옆에서 그를 호법하고 있던 용휘도 양준의 휘파람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이 소리에 문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집중이 흐트러진 그는 왈칵, 피를 내뿜었다.
“빌어먹을!”
문비진은 버럭 화를 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양준의 휘파람 소리에 놀라서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문 당주, 어떻게 됐어?”
용휘가 신경 쓰는 척 물었다.
문비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되겠습니다. 이 물건은 제 예상을 뛰어넘어요. 그 여인은 누구의 제자이기에 이토록 신묘한 진법을 펼칠 줄 아는 건지.”
쇠사슬은 그의 경맥 안 원기의 흐름을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단전마저 봉쇄하여 실력이 겨우 기동 경지 3단계 정도밖에 작동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방금 전에 소모로 인해 실력은 더 많이 줄어들었다.
문비진은 화가 나다 못해 지금 당장 양준과 그 여인을 잡아서 백 번이고 찢어 죽이고 싶었다. 진원 경지 5단계의 고수가 두 어린 후배에게 당해 이 꼴이 되다니. 그가 언제 이런 수모를 당해 보았겠는가?
“문 당주, 걱정하지 마. 그 녀석이 행적을 드러낸 것을 보면 아마도 이미 죽은 것 같아.”
용휘는 단호한 기색으로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문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양준의 휘파람 소리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서 내는 소리가 아닌, 기세를 주체하지 못해 전의를 불태우며 내는 소리였다.
하지만 한낱 개원 경지 4단계의 무인이 어떻게 나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문비진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양준이 지금쯤 독 안에 든 쥐처럼 죽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산골짜기 밖에서 갑자기 백발의 노인이 날아왔다.
이 노인은 숨결이 길고 원기의 파동도 은밀한 것이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는데 눈 깜짝할 새에 백 장을 날았다.
노인은 걱정과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더니 깊이 후회했다.
“큰일이야, 늦은 것 같아. 아이고, 응상아, 내가 도착할 때까지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노인은 날아가면서 중얼거렸다.
이 노인은 바로 공헌당의 주인 몽무애였다!
몽무애는 창피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노파심에 제자더러 구음회합지에 가지 말라고 설득했다. 반드시 구음응원로를 제련해야만 진원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응상은 예상 밖으로 순순히 응했다.
몽무애는 기분이 좋아서 하응상이 준비한 요리 몇 가지와 술을 신나게 먹고 마셨다. 그는 술과 안주를 먹으면서 양준의 나쁜 점을 말하며 제자더러 그를 멀리하라고 당부했다. 하응상이 양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몽무애는 미리 그 싹을 자를 생각이었다.
여태까지 하응상은 줄곧 고분고분하고 마음씨가 착해서 몽무애는 그런 그녀를 보물처럼 아꼈다. 애지중지하며 조심스럽게 다루어서 그녀는 순진하기만 했지 사람 마음이 무서운 줄 몰랐다. 혹시나 양준이 나쁜 마음을 먹고 하응상을 꼬드기면 어찌하겠는가? 만약 하응상이 마음이라도 움직인다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다.
그래서 몽무애는 걱정된 마음에 양준이 얼마나 성격이 나쁘고, 얼마나 여색에 미쳤고, 또 얼마나 양심이 없는지 등 온갖 나쁜 일을 다 양준에게 뒤집어씌우며 그를 모함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몽무애는 엄숙한 얼굴로 하응상에게 당부했다.
“응상아, 이런 사람은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아주 멀리멀리!”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앞에 놓인 접시에 푹 고꾸라졌다.
그리고 한숨 자고 깨어나 보니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하응상이 자신의 음식에 약을 듬뿍 넣었던 것이다.
제자에게 당한 것을 깨달은 몽무애는 창피해서 울고 싶어졌다. 이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그는 세수도 하지 않고 바로 능소각에서 출발해, 한 걸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그는 매우 후회되었다. 제자가 이토록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을 알았더라면 양준에 대한 하응상의 인상을 나쁘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비록 하응상의 몸에는 비보가 많아 많은 위험을 피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흑풍산 내부인지라 강대한 요수에게 걸려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어쩐다는 말인가?
‘만약 내가 따라왔더라면 이런 걱정은 없었을 텐데, 괜히 입방정을 떨었어.’
몽무애는 자신의 뺨을 몇 대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구음회합지까지는 아직 십 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몽무애는 그곳으로부터 전해지는 차가운 음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공중에서 긴장된 얼굴로 앞을 내다보았다.
산골짜기 안에는 음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무형의 원기에 속박당하고 있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본 몽무애는 불안하던 마음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었다.
구음팔쇄진이 작동되었다는 것은 하응상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다는 말이었다!
“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은 듯하군.”
몽무애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 며칠 동안 길을 재촉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심장병에 걸릴 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몽무애는 산골짜기 근처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는 들어가지 않고 산골짜기 내부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안의 음기가 너무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신식으로 살펴보려고 해도 안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구음팔쇄진이 이미 작동했다는 것은 그의 제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저 그녀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진법에 속박되어, 안에 있는 사람은 나오지 못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다. 몽무애는 진법을 파괴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제자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음, 기다려 보자!’
몽무애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생각을 잘못했다. 하응상이 진법을 친 것은 구음응원로를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혈전방 제자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것이었다. 몽무애는 지금 하응상이 원기를 다 소모하고, 양준은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두 사람 모두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알았더라면 그는 분명 그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고 진법을 파괴하여 안에 있는 문비진 무리를 천백 번이고 죽였을 것이다.
*산골짜기 안에서 양준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곧 들이닥칠 강적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슉- 슉- 슉-
사방에서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