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장. 발각되다
“이럴 수가…….”
“뭐 때문에 그렇게 놀라는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너희들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가 봐?”
양준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건…….”
혈전방 제자는 고개를 숙이더니 그만 깜짝 놀랐다.
“이건 오 사제의 검이야.”
“맞아. 그놈은 이미 내 손에 죽었지. 이제 네 차례야!”
이 순간, 혈전방 제자는 마음속으로 강렬한 치욕감이 샘솟았다.
방금 전, 채 사형이 양준의 손에 죽었을 때는 그저 비보의 위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양준을 마주하고 나니, 그는 사형이 죽은 것이 양준의 실력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무려 이합 경지란 말이다! 그런데 고작 개원 경지인 무인의 손에 죽게 되다니… 이게 무슨 법도라는 말인가?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그는 순간, 울컥하고 피를 토했다. 그의 안색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몸의 상처, 마음속 치욕감이 그를 초췌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반항할 수 없었다.
“나는 너희들과 아무런 원한이 없었어. 하지만 너희들이 먼저 나를 찾아와 공격했으니, 내가 매정하다고 탓하지 마라!”
양준은 차가운 얼굴로 그의 앞까지 걸어가 일격을 날렸다.
혈전방 제자는 갑자기 눈을 빛내면서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손에 쥔 채, 양준을 향해 휘둘렀다.
양준은 몸을 낮추더니 주먹을 쥐고 그의 아래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는 아래턱이 부서지고 몸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가 다시 거세게 땅으로 떨어졌다.
그가 다시 반항하기 전에 양준은 앞으로 뛰어가 두 주먹을 날리며 원기를 폭발시켰다. 혈전방 제자는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
양준은 일어서서 비웃음을 흘렸다.
“이런 뻔한 술수를 쓰다니!”
그는 방금 전, 약한 척하며 양준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단번에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양준은 미리 방어하고 있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더구나 그는 무인이었다. 적수를 죽이기 전에 그 어떤 방심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양준은 이합 경지 제자를 죽인 뒤, 그의 몸을 수색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여전히 예비용 단약 한두 병에 약간의 은자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단약은 내가 써도 되겠군.’
은자도 꽤나 여러 장 되었지만, 양준은 자세히 보지 않고 바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근처의 큰 나무 위에 걸어놓은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구음응원로는 진작에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조금 전, 구음응원로가 폭발시킨 음기는 양준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더없이 강한 한기를 뿜어냈다.
‘그래서 하 사저가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었군.’
구음응원로는 영성이 뛰어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을 느끼면 바로 도망쳐 버렸다.
이제 날이 밝기까지 한 시진 조금 넘게 남았다. 더 서둘러야 했으나, 그전에 양준은 하응상에게 구음응원로를 어떻게 거두는지 물어봐야 했다.
구음응원로는 종적을 찾을 수 없는 데다 산골짜기의 면적도 작지 않았다. 만약 운이 좋아 마주친다면 그때 거두어야 했다. 그러면 양준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기 전에 양준이 여러 번 물었지만 하응상과 몽 주인은 모두 대답하지 않고 때가 되면 알려 주겠다고만 했다.
지금은 드디어 알아볼 때가 되었다.
하응상이 숨어 있는 위치가 어딘지 양준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달려가면서 양원인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가는 길에 원랑을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달려오면서 양원인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 놈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양준의 감지 범위는 이백 장밖에 되지 않았으니 원랑이 이 범위를 초과했다면 양준도 그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응상이 숨어 있는 위치에 거의 도착하려던 순간, 양원인이 드디어 반응했다!
양준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놀란 것은 원랑의 현재 위치가 하응상이 있는 곳과 매우 가까웠다는 것이고, 기쁜 것은 드디어 이 혈전방의 제자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미 사저의 위치를 발견한 건 아니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다급히 그쪽으로 접근했다. 동시에 숨소리를 죽인 채, 그쪽의 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잠시 뒤, 양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은 조용하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원랑은 하응상이 숨은 곳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면 분명 싸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응상의 안위에 대해 양준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급 방어 비보를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숨은 위치가 매우 애매했다. 그곳은 한 사람밖에 드나들 수 없는 산골짜기 틈이었다. 만약 원랑이 안에서 길을 막고 휘파람 소리로 용휘와 그 고수를 불러온다면 일이 번거로워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더 조심스러워졌다.
*이때, 하응상도 매우 긴장한 채로 있었다. 양준이 떠난 뒤, 그녀는 줄곧 이곳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천급 비보를 작동한 데다 구음팔쇄진까지 치고, 결국 문비진의 일격까지 맞은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원기 소모가 컸다.
