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장. 용휘와의 대결
하응상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녀는 다친 양준을 보호하기 위해 1 대 2로 상대하려 했던 것이다.
그림자가 흔들리는 순간 열 갈래의 서늘한 기운이 날아올랐다. 그중 일곱 갈래는 문비진, 세 갈래는 용휘를 습격했다. 속도는 번개처럼 빨랐고 기세가 살기등등했다.
문비진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어린 낭자의 살기가 장난이 아니군. 그러면 안 되지.”
말을 하면서 문비진은 두 손바닥으로 가볍게 하응상의 공격에 대응하며 말했다.
“용 공자, 저 녀석을 맡아주시죠. 이 계집애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알겠어.”
용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부도 잊지 않았다.
“얼굴은 다치게 하지 마.”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문비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달려드는 하응상과 맞붙었다.
비록 하응상이 4할의 실력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친 상태였다. 지금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은 기동 경지 6~7단계 정도였다.
문비진은 상황이 더 안 좋았다. 그는 기동 경지 2~3단계 실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진짜 경지는 달랐다. 하응상은 이합 경지의 정상이었으나 원기를 다루고 있었고, 문비진은 진원 경지였기 때문에 다루는 것이 진원이었다.
진원과 원기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진원이 발휘할 수 있는 살상력은 원기보다 훨씬 컸다.
게다가 문비진의 싸움 경험은 하응상보다 훨씬 풍부했다. 대적하게 된다면 오히려 그녀에게 불리했다. 현재 그녀의 실력으로 문비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고, 기껏해야 비기는 정도였다.
두 사람 모두 고수라 싸움도 아주 치열했다. 몸이 날쌔게 움직이는 사이에 백 장 밖으로 재빠르게 날아갔다.
양준은 하응상의 전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과 십여 장 거리에 떨어져 서 있는 용휘를 흘겨봤다. 그리고 가볍게 웃었다.
“네가 용휘냐?”
용휘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려는 거냐? 이미 늦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용휘는 깔보는 눈빛으로 양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이 네가 죽기 전의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양준은 말없이 웃으며 용휘를 바라봤다.
“정말 호미아 때문에 나를 죽이려는 거냐?”
”그게 아니면 내가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이렇게 멀리까지 왔겠어?”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와 호미아는 단지 몇 번 만났을 뿐이야.”
“네가 호미아에게 관심이 없더라도, 호미아는 달라!”
용휘의 얼굴에는 성난 표정이 드러났다.
“호미아는 너를 위해 우리 할아버지까지 거역했어. 호미아가 남자를 위해 이렇게까지 한 적은 없었어! 네놈이 뭔데 내 여자를 흔드는 거야!?”
“네 할아버지면…….”
양준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는 용재천이 다짜고짜 자신을 공격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금신이 작용하여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질문이 하나 더 있어.”
양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내가 능소각을 떠난 걸 어떻게 안 거지?”
그들이 지금 여기까지 쫓아왔다는 것은 자신이 능소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쫓아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종적을 놓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양준이 능소각을 떠날 때 이미 누군가에게 발각되었다는 것이었다.
용휘는 가볍게 웃었다.
“누가 몰래 소식을 알려줬지.”
역시나!
“몰래 소식을 전한 자가 누군지 나도 몰라. 하지만 누구한테 미움을 샀는지는 네가 짐작하겠지!”
용휘는 경멸의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봤다.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양준이 곧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았다.
“풍우루의 노랑은 예상 밖이었다. 나도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지.”
양준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용휘는 그를 속일 필요가 없었다. 용휘가 그렇게 말한 이상 모두 사실일 것이다. 노랑이 우연찮게 양준이 외출하는 것을 보고 쫓아왔을 수도 있다. 어차피 노랑은 이미 죽었으니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줬으니 이제 죽어라!”
용휘는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이내, 몸을 날려 양준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의 두 눈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는 원기를 운행하여 두 주먹을 사납게 휘둘렀다.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깃털 같은 모양을 띤 빛들이 양준에게 날아들었다.
“비우폭(飛羽爆)!”
지급 중품의 무공이었다!
용휘는 용재천의 작은 손자로서 신분이 낮지 않았다. 그래서 수련한 무술의 등급도 보통이 아니었다. 비록 그는 기동 경지 1단계였지만, 그의 실제 실력은 같은 경지의 노랑보다 한 수 위였다.
용휘가 그저 여색만 밝히는 귀족 공자는 아닌 탓에 지금의 양준으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적수였다.
깃털 모양의 빛이 날아들자 양준은 황급히 몸을 피해 용휘의 공격이 허공을 향하게 했다. 용휘는 그 모습을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용휘는 개원 경지 4단계인 양준이 자신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곧이어, 사납고 포악한 원기 파동이 양준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용휘는 짙은 원기 파동을 느끼고는 안색이 달라졌다.
‘이게 어디 개원 경지 4단계란 말인가? 이 정도면 개원 경지 정상이잖아. 파동의 짙은 정도만 보면 나와 비겨도 손색이 없겠어.’
