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8화 (88/853)

제 88장.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몽무애의 마음속에 생긴 고뇌와 후회가 점차 화로 변했다.

깊은 호흡을 한 몽무애는 가슴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상아, 구음응원로는 거뒀느냐?”

“네.”

하응상이 멍하니 누워 있는 양준을 쳐다보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그것을 제련하거라. 양준은 걱정 말고. 내가 있으니 이놈은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

몽무애가 위로했다.

하응상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신신당부했다.

“스승님, 절대 양준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하면 안 돼요. 제가 살아 있는 게 양준 때문이에요. 사제가 목숨 걸고 지키지 않았다면 저는…….”

하응상은 말을 하다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몽무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응상은 그제야 감정을 가라앉히고 눈가를 닦았다. 그녀는 가지고 다니던 봇짐을 가져왔다. 그리고 양준의 상태를 살피는 한편 구음응원로를 제련하기 시작했다.

반 시진이 흐른 뒤, 하응상은 구음응원로의 제련을 끝마쳤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 영물의 약효를 단전에 누르고 흡수하지 않았다. 이것은 흡수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그 후에야 진원 경지로 진급할 수 있는데 그것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양준이 깨어나지 않는 이상, 하응상은 온전히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가자, 우리 우선 여기를 떠나자. 양준의 상태가 지금 이 모양이니 잘 휴식해야 한다.”

몽무애는 허리를 굽혀 양준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하응상과 함께 재빨리 흑풍산 밖으로 달렸다.

두 사람은 능소각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곳은 능소각과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양준과 하응상이 머물렀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객잔을 찾아 잠깐 머물기로 했다. 하응상은 힘든 줄도 모르고 매일 양준의 침대 옆에서 시중을 들며 온갖 정성을 다했다.

몽무애는 매일 양준에게 진원을 주입하면서 그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애썼다.

*기절한 후 양준은 의식이 공허의 세계에 들어섰다. 그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전에 그가 검은 책에서 얻었던 금신이 보였다.

금신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온몸이 금빛 찬란했다. 양준도 가부좌를 하고 그 앞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빛도 없었다. 양준은 오직 앞에 있는 금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금신은 눈이 없었지만 양준은 그 역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양준과 금신은 여전히 무소음의 상태를 유지했다.

양준은 금신의 오묘한 비밀을 깨우치고 있었다. 지난번에 불굴지오를 깨우칠 때 금신에게 아직 숨겨진 비밀이 더 있다고 느꼈지만 그때는 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동안 양준은 불굴의 의지로 금신을 정복하여 금신의 힘을 얻을 수 있기는 했지만, 금신이 온전히 그에게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생사를 건 결투를 치르고 나자 양준은 금신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때, 금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금신은 무수한 금빛으로 변해 양준의 체내로 들어갔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다.

양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야 자신이 금신을 진정으로 소유했다는 것을 말이다.

금신은 이제까지 계속 양준을 관찰하고 시험했다. 그리고 오늘, 양준은 드디어 금신의 인정을 받았다. 금신은 오늘에서야 온전히 양준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인정했다.

공허의 세계가 갑자기 붕괴되고 양준의 의식이 다시 돌아왔다.

양준은 눈을 뜨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봤다.

몸의 상처는 거의 완치되었지만, 아직 가슴이 약간 아팠다. 복부와 어깨의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다.

단전에 사십여 방울이나 있던 양액은 거덜이 나서 겨우 7~8방울밖에 없었다. 그날 밤 결투는 손실이 너무 컸다.

혈전방의 이합 경지 고수와 문비진에게 쓴 양액만 족히 스무 방울은 넘었다. 게다가 한기가 스며들까 방어해야 했던 데다, 상대편이 현저히 수가 많아 전투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액을 잃고 아무런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전투로 인해 양준의 경지가 개원 경지 4단계에서 개원 경지 7단계로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한꺼번에 세 단계나 상승하자 양준은 깜짝 놀랐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문비진과 겨룰 때 불굴지오를 사용하는 순간, 갑자기 기동 경지의 실력이 발휘됐었다. 아마 그때가 경지를 돌파했던 순간인 것 같았다.

양준은 이번 돌파를 의식하지 못했다. 만약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지금도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좋은 점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양준은 왜 엉겁결에 구음응원로의 절반을 흡수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구음응원로가 금신의 가장 은밀한 곳에 저장되었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이 진원 경지로 진급할 때 이 구음응원로로 진원을 수련하면 진원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금신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던 부분들도 양준은 드디어 확실히 알아냈다.

