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장. 원랑의 추측
“사형, 왜 그래요?”
원랑은 깜짝 놀라 그를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무슨 일이에요?”
실력이 가장 약한 기동 경지 제자도 어리둥절했다.
방금 전, 이합 경지의 고수는 양준과 함께 다칠 각오로 일격을 겨루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또 다른 제자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얼른 다가가 그의 몸을 뒤집었다. 그러다 갑자기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채 사형이 어떤데?”
원랑이 다가오며 물었다. 그러나 사형을 본 순간, 그도 입이 떡 벌어졌다.
쓰러진 혈전방 제자는 근육이 새빨개진 채, 두 눈은 위로 툭 튀어나온 것이 옆에 있던 노랑의 시체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의 호흡은 완전히 멈춰 있었고, 가슴팍에는 손톱만 한 구멍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검붉은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뜨거워!”
그를 잡고 있던 혈전방 제자는 다급히 시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체가 바닥에 닿는 순간, 갑자기 폭발해 버렸다.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땅에 흩뿌려지고 붉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살아 있는 세 사람은 얼굴에 온통 피를 뒤집어썼다. 피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원기가 느껴졌다.
세 사람은 겁에 질렸다. 그들은 실력이 가장 강한 채 사형이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은 거지? 도대체 양준이 언제 손을 쓴 거지?’
세 사람은 멍하니 제자리에 앉아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흩뿌려진 사형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혈전방 고수 네 명이 함께 양준을 상대하려고 움직였는데 순식간에 한 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양준은 검에 한 번, 발에 한 번, 그리고 일격을 맞부딪쳤을 뿐이었다. 그것도 중상이었지만 결국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세 사람은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려 이합 경지의 고수였다. 그런데 어떻게 개원 경지의 무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인가?
비록 그 여자에게 대부분의 실력이 봉인되었고, 또 음기의 침입을 막느라 원기를 소모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동 경지의 실력은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세 사람의 안색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심지어 겁이 나기까지 했다.
그들은 속으로 만약 방금 전, 양준의 목표가 사형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그들도 이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원랑은 그제야 채 사형의 지혜와 경계심에 감탄했다. 만약 사형이 일깨워 주지 않았더라면 양준의 손에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사형은 도대체 어떻게 죽은 걸까요?”
실력이 가장 약한 혈전방 제자가 어색한 정적을 깨뜨렸다.
이 말이 나온 뒤, 세 사람은 갑자기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방금 전까지 접전하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양준이 공격한 흔적을 발견했다.
“양준의 실력이 이렇게 강하다고?”
한 사람이 겁에 질려 물었다.
“이건 놈의 능력이 아니야! 놈은 분명 살상력이 아주 큰 비보를 가지고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절대 사형의 방어를 뚫고 일격에 목숨을 끊어 놓을 수 있을 리 없어!”
원랑은 침착해진 머리로 차분히 분석했다.
다른 사람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비보의 위엄에 기대지 않고 양준의 실력만으로 어떻게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겠는가?
“비보를 작동하려면 필요로 하는 원기도 그 양이 엄청나. 게다가 그의 실력은 개원 경지밖에 되지 않으니 그에게는 공격할 기회가 한 번밖에 없었던 거야. 그래서 일격이 끝나자 승패를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도망친 거지!”
원랑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환해지고 생각도 잘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추측 중 상당 부분은 양준의 의심스러운 거동과 맞아떨어졌다.
“이미 한 번 일격을 날린 이상, 그는 지금 그저 강노지말(強弩之末)에 불과해. 그 비보는 분명 더 이상 작동시킬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중상까지 입었으니 그를 두려워할 필요 없어!”
다른 두 사람도 그의 분석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마조마하던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비보만으로도 이 정도로 해낼 수 있구나. 깜짝 놀랐네!’
만약 양준의 요상한 실력이 채 사형마저 쉽게 죽일 수 있는 정도라면 그들은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없었다.
실력이 가장 약한 혈전방 제자가 말했다.
