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91화 (91/853)

제 91장. 몽무애의 분노

몽무애의 목소리는 담담해서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쫙 돋았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고수가 좋지 않은 목적으로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혈전방의 부방주를 찾아왔다고?’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의문스러워했다.

“일단 나가 보지.”

호만은 몸을 일으키고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뒤에는 여러 당주들이 따랐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공중에 미동도 없이 떠 있는 고령의 노인을 보았다. 그 사람은 머리가 온통 하얗고 표정은 고요한 물 같았으며 날카로운 두 눈은 마치 매가 대지를 굽어보는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 데도 그에게는 비범한 기운이 풍겼다.

그가 두 눈으로 훑어보니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작아지는 것 같았다.

“신유 경지 정상이다.”

호만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거친 얼굴이 살짝 떨렸다.

“신유 경지 정상?”

누군가 경악했다.

“설마 능소각의 장문인인가?”

사방 수천 리 안에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정상의 경지까지 수련한 사람은 번개같이 나타나 구름처럼 사라진다는 능소각의 장문인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전설 속 능소각의 장문인과 나이가 비슷했다. 그러니 잘못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자가 아니다.”

호만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젊었을 때 능소각의 장문인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어서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노인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느끼는 압력으로 봤을 때 오히려 그 이상의 실력인 것 같았다.

호만은 신유 경지 7단계였다. 능소각의 장문인이 직접 온다고 해도 그에게는 큰 압력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노인은 달랐다. 호만이 그를 보고 있자면 마치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산이나 건널 수 없는 커다란 강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노인과 싸우면 안 된다. 이길 수 없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고수지?’

호만은 무거운 표정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공수하며 공손하게 물었다.

“감히 선배님의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 노인은 당연히 몽무애였다. 몽무애는 끓어오르는 화를 꽤나 오래 참았다. 능소각에 돌아오자마자 용재천을 찾아오려고 했지만, 제자가 몰래 양준을 찾아갈까 봐 이틀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진짜 폐관 수련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이제야 찾아온 것이다.

“네가 용재천이냐?”

몽무애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호만에게 떨어졌다.

호만의 원기가 저도 몰래 운행이 되었다. 생명에 위험이 닥친 듯한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방주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상대방에게 겁을 먹는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소인 혈전방의 방주 호만입니다. 선배님께서는…….”

호만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몽무애가 끊어버렸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용재천도 아니면서 왜 끼어들어?”

호만은 억울했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가 설명하려는데 몽무애는 그가 말하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고, 흥분하며 소리쳤다.

“용재천, 네 가족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와!”

그 호통 소리는 구름을 뚫고 땅이 진동할 정도였다. 혈전방, 심지어 풍우루와 능소각의 사람들까지 전부 똑똑히 들었다.

한마디 호통 소리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신유 경지와 진원 경지의 고수들은 모두 멍하니 서서 몽무애를 쳐다봤다.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할 말을 잃었다.

위엄이 가득한 고수가 이런 식으로 협박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악독하기까지 했다.

‘대체 얼마나 큰 원수를 졌기에 이렇게 품위를 모두 내던질 수 있을까? 용재천이 저 자의 보물을 빼앗았나? 저렇게 분노할 일이 뭐가 있지?’

혈전방 사람들은 몽무애의 고함소리로 그가 뚜렷한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호만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 선배님… 좋게 좋게 말하면 안 되겠습니까?”

호만은 몽무애와 척을 지기 싫었지만, 용재천은 어찌 됐든 혈전방의 부방주였다. 때문에 그저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좋게 말하긴 개뿔! 용재천 나오라고 해. 그놈이 당장 나오지 않는다면 너희 혈전방을 쓸어버릴 것이다.”

몽무애는 기세등등하게 선포했다. 찾는 놈이 나타나지 않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혈전방은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호만의 얼굴에도 살기가 떠올랐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인데 성격이 불같은 호만이 어디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몽무애의 실력이 걸렸지만, 그도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몽무애가 이토록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으니 호만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허허. 용재천은 겁쟁이로구나. 내 앞에 나서기가 무서운 게지?”

몽무애는 눈을 아래로 깔더니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이때, 한 젊은이가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어르신, 말할 때 선을 좀 지키세요. 우리 할아버지가 당신과 어떤 원수를 졌길래 이토록 모욕적으로 말씀하시는 건가요?”

