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7화 (77/853)

제 77장. 만만치 않은 상대

양준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하응상이 숨은 곳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번 전투를 마친 뒤에도 자신이 살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최선을 다했기에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솩- 솩- 솩-

세 갈래의 그림자가 거의 동시에 양준의 옆으로 다가왔다. 곧이어 한 사람이 더 도착했다.

앞의 세 사람은 혈전방의 이합 경지 고수였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은 기동 경지 9단계로 앞선 이들보다 실력이 낮아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이 네 사람은 도착한 뒤에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놀란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원 경지 4단계밖에 되지 않던 소년이 겨우 한 시진만에 개원 경지 정상의 실력으로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노랑의 시체가 바로 그의 발밑에 있었다. 목이 부러진 채, 죽은 모습은 매우 처참했는데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한이 서려 차마 눈을 감지 못한 듯한 모습은 이 음기 가득한 산골짜기 안에서 더욱 오싹하게 비쳤다.

“이 자는 네가 죽인 것이냐?”

혈전방의 이합 경지 고수가 물었다.

“가장 강한 놈과 너희들의 용 공자라는 자는?”

양준은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고는 머릿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혈전방 제자는 모두 일곱 명이 있었다. 문비진과 용휘가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을 빼고, 하응상의 쇠사슬에 맞아 죽은 기동 경지 제자를 제외하니 그들 네 명밖에 남지 않았다.

“흥, 너 같은 놈을 상대하는데 문 당주와 용 공자가 나서실 것까지 있겠어?”

양준에게 질문했던 이합 경지의 혈전방 제자가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이 사람은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 스물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혈전방은 머릿수로 한 사람을 괴롭힐 줄밖에 모르는군.”

양준은 비꼬며 말했다.

그 청년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너 같은 것을 상대하기에는 나 하나면 족하다!”

그는 지금 쇠사슬에 의해 실력 대부분이 봉인되었지만, 이합 경지의 기초가 있었기에 기동 경지 1단계보다는 강했다. 그런데 어찌 양준을 상대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

“쓸데없이 입씨름이나 하지 말고 와서 덤벼 보지그래?”

양준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양준도 느낄 수 있었다. 혈전방 제자들의 실력이 크게 감소되어 전처럼 그에게 강한 압력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원기의 파동이 많이 불안정하여 이합 경지인 세 사람의 지금 실력은 노랑과 비슷했다. 조금 더 강하다 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뒤에 온 한 명의 기동 경지 제자는 심지어 노랑보다도 못했다.

일대일로 붙는다면 양준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나만 먼저 죽인다면 나머지 일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녀석, 방자하군. 이 어르신이 널 어떻게 혼내 주는지 잘 보거라!”

청년은 역시 속아 넘어갔다.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양준을 향해 덮쳐들었다.

계획이 금방 성공할 것 같았다. 이 청년이 자신과 열 걸음 이내로 들어온다면 양준은 다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일격으로 그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때, 다른 혈전방 제자가 입을 열었다.

“원랑(元朗) 사제,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라!”

달려들던 청년은 바로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양준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네, 채(蔡) 사형.”

“이곳에는 이놈 한 사람밖에 없다.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 여자는 수단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녀석에게 노랑을 죽일 수 있는 실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여태까지 약한 척 연기를 했을 것이다. 얼른 이놈을 잡아들여 그 여자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그는 말을 하면서 경계 어린 시선으로 손을 휘둘렀다.

“함께 공격해!”

네 명이 한 사람을 공격하는 데다, 적수는 이합 경지의 무인이었다. 양준이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더라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네 사람은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동서남북에서 양준을 둘러싼 채, 다가오고 있었다. 드센 살기가 양준의 주위를 둘러쌌다.

위기에 닥쳤지만 양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봐, 너희 혈전방은 머릿수로 사람을 괴롭힐 줄밖에 모른다고 했잖아!”

방금 전, 하마터면 양준에게 속을 뻔했던 원랑은 얼굴이 벌게지더니 살기를 띤 채 소리쳤다.

“망할 놈, 입만 살아서는. 내가 너를 제대로 혼내 줄 것이다.”

“넌 아직 그럴 자격이 없다!”

양준이 소리치며 별안간 원기를 밖으로 내뿜었다. 그는 마치 불타오르고 있는 화구(火球)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이내 양준은 원랑과 맞붙었다. 쿵, 소리가 나더니 양준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원랑은 괴성을 지르며 날아갔다.

뒤로 세 걸음 물러난 양준은 순식간에 다른 세 사람에게 둘러싸였다. 세 갈래의 공격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본 양준은 다급히 몸을 수그리며 다른 이합 경지 고수의 일격을 피했다. 하지만 동시에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혈전방 제자에게 등을 내주고 말았다.