이 금신은 양기 외의 어떤 기운이라도 흡수하여 저장해둘 수 있었다.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 양준에게 돌려주었다.

금신이 흡수한 기운이 많을수록 자신의 불굴의 의지가 굳세지고, 금신이 줄 수 있는 힘은 더 커졌다. 다만 금신이 주는 기운은 음산하고 사악한 것이었다. 그래서 양준이 불굴지오를 사용하기만 하면 눈이 피처럼 붉게 변하고, 온몸이 사악한 기운에 휩싸였다.

그 사악한 기운은 양준의 체내에 있는 진양원기가 눌러 주었다. 진양원기는 음산하고 사악한 기운과 상극이어서 양준이 정신을 완전히 잃지 않게 했다. 두 힘은 서로 억제하며 서로 도와줬다. 양준은 덕분에 전투력이 늘어나는 동시에, 살기와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준은 왜 검은 책이 자신에게 진양결을 줬는지 이해했다. 그가 기운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한편 풍마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드디어 금신의 정확한 의도를 알았어!’

양준이 눈을 뜨려고 하는데 귓가에 작게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하응상과 몽무애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응상아, 나는 최선을 다했다.”

몽무애는 미안한 말투였지만 아쉬움과 애틋함은 없었다.

몽무애는 매일 진원으로 양준의 상처를 치료했다. 지극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몽무애가 생각했을 때 전에 먹은 단약 때문이라도 양준은 적잖게 회복됐어야 마땅했다. 완치가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깨어나야 했다.

하지만 양준은 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식도 없었다.

몽무애는 양준의 신체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금색 단약은 사실 기사회생의 약효를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양준의 외상을 약간 치료하고 그 효력을 잃었을 뿐이다.

양준의 몸에 불어넣은 진원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양준의 몸은 밑 빠진 독처럼 진원도 흡수해 버렸다.

몽무애가 어떻게 금신의 비밀을 알겠는가?

금신은 양기 외의 모든 기운을 흡수했다. 그 금색 단약과 진원 모두 9할은 금신이 흡수했는데 어떻게 작용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스승님…….”

하응상은 며칠 동안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너무 울어서 두 눈은 벌겋게 부은 상태였다.

“전혀 방법이 없어요?”

하응상은 기대하는 시선으로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았다. 몽무애는 내력이 비범하고 신통했다. 만약 그가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양준을 구할 사람은 없었다.

“양준의 혼이 흩어진 것 같구나.”

몽무애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며칠 내내 그의 신혼을 느끼지 못했어.”

하응상의 표정이 굳어지고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죽지 않을 것이다.”

몽무애가 얼른 위로했다.

“다만 깨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 하고, 몸에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이다. 아니면…….”

“아니면 뭐요?”

“아니면 우리가 회혼액(回魂液)을 찾아 흩어진 양준의 혼백을 다시 모은다면 모를까.”

몽무애가 탄식했다.

“하지만 회혼액은… 이런 작은 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

“어디서 구할 수 있는데요?”

하응상의 목소리가 갑자기 평온해졌다. 그 평온함 속에 견고함이 있었다.

몽무애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손을 뻗어 가리켰다.

하응상은 침묵했다. 하지만 시선이 단호했다. 어찌 되었든 반드시 회혼액을 찾아 사제의 흩어진 혼백을 모아줄 생각이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시는 거예요?”

두 사람이 비통한 기분에 젖어 있을 때 뒤에서 갑자기 미약하게 쉰 목소리가 들렸다.

몽무애는 거의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네 상처에 대해…….”

말을 꺼내다가 몽무애의 낯빛이 변했다. 그는 굳어서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동공이 작아졌다. 침대에 누운 양준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보고 있었다.

“사제!”

하응상은 너무 기쁜 나머지 얼른 달려갔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두 눈의 기쁨은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걱정스레 양준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게 빨개진 그녀의 두 눈을 보니 양준은 저도 모르게 감동받았다. 자신이 혼수상태로 지낸 날이 짧지 않았고, 그녀가 그동안 적지 않게 걱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양준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저 몸이 좀 허할 뿐이에요.”

“스승님, 빨리 와서 보세요.”

하응상이 눈물을 닦으며 몽무애를 잡아당겼다. 몽무애는 끌려오다시피 양준의 곁에 다가왔다.

몽무애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내가 튼실하니 망정이지, 아니면 너한테 끌려다니느라 온몸이 부서지겠다.’

하지만 몽무애는 곧 정신을 차리고 굳은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양준을 자세히 살폈다.

한참 지나서 몽무애의 미간이 펴지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건 이치에 맞지 않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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