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장. 이게 누군지 봐봐
“이럴 수가!”
용휘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조금 전 그 일격은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예상하고 공격한 것이었다. 용휘가 운이 좋지 않았더라면 양준의 공격을 맞고 다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발을 디딜 곳을 어떻게 알았지? 설마 그 사이에 양준이 내 금홍보를 간파했나? 아니야, 양준은 겨우 개원 경지의 실력인데 관찰력이 그렇게 뛰어날 리가 없어!’
“다음엔 죽지 않아도 중상을 입을 거다!”
양준은 용휘를 차갑게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개소리하지 마!”
용휘는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나를 협박하기엔 넌 아직 일러.”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맹공격을 퍼부었다.
용휘는 분노했다. 그는 이번에 금홍보를 사용해 피하지 않고, 양준의 일격을 조준하여 권법을 날렸다.
권법이 주먹에 닿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용휘는 끓어오르는 원기가 몸에 침투하여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양준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용휘는 더 이상 양준과 정면 대결을 하지 않았다. 그는 황급히 금홍보를 펼쳐 양준과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휙-
이때, 다홍색의 물방울 같은 것이 갑자기 날아오더니 용휘가 막 멈추려는데 그의 오른쪽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비명소리가 울리고 용휘는 공포에 질린 채 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감쌌다. 헐떡거리는 그의 입가에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실성해서 외쳤다.
“이럴 수가, 그럴 리 없어. 절대 불가능해.”
용휘의 금홍보는 뜻밖에도 양준에게 간파당했다. 그의 공격은 용휘가 금홍보를 사용하여 움직인 곳에서 이뤄졌고,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 공격은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용휘의 몸에 착용한 범급 상품의 방어 비보를 관통했을 뿐만 아니라 체내까지 스며들었다. 원기가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그것만으로도 몸을 뚫었을 것이다.
“불가능한 것은 없어.”
양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빠르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용휘는 금홍보가 소용이 없어지자, 문비진이 있는 쪽으로 도망가며 외쳤다.
“문 당주, 살려줘!”
지금 용휘는 불안해하며 온몸을 떨고 있었다. 조금 전의 오만과 여유는 온데간데없었다.
이때, 그의 등 뒤에서 무슨 기척이 느껴졌다. 이내,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등에 큰 통증이 느껴지며 용휘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용휘가 일어서기도 전에 커다란 발이 그의 목을 밟았다. 발의 힘은 마치 무거운 돌이 머리를 짓누르는 것과 같았다. 그는 바닥에서 열심히 버둥거렸지만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는 혈전방 부방주 용재천의 작은 손자다. 나를 살려주면 돈도 여인도 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건 내가 다 주마. 나를 죽여도 너에겐 도움도 안 되고, 용씨 가문과 원수만 지게 될 거야.”
용휘는 반항할 수 없게 되자 양준에게 계속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양준을 등지고 있는 그의 눈에는 한 줄기 사악한 기운이 감돌았다.
“거참, 시끄럽네.”
“그래그래. 네가 싫다면 조용히 할게, 입 다물고 있으면 되잖아.”
불리한 상황이 되니 용휘는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굴었다.
“그럼 영원히 입 다물어.”
말을 마친 양준은 발을 들어 용휘의 머리를 밟아 얼굴이 바닥에 눌리게 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더니 주먹으로 목뼈를 가격했다.
뚜둑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나더니 용휘의 목이 부러졌다. 부릅뜬 두 눈에는 두려움과 후회가 가득했다.
양준은 한 손으로 용휘의 시신을 들고, 재빨리 하응상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문비진과 하응상의 모습이 양준의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비슷한 형세로 누구도 뒤지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실력은 봉인되어 있는 상태였고, 다른 한 사람은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둘 다 원기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고, 많은 수단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의 고수들의 결투는 양준이 겪은 결투보다 훨씬 격렬했다.
몸을 이리저리 날렵하게 움직이며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는데, 원기도 같이 방출되어서 상황이 긴박했다.
양준은 곁에서 한동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문비진을 일 대 일로 만나면 이길 가망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응상이 있어 이 대 일이라 이길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살펴보던 양준은 이미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는 문비진에게 재빨리 다가가면서 용휘의 시신을 들고 외쳤다.
“문 당주, 이게 누군지 봐봐.”
문비진은 양준이 다가온 것을 진작 느꼈지만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쪽의 자세한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양준의 말이 들리자 겨루느라고 바쁜 와중에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봤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용 공자!”
용휘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목이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뼈가 부러진 듯 머리가 가슴 앞으로 늘어뜨려진 채, 생기가 전혀 없었다.
‘용휘가 죽었다.’
문비진은 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용 공자도 기동 경지 1단계의 무인인데!”
