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92화 (92/853)

제 92장. 씨앗을 구하다

“그럼 어디에 있느냐?”

“혈전방 광산에 계세요.”

“방향을 말해라!”

“저쪽이요!”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용준이 어디 감히 머뭇거릴 수 있겠는가?

몽무애가 한마디 물으면 그는 조금의 지체 없이 바로 대답했다.

몽무애는 몸을 홱 날리더니 백 장 너머로 날아갔다. 그는 용준을 데리고 혈전방의 광산으로 향했다.

“방주님!”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만을 간절하게 바라보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따라가자.”

호만은 가슴속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는 용재천이 도대체 어쩌다 이런 고수를 건드렸는지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방도 그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호만이 화가 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몽무애가 막무가내로 그들을 업신여긴 것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용재천이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려서 화를 혈전방까지 끌어들인 것 때문이었다.

호만은 용씨 가문이 최근 몇 년 동안 사리를 챙긴 것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게 아니었다. 다만 용씨 가문이 혈전방의 오른팔이었기에 이 혹을 제거할 마음이 있어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이다. 용씨 가문에 손을 쓰면 혈전방이 무너질 수도 있고, 세력의 균형이 크게 기울어질 수도 있었다.

자신에게 아들이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아들 하나만 있었다면 모든 정성을 다해서 키웠을 것이다. 그러면 용씨 가문의 후손들과 대적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정도까지 일이 벌어질 리 없었다.

이번에 용재천이 이런 고수를 건드린 것이 호만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 기회에 용씨 가문이 혈전방에 심어 둔 세력을 제거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어찌 됐든, 호만은 그를 따라가서 살피기로 했다.

*흑풍시장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양준은 은자 이만 냥을 들고 흑풍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우선 만 냥으로 양염석을 사고 돈을 좀 남겨 두었다. 그 후에는 빈터를 찾아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버린 팻말을 주워다 원래 있던 글자를 지우고 몇 글자 적었다.

“양의 속성을 가진 영초, 영과의 씨앗을 구매함.”

그는 팻말을 앞에 꽂아 놓고는 그쪽에 신경을 끈 채, 진양결을 운행해서 가슴속에 품고 있던 양염석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이운천이 양준을 도와 씨앗을 얻으러 다닌 적이 있었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그러니 씨앗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양준은 운에 맡길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양염석의 기운을 흡수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수련과 구입을 병행하는 것이니 밑질 게 없었다.

반나절의 시간을 들여서야 양준은 오늘 산 스무 개의 양염석 기운을 다 흡수했다.

한 조각의 양염석은 두 방울의 양액을 만들 수 있었다. 즉 양염석 스무 개라는 것은 양액 마흔 방울이었다. 몰래 단전의 상황을 살펴본 양준은 만족스러웠다.

이제 그날 밤처럼 격렬한 전투를 치러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도 씨앗을 팔려는 사람은 없었다.

양준은 몸을 일으키고 능소각의 제자들이 있는 오두막을 힐끗 쳐다봤다.

‘소안도 아마 저기에 있겠지.’

양준은 그녀에게 돌아왔다고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고는 그만두었다. 그녀와는 그렇게 깊은 사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양준은 그녀처럼 도도하고 고귀하며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양준이 능소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쪼그리고 앉아 팻말을 살폈다.

“씨앗을 구하는 거야?”

양준이 고개를 숙이고 보니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여인이었다. 나이가 많지 않고 17~8살 정도 되어 보였다. 얼굴이 수려하고 눈은 호수같이 맑았으며 피부가 깨끗하고 몸매도 괜찮았다.

“네.”

양준이 티 나지 않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나에게 씨앗이 있어. 그런데 사제가 그만한 가격을 지불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어떤 씨앗인데요?”

양준은 순간 흥미가 생겼다.

“그럼, 그 씨앗을 먼저 보여주세요.”

능소각의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여인은 능소각 제자인 것 같았다. 서로 동문이니 양준은 그녀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꺼내서 보여줄게.”

여인은 허리춤에서 정밀하게 만든 염냥을 꺼내 양준에게 넘겨주었다.

양준이 염낭을 받아서 열어보니 안에는 씨앗 두 개가 들어있었다.