오래도록 회복하며 몸에 지니고 있던 단약을 전부 사용했지만, 그녀의 실력은 겨우 2할밖에 회복되지 못했다. 아무리 넉넉히 계산해도 개원 경지 7~8단계밖에 되지 않는 실력이었다.
바로 이때,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하응상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눈을 뜨고 밖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누가 근처에 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녀는 양준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만약 정말 양준이라면 바로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 사람은 밖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리면서도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당연히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이다! 하지만 실력이 어떤지 모르겠어!’
상대는 부근에서 족히 30분 동안 서성거리며 아주 자세하게 살펴보았지만 이곳은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그가 급히 떠나려는 것을 보고 하응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틈 입구의 관목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안심했던 하응상의 마음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작은 그림자 하나가 관목 숲에서 빠져나와 하응상의 앞까지 뛰어왔다.
그녀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내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는 그만 어이가 없었다.
그것은 산골짜기에 사는 다람쥐였다. 아마도 음기로 인해 서늘해진 바람을 피할 곳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응상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다람쥐에게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람쥐는 무척 경계심이 많아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람쥐가 공중에 있을 때, 한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다람쥐를 꽉 잡고 힘껏 눌러 터뜨렸다.
“하하하하!”
음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랑의 몸이 산 틈의 유일한 출구를 막았다. 그는 기쁜 얼굴로 안에 앉아 있는 하응상을 훑어보며 말했다.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하응상의 안색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녀는 분노가 담긴 예쁜 눈동자로 원랑을 노려보았다. 여인들은 자고로 모두 작은 동물을 사랑하는 법이다. 특히 귀엽고 온순한 동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비록 다람쥐가 그녀의 행적을 노출하기는 했지만, 원랑이 잔인한 수단으로 다람쥐를 죽인 것은 그녀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한참 찾았잖아!”
원랑은 산 틈 출구를 막고 여유롭게 하응상을 살폈다.
“하나의 실패를 다른 수확으로 보상받은 셈이군. 양준을 찾지 못해도 널 찾은 것은 큰 수확이니 말이야!”
이 말에 하응상은 한시름을 놓았다.
‘사제가 아직 무사하구나!’
“다가오기만 해봐, 널 처참하게 죽여버리겠어!”
하응상은 싸늘하게 위협했다. 그녀는 순진하여 거짓말을 할 때도 얼굴이 빨개졌다. 이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위협이 되었겠지만, 원랑은 그녀의 말에서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싸울 힘이 있기나 해? 문 당주의 일격을 맞았으니 당장 쓰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 지금 너는 겨우 숨만 붙어 있는 거잖아.”
원랑은 지금 실력이 봉인되었다고는 하지만, 하응상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정말 싸우게 된다고 해도 원랑은 그녀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제 경지는 모두 이합 경지였다. 다만 한 사람이 조금 높고 다른 한 사람이 조금 낮을 뿐이었다.
지금 유일한 출구가 막히자 원랑은 당연히 우세를 차지하여 승기를 쥐고 있는 셈이었다.
“순순히 말을 들으면 널 힘들게 하지 않을게. 하지만 반항한다면 내가 무정하다고 탓하지 마.”
원랑이 싸늘하게 위협했다.
하응상은 침묵을 지키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몰래 원기를 모아서 그가 다가올 때, 단단히 혼을 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랑은 이미 그녀의 속셈을 파악하고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출구를 막고 있을 뿐이라, 하응상은 애가 탔다.
“난 너한테 천급 방어 비보가 있다는 것을 알아. 지금 내 상태로는 널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내가 신호를 전해 다른 사람들이 오게 한다면? 너에게 도망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원랑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마음으로 하응상의 심리적 방어선을 말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너 원하는 게 뭐야?”
하응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네가 살고 싶다면 내 몇 가지 요구에 순순히 응해야 하고, 응하지 않으면 난 지금 바로 신호를 보내 사람들을 부를 거야!”
기회를 잡은 원랑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무슨 조건인데?”
하응상도 원랑과 시간을 끌고 싶었다. 시간을 끌수록 그녀의 원기가 조금이라도 더 회복될 수 있었다.
“첫째, 스스로 원기를 봉하고 순순히 붙잡혀. 둘째, 방어 비보를 넘겨줘! 셋째…….”
원랑은 음탕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면사포를 내려서 네 얼굴을 좀 보여줘. 걱정하지 마. 난 너를 어찌하지 않을 거야. 만약 네가 정말 미인이라면 내가 널 살려주마. 절대 괴롭히지 않고 말이야!”
이 말은 어린애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응상이 정말 스스로 원기를 봉인한다면, 원랑은 더욱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컴컴한 밤에 남녀 단둘이 있는데 어느 남자가 미색에 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응상은 단순했지만 쉽게 속지는 않았다. 그녀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꿈 깨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