입을 연 사람은 용준이었다.

몽무애는 나타나자마자 거리낄 것 없이 용재천을 욕했다. 온갖 더러운 말이 귀에 거슬렸다. 용준은 용씨 가문의 사람인데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그는 이곳이 혈전방 본진인 데다, 혈전방 고수들도 많이 모여 있으니 이를 믿고 나선 것이었다.

‘신유 경지의 정상이면 뭐? 혈전방도 신유 경지의 고수들이 있거든. 감히 여기서 공격을 펼치면 살아서 못 나가지.’

“네 할아버지라고?”

몽무애는 실눈을 뜨고 용준을 노려봤다.

“어르신이 찾는 분은 제 할아버지입니다!”

용준이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좋다, 좋아.”

몽무애가 웃으며 말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지. 그 아비에 그 새끼라고, 용휘 그놈이 그딴 물건인데 형인 너도 좋은 놈은 아니겠구나.”

‘갑자기 용휘 얘기가 왜 나오지?’

사람들은 노인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용준이 화가 나서 말했다.

“어르신, 여기는 혈전방이에요. 당신이 행패를 부릴 만한 곳이 아닙니다.”

“내가 행패를 부린다고?”

몽무애는 천하에서 제일 어이없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낯빛이 변하면서 호통을 쳤다.

“내가 행패를 부렸다고 한들 네놈이 어찌할 수 있겠느냐?”

말과 동시에 몽무애는 손바닥을 날렸다.

“비켜!”

호만은 안색이 변하더니 용준을 자신의 뒤로 당기려 했으나, 몽무애가 훨씬 빨랐다. 손을 드는 모습이 보이자마자 용준의 얼굴에서 찰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함께 용준의 치아 두 개가 날아갔다. 용준은 허공에서 몇 바퀴 구르더니 털썩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혈전방 사람들은 놀라 두려움에 떨었다. 호만도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호만은 허공에 떠 있는 노인이 어떻게 일격을 날렸는지 알 수 없었다. 족히 오십 장은 되는 거리에서 순식간에 손바닥을 날렸다. 그 누구도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이게 과연 신유 경지의 실력이란 말인가? 정상의 실력이라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호만은 만약 능소각의 장문인이 이런 공격을 하면 열에 아홉은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똑같이 신유 경지의 정상인 자들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용준은 뺨을 한 대 맞더니 넋이 나갔다. 그는 바닥에 넘어지자 허둥지둥 일어났는데 제자리에서 몇 바퀴나 돌아서야 정확한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몽무애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온통 두려움과 공포뿐이었다.

그의 오른쪽 뺨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도 혈전방에서 지위가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몽무애에게 얼굴을 맞았으니 얼마나 억울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내가 행패를 부린들 네놈이 어떻게 하겠느냐?”

몽무애는 여유롭게 용준이 제대로 서기를 기다렸다가 또 손바닥을 날렸다.

찰싹.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용준은 다시 날아갔다. 혈전방의 많은 고수들이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감히 내가 행패를 부린다고 말하다니 주제넘는구나!”

몽무애는 욕설을 퍼부으며 손을 털었다. 손에 똥이라도 묻은 것처럼 질색하는 표정이었다.

호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화가 나서 말했다.

“선배님은 고수이면서 한낱 어린 후배를 괴롭히십니까?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까 두렵지 않으십니까?”

“흥! 내가 진짜 작정하고 괴롭혔다면 저놈이 살아 있겠느냐? 작은 교훈을 준 거다.”

몽무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이리 오너라!”

몽무애가 손을 펼치니 바닥에 넘어진 채 아직 일어나지 못한 용준이 순식간에 방대한 힘에 끌려 날아갔다. 몸이 허공에 뜨자 용준은 버둥거리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방주님, 살려주세요!”

“선배님!”

호만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날카롭게 호통쳤다.

몽무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용준의 목을 잡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오늘 용재천을 찾으러 왔다. 네가 용재천의 손자라고 하니 얌전히 말하거라. 용재천은 어디에 있느냐!”

용준은 손바닥에 두 번 맞은 이후로 토끼보다 더 순하게 변했다. 아까처럼 젊은 혈기에 바락바락 대들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얼굴의 아픔을 참으며 더듬더듬 말했다.

“할아버지는 혈전방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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