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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89화 (89/853)

제 89장. 그날 밤 일을 말해 보거라

몽무애가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하응상의 낯빛이 변했다. 그녀는 양준의 상처가 악화된 줄 알았다.

“스승님, 사제가…….”

하응상은 입술을 깨물고 낮게 말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아, 이미 깨어났으니 별일 없다.”

몽무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양준을 쳐다봤다.

“별일 없다고요?”

하응상은 그 말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스승의 모습을 보면 양준의 상태가 아주 심각한 것 같았는데 갑자기 별일 없다니?

“하지만 이건 불가능한데.”

몽무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양준, 너 죽었다 살아난 것이냐?”

양준이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몽 주인, 지금 저주하시는 겁니까?”

몽무애는 계면쩍어 하며 말했다.

“하지만 네 혼백은 이미 흩어졌잖아. 어떻게 돌아온 것이냐?”

양준은 속으로 흠칫했다. 의식이 금신 속에 들어간 것과 관련된 것 같았다.

“스승님은 진짜 돌팔이에요!”

하응상이 분해서 발을 굴렀다.

몽무애는 난처해서 죽을 것 같았다.

방금까지 양준을 회복시키려면, 반드시 회혼액으로 혼백을 모아야 한다고 했는데 다음 순간 양준이 깨어났다. 체면이 깎이는 건 둘째치고 제자 앞에서 위엄을 잃는 건 큰 문제였다.

몽무애는 이미 위엄이 바닥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양준이 깨어난 건 좋은 일이었다. 몽무애는 그가 하응상을 꼬실까 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날 밤 양준이 목숨 걸고 지켜주었기에 하응상이 살 수 있었고, 또 그 덕분에 구음응원로를 거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은혜는 가슴에 새겨야 했다.

몽무애는 어쩔 줄 몰랐다. 예로부터 좋은 사람은 오래 못 살고, 나쁜 놈들이 천년만년 이름을 떨친다고 했다.

‘양준 이놈이 귀한 내 제자에게 폐를 끼치고 어디 그리 쉽게 죽겠어? 괜한 걱정을 했군.’

몽무애는 오히려 이제부터가 걱정이었다. 그는 고민스러웠다. 단칼에 이 둘을 갈라놓고 싶지만 또 제자가 화를 낼까 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양준이 정신을 차리자 하응상은 드디어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양준이 깨어나지 못할까 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이제 양준이 아무 일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녀는 당연히 걱정할 게 없었다.

그 뒤로 이틀 동안 양준은 휴식을 취하고, 하응상은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몽무애는 곁에서 한숨만 쉬었다.

셋째 날, 몽무애는 드디어 하응상에게 엄령을 내렸다. 우선 구음응원로를 흡수하고 원기를 진원으로 전환한 다음에 진원 경지에 오르라고 했다. 이미 제련된 물건을 계속 단전에 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하응상은 거절하지 않고 얌전히 명령을 따랐다. 평소에 그녀는 스승의 말을 잘 듣는 얌전한 제자였다. 저번에 스승에게 약을 쓴 것도 작은 사고일 뿐이었다.

세 사람은 객잔에 머물렀지만 몽무애의 실력이 높아서 당연히 눈먼 사람들이 하응상을 건드릴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걱정 없이 그녀에게 폐관 수련을 하라고 했다.

양준의 몸에 난 외상과 흉부의 골절은 아직 며칠 더 있어야 나을 수 있었다. 그는 매일 수련하고 명상하면서 하응상이 진급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양준이 수련하고 있는데 몽무애가 뜨거운 국을 들고 들어왔다.

양준은 코를 벌름거리며 향기를 맡더니 바로 눈을 떴다.

몽무애는 손에 들린 커다란 그릇을 양준에게 가져다 놓으며 아까운 마음을 숨기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마시거라.”

양준은 머뭇거리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 입을 쩝쩝 다시고 트림을 한 그는 흥분해서 말했다.

“이건 무슨 약이에요? 약효가 대단하네요.”

양준은 한 그릇을 다 마시자 온몸이 후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국에는 거대한 기운이 있어 피와 살 그리고 경맥에 녹아들었다. 일부는 양준의 상처를 치료했고, 나머지는 금신에 흡수당했다.

몽무애는 입가가 꿈틀거리며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내가 천년 혈령삼과 다른 천재지보들을 같이 끓여서 만든 인삼탕이다. 약효가 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젠장! 이것들이 가치가 얼만데 한 입에 다 들이켜다니. 적어도 천천히 음미는 해야 할 게 아니냐.”

“맛이 좋네요.”

양준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몽무애는 심호흡을 하며 가슴에 끓어오르는 기혈을 가라앉혔다.

‘사랑스러운 제자가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이 물건들로 네놈에게 몸보신을 해주라고만 안 했어도 내가 이 귀한 것들을 꺼냈겠느냐? 대한 왕조에 한 개도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란 말이다. 에고, 밑천을 다 썼네. 망했어.’