“사형이 죽임을 당했는데 우리 가서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원랑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끔 보더니 가볍게 꾸짖었다.
“보고할 필요 없어!”
그 말은 들은 제자는 살짝 머뭇거렸다.
다른 한 사람은 사색에 잠긴 눈으로 원랑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실력이 가장 약한 제자에게 말했다.
“오(吳) 사제, 원 사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기동 경지 제자는 망연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말을 꺼낸 사형을 바라보고는, 또다시 고개를 돌려 원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원랑이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래도 엽(葉) 사제가 눈치가 빠르군.”
기동 경지 제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형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형 두 분, 좀 쉽게 설명해 주실 순 없나요?”
원랑은 그를 힐끗 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오 사제는 양준이 믿고 있는 비보의 등급이 어떤 것 같아?”
기동 경지 제자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네 명에게 둘러싸였으면서 일격으로 채 사형을 죽인 것으로 봐서는 비보의 등급은 절대 낮지 않을 거에요. 못해도 지급 중품일 것이고, 지급 상품일 가능성은 더 크고요!”
그들은 모두 직접 눈으로 하응상이 천급 방어 비보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양준의 손에 지급의 비보가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급이라고 말한 것은 가장 낮게 잡아 하는 말이었다. 이 추론도 이치에 맞았다.
원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우리가 이 일을 문 당주에게 보고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아?”
기동 경지 제자는 거의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양준은 죽을 것이고 비보는 문 당주에게…….”
말을 하던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만약 문 당주가 양준의 손에 지급 비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그들의 몫이 있겠는가? 그 여자 몸에 있는 천급 비보는 이미 용휘 공자의 몫이었다. 문 당주가 고기는 먹지 못해도 국물은 마시려고 들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는 국물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그들은 돌아간 뒤, 문 당주에게서 상으로 은자나 몇 푼 받고 끝날 것이 분명했다. 이번 일은 위험이 많아 이미 형제들 중 여러 명이나 죽었는데 이득을 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보상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방금 전에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 돌아와 아직도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이것을 어떻게 은자 몇 푼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문 당주는 구두쇠여서 상을 내린다고 해도 얼마 주지 않을 것이다.
“두 사형의 뜻은…….”
기동 경지 제자는 떠보듯 물었다.
원랑과 이합 경지의 제자는 서로 마주 보았다. 이합 경지 제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원 사형이 말하는 대로 하면 돼.”
원랑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아, 두 사제 모두 이 일에 이의가 없다니 그럼 우리는 보고하러 가지 말자고!”
“좋아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 손에 있는 비보는…….”
원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돌려 두 사제를 바라보았다.
“누가 그를 죽여 채 사형의 앙갚음을 한다면 그 사람이 가지는 거로 하자. 어때?”
“원 사형의 말대로 해요!”
“우리 갈라져야 하나요?”
기동 경지 제자는 실력이 가장 떨어졌다. 방금 전, 채 사형조차 그 자리에서 일격에 죽는 것을 본 그는 당연히 겁이 났다. 양준과 단둘이 마주쳤을 때 대적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합 경지의 제자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뭐 있어? 양준이 비보를 한 번 작동했는데 원기가 남아 있겠어? 게다가 그는 전에 풍우루의 사람들과 크게 전투를 벌였고, 또 우리에게 중상을 입기도 했어. 누구라도 그를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거야.”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이 오기 전에 양준은 이미 노랑과 크게 한바탕 싸워서 소모가 컸을 것이다. 또 양준이 다친 것을 그들도 다 보았고, 이곳의 환경도 열악하니 양준은 원기를 소모하면서 음기의 침입을 막기까지 해야 했다. 이렇다 보니 그의 실력은 이미 7~8할 정도 떨어졌을 텐데 마주친다면 정말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이 상황은 양준을 죽여 채 사형을 위해 앙갚음을 해준다기보다, 양준 손에 든 지급 비보가 목적이었다.
먼저 양준을 찾는다면 지급 비보를 손에 넣게 될 텐데 어떻게 같이 움직일 수가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기동 경지 제자는 흥분되어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