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장. 구음응원로를 거둬들이다
하응상은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비진의 손바닥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양준의 가슴을 가격했다.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양준이 피를 뿜자 그 피가 코앞에 있는 문비진에게 튀었다.
문비진은 얼른 몸을 틀어 피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이 아직 양준의 가슴팍에서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양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양준이 문비진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그는 숨을 가쁘게 쉬며 핏빛으로 물든 두 눈으로 문비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걸려들었군!”
문비진은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양준의 생명력이 이 정도로 강할 줄 몰랐다. 또, 그의 체내 원기가 이토록 강한 방어 작용을 발휘할 줄 몰랐다. 방금 날린 장풍은 양준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그의 예상처럼 목숨을 앗아가지는 못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개원 경지의 무인이라면 방금 그 장풍을 맞고 반항할 힘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렇게 강한 힘이 남아 있는 거야? 도대체 얼마나 강한 의지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
“이거 놔!”
문비진은 다른 손을 들어 양준에게 일격을 날렸다.
하응상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화가 난 그녀는 몇십 장 내의 음기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순식간에 영롱한 얼음조각이 하응상 앞에 나타나더니 휙휙 소리를 내며 문비진을 향해 날아갔다.
문비진의 손바닥이 아직 공격 지점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얼음조각이 날아와 그대로 박혔다. 처참한 비명 소리와 함께 피가 사면팔방으로 튀었다.
양준은 흥분되어 원래 불안정하던 원기가 점점 더 격렬하게 솟구쳤다.
개원 경지 정상에서 안정적으로 일렁이던 원기가 갑자기 승부욕과 격렬한 전투의지로 그 속박을 벗어났다. 그 순간 새로운 돌파를 가져왔다.
기동 경지!
양준의 실력이 진짜 기동 경지를 돌파한 건 아니었다. 다만 원기가 뿜어내는 파동이 기동 경지 수준에 위력을 가질 뿐이었다.
현재 양준의 전투력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양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문비진은 절망을 느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손을 거둬들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다른 손은 하응상의 공격으로 인해 손바닥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픔에 문비진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졌다.
뚜둑-
양준이 온 힘을 다해 문비진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열 손가락은 가슴과 닿아 있다고 했다. 이런 아픔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문비진은 이내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또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문비진의 비명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양준은 비열하게 웃으며 문비진의 다섯 손가락을 하나하나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를 확 잡아당기더니 무릎을 올려 팔을 부러뜨렸다.
이때, 하응상은 양준의 상처를 살피는 한편, 한순간도 쉬지 않고 문비진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양준은 이런 고수를 죽이려면 그의 자유를 제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둘의 실력으로는 문비진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용휘마저 그런 묘한 보법이 있는데, 진원 경지의 고수인 문비진이라곤 없을까? 만약 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도망간다면, 날이 밝은 후에는 자신과 하응상도 끝이었다.
하지만 고수를 제압하기가 그렇게 쉽겠는가? 문비진의 실력이 절반은 봉인되었다고 해도 양준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양준은 다소 모험을 하기로 했다. 자신의 몸으로 그의 공격을 당해내고 순식간에 그를 속박하기로 했다.
이건 커다란 판이었다. 양준은 자신도 그 판에 걸었는데 문비진이 걸려들지 않고 버티겠는가?
두 손이 모두 망가진 문비진은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 마냥 실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계속해서 비명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문비진은 양준의 손아귀에서 가장 잔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고작 몇 번의 호흡이 오가는 사이, 문비진의 비명 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그의 호흡도 옅어졌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곁에서 지켜보던 하응상은 가슴을 졸였다. 그녀는 오늘 이 사제를 처음 만난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2년 동안 그를 관찰하면서 한 번도 이렇게 미쳐서 날뛰는, 사나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세 갈래의 검은 음기 사슬이 문비진의 체내에서 빠져나오더니 허공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산골짜기에 흩어져 있던 다른 다섯 갈래의 음기 사슬도 같이 날아오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
“사제, 문비진이 죽었어!”
하응상이 양준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음기 사슬이 날아갔다는 것은 문비진의 생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죽었어요?”
양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제, 괜찮아?”
하응상은 울먹거렸다. 그녀는 양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온몸에 사악한 기운이 넘치고 주화입마의 증상이 보였다.
양준은 그녀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에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저의 무공이에요. 보기에 좀 무서울 뿐이에요.”