두 씨앗에서 양성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씨앗은 그가 지난번에 산 삼양과의 씨앗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것 같았다. 삼양과가 지급 하품이라면 이것은 지급 중품 혹은 상품의 씨앗인 듯했다.

“이 두 알을 제가 다 살게요. 얼마에 팔고 싶으세요?”

양준은 씨앗에 매우 만족했다.

여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천 냥!”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웃는 게 아름다웠다.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운 용모를 더 빛나게 해줬다. 하지만 양준은 통쾌하게 그 가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양준이 천 냥으로 이 두 알의 씨앗을 사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양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씨앗의 성장 시기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이걸 천 냥 주고 산다면 밑지는 장사였다.

‘이 여인은 값을 높게 불렀군.’

양준은 그녀에 대해 갓 생겨난 친근감이 깨끗이 사라졌다.

“사저, 그 가격이면 좀 비싸지 않아요?”

양준은 만 냥의 여윳돈이 남아 있었지만,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를 사들이기 위한 것으로 함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싸다고?”

여인은 방긋 웃었다.

“이건 지급 중품 영초인 적자심(赤子心)의 씨앗이야. 심어서 다 키우면 쓸모가 많지. 어디 가서 천 냥 주고도 못 사.”

양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 키워야 쓸모가 많은 건데, 어느 세월에 다 키우겠어요?”

여인은 비쭉거리며 말했다.

“이왕 씨앗을 살 거면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지. 지금 심으면 바로 수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세상에 그렇게 편한 일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물건은 희소한 게 귀한 거라잖아. 이건 흔히 볼 수 있는 씨앗이 아니야. 내가 이거 얻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양준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요, 천 냥에 살게요.”

천 냥으로 씨앗 두 개를 사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정말 고생해서 이 두 개의 씨앗을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은자 천 냥을 세어 건네자 여자는 히죽히죽 웃으며 조심스럽게 넘겨받더니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제, 괜찮은 사람 같으니 이 염낭도 선물할게. 내가 직접 수놓은 거야.”

그녀는 말을 마치고 기분 좋게 사라졌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이 사저는 내가 동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알고도 이렇게 높은 가격을 불렀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거야.’

그녀가 바가지를 씌웠지만 양준은 화를 내지 않았다. 어차피 다음에 또 거래할 때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다시 제자리에서 조금 더 기다려 봤지만, 더 이상 씨앗을 팔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양준은 남은 돈으로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를 사려고 했다.

그때, 양준이 발을 떼기도 전에 땅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이어서 몇 번이나 더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흑풍시장이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땅이 갈라질 것 같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당황하여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잠시 후 누군가의 성난 호통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준의 얼굴이 갑자기 변했다. 그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몽무애라는 것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의 목소리는 용재천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싸움이 벌어졌나?’

양준은 이미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이 됐다. 이 소란은 몽무애가 복수하러 갔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다만 파급 범위가 너무 넓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면 혈전방 광산이었다. 광산 변두리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곳은 여기서 수십 리나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먼 거리인 데도 땅이 진동하다니.’

양준은 심지어 고수의 원기 파동까지 느껴졌다.

‘강해! 나는 언제쯤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양준의 눈에는 기대와 설렘이 번득였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흑풍시장의 나무집에 있던 세 문파의 제자들이 동시에 뛰어나왔다.

능소각의 소안, 혈전방의 호교아, 풍우루의 방자기(方子奇), 세 사람은 모두 표정이 굳은 채 싸움이 벌어지는 쪽을 바라봤다. 곧 동시에 진법을 사용해 세 개의 잔영이 되어 날아갔다. 각각 흰 인영, 녹색 인영, 회색 인영이었다.

흰 인영은 소안이었는데 맨 앞쪽에서 돌진했다. 녹색은 호교아였는데, 그녀는 가운데에 있었다. 마지막이 방자기였다. 세 제자는 실력이 뛰어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구경거리가 생겼나 봐. 얼른 가서 보자.”

당황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 시빗거리를 좋아해서 목청을 높이며 세 제자의 뒤를 쫓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순식간에 흑풍시장은 매우 혼란스러워졌고, 노점상들은 서둘러 장사를 끝내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인파를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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