“더 있어요?”

양준이 입술을 핥으며 아쉬운 듯 물었다.

몽무애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없다. 있어도 네놈에겐 안 줘. 이놈아, 더 먹으면 배 터져 죽는다.”

양준은 웃어넘겼다. 그는 금신이 자신을 버티게 해주고 있으니 아무리 많은 기운과 천재지보가 있더라도 저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배 터져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 어느 정도 나았으니, 그날 밤 일을 한 번 말해 보거라.”

몽무애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눈에 오랫동안 숨겨왔던 분노와 살기가 희번덕거렸다.

양준이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봤다.

“사저가 말 안 해줬어요?”

“그 애가 며칠 동안 네 상태를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이길래 안 물어봤다.”

몽무애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며 양준을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산골짜기에서 죽은 사람은 누구냐? 또 누가… 너희들을 공격했느냐?”

“혈전방과 풍우루의 사람들이에요.”

양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을 대략적으로 말했다. 그가 혼자 아홉 명을 죽인 일은 당연히 슬쩍 넘겼다. 그 일은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었다. 말한다고 해도 몽무애가 믿지 않을 수 있으니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양준은 말을 마쳤다.

“그렇다면 네가 원인 제공자구나. 하지만 주동자는 용휘고, 맞지?”

“네. 이번에는 제가 사저에게 폐를 끼쳤어요.”

양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네가 원인 제공자이긴 하지만 네 잘못이 아니다. 응상이도 다치지 않았으니 신경 쓰지 말거라.”

몽무애는 양준을 위로했다. 그리고 냉소를 지었다.

“혈전방, 용재천! 두고 보자.”

몽무애의 두 눈에 위험한 빛이 번뜩거렸다. 양준은 용재천에게 크게 사달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몽 주인이 어떤 내력과 실력인지 양준은 알지도 못했고, 추측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 사람이 보통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만약 용재천에게 따지러 간다면 양준은 기꺼이 그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속이 후련하지 않았다.

양준은 자신의 복수는 직접 해야 속이 시원했다. 용재천이 만약 몽무애의 손에 죽는다면 그는 그날의 복수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양준은 몽무애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는 이번에 진짜 화가 난 것 같았다. 마음속에 화를 담고 풀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었다.

객잔에서 이틀을 더 보낸 뒤, 하응상이 드디어 출관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진원 경지에 도달했다. 양준이 슬쩍 알아본 바에 의하면 구음응원로는 완전한 모습으로 제련해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론적으로는 한 방울의 구음응원로를 세, 네 명이 같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물건은 인자(引子)일 뿐이었다. 무인이 원기를 진원으로 바꾸는 과정에 사용하는 것이 인자였다.

그 사실을 안 양준은 드디어 한시름을 놓았다. 자신이 흡수한 절반의 구음응원로가 하응상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 절반짜리 천지 영물도 금신 속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녀의 말처럼 사라지지도 않았다.

양준의 상처도 다 아물고, 하응상도 진급하자 세 명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능소각으로 향했다.

양준은 몽 주인에게 들려서 날아왔다. 오는 내내 적지 않은 바람을 맞은 탓에 머리가 아팠다.

능소각에 돌아온 후 양준은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거의 스무 날 동안 오지 않았지만 오두막은 여전히 새것처럼 깨끗했다. 보아하니 양준이 없는 동안 이운천 무리들이 와서 청소를 한 모양이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양준은 예전처럼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매일 수련하고 경지를 공고히 했다.

다만 여유를 가질 때면 하응상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양준이 입맞춤을 한 첫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촉감은 지금 생각해도 입맛이 다셔졌다.

능소각으로 돌아온 이후로 하응상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두 사람의 약속을 잊은 것 같았다.

그날 밤, 산골짜기에서 하응상은 그가 살아 돌아오면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양준은 그저 자신에게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응해준 것이라 생각하고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실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입맞춤은 구음응원로를 거두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 순간 두 사람 모두 감정이 흔들렸지만 그뿐이었다. 둘 다 젊고 혈기가 왕성하니 그런 상황에서 감정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양준은 그녀와 실력 차이가 난다고 자책하지 않았다. 실력이라는 건 노력해서 수련하면 자연스럽게 강해지는 법이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사저를 능가하고 또래들을 능가하는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다.

금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적인 감정은 양준이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것이라면 언젠가 그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의 것이 아니라면 억지를 부려도 결국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인연에 맡기면 될 일이었다.

하응상이 그에게 마음이 있다면 실력의 높고 낮음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만약 그의 실력 때문에 그녀가 멀어지는 거라면 양준도 할 말이 없었다. 상대방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데 어찌 상대방의 눈이 높다고 뭐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응상처럼 순수한 사람이 권세에 기댈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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