하응상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양준을 바라봤다. 그의 두 눈이 무섭긴 해도 그 속에 차분함이 담겨있는 모습에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도 다 죽었으니 우리 가서 구음응원로를 찾으러 가요!”
양준은 중요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너 버틸 수 있겠어?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괜찮아요. 하지만 좀 더 지나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요.”
양준은 하응상의 손을 잡더니 음기가 모이는 발원지로 뛰어갔다.
밤이 거의 끝나가고, 산골짜기의 음기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모두 구음응원로에게 흡수당한 모양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구음응원로가 보였다.
이때, 꽃봉오리가 완전히 활짝 폈다. 꽃 속에서는 은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구음응원로는 어떻게 거둬야 하죠?”
양준이 물었다.
하응상이 수줍게 말했다.
“너의 원기로 저것을 구속해. 그리고 저것을… 입에 머금어야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기억해, 신체의 어떤 부위로도 저것을 건드리면 안 돼.”
‘입에 머금으라고?’
양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세히 물어보려고 하는데 하응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온다!”
말하는 순간, 거대한 꽃봉오리가 서서히 벌어졌다. 꽃봉오리가 펼쳐지는 순간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영롱하고 투명한 이슬 같은 액체 한 방울이 꽃봉오리에서 서서히 떠오르더니 또르르 굴렀다.
그것을 받치고 있던 꽃잎도 순간 짙은 음기로 녹아내려 액체에 스며들었다.
마치 보석 같은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가슴이 서늘해지는 음침하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구음응원로!
하응상은 두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구음팔쇄진이 다시 한번 작용을 발휘했다. 구음응원로가 나타나는 순간 공중에서 찰칵거리며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여덟 갈래의 음기 사슬이 공중에 나타났다. 사슬은 하응상이 소리치자 구음응원로 주변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그것을 가둬버렸다.
“사제, 이제 시작해.”
하응상이 긴장한 채 양준을 주시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그녀는 양준에게 구음응원로 따윈 어찌 돼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막상 눈앞에 있으니 당연히 거두고 싶었다.
양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묵직한 걸음으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여덟 갈래의 음기 사슬이 만든 공간은 양준에게 효과가 없었다. 양준의 체내에 있는 진양원기는 모든 음기와 상극이었다.
그 작은 공간에 들어가자 구음응원로는 마치 양준의 의도를 알기라도 하는 듯 그와 가장 먼 거리로 도망가서 공중에 떠 있었다.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니, 그 물건은 정말로 보석 같았다. 하지만 이슬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크기도 엄지손톱만 했다.
‘진양원기로 이것을 속박하라고? 어떻게 해야 할까?’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잠깐 생각하더니 양액 한 방울을 사용했다.
양액이 나타나고 양준이 속으로 생각하자 손바닥에 붉고 커다란 그물 망이 생겨났다. 아무렇게나 휘두르자 그물망이 구음응원로를 향해 덮쳤다.
구음응원로는 불리한 상황에서 완강하게 반항했다. 그것은 좌우로 날아다니며 그물망을 피했다.
“재미있네!”
양준이 입을 벌리고 웃었다. 그는 많은 천재지보들이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양준은 다른 손에 양액 한 방울을 더 꺼내 큰 그물망의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어디로 도망가나 보자!’
좌우로 공격을 하니 과연 효과가 있었다. 붉은 망이 물고기를 잡듯이 구음응원로를 속박했다.
손가락을 튕기자 양액으로 만들어진 그물망이 거둬들여졌다. 그물에 꽁꽁 쌓인 구음응원로는 드디어 얌전해졌다.
양준은 감히 손으로 건드리지 못하고 양액과 구음응원로를 동시에 입에 밀어 넣었다.
입안에 차가움이 느껴지더니 뼈가 시릴 정도의 한기가 입안에서 퍼졌다. 양준이 진양결을 수련하기는 했지만 이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체내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 기운은 진양원기보다 더 효력이 있어 음기의 차가움을 눌렀다.
동시에 진양결이 저절로 운행되며 구음응원로의 기운을 뼛속에 빨아들이려고 했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양준은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얼른 진양결의 운행을 멈추었다. 하지만 순간의 머뭇거림에 구음응원로가 절반이나 줄어든 것이 느껴졌다. 되려 그의 뼛속에 한 줄기 한기가 생겨 소용돌이치더니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