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장. 하나씩 격파하다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위를 본 기동 경지 제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를 질렀다.
“양준……!”
말이 끝나는 순간, 양준은 이미 그의 머리 꼭대기에 근접해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 그는 마치 독수리가 사냥을 하듯, 한 손바닥으로는 새빨간 빛을 내며 기동 경지 제자의 정수리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이 변고는 너무나도 빨리 일어났다. 기동 경지 제자가 검을 빼낼 시간조차 없이 양준의 공격은 이미 그를 향해 날아왔다.
다급한 와중에 그는 머리를 옆으로 꺾으며 겨우 급소를 피했다.
콰앙!
양준의 일격은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기동 경지 제자의 팔 한쪽이 아래로 툭 떨어지며 절단되었다.
“으악!”
뜨거운 원기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양준의 목을 조준하며 장검을 휘둘렀다.
양준은 공중에서 뒤로 구르더니 발밑으로 검면이 스쳐 지나가 아슬아슬하게 이 일격을 피했다. 다시 바닥에 착지한 뒤 양준은 두 발로 지면을 튕기며 빠르게 기동 경지 제자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기동 경지 제자가 검을 든 오른손을 감싸면서 밀고 당겼다. 그렇게 평형이 무너진 그를 깔끔하게 자빠트렸다.
이 연속된 동작은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흘러가는 물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바닥에 쓰러진 기동 경지 제자는 피를 왈칵 토했다. 양준은 무릎으로 그의 어깨를 누른 채, 두 손을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었다.
두둑-
기동 경지 제자의 오른팔이 순식간에 부러졌다.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 깜짝할 새에 그의 두 손은 못 쓰게 되었고, 몸은 양준의 발아래에 깔려 있었다.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는 양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양준은 한 발을 들더니 그가 땅에 떨어뜨린 검을 주웠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을 조준하여 단번에 찔러 넣었다.
“너… 네가 어떻게…….”
기동 경지 제자는 입에 피거품을 물고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직 전투할 기력이 남아 있는 거지? 겨우 개원 경지의 무인이잖아? 그렇다면 기진맥진해야 마땅한 거잖아! 원 사형, 젠장. 나는 사형 때문에 죽은 거야!’
이 생각을 끝으로, 그의 두 눈은 점차 광채를 잃었다.
혈전방의 기동 경지 제자를 죽인 양준은 숨을 헐떡였다. 몸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다시 한번 뿜어 나왔다.
하지만 양준은 지체할 시간이 없어, 죽은 혈전방 제자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벽혈현양단을 찾아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몸에는 돈이 될만한 또 다른 물건들이 있었다. 회원단 반 병과 은자 몇 장이 모두 양준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혈전방 제자의 시신을 들고 나무 위로 훌쩍 뛰어오른 양준은 시신을 나무 꼭대기에 잘 숨겨 두고 다시 뛰어내려서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날이 밝기까지 두 시진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네 명을 더 죽여야 했다. 그중의 한 사람은 진원 경지의 고수로 버거운 상대였다.
실력이 성장함에 따라 양원인이 감지할 수 있는 범위도 더욱 넓어졌다. 양준은 현재 이백 장 거리 안에서 느껴지는 양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백 장의 범위는 충분히 컸다. 평소라면 이합 경지 고수들의 감지 능력이 뛰어나 이백 장 안의 기척은 그들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이백 장 안은 양준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한참 뛰어간 양준은 갑자기 멈춰 섰다. 다른 한 사람의 존재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왠지 제자리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양준은 잠깐 기다려 봤지만 그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양준은 이 사람이 머무르는 곳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산골짜기의 음기가 모두 그 방향으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한참 뒤, 양준은 드디어 상대방과 삼십 장이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게 되었다. 그는 큰 나무 뒤에 숨은 뒤, 조심스럽게 그 사람을 살펴보았다.
저 멀리 흐릿한 그림자 하나가 멈춰 서 있었는데, 그와 멀지 않은 곳에는 작고 새하얀 물건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물건은 마치 작은 태양 같이 근처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크기가 비둘기 알 만했다. 하지만 안으로부터 소름이 돋는 한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이는 혼도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한기였다.
이때, 뭔가가 끊임없이 데굴데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의 움직임에 따라 산골짜기의 음기는 마치 무슨 힘에 이끌리듯, 빠르게 그 방향으로 흘러갔다.
구음응원로!
양준은 이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비록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양준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응상이 그를 데리고 구음회합지로 온 것은 바로 이 구음응원로를 제련하기 위해서였다.