게다가 용휘는 문비진이 군침을 흘리며 욕심낼 만한 무공들을 연마하여 전투력도 만만치 않았다. 문비진은 용휘의 실력을 믿었기에 그와 양준이 일 대 일 승부를 펼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용 공자가 죽다니? 젠장, 망했다.’
문비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혈전방의 다른 제자들이 죽은 건 상관없었지만, 용휘는 달랐다.
‘용휘는 죽으면 안 된다! 용 공자가 죽은 걸 알면 용재천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신유 경지인 그가 죄를 묻는다면 나는 감당할 수 없어.’
고수들의 접전은 그 승부가 찰나에 결정되는 법이다.
용휘의 죽음은 분명 문비진의 심경을 어지럽혔다. 다급한 초식에 허점이 수두룩했다.
하응상이 이 귀한 기회를 놓치겠는가?
하응상의 아름다운 두 눈에 한기가 스치더니, 그녀는 두 손바닥을 교차하며 일격을 날렸다.
문비진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채고 안간힘을 쓰며 막으려 했지만, 끝내 완전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폭발한 원기가 그의 가슴에 부딪혀 금세 상처를 입혔다.
양준은 문비진이 다시 하응상을 상대하게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용휘의 시신을 들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용휘의 겨드랑이 사이로 뜨거운 원기를 담은 주먹을 날렸다.
하응상은 때맞춰 문비진에게 압력을 가했다.
문비진은 좌우의 협공에 순간 허둥거렸다.
문비진의 지금 실력으로는 하응상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양준은 아니었다. 자신이 맹공격을 가하면 양준 정도는 중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준은 비열하고 파렴치하게 용휘의 시신을 앞에 들고 방패로 삼았다.
때문에, 문비진은 여러 가지 수단이 있다고 해도 그에게 발휘할 수 없었다. 양준을 다치게 하려면 먼저 용휘의 시신을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파렴치한 놈.”
문비진이 노발대발했다. 그는 두 사람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죽은 자에 대한 경의도 모르는 것이냐. 감히 용 공자의 시체를 이렇게 대하다니, 천벌을 받을까 두렵지도 않느냐!?”
양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천벌을 받을 건 너희들이다. 너희들이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됐겠어?”
문비진은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산골짜기에서 천재지보를 찾으려 했을 뿐,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들이 일부러 밖에서부터 쫓아와 양준과 하응상을 죽이려고 했다. 더군다나 사람이 많다는 것과 권세를 믿고 약한 사람까지 괴롭히려 했다.
‘지금 와서 어떻게 남을 비난할 자격이 있겠는가?’
말다툼 끝에 양준은 기회를 포착해서 일격을 날렸다. 문비진이 하응상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낼 때, 양준의 공격이 그의 허리를 강타했다.
무려 양액을 열 방울이나 사용하여, 그것은 순식간에 예리한 칼날로 변해 날아갔다.
문비진은 짧은 신음을 흘리더니 빠르게 후퇴했다. 그는 깜짝 놀라 양준을 쳐다봤다.
양준의 이번 공격은 뜻밖에도 하응상보다 몇 배나 더 강력했다. 뜨거운 양기가 체내에 스며들어 그의 복부에는 이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중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부상이 깊었다.
양준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자신이 진원 경지의 고수를 얕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 방울의 양액으로는 문비진의 몸을 뚫을 수 없었다.
진원 경지 고수의 체내에 있는 진원의 방어력은 원기보다 한 수 위였다.
“사제, 조심해!”
하응상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양준은 문비진의 눈에서 광기 어린 살기를 발견했다. 문비진은 바로 양준을 향해 돌진했다.
‘드디어 격노했군.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나를 공격하려는 것인가?’
양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서서히 번졌다.
양준은 양액을 사용하면 문비진이 자신을 먼저 공격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경지는 하응상보다 낮을지라도 양준이 발휘할 수 있는 살상력은 그녀보다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양준은 만약 자신이 문비진이어도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그가 짐작하던 그대로였다.
양준은 문비진의 공격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르게 접근했다.
“안 돼.”
하응상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접근하고 있었고, 속도가 매우 빨라 그녀가 말릴 새가 없었다.
“멍청한 놈, 죽고 싶은 것이냐?”
문비진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고 바로 양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양준이 숨을 깊게 들이쉬자 온몸의 근육이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그는 원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운행시켰다. 몸 안의 뼈가 우두둑 소리를 냈다. 현재 양준의 모습은 화가 잔뜩 나고 피부가 붉어진 것이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문비진의 손바닥이 용휘의 시체를 가격했다.
마치 수박 한 통이 깨지듯 용휘는 순식간에 고기 조각이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용휘의 뒤에 숨어 있던 양준이 모습을 드러내자, 문비진은 다시 손바닥을 날렸다. 이번 목표는 이미 방어막이 사라진 양준이었다.
두 사내의 얼굴에는 동시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