의아한 것도 그저 한순간이었다. 용휘는 다시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에서 원기가 솟아오르며 주먹을 힘껏 휘둘러 위에서 아래로 양준을 내리치려 했다.
양준이 공격을 다시 피하자 그 주먹은 바닥에 부딪혔다. 굉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고, 바닥에 큰 구멍이 하나 생겼다.
용휘가 일어나기도 전에, 자리를 피했던 양준이 재빨리 돌아왔다. 양준은 무릎을 높이 쳐들고 그의 턱을 가격했다.
용휘도 반응이 느리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턱을 가리며 양준의 공격을 막았다.
무릎이 딱 들어맞으며 두 사람의 원기가 솟아올랐다. 양준은 비틀거렸고, 용휘도 뒤로 넘어갔다. 용휘는 그 힘을 빌려 양준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두 사람은 한 수씩 겨루더니 다급하게 제자리에 섰다.
용휘는 양준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줄곧 실력을 숨겨왔구나. 아무리 그래도 넌 내 상대가 안 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휘의 그림자가 갑자기 흐릿해졌다. 발바닥에는 마치 금빛이 스치는 듯하더니 순간 양준의 뒤로 다가갔다.
금홍보(金虹步)!
지급 중품의 무공이었다.
신묘한 발걸음의 신속함을 이용해 용휘는 결국 양준의 방어 사각지대에 이르렀다. 용휘의 손가락에서 원기가 솟구치더니 양준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는 양준을 단번에 죽이려 했다.
생사의 위기에서 양준은 뒤에서 바람이 느껴지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손가락이 그의 뺨을 스쳤고 날카로운 원기가 그의 얼굴에 핏자국을 냈다.
양준이 몸을 돌리더니 손끝에 양액 한 방울이 나타났다. 이내, 양액은 얇은 핏빛 칼날이 되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용휘를 향해 세차게 날아갔다.
‘강적이다!’
양준도 더 이상 실력을 감출 수 없었다. 작은 방심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칼날은 용휘의 몸을 두 동강 냈다. 하지만 양준은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실체를 맞히지 못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잘린 것은 용휘의 잔영일 뿐이었다.
용휘의 움직임은 너무 빨랐다.
“반응이 빠르구나.”
용휘의 목소리가 십여 장 밖에서 들려왔다. 그는 한가롭게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이 다시 한번 그를 향해 핏빛 칼날을 날렸다.
용휘는 머뭇거리지 않고 또 금홍보를 사용해 피했다. 그는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 양준을 바라봤다. 마치 조롱하며 하찮아하는 표정이었다.
양준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빛은 불굴의 의지로 빛났고, 전의가 들끓었다.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용휘의 앞으로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용휘의 그림자는 이미 또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흥. 네 달팽이 같은 속도로 나를 이기려고 했어? 자신의 분수도 모르는구나.”
용휘의 입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비아냥거리는 재주를 한껏 발휘했다.
용휘는 금홍보 덕분에 양준이 자신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상대방이 나를 때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
양준의 맹렬한 공격은 단지 그의 원기를 낭비할 뿐이었다. 용휘는 그가 지쳐 갈 때쯤 필살기를 날릴 생각이었다.
“느려, 너무 느려……. 나를 죽이지 못하면 네 여인을 내 기꺼이 품어주마. 그녀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너무 기대되는걸, 그녀가 나에게 괴롭힘 당할 때 어떻게 비명을 지를지!”
용휘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하하하, 나는 여인이 반항하면서 지르는 비명을 제일 좋아해. 그 장면을 떠올려 봐봐. 마음이 아프냐?”
용휘는 적을 어떻게 자극하고 화나게 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양준의 일격을 피할 때마다 조롱의 말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용휘의 자극에 분노해서 이성이 흐트러졌을 것이다.
양준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된 상태였고, 원기의 움직임이 불안정했으며, 정서가 격앙되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시선은 단호했다. 그는 조롱을 당하면서도 승리를 향한 결심에 전혀 변함이 없었다.
잠시 동안 그들의 접전은 계속되었다. 양준은 많은 기술을 사용했지만, 용휘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했다.
용휘는 비아냥거리느라 입안이 바싹 마르고 있었고, 속으로는 은근히 놀란 상태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싸웠으니 분명히 원기를 다 소모했을 텐데, 왜 공격할 때마다 뿜어내는 위력이 약해지지 않는 거지?’
용휘의 생각이 맞았다. 보통의 개원 경지 무인들은 확실히 이렇게 오래 버티다 보면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양준은 보통의 개원 경지와는 달랐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용휘는 양준과 장기전을 치르려는 계획이었다.
용휘가 의문을 가지며 고민하는 사이, 양준이 또 일격을 가했다. 용휘는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촤락 하는 소리와 함께 한줄기 뜨거운 열기가 그의 옆구리를 공격하고 지나갔다.
고개를 숙여보니 옷이 잘려 나가 구멍 난 것이 보였다. 용휘는 조금 전 그 공격에 하마터면 다칠 뻔했다.
“안타깝군.”
양준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흥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침착함도 뒤섞여 있어 상당히 모순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