양준은 이를 신경 쓰지 않고, 경계심이 가장 강한 이합 경지 고수의 가슴팍으로 뜨거운 원기를 담은 주먹을 날렸다.

바로 이 사람이 방금 전에 원랑을 일깨워 주어 그가 양준에게 속지 않도록 한 사람이었다.

네 사람 중에서 이 자가 우두머리였고, 실력도 가장 높았다. 실력이 봉인되었다 해도 기동 경지 2단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양준은 반드시 그를 먼저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죽는다면 나머지 세 명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숨을 돌리는 새에, 양준은 이미 네 명과 각각 다른 형세로 접전했다.

경지가 제일 높은 혈전방 제자는 양준이 스스로의 안위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양준이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 공격에는 대단히 현묘한 술수가 들어있을 것이다! 물러나야 한다!’

이 사람은 매우 단호했다. 속으로는 양준이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중함을 기하기 위해 바로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손을 들어 양준의 공격에 맞섰다. 상대방의 실력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는 생각이었다.

손바닥이 나가기도 전에, 그는 양준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떠오른 것을 발견했다.

‘큰일 났다. 속았어!’

곧이어, 그는 양준의 두 손바닥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자신의 방어를 피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세로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양준의 두 손바닥은 자신을 적중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도 양준을 적중할 것이다.

‘그렇다면 같이 피를 보자는 것인가?’

머리를 다 굴리기도 전에 양준의 손바닥은 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두 손바닥은 이미 새빨개져 있었는데 또다시 온도가 한 단계 더 뜨겁게 올라갔다.

혈전방 제자의 눈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몸의 원기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 일격 뒤, 내가 죽는지, 네가 죽는지 한 번 보자고! 나는 이합 경지야. 비록 지금 실력이 대부분 봉인되어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도 채내 원기의 농도가 어찌 너보다 못하겠느냐?’

퍽! 퍽!

두 차례 소리가 들렸다.

혈전방 제자는 양준의 가슴팍에 일격을 가했다. 동시에 그의 가슴팍도 양준의 일격에 맞았다.

순간, 가슴팍을 방어하던 원기가 격렬하게 움직이더니 가슴팍이 녹아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녀석의 원기는 너무 뜨거워!’

그는 깜짝 놀랐다.

‘만약 내 경지가 이 녀석보다 높지 않았더라면 이 한 번의 타격으로 정말 내상을 입었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가 놀라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양준의 손바닥에서 또 한 번 뜨거운 기운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열감이 전해지자 그는 가슴팍이 무척 아파왔다. 몸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오장 육부도 뒤틀리기 시작했다.

“죽어라!”

혈전방 제자는 버럭 화를 내며 손바닥에 힘을 가했다. 양준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넝마처럼 날아가 버렸다.

양준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등 뒤에서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혈전방 제자가 검을 들고 찔러 왔다. 위기의 순간, 양준은 억지로 몸을 비틀었다. 검은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며 상처를 만들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양준이 다친 틈을 타, 이합 경지의 고수도 기회를 찾아 양준의 허리를 발로 걷어차 날려 보냈다.

양준이 날아가는 동시에, 약병 하나가 그의 가슴팍에서 미끄러져 나와 땅에 떨어졌다.

공중에서 양준은 피를 토하며 비틀비틀 착지했다. 그는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떨어뜨린 병을 바라보았지만 앞으로 다가가 줍지 못했다. 그러다가 발밑에 불빛이 일더니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숲속으로 도망쳤다.

원랑은 이 모든 것을 보고 다급히 앞으로 다가가 약병을 주웠다.

양준의 웃음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다.

“하하하, 혈전방의 이합 경지도 그저 그렇구나!”

‘도망쳤어?’

혈전방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양준이 휘파람 소리를 내서 자신들을 이곳으로 불러왔고, 위풍당당하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방금 전까지 기운도 넘쳐흐르고 말투도 상당히 방자한 것이 그들은 양준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먼저 도망쳐 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을 두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인가? 그들은 정말 양준에게 대단한 수단이 있는 줄 알았다. 지금 그가 도망친 방향을 보면서 그들은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쫓아가. 중상을 입었으니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원랑은 손바닥을 털며 분노에 차서 말했다. 그는 양준과의 첫 번째 접전에서 한방 먹었다. 양준의 원기가 그토록 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말을 마친 뒤, 원랑은 양준이 달려간 방향으로 바로 쫓아갔고, 다른 사람들도 다급히 따라갔다.

하지만 그들이 몇 걸음 가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갑자기 육중한 물건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경지가 가장 높던 이합 경지의 고수가 푹 고꾸라져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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