‘구음응원로가 저렇게 생겼구나!’
양준은 구음응원로가 한 방울의 이슬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것은 작은 알처럼 생겼고, 영성(靈性)을 띠고 있어 천지 간의 음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양준이 몰래 관찰하고 있을 때, 삼십 장 밖에 있던 혈전방 제자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바로 엽 사제라 불리던 이합 경지 제자였다. 그는 양준을 추적했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예상 밖에 구음응원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당연히 이것의 신묘한 점을 알지 못했지만 이것이 비보라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몰래 근처에서 한참 관찰하던 그는 지금 막 손을 뻗으려고 하는 찰나였다.
그가 움직이자 양준도 따라서 움직였다. 지금 혈전방 제자의 정신은 온통 구음응원로에 집중되어 있어 습격하기 좋은 기회였다.
그는 꿈에도 양준이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습격할 정도로 담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탐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고양이처럼 몸을 놀려 살금살금 구음응원로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구음응원로는 제자리에 멈춰서 끊임없이 산골짜기의 천지 음기를 흡수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음기가 가득한 바람이 불었다.
혈전방 제자와 구음응원로의 거리가 오 장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의 잠자코 있던 원기가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움직이던 몸도 먹이를 덮치는 표범처럼 날아갔다. 그는 뜨거운 시선으로 손을 뻗어 구음응원로를 잡으려고 했다.
양준도 따라서 움직였다. 그는 그 제자의 몸에 시선을 고정하고 손에는 방금 전에 빼앗은 장검을 들고 있었다. 양준은 상대가 무방비 상태일 때, 그의 옆에서 습격할 생각이었다.
혈전방 제자가 구음응원로를 손에 넣었다고 여길 때, 구음응원로는 갑자기 음기를 흡수하던 것을 멈추고 내부로부터 아주 짙은 원기를 내뿜으며 그를 공격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빠른 탓에 혈전방 제자는 발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그는 크게 놀랐다. 방금 전까지 한참 관찰하면서 이것이 천재지보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이 물건에 영성이 있어 위험이 닥쳤을 때, 반격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혈전방 제자는 순간 화들짝 놀라 마주 향해 오는 한기를 느끼며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겁을 먹었다. 그는 원기를 운행하여 자신을 덮쳐오는 한기를 막으려고 했다.
충격을 감당할 준비가 되자마자 구음응원로는 갑자기 흔들거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환하던 주위가 어둠에 잠기고 말았다.
갑자기 어두워지자 그의 시선은 영향을 크게 받아 주변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보지 못했다.
바로 이때, 양준이 손을 뻗었다.
양준의 시야도 영향을 받았지만 적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 검을 찌를 때, 목숨을 노리지는 못해도 다치게는 할 수 있었다.
혈전방 제자의 정신은 온통 마주 오는 한기에 몰두해 있었는데 언제 옆으로 오는 살기를 신경 쓸 틈이 있었겠는가?
곧이어, 그는 몸이 휘청이더니 정면으로 다가오는 한기에 온몸이 얼어붙어 원기를 조금도 운행할 수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런데 그가 숨을 돌리기도 전에, 허리에서 커다란 통증이 느껴지더니 무언가에 찔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합 경지인지라 적을 상대한 경험이 풍부했다. 비록 시야가 영향을 받았지만 본능적으로 날아올라 양준이 있는 방향을 향해 발을 휘둘렸다.
신음 소리가 들리면서 어깨를 맞은 양준이 나가떨어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양준은 더 이상 몸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시야가 점차 밝아지며 혈전방 제자는 한 서린 시선으로 양준이 있는 방향을 내다보았다. 그의 몸은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그는 손으로 허리를 잡은 채 비틀거렸다. 허리춤에는 장검 끝이 삐져 나와 있었다. 방금 전, 양준이 전력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그는 원기를 운행하여 한기를 막아야 하다 보니 전혀 방어를 하지 못했다.
“너였구나!”
양준의 얼굴을 본 혈전방 제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방금 전,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한 가지는 원랑 또는 오 사제가 자신을 습격한 것이었다. 이익이 중요한 그들에게 동문끼리 서로 죽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한 가지는 그 여자가 자신을 죽이려고 습격하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이 더 있었지만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바로 이 산골짜기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독안에 든 쥐와 다를 바 없는 양준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하!”
양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맞은 어깨를 움직여보고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 걸음, 한 걸음 겁 없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